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외환보유고는 그런데 저축일까 소비일까?

입력 2022.11.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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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쯤 외환보유고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몇 가지

학자들이 탄 배가 바다에서 표류하는데 다행히 배에 통조림이 잔뜩 있다. 그런데 병따개가 없다. 물리학자는 해수면과의 기온 차를 이용해서, 화학자는 소금물에 통조림통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경제학자가 나섰다. “자, 여기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고~”

경제학은 시원한 답을 못 찾아준다. 맨날 애먼 소리만 한다. 경제학의 여러 변수에는 ‘인간의 마음’이 들어가고 인간의 마음은 툭하면 바뀐다. 그래서 경제학적 예측은 매번 빗나간다. 하물며 우리 외환보유고가 4백억 달러가 적정한지, 4천억 달러가 적정한지 누가 알 수 있을까.


1. 외환보유고는 '탄약 창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팔아 벌어온 달러는 ‘외환보유고’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최근처럼) 우리 돈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 달러를 사기 위해 곳간에 비축해 놓은 달러나 미국채 같은 자산이 외환보유고다. 논산 육군훈련소 5종 창고에 쌓아둔 탄약 같은 것이다. 당연히 탄약을 비축하려면 돈이 든다.

한국은행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같은 채권을 발행해 이 돈으로 달러 현금(예치금)이나 미국 정부의 채권, 심지어 주식을 사서 곳간에 잘 넣어둔다. 한국은행이 이렇게 채권(외평채)을 발행하면 당연히 이자를 줘야한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이렇게 마련한 외화보유고를 가만두지 않고, 어떻게든 굴려서 돈을 벌 궁리를 한다.

2. 외환보유고 쌓아두려면 돈이 많이 든다

2009년에는 외평채 발행 비용(이자부담)과 외환보유고 운용수익률(운용수익)의 차이가 2.2%p까지 벌어졌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3천억 달러 정도였으니 대략 66억 달러가 펑크 났다. 우리돈 8조 원이 넘는다. 결국 다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대전광역시 1년 예산이 7조 원이다).

그러니 외환보유고를 책임지는 한국은행은 자꾸 외환보유고를 굴려 적자를 메꾸고 싶다. 그래서 돈 안 되는 현금보다는 MBS(주택저당채권)나 회사채같이 돈이 되는 자산을 사들인다. 그러다보니 회사채 등 민간 채권 비중이 23%를 넘었다. 2007년부터는 슬그머니 주식도 사들인다. 지금은 주식 비중이 10%를 넘는다(2021년말 기준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의 구성비율, 현금보다 굴려서 돈이 되는 상품 비중이 자꾸 높아진다. 한국은행은 2007년부터 외환보유고로 주식을 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한국은행외환보유고의 구성비율, 현금보다 굴려서 돈이 되는 상품 비중이 자꾸 높아진다. 한국은행은 2007년부터 외환보유고로 주식을 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한국은행

정작 현금성 자산은 7%밖에 안 된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처럼 외환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서 달러를 마구 사야할 할 시점이 되면 당장 현금이 필요하다. 그러자 “왜 이렇게 현금 비중이 낮은가?” 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은행은 돈을 그냥 찍어낼 수도 있는 기관이다. 그 돈으로 달러나 미국채를 사서 외환보유고 곳간에 쌓아두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고 인플레로 이어진다.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또 '통화안정증권(통안채)' 같은 채권을 발행해 그만큼의 통화량을 흡수해야한다. 그럼 또 막대한 이자가 나간다. 지난해 통안채 이자로만 1조 4천억 원이 들어갔다. 이렇게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려면 시도 때도 없이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 막 쌓아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3. 그래서 외환보유고 굴려서 얼마나 벌었을까?

덕분에 국민연금 다음으로 큰 투자자가 된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를 굴려서 얻은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꾸 공개하면 수익률 경쟁을 하려고 위험 자산 비중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 언론은 틀림없이 총재 임기 중 수익률 비교표를 만들 것이다. 자칫 중앙은행이 돈 버는 기관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외환보유고 보유 상위 10개국 중 대략 절반 정도가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 국회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꾸 수익률을 보고하라고 한다.

