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플러스] ‘1세대 건축가’ 김종성 “재건축 앞둔 힐튼호텔, 개발업체 이윤 살리며 80년대 건축문화적 성취 유지 가능”

입력 2022.11.14 (16:47) 수정 2022.11.1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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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김종성 / '1세대 건축가'·서울 남산 힐튼호텔 설계

"유학 중 미국에서 만난 대우 김우중 사장이 호텔 건축 위임"
"1978년 설계 시작해 남산에 1983년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개장"
"첫 호텔 유형 설계로 1970년대 말 국제적 담론에 부합하는 첨단 건물 목표"
"건축가로서 호텔의 40% 공공 공간을 시민들 위해 중앙에 넉넉히 만드는데 역점"
"연말 영업 종료 후 재건축 앞둔 힐튼호텔, 건축물 살리며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지론"
"나 자신이 자본주의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건축가…개발 업체 이윤 달성하며 80년대 건축 문화적 성취 유지 가능"

■ 방송시간 : 11월 14일(월) 16:00~17:00 KBS1
■ 진행 : 범기영 기자
■ 출연 : 김종성 / '1세대 건축가'·서울 남산 힐튼호텔 설계


https://youtu.be/HzVaxeHbLM4

◎범기영: 오늘 좀 다른 이야기하죠. 남산 위에 있는 힐튼 호텔 아시죠? 한 달 반 뒤, 연말이면 영업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건물도 재건축될 예정입니다. 오래된 건축물들은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현대 건축물들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오늘 사사건건은 힐튼 호텔 건물 직접 설계하신 김종성 건축가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종성: 안녕하십니까?

◎범기영: 미국에 주로 거주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김종성: 지금 열흘 됐습니다.

◎범기영: 열흘 되셨어요? 이번에 입국하신 목적은 어떤 겁니까?

▼김종성: 제일 중요한 것은 건축가 협회에 대구에서 한 건축문화제, 거기에서 기조 강연을 했습니다.

◎범기영: 또 후학들, 후배 건축인들 많이 만나셨겠군요.

▼김종성: 그렇습니다.

◎범기영: 그런데 한국에서 하신 첫 설계가 힐튼이라고 제가 들었는데.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처음에 어떻게 이걸 의뢰를 받으시게 된 겁니까?

▼김종성: 그때 제가... 일리노이 공과 대학교의 교수로 있는데요. 대우 지사, 시카고 지사가 나한테 연락을 하기를, 그 당시에 김우중 사장이라고 불렀던 김우중 사장이 나를 갖다가 출장 오는 김에 좀 만나고 싶다. 이렇게 해서 한 번 지사로 나와 달라고 해서 나와가지고 김우중 사장하고 얘기를 하고 김우중 사장이 호텔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왕이면 외국에서 건축, 말하자면 수련을 한 그러한 한국 건축가에게 위촉하고 싶다. 선생님이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며칠 제가 생각해 보고 말하자면 승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됐어요.

◎범기영: 과정은 어땠어요?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김종성: 과정이요? 그때 이제 그것이 위탁 운영하는 업체가 호텔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커트 스트랜드 사장이 이끄는 힐튼 인터내셔널이 위탁 경영을 하였고 그래서 자기네들 기능별 요구 조건, 그래서 상당히 아주 심층, 자세하게 다 이제 제시를 했고요. 저로서는 이제 호텔이라는 건물 유형을 처음 설계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죠.

◎범기영: 그러시겠네요, 스스로 경험이 없으셨으니까.

▼김종성: 그렇습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좀 네거티브가 뭔가 요소였지만 다른 먼저 했던 어떤 그 습성에 빠지지 않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범기영: 그러네요. 스스로 도그마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또 할 수도 있고.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설계하시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셨던 건 어떤 면이었을까요?

