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아동사망]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입력 2022.11.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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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개월 정인이 사망사건, 11살 아이 쇠사슬 탈출 사건, 9살 아이 가방 감금 사망 사건… 지난 2년간 온 사회가 공분한 아동학대 사건들입니다. 아이들의 비극이 드러날 때마다 모두가 분노하며 대책을 촉구하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이보다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시사멘터리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동 변사사건을 토대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수상한 죽음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최초로 추적해 비극을 막을 대책을 찾아봤습니다. 관련 내용을 시사멘터리 추적(11월 13일) 방송에 이어 네 편의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첫 순서는 태어나자마자 빌라 3층에서 던져졌다가 쓰레기더미에 떨어져 살아난 아기의 이야기입니다. 기적같이 살아난 아기의 사건은 많은 언론에 보도됐지만, 7년 뒤 확인한 아기의 근황은 참담했습니다.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기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②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③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4배
④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들…아동 사망 줄일 대책은?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 태어나자마자 3층 창밖으로 던져졌다가 쓰레기 덕에 살아난 아기…대체 무슨 일이?

2015년 6월 12일 새벽 1시 55분, 경북 경산시의 한 주택가.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20대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빌라 3층에서 창밖으로 던진 것이다. 10m 높이에서 추락한 아기는 다행히 빌라 밖 공터에 쌓인 쓰레기더미 위로 떨어져 다리 골절 정도에 그치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아기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취재진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7년이 흘렀지만, 형사는 여전히 그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신고받고 바로 현장에 갔더니 아기는 이미 119에 이송됐고 산모와 친오빠가 있었어요. 산모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공터가 나왔는데 높이가 10m는 넘었던 거 같아요. 아기가 살았다니 '신기하다, 천운을 가진 아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김진수(가명) 형사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이 난 그날 새벽, 아기는 119에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고 아기 엄마와 친오빠가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 현장은 방 두 개와 작은 부엌이 전부인 투룸 빌라, 아기 엄마와 친오빠는 이곳에서 살며 주변 공단에서 일했다. 범행 경위를 묻는 김 형사의 질문에 엄마는 방에서 출산한 뒤 창밖으로 아기를 던졌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가족 누구도 모르던 임신이었기에 출산을 감추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친오빠가 방문을 열어보고서야 사건이 난 것을 알고서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산모와 친오빠 둘이서 투룸에서 살았어요. 오빠는 동생이 임신한 걸 몰랐다가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동생 방에 가봤더니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고 했대요. '아기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동생이 '던졌다'고 해서 창밖을 보니까 정말로 아기가 공터에 떨어져 있어서 신고했다는 거죠."

아기 엄마와 대화하던 김 형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를 챘다. 엄마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임신조차 출산 직전에 알았고, 아기의 친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지적 능력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산모가 지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행했다는 것도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빠한테 아기를 낳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안 혼나려고 던졌다고 했어요. 아기 아빠에 관해 물으니까 ‘앱으로 남자를 만났는데 언제 임신이 됐는지 어느 남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지적 능력이 떨어지니 일부러 남자들이 꾀어낸 것 같더라고요.”

알고 보니 엄마는 출산 2주 전에야 병원을 찾아 임신을 알게 됐고, 이마저 가족들에게 숨겨 아기를 맞을 준비는 무엇도 돼 있지 않았다. 결국, 그 밤, 방에서 홀로 출산하게 되자 옆방에 있던 친오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기를 던진 것이다. 지능검사 결과 엄마의 IQ는 54, 경도의 정신지체 수준이었다. 심리검사에서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살해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엄마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적 능력이 낮아 임신을 뒤늦게 안데다, 아기의 친부를 모르는 상황에서 홀로 출산한 점, 아기가 죽지 않고 부상에 그친 점 등이 참작됐다.


■ "쓰레기 덕에 살아났다"고 세상에 알려진 아기…하지만 아기는 생후 51일 만에 숨을 거뒀다

"3층서 영아 던져…쓰레기가 살렸다", "쓰레기 덕에 목숨 건져"
충격적인 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판결까지 수개월 간 수많은 언론에 이렇게 보도됐다. 하지만 시사멘터리 추적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알려진 아기의 근황은 참담했다. 아기는 생후 두 달도 안 돼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아기의 죽음도, 사건 후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조차 취재진을 통해 아기의 죽음을 처음으로 전해 듣고서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형사는 "당연히 입양이나 보육원에 가서 컸겠구나, 지금쯤 7~8살일 텐데 잘 자랐나 궁금했는데… 죽었다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며 사건 후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취재진에게 묻기도 했다.

