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한국어 전공하면 100% 취업…교사 양성은 과제”

입력 2022.11.19 (07:02) 수정 2022.11.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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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가을동화' 보던 베트남 소녀에서 최고의 한국어 교육가로
베트남에 부는 한국어 교육 열풍…국영방송 VTV에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방영도
'영어를 하면 월급이 두 배, 한국어를 하면 세 배'…한국어과 졸업생 '취업 보장'
한국어 교사·문화 교육 인프라 부족…교재 개발도 과제


하노이의 11월은 여전히 여름이다. 캠퍼스는 한낮의 열기와 청춘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Vietnam National University – University of Languages and International Studies, ULIS) 6층 강당. 인터뷰가 시작되자 익숙한 한국어 발음이 들려왔다. 외국인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유창한 한국어였다.

"2학년까지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 도달이 목표입니다. 3학년부터는 통·번역, 교육 등으로 세부 전공을 나누고요. 베트남에서 가장 다양하게 세부 전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쩐 티 흐엉(Tran Thi Huong·43세) ULIS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장은 1997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ULIS에 한국어과가 처음 문을 연 해였다. 당시 베트남은 한국어 교육자가 부족해 졸업하자마자 바로 교수가 됐다. 흐엉 학부장이 한국어를 배우던 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주변은 전부 논밭이었어요. 물소들이 돌아다니고 아파트도 없었어요. 한국인도 거의 없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죠. 입학생 수도 3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50명씩 뽑고 있죠."

쩐 티 흐엉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장쩐 티 흐엉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장

늘어난 건 학생 수만이 아니다. 한국과 베트남은 올해 12월로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2021년 807억 달러로 수교 당시와 비교하면 161배 늘었다. 한국 기업 9,000여 개가 베트남에 진출해 누적 투자 1위 국가도 한국이다.

지난 10월 박진 외교부 장관과 부이 타잉 선 베트남 외교장관은 양국 관계를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개국뿐이다.

친밀해진 관계만큼이나 한국어 학습 수요도 커졌다. 베트남 학생들은 왜 한국어를 배우려 할까. 흐엉 학부장은 "학생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큰 학습 목표는 취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를 전공하면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거나 유학을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100% 취업이 됩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는 '영어를 하면 월급이 두 배, 한국어를 하면 세 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세종학당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 목적을 묻는 질문에 한국기업 취업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1.3%로 다른 지역의 17.6%보다 높았다.


취업에 유리한 만큼 입학 경쟁도 치열하다. 흐엉 학부장은 매년 최상위권 학생들이 한국어과에 입학한다고 말한다.

"최근 5~6년 동안 한국어 전공 학생들의 입학점수는 항상 상위권이었습니다. ULIS의 경우 영어 전공 입학점수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한국어 전공입니다. 입학점수가 만점에 도달해야 한국어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교도 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해 2월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 이어 일곱 번째다. 베트남에서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외국어다. 앞서 2019년엔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선정됐다. 제2외국어는 중등학교부터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데 현재 전국 62개 학교 학생 10,000여 명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다. '한국어로 말해봐요'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두 주 2회 총 20회 분량으로 제작됐다. 방송 시간도 매주 수·금 저녁 6시 30분으로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TV를 보는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

지난해 9월부터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방영된 ‘한국어로 말해봐요’ 프로그램 포스터지난해 9월부터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방영된 ‘한국어로 말해봐요’ 프로그램 포스터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글자라고 평가받고 있죠. 중국어나 일본어와 비교하면 입문자에게 한글은 초급 수준의 회화를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또 한자를 차용한 단어를 공유하기 때문에 어휘를 쉽게 익힐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어는 공부할수록 어렵습니다. 어순과 문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한국어 교육 수요에 발맞춰 우리 정부와 기업의 지원도 늘었다. 흐엉 학부장은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이 강의실도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지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기관을 통해 한국어 교육을 지원한다.

"문체부는 세종학당재단을 통해 한국 문화 보급을 지원하고요, 교육부는 베트남 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교육을 지원합니다. ULIS는 중·고등학생 과정도 포함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어요."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의 베트남 세종학당 운영지원금은 2021년 평균 5,300만 원에서 2022년 5,900만 원으로 늘었다.

민간 부문의 베트남 한국어 교육 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ULIS는 지난 8월부터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한국어 학습 앱 지니케이를 활용한 한국어 교과과정을 개설했다. 지니케이는 한국어 강의 VOD와 함께 챗봇을 활용한 말하기 연습, 1:1 비대면 강의, 학습 컨설턴트까지 한국어 교육 전반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 지원과 민간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의 한국어 교육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원 부족이다.

"한국 기관으로부터 파견받고는 있지만 베트남에서 교육해야 하니 베트남인 교사를 양성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해요. 월급 문제 때문에 학교가 쉽게 채용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 높은 급여를 받고 한국 기업에 취업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한국어 교육자를 육성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말이다.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장면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장면

한국어 교재 개발도 중요한 과제다. 흐엉 학부장은 "베트남에서 개발한 교재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한국 대학에서 만든 교재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지만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는 이제 막 개발을 시작했다. 베트남 초등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교과서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다른 제1외국어 대신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지는 불투명하다.