▼김종성: 그 부지가 이제 남산 순환도로가 이렇게 동쪽으로 도는 그 못에 자리 잡고 있고 부지의 깊이가 아래에서 위까지가 12m 높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제가 12m에다가 6m 정도의 높이를 갖다가 가해서 18m 높이의 수직 상호관입하고 상승하는 공간 만드는 것이, 그것이 말하자면 어려운 점이었으면서 지금 만들어놓은 호텔의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범기영: 그러니까 건물 안의 지금 모습을 보고 계신데, 화면으로 보고 계신데. 들어가 보면 로비 안쪽으로 굉장히 개방돼 있고 넓은 공간이 나타나요.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저기를 보면 좀 시원하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되던데, 저는.

▼김종성: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그때까지 지어진 시내에 있는 중요 호텔이 방 수는 힐튼보다도 많은 것들도 있었는데 퍼블릭 공간이 이렇게 시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공간을 좀 넉넉하게 하는 것,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제일 좋은 건축가로서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범기영: 그런데 건축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될 수 있으면 방을 많이 만들고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곳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종성: 그것이 이제 건축 면적별 구분으로 보시면 소요 면적이 60%고 퍼블릭 스페이스가 40%, 그런 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40%를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이 건축가의 몫이고요. 저로서는 거기에다가 이제 그 우리 시민들을 위한 그런 공공 공간, 거기에 역점을 둬서 했습니다.

◎범기영: 그러셨군요. 건축주랑 이 과정에서 좀 부딪쳤던 건 없으십니까, 그러면?

▼김종성: 김우중 사장이 한 번 나한테 위촉한다는 승낙을 받고는 거의 위임을 했어요. 그러니까 실제로 제가 설계하는 과정을 갖다가 감독하고 이제 그걸 갖다가 검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커트 스트랜드 사장이 이끄는 힐튼 인터내셔널 기술진들, 그 사람들은 이제 아주 이것이 방이 조금 너무 작다든지 그런 걸 갖다가 그때그때 얘기를 했는데, 건축주 김우중 사장은 참 대범하게 위임을 했습니다.

◎범기영: 쉽지 않은 건데, 사실.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게 건축주의 예산 문제, 기간 문제, 이런 걸로 많이 부딪치지 않습니까, 건물 짓다 보면?

▼김종성: 그럼요. 그러니까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갖다가 김우중 사장이 본인이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위임을 했죠. 이 건설하는 사장, 건설하는 현장 소장, 그리고 개발 회사의 사장한테 이제 힐튼하고의 상업적인 조건 같은 것, 그런 건 다 위임을 하고 설계는 저한테 위임을 했고요.

◎범기영: 그러셨군요. 그때 처음 만나서 의뢰한 건데, 선생님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었던 겁니까? 인간적인 신뢰랄까요?

▼김종성: 이제 이건 애프터 더 팩트에 제가 이제 추적하기에요. 김우중 사장이 저보다 경기고등학교 2년 후배고요. 그러니까 이제 저에 대한 얘기를 갖다가 주변에서 많이 접하고 어느 정도 심증이 가서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고요. 그리고는 이제 시카고에 와가지고 나를 면접을 처음 했고요. 면접한 다음에 아마 이 사람한테 맡겨도 괜찮겠다,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범기영: 하긴 고등학교 2년 선배면 뭐 엎드려야죠. 눈 깔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이 아름다운 건물이 이제 헐리게 될 것 같습니다. 후배 건축가들 이야기 잠깐 듣고 이야기 이어갈까요?
<녹취> 안창모/ 건축역사학자
힐튼 호텔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를 표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건축적 성과의 중심에 힐튼 호텔이 있다고 할 수가 있죠.

<녹취>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의 건축 산업이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은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힐튼 호텔을 부숴서 거기에 더 큰 건물을 짓는 거는 신라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을 만드는 거랑 비슷합니다.

◎범기영: 저 비유가 귀에 쏙 들어오네요. 그 가치 있는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 선생님 입으로 말씀하시기에 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 건물의 가치가 어디 있다고 봐야 됩니까? 사실 건축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면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거든요.