기적같이 살아났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떠난 아기, 시사멘터리 추적 팀은 아기의 짧은 생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남겨진 흔적들을 되짚어봤다.

■ "반짝 반짝 예뻐지던 아기" 아기는 일시분리된 지 한 달 만에 엄마에게 돌아갔다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강희정 부장이 아기의 사건을 알게 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TV에 흘러나오던 충격적인 사건을 보며, 강 부장은 '이 아기도 우리에게 맡겨지겠구나' 직감하고 위탁 가정을 찾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기와 엄마의 일시 분리를 결정하고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양육을 의뢰했다. 사건 후 병원에서 10여 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아기는 그렇게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강희정 부장은 아기를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했다. 태어난 지 2주도 안 돼 자그마한 몸집에, 한쪽 다리에는 깁스가 칭칭 감겨 있어 유달리 마음 아팠던 아기였다.

강희정/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아기가 되게 작은데 허벅지 쪽만 깁스를 하고 있었어요. 엄마들이 아기 처음 태어나면 부서질까 봐 못 만지겠다는 말씀하시잖아요? 얘도 그랬어요."

위탁가정에 맡겨진 한 달 동안 성장한 아기의 모습위탁가정에 맡겨진 한 달 동안 성장한 아기의 모습

안는 것조차 걱정될 만큼 연약해 보였던 아기는 위탁가정에서 한 달 동안 크면서 몰라보게 쑥쑥 성장했다. 온종일 잠만 자던 아기가 조금씩 눈을 뜨고, 위탁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빙긋 웃기도 했다. 앙상했던 다리가 통통해졌고, 배도 볼록해지며 눈에 띄게 살이 올랐다. 아기는 그야말로 '반짝반짝' 예뻐졌다. 한 달 사이 깊은 정이 든 위탁 어머니는 아기를 계속 키우고 싶어 했다. 친부모가 키우기 어렵다면 일시 보호만이 아닌, 장기 위탁도 가능하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해왔다.

하지만 한 달간의 일시 분리가 끝나던 날, 아기는 자신을 던졌던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친권을 가진 엄마가 양육을 원한다는 이유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원 가정 복귀를 결정한 것이다. 엄마와 몇 차례 면담했던 강희정 부장은 '엄마에게 돌아가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기를 엄마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위탁가정에 계속 맡기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강희정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우리가 위탁해줄 수 있다, 엄마가 아기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드렸어요. 엄마가 양육할 만한 인지능력이 되지 않고 모성이 그렇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어요. 젖 먹이는 것, 목욕 방법 등 양육에 관해 물으면 답변을 거의 할 수 없었고요. 그냥 '네, 제가 키울게요.'라고 하는데 이해하고 대답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아이가 엄마에게 가면 안 된다, 위험하다가 제 결론이었어요."

가정위탁지원센터의 반대에도 아기는 끝내 엄마에게 돌아갔다. 불안한 마음에 센터 직원들이 두어 차례 엄마를 찾아가 양육방법을 알려줬지만, 마음은 쉬이 놓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비극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돌아간 지 겨우 열흘째, 아기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 변사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에게 연락을 받은 강희정 부장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아기를 보낸 그 날을 후회한다.

강희정/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나중에 경찰 연락을 받고서 아기가 그렇게 된 걸 알았어요. 그만큼 안 된다고 했는데 위탁가정에서 잘 클 뻔했던 아기를 결국엄마에게 돌려보내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해서 후회가 크게 됐어요.
그때 상황이 잊히지 않아요. 이 일 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 아닐까 싶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경찰의 의뢰를 받고 아기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부손상과 관련된 거로 추정됐다. 아기의 머리에는 태어나자마자 추락해 생겼다가 아물고 있던 상처뿐만 아니라, 사망 직전 생긴 것으로 보이는 뇌출혈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외력에 의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뇌출혈이었다.

당시 부검의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
"아기가 뇌에 경미하지만 손상을 일으킨 외력이나 이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아주 국소적으로 형성된 지주막하출혈이 뇌 아랫부분, 이런 곳에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사망 당시나 거의 하루 이내 생긴 거로 봤고요. 이런 뇌출혈은 아기 혼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생긴다고 볼 수는 없고, 머리에 외력이 작용했고 이런 게 사망 원인일 수 있겠다고 추정한 거죠."

아기가 숨질 당시 곁에 있던 사람은 엄마뿐, 하지만 엄마는 사망 경위를 경찰에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더는 조사하지 못하고 영아가 갑자기 숨졌다는 의미의 '영아급사'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했다. 아기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미궁으로 남았다.

