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돗토리현은 왜 ‘앤디워홀의 상자’를 샀을까?

입력 2022.1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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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돗토리현이 구입한 앤디워홀의 ‘브릴로의 상자’일본 돗토리현이 구입한 앤디워홀의 ‘브릴로의 상자’

수세미 브랜드인 ‘브릴로’의 포장상자.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에서나 볼 법한 이 수세미 상자와 똑같은 디자인의 예술 작품들을 최근 일본의 한 자치단체가 3억 엔(약 28억 원)을 주고 사들였습니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디 워홀의 작품으로 이름도 '브릴로의 상자'입니다. 일본 돗토리현(鳥取県)은 브릴로의 상자 5점을 구입했는데, 그 중 앤디워홀이 직접 제작한 한 점은 6831만 엔, 앤디 워홀 사망 후 제작된 나머지 네 점은 한 점당 5578만 엔을 지불했습니다.

앤디 워홀앤디 워홀

돗토리현은 이 '상자'들을 2025년 구라요시시(倉吉市)에 개관할 예정인 현립미술관의 '대표 소장 작품'으로 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돗토리현에는 아직까지 현립미술관이 없어 일본의 '마지막 현립미술관'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현민들로부터는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9월 구라요시시에서 열린 설명회 등에서는 "3억 엔이나 쓰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이들이 봐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개만 있으면 충분한데 다섯 개나 살 필요가 있나?" 는 등의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2025년 개관 예정인 돗토리현립미술관2025년 개관 예정인 돗토리현립미술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돗토리현은 현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대폭 늘렸습니다. 또 설명 요청이 들어오면 담당자가 휴일이나 야간이라도 직접 가서 현립미술관의 '수집 방침'에 대해서 설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은 해당 작품 구입 계획이 미리 알려지면 경매 등에서 가격이 오를 수도 있어 미리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같은 작품을 5점이나 구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인 워홀이 브릴로의 상자들을 전시한 모습을 보면 항상 여러 개를 불규칙적으로 놔뒀다"며 "같은 상자가 여러 개 있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잘 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돗토리현이 구입한 앤디워홀의 팝아트 작품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은 지난 7월에도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캠벨 수프' 입체 작품을 4554만 엔에 구입했습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현립미술관 건립 예정지인 돗토리현 구라요시시의 인구는 약 4만 명. 흙으로 지은 일본식 창고 도조(土蔵)가 많은 걸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작은 소도시에 갑자기 큰 세금을 써가며 앤디 워홀의 팝아트라니, 주민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돗토리현의 담당자는 앤디워홀의 작품들을 사들이는 이유에 대해서 "팝아트를 미술관의 한 축으로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또 10년, 20년 후를 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면 현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도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미술관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술관으로부터 대여 요청이 들어오면 이쪽에서 원하는 작품을 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앤디 워홀이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명성만큼 돗토리현의 작품 구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돗토리현의 재정 사정을 고려한 비판이라면 그렇다 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큰 팝아트를 두고 '뭐가 아름다워?' '다섯 개나 필요해?'라는 의견은 단순히 문화자본의 결핍이다.

미술의 가치에 있어서 현민의 이해를 얻는 건 무리일 것 같네요. 게다가 이 금액. 하지만 워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엄청난 이득. 시간이 걸리더라도 훗날 감사의 말을 듣는 경우도 있으니까 돗토리현 힘내세요! (트위터)

돗토리현의 앤디워홀 작품 구입 논란을 보도한 NHK돗토리현의 앤디워홀 작품 구입 논란을 보도한 NHK

일본 언론들도 돗토리현의 앤디워홀 작품 구입 논란에 대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논란으로 인해 아직 개관하지도 않있고, 홍보도 쉽지 않은 지역 미술관이 벌써 유명세를 타게 됐다며 앞으로의 효과에 대한 기대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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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돗토리현은 왜 ‘앤디워홀의 상자’를 샀을까?
    • 입력 2022-11-17 06:00:16
    특파원 리포트
일본 돗토리현이 구입한 앤디워홀의 ‘브릴로의 상자’
수세미 브랜드인 ‘브릴로’의 포장상자.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에서나 볼 법한 이 수세미 상자와 똑같은 디자인의 예술 작품들을 최근 일본의 한 자치단체가 3억 엔(약 28억 원)을 주고 사들였습니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디 워홀의 작품으로 이름도 '브릴로의 상자'입니다. 일본 돗토리현(鳥取県)은 브릴로의 상자 5점을 구입했는데, 그 중 앤디워홀이 직접 제작한 한 점은 6831만 엔, 앤디 워홀 사망 후 제작된 나머지 네 점은 한 점당 5578만 엔을 지불했습니다.

앤디 워홀
돗토리현은 이 '상자'들을 2025년 구라요시시(倉吉市)에 개관할 예정인 현립미술관의 '대표 소장 작품'으로 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돗토리현에는 아직까지 현립미술관이 없어 일본의 '마지막 현립미술관'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현민들로부터는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9월 구라요시시에서 열린 설명회 등에서는 "3억 엔이나 쓰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이들이 봐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개만 있으면 충분한데 다섯 개나 살 필요가 있나?" 는 등의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2025년 개관 예정인 돗토리현립미술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돗토리현은 현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대폭 늘렸습니다. 또 설명 요청이 들어오면 담당자가 휴일이나 야간이라도 직접 가서 현립미술관의 '수집 방침'에 대해서 설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은 해당 작품 구입 계획이 미리 알려지면 경매 등에서 가격이 오를 수도 있어 미리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같은 작품을 5점이나 구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인 워홀이 브릴로의 상자들을 전시한 모습을 보면 항상 여러 개를 불규칙적으로 놔뒀다"며 "같은 상자가 여러 개 있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잘 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돗토리현이 구입한 앤디워홀의 팝아트 작품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은 지난 7월에도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캠벨 수프' 입체 작품을 4554만 엔에 구입했습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현립미술관 건립 예정지인 돗토리현 구라요시시의 인구는 약 4만 명. 흙으로 지은 일본식 창고 도조(土蔵)가 많은 걸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작은 소도시에 갑자기 큰 세금을 써가며 앤디 워홀의 팝아트라니, 주민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돗토리현의 담당자는 앤디워홀의 작품들을 사들이는 이유에 대해서 "팝아트를 미술관의 한 축으로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또 10년, 20년 후를 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면 현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도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미술관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술관으로부터 대여 요청이 들어오면 이쪽에서 원하는 작품을 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앤디 워홀이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명성만큼 돗토리현의 작품 구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돗토리현의 재정 사정을 고려한 비판이라면 그렇다 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큰 팝아트를 두고 '뭐가 아름다워?' '다섯 개나 필요해?'라는 의견은 단순히 문화자본의 결핍이다.

미술의 가치에 있어서 현민의 이해를 얻는 건 무리일 것 같네요. 게다가 이 금액. 하지만 워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엄청난 이득. 시간이 걸리더라도 훗날 감사의 말을 듣는 경우도 있으니까 돗토리현 힘내세요! (트위터)

돗토리현의 앤디워홀 작품 구입 논란을 보도한 NHK
일본 언론들도 돗토리현의 앤디워홀 작품 구입 논란에 대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논란으로 인해 아직 개관하지도 않있고, 홍보도 쉽지 않은 지역 미술관이 벌써 유명세를 타게 됐다며 앞으로의 효과에 대한 기대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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