▼김종성: 일반인들한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요, 그때까지 이제 시중에 지어진 호텔들이 전부 일본 호텔 회사에 위탁 경영을 해서 운영 방침 그리고 나아가서는 설계까지도 일본 설계에 의해서 됐고요. 그리고 그때 제일 경제적이라고 판단됐던 콘크리트 구조의 콘크리트 PC 패널, 그걸로 외벽이 구성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가 이걸 과제를 받은 다음에 저로서는 그 당시 70년대 말에 국제적인 건축의 말하자면 담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첨단을 걷는 건물로 만들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범기영: 예를 들면 어떻게 구현이 되는 겁니까, 그게?

▼김종성: 이제 힐튼의 경우는 합작 법인이라는 이점을 살려가지고 구조를 철골 부재를 수입을 해서 했고요. 마감 부재를 대리석 같은 것은 이탈리아에서 수입을 했고 이런 보통 참나무는 종이 한 장 정도인데 1.5mm 두께의 참나무 패널링, 그런 거는 제가 네트워크를 가동해가지고 미국 켄터키에서 이렇게 벌목되는 참나무를 돌려가지고 만든 그런 베니어, 그런 걸 수입해가지고 마감을 그 1970년대 말, 80년대 초로서는 없었던, 국내에서는 없었던 그런 건축을 만드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범기영: 왜 그 부재들을 사용하시게 된 겁니까? 그러니까 저도 여러 자료를 읽어봤는데 그 대리석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국내에서 거의 구하기도 어려웠고...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지금 구하려고 해도 굉장히 고가거나 구하기 어렵다, 이런 평가들을 하던데요.

▼김종성: 대리석의 경우는 주종을 이루는 바닥, 그 로마 교외 티볼리에서 나는 돌인데, 그것이 엄청나게 중립적인 빛깔이기 때문에 다른 색채, 다른 재질, 그거하고 조화가 언제든지 잘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조돼가지고 이제 그 문을 들어서면 양옆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 대리석, 그거는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가 않고 좀 영구적인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런 재료이기 때문에 제가 그걸 좋아서 썼습니다.

◎범기영: 저 중앙에 보면 조금 전에 큰 분수 영상도 조금 전에 나갔는데.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저걸 배치한 건 어떤 의미셨어요?

▼김종성: 거기에 이제 보시면 1층에 들어와가지고 지하 1층까지 4.8m의 차이가 있는데, 그거를 단숨에 내려가면 공항 터미널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범기영: 그렇겠네요.

▼김종성: 그래서 이 계단을 갖다가 세 번으로 이렇게 나눠가지고 하니까 가운데가 조금 공간이 생기고 그것을 어떤 조형물이 그걸 차지하는 게 맞다. 그래가지고 저거는 지중해 연안 레반토 해에서 채석되는 암갈색 대리석, 그걸 이탈리아 대리석상한테 자문을 받아가지고 그거를 큰 거 5m 직경 분수에서 그것이 2.5m 직경 분수 넷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렇게 기획을 했습니다.

◎범기영: 말만 들어서는 좀 어려우실 테고 현장에 가서 보시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한편으로는 자본이 투입돼서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진 건물이고 세상의 흐름이 바뀌어서 자본의 논리가 바뀌면 이것도 허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종성: 이 경우는 제가 이걸 살리면서도 이윤 창출을 할 수가 있다.

◎범기영: 살리면서도요?

▼김종성: 그게 제 지론이고요. 그러니까 제 자신이 자유 경제, 자본주의 자유 경제를 갖다가 신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발 업체로서의 이윤 창출을 갖다가 말하자면 추구한 이윤을 달성하면서 건축적인 80년대의 우리의 문화적인 어떤 성취, 그것도 살리면서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제 캐치프레이즈가 윈윈.

◎범기영: 현대 건축의 중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는 건물인데, 운명이 어떻게 될지 논의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쉽진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벌써 다 됐네요. 김종성 건축가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종성: 감사합니다.