■ 세상에 알려지고도 끝내 숨진 아기…엄마만의 잘못일까? "모두가 놓친 죽음"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고도 끝내 숨지고만 아기, 아기의 죽음은 과연 엄마만의 탓일까? 취재진은 당시 아기 추락사건과 관련해 엄마를 변호했던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기억하는 엄마는 심리적, 정서적, 환경적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아기 엄마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보고서당시 아기 엄마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보고서

이민정 / 당시 아기 추락 사건 담당 변호사
"당시 아기 엄마는 계속 잘못했다고 울고 그랬어요. 지능도 낮게 나왔고 심리학적 평가보고서에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기 곤란하다'고 나왔고요. 임신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본인 몸을 인지를 못 했고 출산 후에도 수사받고 재판받는 과정을 거치던 상황이었거든요. 매우 불안해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게 보였어요. 이런 동생을 데리고 있는 오빠도 일하러 다녀야 해서 동생만 돌볼 수도 없고 아기를 키울 여건도 아니었어요."

사건을 살펴본 모두가 이를 알았지만, 제도적 여건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아기는 끝내 보호받지 못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
"엄마와 외삼촌이 처음에는 아이 양육 의사를 밝혔으나 재위탁이나 입양으로 입장을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재위탁이나 장기 위탁으로 가려면 법원 결정문 같은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절차가 필요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이었고요. 다른 시설도 알아봤는데 입소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입양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 했고 아이 돌보미 같은 자원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양육 점검은 아기 엄마가 검찰 조사를 받느라 일정이 어긋나서 못했어요."

기적처럼 살아난 어린 생명이 사회의 방관으로 스러졌지만 사건 7년이 지나도록 아기의 죽음을 제대로 들여다 보는 이도, 반성하는 이도 없었다.

이민정/당시 아기 추락 사건 담당 변호사
"자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부모한테 있지만, 이차적으로 국가의 책임이 있는 거죠. 피고인이 처벌받으면 이 사건이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에 대한 교육, 최소한의 심리치료, 아이가 안전한지 관리 감독이 같이 이뤄졌어야 해요. 사건이 일어나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고, 수사하고 재판까지 받는 과정에서 결국 피해자인 아기는 보호되지 못했어요. 사회 안전망이 아기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이 아이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어요."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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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적/아동사망]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 입력 2022-11-19 09:19:02
    취재K
16개월 정인이 사망사건, 11살 아이 쇠사슬 탈출 사건, 9살 아이 가방 감금 사망 사건… 지난 2년간 온 사회가 공분한 아동학대 사건들입니다. 아이들의 비극이 드러날 때마다 모두가 분노하며 대책을 촉구하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이보다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br /> <br />KBS 시사멘터리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동 변사사건을 토대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수상한 죽음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최초로 추적해 비극을 막을 대책을 찾아봤습니다. 관련 내용을 시사멘터리 추적(11월 13일) 방송에 이어 네 편의 기사로 전해드립니다.<br /> <br />첫 순서는 태어나자마자 빌라 3층에서 던져졌다가 쓰레기더미에 떨어져 살아난 아기의 이야기입니다. 기적같이 살아난 아기의 사건은 많은 언론에 보도됐지만, 7년 뒤 확인한 아기의 근황은 참담했습니다.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기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br />
글 싣는 순서
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②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③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4배
④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들…아동 사망 줄일 대책은?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 태어나자마자 3층 창밖으로 던져졌다가 쓰레기 덕에 살아난 아기…대체 무슨 일이?

2015년 6월 12일 새벽 1시 55분, 경북 경산시의 한 주택가.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20대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빌라 3층에서 창밖으로 던진 것이다. 10m 높이에서 추락한 아기는 다행히 빌라 밖 공터에 쌓인 쓰레기더미 위로 떨어져 다리 골절 정도에 그치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아기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취재진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7년이 흘렀지만, 형사는 여전히 그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신고받고 바로 현장에 갔더니 아기는 이미 119에 이송됐고 산모와 친오빠가 있었어요. 산모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공터가 나왔는데 높이가 10m는 넘었던 거 같아요. 아기가 살았다니 '신기하다, 천운을 가진 아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김진수(가명) 형사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이 난 그날 새벽, 아기는 119에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고 아기 엄마와 친오빠가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 현장은 방 두 개와 작은 부엌이 전부인 투룸 빌라, 아기 엄마와 친오빠는 이곳에서 살며 주변 공단에서 일했다. 범행 경위를 묻는 김 형사의 질문에 엄마는 방에서 출산한 뒤 창밖으로 아기를 던졌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가족 누구도 모르던 임신이었기에 출산을 감추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친오빠가 방문을 열어보고서야 사건이 난 것을 알고서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산모와 친오빠 둘이서 투룸에서 살았어요. 오빠는 동생이 임신한 걸 몰랐다가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동생 방에 가봤더니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고 했대요. '아기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동생이 '던졌다'고 해서 창밖을 보니까 정말로 아기가 공터에 떨어져 있어서 신고했다는 거죠."