부족한 한국 문화 교육 인프라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한국문화원과 세종학당 등을 통한 한국 문화 체험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긴 벅차다. 흐엉 학부장은 "지금은 언어만 공부하는 세상이 아니다"라며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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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에서 한국어 전공하면 100% 취업…교사 양성은 과제”
    • 입력 2022-11-19 07:02:15
    • 수정2022-11-19 07:05:52
    취재K
<strong>'가을동화' 보던 베트남 소녀에서 최고의 한국어 교육가로<br />베트남에 부는 한국어 교육 열풍…국영방송 VTV에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방영도<br />'영어를 하면 월급이 두 배, 한국어를 하면 세 배'…한국어과 졸업생 '취업 보장'<br /></strong><strong>한국어 교사·문화 교육 인프라 부족…교재 개발도 과제 </strong>

하노이의 11월은 여전히 여름이다. 캠퍼스는 한낮의 열기와 청춘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Vietnam National University – University of Languages and International Studies, ULIS) 6층 강당. 인터뷰가 시작되자 익숙한 한국어 발음이 들려왔다. 외국인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유창한 한국어였다.

"2학년까지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 도달이 목표입니다. 3학년부터는 통·번역, 교육 등으로 세부 전공을 나누고요. 베트남에서 가장 다양하게 세부 전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쩐 티 흐엉(Tran Thi Huong·43세) ULIS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장은 1997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ULIS에 한국어과가 처음 문을 연 해였다. 당시 베트남은 한국어 교육자가 부족해 졸업하자마자 바로 교수가 됐다. 흐엉 학부장이 한국어를 배우던 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주변은 전부 논밭이었어요. 물소들이 돌아다니고 아파트도 없었어요. 한국인도 거의 없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죠. 입학생 수도 3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50명씩 뽑고 있죠."

쩐 티 흐엉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장
늘어난 건 학생 수만이 아니다. 한국과 베트남은 올해 12월로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2021년 807억 달러로 수교 당시와 비교하면 161배 늘었다. 한국 기업 9,000여 개가 베트남에 진출해 누적 투자 1위 국가도 한국이다.

지난 10월 박진 외교부 장관과 부이 타잉 선 베트남 외교장관은 양국 관계를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개국뿐이다.

친밀해진 관계만큼이나 한국어 학습 수요도 커졌다. 베트남 학생들은 왜 한국어를 배우려 할까. 흐엉 학부장은 "학생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큰 학습 목표는 취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를 전공하면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거나 유학을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100% 취업이 됩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는 '영어를 하면 월급이 두 배, 한국어를 하면 세 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세종학당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 목적을 묻는 질문에 한국기업 취업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1.3%로 다른 지역의 17.6%보다 높았다.


취업에 유리한 만큼 입학 경쟁도 치열하다. 흐엉 학부장은 매년 최상위권 학생들이 한국어과에 입학한다고 말한다.

"최근 5~6년 동안 한국어 전공 학생들의 입학점수는 항상 상위권이었습니다. ULIS의 경우 영어 전공 입학점수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한국어 전공입니다. 입학점수가 만점에 도달해야 한국어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교도 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해 2월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 이어 일곱 번째다. 베트남에서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외국어다. 앞서 2019년엔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선정됐다. 제2외국어는 중등학교부터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데 현재 전국 62개 학교 학생 10,000여 명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다. '한국어로 말해봐요'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두 주 2회 총 20회 분량으로 제작됐다. 방송 시간도 매주 수·금 저녁 6시 30분으로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TV를 보는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

지난해 9월부터 베트남 국영방송 VTV에서 방영된 ‘한국어로 말해봐요’ 프로그램 포스터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글자라고 평가받고 있죠. 중국어나 일본어와 비교하면 입문자에게 한글은 초급 수준의 회화를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또 한자를 차용한 단어를 공유하기 때문에 어휘를 쉽게 익힐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어는 공부할수록 어렵습니다. 어순과 문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한국어 교육 수요에 발맞춰 우리 정부와 기업의 지원도 늘었다. 흐엉 학부장은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이 강의실도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지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기관을 통해 한국어 교육을 지원한다.

"문체부는 세종학당재단을 통해 한국 문화 보급을 지원하고요, 교육부는 베트남 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교육을 지원합니다. ULIS는 중·고등학생 과정도 포함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어요."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의 베트남 세종학당 운영지원금은 2021년 평균 5,300만 원에서 2022년 5,900만 원으로 늘었다.

민간 부문의 베트남 한국어 교육 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ULIS는 지난 8월부터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한국어 학습 앱 지니케이를 활용한 한국어 교과과정을 개설했다. 지니케이는 한국어 강의 VOD와 함께 챗봇을 활용한 말하기 연습, 1:1 비대면 강의, 학습 컨설턴트까지 한국어 교육 전반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 지원과 민간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의 한국어 교육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원 부족이다.

"한국 기관으로부터 파견받고는 있지만 베트남에서 교육해야 하니 베트남인 교사를 양성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해요. 월급 문제 때문에 학교가 쉽게 채용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 높은 급여를 받고 한국 기업에 취업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한국어 교육자를 육성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말이다.

하노이국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장면
한국어 교재 개발도 중요한 과제다. 흐엉 학부장은 "베트남에서 개발한 교재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한국 대학에서 만든 교재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지만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는 이제 막 개발을 시작했다. 베트남 초등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교과서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다른 제1외국어 대신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지는 불투명하다.

부족한 한국 문화 교육 인프라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한국문화원과 세종학당 등을 통한 한국 문화 체험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긴 벅차다. 흐엉 학부장은 "지금은 언어만 공부하는 세상이 아니다"라며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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