◎범기영: 사사건건,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4시엔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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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 플러스] ‘1세대 건축가’ 김종성 “재건축 앞둔 힐튼호텔, 개발업체 이윤 살리며 80년대 건축문화적 성취 유지 가능”
    • 입력 2022-11-14 16:47:51
    • 수정2022-11-14 18:43:24
    사사건건
김종성 / '1세대 건축가'·서울 남산 힐튼호텔 설계<br /><br />"유학 중 미국에서 만난 대우 김우중 사장이 호텔 건축 위임"<br />"1978년 설계 시작해 남산에 1983년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개장"<br />"첫 호텔 유형 설계로 1970년대 말 국제적 담론에 부합하는 첨단 건물 목표"<br />"건축가로서 호텔의 40% 공공 공간을 시민들 위해 중앙에 넉넉히 만드는데 역점"<br />"연말 영업 종료 후 재건축 앞둔 힐튼호텔, 건축물 살리며 이윤 창출을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지론"<br />"나 자신이 자본주의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건축가…개발 업체 이윤 달성하며 80년대 건축 문화적 성취 유지 가능"<br />
■ 방송시간 : 11월 14일(월) 16:00~17:00 KBS1
■ 진행 : 범기영 기자
■ 출연 : 김종성 / '1세대 건축가'·서울 남산 힐튼호텔 설계


https://youtu.be/HzVaxeHbLM4

◎범기영: 오늘 좀 다른 이야기하죠. 남산 위에 있는 힐튼 호텔 아시죠? 한 달 반 뒤, 연말이면 영업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건물도 재건축될 예정입니다. 오래된 건축물들은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현대 건축물들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오늘 사사건건은 힐튼 호텔 건물 직접 설계하신 김종성 건축가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종성: 안녕하십니까?

◎범기영: 미국에 주로 거주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김종성: 지금 열흘 됐습니다.

◎범기영: 열흘 되셨어요? 이번에 입국하신 목적은 어떤 겁니까?

▼김종성: 제일 중요한 것은 건축가 협회에 대구에서 한 건축문화제, 거기에서 기조 강연을 했습니다.

◎범기영: 또 후학들, 후배 건축인들 많이 만나셨겠군요.

▼김종성: 그렇습니다.

◎범기영: 그런데 한국에서 하신 첫 설계가 힐튼이라고 제가 들었는데.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처음에 어떻게 이걸 의뢰를 받으시게 된 겁니까?

▼김종성: 그때 제가... 일리노이 공과 대학교의 교수로 있는데요. 대우 지사, 시카고 지사가 나한테 연락을 하기를, 그 당시에 김우중 사장이라고 불렀던 김우중 사장이 나를 갖다가 출장 오는 김에 좀 만나고 싶다. 이렇게 해서 한 번 지사로 나와 달라고 해서 나와가지고 김우중 사장하고 얘기를 하고 김우중 사장이 호텔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왕이면 외국에서 건축, 말하자면 수련을 한 그러한 한국 건축가에게 위촉하고 싶다. 선생님이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며칠 제가 생각해 보고 말하자면 승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됐어요.

◎범기영: 과정은 어땠어요?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김종성: 과정이요? 그때 이제 그것이 위탁 운영하는 업체가 호텔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커트 스트랜드 사장이 이끄는 힐튼 인터내셔널이 위탁 경영을 하였고 그래서 자기네들 기능별 요구 조건, 그래서 상당히 아주 심층, 자세하게 다 이제 제시를 했고요. 저로서는 이제 호텔이라는 건물 유형을 처음 설계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죠.

◎범기영: 그러시겠네요, 스스로 경험이 없으셨으니까.

▼김종성: 그렇습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좀 네거티브가 뭔가 요소였지만 다른 먼저 했던 어떤 그 습성에 빠지지 않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범기영: 그러네요. 스스로 도그마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또 할 수도 있고.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설계하시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셨던 건 어떤 면이었을까요?