아기 엄마와 대화하던 김 형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를 챘다. 엄마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임신조차 출산 직전에 알았고, 아기의 친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지적 능력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김진수(가명) / 당시 사건 출동 형사
”산모가 지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행했다는 것도 인식을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빠한테 아기를 낳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안 혼나려고 던졌다고 했어요. 아기 아빠에 관해 물으니까 ‘앱으로 남자를 만났는데 언제 임신이 됐는지 어느 남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지적 능력이 떨어지니 일부러 남자들이 꾀어낸 것 같더라고요.”

알고 보니 엄마는 출산 2주 전에야 병원을 찾아 임신을 알게 됐고, 이마저 가족들에게 숨겨 아기를 맞을 준비는 무엇도 돼 있지 않았다. 결국, 그 밤, 방에서 홀로 출산하게 되자 옆방에 있던 친오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기를 던진 것이다. 지능검사 결과 엄마의 IQ는 54, 경도의 정신지체 수준이었다. 심리검사에서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살해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엄마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적 능력이 낮아 임신을 뒤늦게 안데다, 아기의 친부를 모르는 상황에서 홀로 출산한 점, 아기가 죽지 않고 부상에 그친 점 등이 참작됐다.


■ "쓰레기 덕에 살아났다"고 세상에 알려진 아기…하지만 아기는 생후 51일 만에 숨을 거뒀다

"3층서 영아 던져…쓰레기가 살렸다", "쓰레기 덕에 목숨 건져"
충격적인 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판결까지 수개월 간 수많은 언론에 이렇게 보도됐다. 하지만 시사멘터리 추적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알려진 아기의 근황은 참담했다. 아기는 생후 두 달도 안 돼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아기의 죽음도, 사건 후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조차 취재진을 통해 아기의 죽음을 처음으로 전해 듣고서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형사는 "당연히 입양이나 보육원에 가서 컸겠구나, 지금쯤 7~8살일 텐데 잘 자랐나 궁금했는데… 죽었다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며 사건 후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취재진에게 묻기도 했다.

기적같이 살아났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떠난 아기, 시사멘터리 추적 팀은 아기의 짧은 생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남겨진 흔적들을 되짚어봤다.

■ "반짝 반짝 예뻐지던 아기" 아기는 일시분리된 지 한 달 만에 엄마에게 돌아갔다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강희정 부장이 아기의 사건을 알게 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TV에 흘러나오던 충격적인 사건을 보며, 강 부장은 '이 아기도 우리에게 맡겨지겠구나' 직감하고 위탁 가정을 찾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기와 엄마의 일시 분리를 결정하고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양육을 의뢰했다. 사건 후 병원에서 10여 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아기는 그렇게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강희정 부장은 아기를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했다. 태어난 지 2주도 안 돼 자그마한 몸집에, 한쪽 다리에는 깁스가 칭칭 감겨 있어 유달리 마음 아팠던 아기였다.

강희정/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아기가 되게 작은데 허벅지 쪽만 깁스를 하고 있었어요. 엄마들이 아기 처음 태어나면 부서질까 봐 못 만지겠다는 말씀하시잖아요? 얘도 그랬어요."

위탁가정에 맡겨진 한 달 동안 성장한 아기의 모습
안는 것조차 걱정될 만큼 연약해 보였던 아기는 위탁가정에서 한 달 동안 크면서 몰라보게 쑥쑥 성장했다. 온종일 잠만 자던 아기가 조금씩 눈을 뜨고, 위탁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빙긋 웃기도 했다. 앙상했던 다리가 통통해졌고, 배도 볼록해지며 눈에 띄게 살이 올랐다. 아기는 그야말로 '반짝반짝' 예뻐졌다. 한 달 사이 깊은 정이 든 위탁 어머니는 아기를 계속 키우고 싶어 했다. 친부모가 키우기 어렵다면 일시 보호만이 아닌, 장기 위탁도 가능하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해왔다.

