[특파원 리포트] 판박이 같은 트 총리와 김 지사의 헛발질…금융시장의 신뢰를 잃다

입력 2022.11.14 (14: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영국 에덴브리지에 만들어진 리즈 트러스 전 총리 풍자 조형물. 연합뉴스 제공영국 에덴브리지에 만들어진 리즈 트러스 전 총리 풍자 조형물. 연합뉴스 제공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서 트러스 전 영국 총리와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만든 금융위기 전개 과정이 매우 닮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그리고 킹 달러...세계 경제가 폭풍우를 맞았다. 성난 파도는 약한 배가 보이면 금방이라도 짚어 삼킬 기세다. 난파선 신세를 모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이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 또 조심해도 모자랄 판이다. 2022년 경제위기는 과연 어떤 나라를 제물로 삼고 마무리될지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과 44일 만에 총리직에서 쫓겨난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시작부터 대처 전 총리를 롤모델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강하고 장수한 여성 총리가 되리라던 그는 영국의 최단기 총리, 정치적으로도 회복하기 힘든 불명예를 안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리즈 트러스 총리가 자진 사임 발표를 하고 있다. 10월 20일(총리 취임 45일 만에)리즈 트러스 총리가 자진 사임 발표를 하고 있다. 10월 20일(총리 취임 45일 만에)

문제는 대처의 강인한 이미지만 배울 것이지, 30년 전에나 통하던 경제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한 게 화근이었다.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이어가며 통화 긴축정책을 펴고 있는 시기, 나 홀로 대규모 감세(돈 풀기)로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발표에 전 세계 금융전문가들은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금융시장의 실망은 영국 국채 투매로 이어졌다.

트 총리가 제시한 감세안은 5년간 490억 달러(약 72조 원).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영국 국채가격이 폭락하자 영국 중앙은행은 국채를 긴급 매입하기 위해 102조 원을 섰고, 마진콜까지 몰렸던 영국 연기금들은 240조 원을 날린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러스 정부 시기 영국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477조 원이 증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직 실행도 안 된 총리의 경제정책으로 엄청난 비용을 날린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를 잃은 것은 뼈아픈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리시 수낵 총리가 취임하고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는 국가 부도와 같은 금융위기가 가라앉은 것일 뿐. 한때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의 폭락을 지켜본 국제사회에서 영국이라는 국가의 가치는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보았다. 영국 가디언은 앞으로 영국 경제가 100년 만에 가장 긴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레고 사태가 커지자 2,050억 원 채무를 내년 1월 이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김진태 강원도지사. 레고 사태가 커지자 2,050억 원 채무를 내년 1월 이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헛발질도 비슷하다. 영국과 비교해 그 액수는 훨씬 적어 보이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신뢰를 잃게 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실수이긴 마찬가지다. 레고랜드 사업에 들어간 채무 보증 2,050억 원을 거절하자 채권시장은 지자체의 보증까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냐며 자금이 경색됐고, 이후 우량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실패하고 흥국생명 사태로 전이되면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2천억 원 때문에 한국은행이 50조 원의 채권 매입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영국과 비슷하다.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제2의 IMF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트 총리와 김 지사의 무모한 발표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감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뒷맛이 더 쓰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 보수가 사랑하는 대처 전 총리의 이미지를 가져와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김진태 지사는 강원도지사를 세 번 연임한 정치적 맞수 최문순 전 지사의 역점 사업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수십, 수백만 명의 국민이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보는 사태가 초래되고, 그래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고 있을 때 벌어진 '무모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아닐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판박이 같은 트 총리와 김 지사의 헛발질…금융시장의 신뢰를 잃다
    • 입력 2022-11-14 14:40:30
    특파원 리포트
영국 에덴브리지에 만들어진 리즈 트러스 전 총리 풍자 조형물. 연합뉴스 제공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서 트러스 전 영국 총리와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만든 금융위기 전개 과정이 매우 닮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그리고 킹 달러...세계 경제가 폭풍우를 맞았다. 성난 파도는 약한 배가 보이면 금방이라도 짚어 삼킬 기세다. 난파선 신세를 모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이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 또 조심해도 모자랄 판이다. 2022년 경제위기는 과연 어떤 나라를 제물로 삼고 마무리될지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과 44일 만에 총리직에서 쫓겨난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시작부터 대처 전 총리를 롤모델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강하고 장수한 여성 총리가 되리라던 그는 영국의 최단기 총리, 정치적으로도 회복하기 힘든 불명예를 안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리즈 트러스 총리가 자진 사임 발표를 하고 있다. 10월 20일(총리 취임 45일 만에)
문제는 대처의 강인한 이미지만 배울 것이지, 30년 전에나 통하던 경제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한 게 화근이었다.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이어가며 통화 긴축정책을 펴고 있는 시기, 나 홀로 대규모 감세(돈 풀기)로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발표에 전 세계 금융전문가들은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금융시장의 실망은 영국 국채 투매로 이어졌다.

트 총리가 제시한 감세안은 5년간 490억 달러(약 72조 원).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영국 국채가격이 폭락하자 영국 중앙은행은 국채를 긴급 매입하기 위해 102조 원을 섰고, 마진콜까지 몰렸던 영국 연기금들은 240조 원을 날린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러스 정부 시기 영국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477조 원이 증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직 실행도 안 된 총리의 경제정책으로 엄청난 비용을 날린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를 잃은 것은 뼈아픈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리시 수낵 총리가 취임하고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는 국가 부도와 같은 금융위기가 가라앉은 것일 뿐. 한때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의 폭락을 지켜본 국제사회에서 영국이라는 국가의 가치는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보았다. 영국 가디언은 앞으로 영국 경제가 100년 만에 가장 긴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레고 사태가 커지자 2,050억 원 채무를 내년 1월 이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헛발질도 비슷하다. 영국과 비교해 그 액수는 훨씬 적어 보이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신뢰를 잃게 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실수이긴 마찬가지다. 레고랜드 사업에 들어간 채무 보증 2,050억 원을 거절하자 채권시장은 지자체의 보증까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냐며 자금이 경색됐고, 이후 우량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실패하고 흥국생명 사태로 전이되면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2천억 원 때문에 한국은행이 50조 원의 채권 매입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영국과 비슷하다.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제2의 IMF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트 총리와 김 지사의 무모한 발표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감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뒷맛이 더 쓰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 보수가 사랑하는 대처 전 총리의 이미지를 가져와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고, 김진태 지사는 강원도지사를 세 번 연임한 정치적 맞수 최문순 전 지사의 역점 사업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수십, 수백만 명의 국민이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보는 사태가 초래되고, 그래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고 있을 때 벌어진 '무모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아닐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