▼김종성: 그 부지가 이제 남산 순환도로가 이렇게 동쪽으로 도는 그 못에 자리 잡고 있고 부지의 깊이가 아래에서 위까지가 12m 높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제가 12m에다가 6m 정도의 높이를 갖다가 가해서 18m 높이의 수직 상호관입하고 상승하는 공간 만드는 것이, 그것이 말하자면 어려운 점이었으면서 지금 만들어놓은 호텔의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범기영: 그러니까 건물 안의 지금 모습을 보고 계신데, 화면으로 보고 계신데. 들어가 보면 로비 안쪽으로 굉장히 개방돼 있고 넓은 공간이 나타나요.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저기를 보면 좀 시원하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되던데, 저는.

▼김종성: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그때까지 지어진 시내에 있는 중요 호텔이 방 수는 힐튼보다도 많은 것들도 있었는데 퍼블릭 공간이 이렇게 시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공간을 좀 넉넉하게 하는 것,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제일 좋은 건축가로서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범기영: 그런데 건축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될 수 있으면 방을 많이 만들고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곳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종성: 그것이 이제 건축 면적별 구분으로 보시면 소요 면적이 60%고 퍼블릭 스페이스가 40%, 그런 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40%를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이 건축가의 몫이고요. 저로서는 거기에다가 이제 그 우리 시민들을 위한 그런 공공 공간, 거기에 역점을 둬서 했습니다.

◎범기영: 그러셨군요. 건축주랑 이 과정에서 좀 부딪쳤던 건 없으십니까, 그러면?

▼김종성: 김우중 사장이 한 번 나한테 위촉한다는 승낙을 받고는 거의 위임을 했어요. 그러니까 실제로 제가 설계하는 과정을 갖다가 감독하고 이제 그걸 갖다가 검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커트 스트랜드 사장이 이끄는 힐튼 인터내셔널 기술진들, 그 사람들은 이제 아주 이것이 방이 조금 너무 작다든지 그런 걸 갖다가 그때그때 얘기를 했는데, 건축주 김우중 사장은 참 대범하게 위임을 했습니다.

◎범기영: 쉽지 않은 건데, 사실.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게 건축주의 예산 문제, 기간 문제, 이런 걸로 많이 부딪치지 않습니까, 건물 짓다 보면?

▼김종성: 그럼요. 그러니까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갖다가 김우중 사장이 본인이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위임을 했죠. 이 건설하는 사장, 건설하는 현장 소장, 그리고 개발 회사의 사장한테 이제 힐튼하고의 상업적인 조건 같은 것, 그런 건 다 위임을 하고 설계는 저한테 위임을 했고요.

◎범기영: 그러셨군요. 그때 처음 만나서 의뢰한 건데, 선생님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었던 겁니까? 인간적인 신뢰랄까요?

▼김종성: 이제 이건 애프터 더 팩트에 제가 이제 추적하기에요. 김우중 사장이 저보다 경기고등학교 2년 후배고요. 그러니까 이제 저에 대한 얘기를 갖다가 주변에서 많이 접하고 어느 정도 심증이 가서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고요. 그리고는 이제 시카고에 와가지고 나를 면접을 처음 했고요. 면접한 다음에 아마 이 사람한테 맡겨도 괜찮겠다,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범기영: 하긴 고등학교 2년 선배면 뭐 엎드려야죠. 눈 깔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이 아름다운 건물이 이제 헐리게 될 것 같습니다. 후배 건축가들 이야기 잠깐 듣고 이야기 이어갈까요?
<녹취> 안창모/ 건축역사학자
힐튼 호텔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를 표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건축적 성과의 중심에 힐튼 호텔이 있다고 할 수가 있죠.

<녹취>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의 건축 산업이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은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힐튼 호텔을 부숴서 거기에 더 큰 건물을 짓는 거는 신라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을 만드는 거랑 비슷합니다.

◎범기영: 저 비유가 귀에 쏙 들어오네요. 그 가치 있는 범종을 녹여서 가마솥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 선생님 입으로 말씀하시기에 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 건물의 가치가 어디 있다고 봐야 됩니까? 사실 건축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면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거든요.