한국은행은 운용수익을 남기면 30% 정도를 적립한 뒤 세금으로 납부한다. 그래서 국세청 통계를 보면 한국은행이 얼마나 외환보유고를 잘 굴렸는지 얼추 보인다. 지난해 통안증권 발행 등 비용을 제하고도 외화자산을 굴려서 7조 원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장사 잘했다. 물론 올해는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금리가 낮았을 때는 우리 정부가 외평채 5억 달러를 발행하면서 단 1.75%의 이자만 지급하면 됐다. 이렇게 마련한 현금으로 만약 ‘미 국채 10년물’을 사서 외환보유고에 넣어두면 해마다 이자를 1.5% 정도 받았다. 다시 말해 단 0.25%p의 추가비용만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나 우리 화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외평채 5년물의 가산금리( CDS프리미엄)가 0.75%를 오르내린다(11월 3일). 외환보유고를 쌓아두기위한 채권 발행에 그만큼 웃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4. 외환보유고, 맘대로 쓰지도 못한다

달러를 자기 마음대로 찍어내는 미국은 다른 나라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맘대로 사고 파는 것을 금지한다. 딱 그나라 GDP의 '2%' 안에서만 달러를 살 수 있도록 규정해놨다. 그러니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곳간에 외환보유고를 4천억 달러나 쌓아둬도 우리 맘대로 달러를 사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를 어겼다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혼쭐이 난다 (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를 금지하거나 여러 무역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 트럼프행정부는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었다. 미 재무부는 1년에 두번 미국과 무역을 많이 하는 20개 나라의 외환시장보고서를 발표한다. 며칠전 나온 보고서에서 한국 등 7개 나라가 또 ‘환율 관찰대상국 Currency Monitoring List’으로 지정됐다. 환율조작국까지는 아니지만 “지켜보고 있으니 알아서 잘해라”라는 뜻이다.

5. 믿을 건 외환보유고 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우리는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때부터 가능하면 곳간에 달러(표시채권)를 많이 쌓아두기 위해 발버둥쳤다. 덕분에 올해 달러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원화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지만,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위기를 비교적 잘 선방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외환보유고의 1/10정도가 사라졌지만 원화가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기회비용이 들어간다.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얼마나 쌓아둬야 하는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미국은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막대한 달러를 찍어내고, 그때마다 달러 가치가 춤을 춘다. 그럼 '미국 외 기타국가'들에게 믿을 것은 달러 외환보유고 밖에 없다. 달러 기축통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달러는 우리 돈이고,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라니까!
-존 커널리(John Conally), 전 미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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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16 10:38:57
    특파원 리포트

# 지금쯤 외환보유고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몇 가지

학자들이 탄 배가 바다에서 표류하는데 다행히 배에 통조림이 잔뜩 있다. 그런데 병따개가 없다. 물리학자는 해수면과의 기온 차를 이용해서, 화학자는 소금물에 통조림통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경제학자가 나섰다. “자, 여기 병따개가 있다고 가정하고~”

경제학은 시원한 답을 못 찾아준다. 맨날 애먼 소리만 한다. 경제학의 여러 변수에는 ‘인간의 마음’이 들어가고 인간의 마음은 툭하면 바뀐다. 그래서 경제학적 예측은 매번 빗나간다. 하물며 우리 외환보유고가 4백억 달러가 적정한지, 4천억 달러가 적정한지 누가 알 수 있을까.


1. 외환보유고는 '탄약 창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팔아 벌어온 달러는 ‘외환보유고’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최근처럼) 우리 돈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 달러를 사기 위해 곳간에 비축해 놓은 달러나 미국채 같은 자산이 외환보유고다. 논산 육군훈련소 5종 창고에 쌓아둔 탄약 같은 것이다. 당연히 탄약을 비축하려면 돈이 든다.

한국은행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같은 채권을 발행해 이 돈으로 달러 현금(예치금)이나 미국 정부의 채권, 심지어 주식을 사서 곳간에 잘 넣어둔다. 한국은행이 이렇게 채권(외평채)을 발행하면 당연히 이자를 줘야한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이렇게 마련한 외화보유고를 가만두지 않고, 어떻게든 굴려서 돈을 벌 궁리를 한다.

2. 외환보유고 쌓아두려면 돈이 많이 든다

2009년에는 외평채 발행 비용(이자부담)과 외환보유고 운용수익률(운용수익)의 차이가 2.2%p까지 벌어졌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3천억 달러 정도였으니 대략 66억 달러가 펑크 났다. 우리돈 8조 원이 넘는다. 결국 다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대전광역시 1년 예산이 7조 원이다).