하지만 한 달간의 일시 분리가 끝나던 날, 아기는 자신을 던졌던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친권을 가진 엄마가 양육을 원한다는 이유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원 가정 복귀를 결정한 것이다. 엄마와 몇 차례 면담했던 강희정 부장은 '엄마에게 돌아가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기를 엄마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위탁가정에 계속 맡기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강희정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우리가 위탁해줄 수 있다, 엄마가 아기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드렸어요. 엄마가 양육할 만한 인지능력이 되지 않고 모성이 그렇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들었어요. 젖 먹이는 것, 목욕 방법 등 양육에 관해 물으면 답변을 거의 할 수 없었고요. 그냥 '네, 제가 키울게요.'라고 하는데 이해하고 대답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아이가 엄마에게 가면 안 된다, 위험하다가 제 결론이었어요."

가정위탁지원센터의 반대에도 아기는 끝내 엄마에게 돌아갔다. 불안한 마음에 센터 직원들이 두어 차례 엄마를 찾아가 양육방법을 알려줬지만, 마음은 쉬이 놓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비극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돌아간 지 겨우 열흘째, 아기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 변사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에게 연락을 받은 강희정 부장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아기를 보낸 그 날을 후회한다.

강희정/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부장
"나중에 경찰 연락을 받고서 아기가 그렇게 된 걸 알았어요. 그만큼 안 된다고 했는데 위탁가정에서 잘 클 뻔했던 아기를 결국엄마에게 돌려보내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해서 후회가 크게 됐어요.
그때 상황이 잊히지 않아요. 이 일 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 아닐까 싶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경찰의 의뢰를 받고 아기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부손상과 관련된 거로 추정됐다. 아기의 머리에는 태어나자마자 추락해 생겼다가 아물고 있던 상처뿐만 아니라, 사망 직전 생긴 것으로 보이는 뇌출혈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외력에 의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뇌출혈이었다.

당시 부검의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
"아기가 뇌에 경미하지만 손상을 일으킨 외력이나 이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아주 국소적으로 형성된 지주막하출혈이 뇌 아랫부분, 이런 곳에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사망 당시나 거의 하루 이내 생긴 거로 봤고요. 이런 뇌출혈은 아기 혼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생긴다고 볼 수는 없고, 머리에 외력이 작용했고 이런 게 사망 원인일 수 있겠다고 추정한 거죠."

아기가 숨질 당시 곁에 있던 사람은 엄마뿐, 하지만 엄마는 사망 경위를 경찰에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더는 조사하지 못하고 영아가 갑자기 숨졌다는 의미의 '영아급사'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했다. 아기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미궁으로 남았다.

■ 세상에 알려지고도 끝내 숨진 아기…엄마만의 잘못일까? "모두가 놓친 죽음"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고도 끝내 숨지고만 아기, 아기의 죽음은 과연 엄마만의 탓일까? 취재진은 당시 아기 추락사건과 관련해 엄마를 변호했던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기억하는 엄마는 심리적, 정서적, 환경적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아기 엄마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보고서
이민정 / 당시 아기 추락 사건 담당 변호사
"당시 아기 엄마는 계속 잘못했다고 울고 그랬어요. 지능도 낮게 나왔고 심리학적 평가보고서에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기 곤란하다'고 나왔고요. 임신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본인 몸을 인지를 못 했고 출산 후에도 수사받고 재판받는 과정을 거치던 상황이었거든요. 매우 불안해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게 보였어요. 이런 동생을 데리고 있는 오빠도 일하러 다녀야 해서 동생만 돌볼 수도 없고 아기를 키울 여건도 아니었어요."

사건을 살펴본 모두가 이를 알았지만, 제도적 여건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아기는 끝내 보호받지 못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
"엄마와 외삼촌이 처음에는 아이 양육 의사를 밝혔으나 재위탁이나 입양으로 입장을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재위탁이나 장기 위탁으로 가려면 법원 결정문 같은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절차가 필요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이었고요. 다른 시설도 알아봤는데 입소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입양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 했고 아이 돌보미 같은 자원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양육 점검은 아기 엄마가 검찰 조사를 받느라 일정이 어긋나서 못했어요."

기적처럼 살아난 어린 생명이 사회의 방관으로 스러졌지만 사건 7년이 지나도록 아기의 죽음을 제대로 들여다 보는 이도, 반성하는 이도 없었다.

이민정/당시 아기 추락 사건 담당 변호사
"자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부모한테 있지만, 이차적으로 국가의 책임이 있는 거죠. 피고인이 처벌받으면 이 사건이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에 대한 교육, 최소한의 심리치료, 아이가 안전한지 관리 감독이 같이 이뤄졌어야 해요. 사건이 일어나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고, 수사하고 재판까지 받는 과정에서 결국 피해자인 아기는 보호되지 못했어요. 사회 안전망이 아기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이 아이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어요."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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