▼김종성: 일반인들한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요, 그때까지 이제 시중에 지어진 호텔들이 전부 일본 호텔 회사에 위탁 경영을 해서 운영 방침 그리고 나아가서는 설계까지도 일본 설계에 의해서 됐고요. 그리고 그때 제일 경제적이라고 판단됐던 콘크리트 구조의 콘크리트 PC 패널, 그걸로 외벽이 구성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가 이걸 과제를 받은 다음에 저로서는 그 당시 70년대 말에 국제적인 건축의 말하자면 담론, 거기에 완전히 부합되는 첨단을 걷는 건물로 만들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범기영: 예를 들면 어떻게 구현이 되는 겁니까, 그게?

▼김종성: 이제 힐튼의 경우는 합작 법인이라는 이점을 살려가지고 구조를 철골 부재를 수입을 해서 했고요. 마감 부재를 대리석 같은 것은 이탈리아에서 수입을 했고 이런 보통 참나무는 종이 한 장 정도인데 1.5mm 두께의 참나무 패널링, 그런 거는 제가 네트워크를 가동해가지고 미국 켄터키에서 이렇게 벌목되는 참나무를 돌려가지고 만든 그런 베니어, 그런 걸 수입해가지고 마감을 그 1970년대 말, 80년대 초로서는 없었던, 국내에서는 없었던 그런 건축을 만드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범기영: 왜 그 부재들을 사용하시게 된 겁니까? 그러니까 저도 여러 자료를 읽어봤는데 그 대리석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국내에서 거의 구하기도 어려웠고...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지금 구하려고 해도 굉장히 고가거나 구하기 어렵다, 이런 평가들을 하던데요.

▼김종성: 대리석의 경우는 주종을 이루는 바닥, 그 로마 교외 티볼리에서 나는 돌인데, 그것이 엄청나게 중립적인 빛깔이기 때문에 다른 색채, 다른 재질, 그거하고 조화가 언제든지 잘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조돼가지고 이제 그 문을 들어서면 양옆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 대리석, 그거는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가 않고 좀 영구적인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런 재료이기 때문에 제가 그걸 좋아서 썼습니다.

◎범기영: 저 중앙에 보면 조금 전에 큰 분수 영상도 조금 전에 나갔는데.

▼김종성: 맞습니다.

◎범기영: 저걸 배치한 건 어떤 의미셨어요?

▼김종성: 거기에 이제 보시면 1층에 들어와가지고 지하 1층까지 4.8m의 차이가 있는데, 그거를 단숨에 내려가면 공항 터미널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범기영: 그렇겠네요.

▼김종성: 그래서 이 계단을 갖다가 세 번으로 이렇게 나눠가지고 하니까 가운데가 조금 공간이 생기고 그것을 어떤 조형물이 그걸 차지하는 게 맞다. 그래가지고 저거는 지중해 연안 레반토 해에서 채석되는 암갈색 대리석, 그걸 이탈리아 대리석상한테 자문을 받아가지고 그거를 큰 거 5m 직경 분수에서 그것이 2.5m 직경 분수 넷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렇게 기획을 했습니다.

◎범기영: 말만 들어서는 좀 어려우실 테고 현장에 가서 보시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한편으로는 자본이 투입돼서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진 건물이고 세상의 흐름이 바뀌어서 자본의 논리가 바뀌면 이것도 허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종성: 이 경우는 제가 이걸 살리면서도 이윤 창출을 할 수가 있다.

◎범기영: 살리면서도요?

▼김종성: 그게 제 지론이고요. 그러니까 제 자신이 자유 경제, 자본주의 자유 경제를 갖다가 신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발 업체로서의 이윤 창출을 갖다가 말하자면 추구한 이윤을 달성하면서 건축적인 80년대의 우리의 문화적인 어떤 성취, 그것도 살리면서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제 캐치프레이즈가 윈윈.

◎범기영: 현대 건축의 중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는 건물인데, 운명이 어떻게 될지 논의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쉽진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벌써 다 됐네요. 김종성 건축가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종성: 감사합니다.

◎범기영: 사사건건,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4시엔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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