그러니 외환보유고를 책임지는 한국은행은 자꾸 외환보유고를 굴려 적자를 메꾸고 싶다. 그래서 돈 안 되는 현금보다는 MBS(주택저당채권)나 회사채같이 돈이 되는 자산을 사들인다. 그러다보니 회사채 등 민간 채권 비중이 23%를 넘었다. 2007년부터는 슬그머니 주식도 사들인다. 지금은 주식 비중이 10%를 넘는다(2021년말 기준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의 구성비율, 현금보다 굴려서 돈이 되는 상품 비중이 자꾸 높아진다. 한국은행은 2007년부터 외환보유고로 주식을 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한국은행
정작 현금성 자산은 7%밖에 안 된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처럼 외환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서 달러를 마구 사야할 할 시점이 되면 당장 현금이 필요하다. 그러자 “왜 이렇게 현금 비중이 낮은가?” 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은행은 돈을 그냥 찍어낼 수도 있는 기관이다. 그 돈으로 달러나 미국채를 사서 외환보유고 곳간에 쌓아두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고 인플레로 이어진다.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또 '통화안정증권(통안채)' 같은 채권을 발행해 그만큼의 통화량을 흡수해야한다. 그럼 또 막대한 이자가 나간다. 지난해 통안채 이자로만 1조 4천억 원이 들어갔다. 이렇게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려면 시도 때도 없이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 막 쌓아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3. 그래서 외환보유고 굴려서 얼마나 벌었을까?

덕분에 국민연금 다음으로 큰 투자자가 된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를 굴려서 얻은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꾸 공개하면 수익률 경쟁을 하려고 위험 자산 비중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 언론은 틀림없이 총재 임기 중 수익률 비교표를 만들 것이다. 자칫 중앙은행이 돈 버는 기관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외환보유고 보유 상위 10개국 중 대략 절반 정도가 수익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 국회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꾸 수익률을 보고하라고 한다.

한국은행은 운용수익을 남기면 30% 정도를 적립한 뒤 세금으로 납부한다. 그래서 국세청 통계를 보면 한국은행이 얼마나 외환보유고를 잘 굴렸는지 얼추 보인다. 지난해 통안증권 발행 등 비용을 제하고도 외화자산을 굴려서 7조 원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장사 잘했다. 물론 올해는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금리가 낮았을 때는 우리 정부가 외평채 5억 달러를 발행하면서 단 1.75%의 이자만 지급하면 됐다. 이렇게 마련한 현금으로 만약 ‘미 국채 10년물’을 사서 외환보유고에 넣어두면 해마다 이자를 1.5% 정도 받았다. 다시 말해 단 0.25%p의 추가비용만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나 우리 화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외평채 5년물의 가산금리( CDS프리미엄)가 0.75%를 오르내린다(11월 3일). 외환보유고를 쌓아두기위한 채권 발행에 그만큼 웃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4. 외환보유고, 맘대로 쓰지도 못한다

달러를 자기 마음대로 찍어내는 미국은 다른 나라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맘대로 사고 파는 것을 금지한다. 딱 그나라 GDP의 '2%' 안에서만 달러를 살 수 있도록 규정해놨다. 그러니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곳간에 외환보유고를 4천억 달러나 쌓아둬도 우리 맘대로 달러를 사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를 어겼다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혼쭐이 난다 (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를 금지하거나 여러 무역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 트럼프행정부는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었다. 미 재무부는 1년에 두번 미국과 무역을 많이 하는 20개 나라의 외환시장보고서를 발표한다. 며칠전 나온 보고서에서 한국 등 7개 나라가 또 ‘환율 관찰대상국 Currency Monitoring List’으로 지정됐다. 환율조작국까지는 아니지만 “지켜보고 있으니 알아서 잘해라”라는 뜻이다.

5. 믿을 건 외환보유고 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우리는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때부터 가능하면 곳간에 달러(표시채권)를 많이 쌓아두기 위해 발버둥쳤다. 덕분에 올해 달러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원화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지만,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위기를 비교적 잘 선방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외환보유고의 1/10정도가 사라졌지만 원화가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기회비용이 들어간다.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얼마나 쌓아둬야 하는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미국은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막대한 달러를 찍어내고, 그때마다 달러 가치가 춤을 춘다. 그럼 '미국 외 기타국가'들에게 믿을 것은 달러 외환보유고 밖에 없다. 달러 기축통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달러는 우리 돈이고,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라니까!
-존 커널리(John Conally), 전 미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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