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마지막 대사가 좋다…‘곧 스물’들에게 권하는 고전 청춘영화

입력 2022.11.20 (08:02)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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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즈 리턴’(1996)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키즈 리턴’(1996)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는 비행기조차 우회하게 만드는 '대(大)' 수능이 치러진 주였다. 허나 시험 자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모두에게 중요한 시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만연한 수능 성적 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곧 한 무리의 청년들이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까지는 책상을 누구랑 붙여 쓸지조차 맘대로 정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온다. 뭐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지금부터는 네가 전부 짊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냉정한 사회로. 그 순간을 맞이할 청춘들을 향해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두 청년의 실패담을 그린 1996년 일본 영화 '키즈 리턴'이다.

주인공 신지와 마사루는 대책 없는 문제아다. 인근 학생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성인 영화관에 들락거리고, 맘에 안 드는 교사는 차에다 불을 질러 응징한다. 이런 둘에게도 어쩌다 꿈이 생긴다. 마사루는 야쿠자 조직에 들어가고, 신지는 권투에 소질을 발견해 선수가 된다. "넌 챔피언이, 나는 보스가 돼서 다시 만나자고." 오랜만에 재회한 마사루의 말이 그저 허세로 들리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성공 가도에 오른다. 그러나 신지는 질 나쁜 선배의 꾐에 빠져 술과 약물을 가까이하게 되고, 마사루는 자신을 감싸주던 중간 보스가 총에 맞아 숨지면서 조직에서 버려질 처지에 놓인다.

영화 ‘키즈 리턴’의 등장 인물 히로시(왼쪽)와 마사루(가운데), 신지(오른쪽). 출처 IMDB.영화 ‘키즈 리턴’의 등장 인물 히로시(왼쪽)와 마사루(가운데), 신지(오른쪽). 출처 IMDB.

영화는 '현재-과거 회상-현재' 구조를 따라가며 수염이 거뭇한 두 사람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열고 맺는다. 그러니 둘에게 그 후 어떤 일이 닥치는지도 딱히 스포일러는 아닌 셈이다. 꼭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건 이 작품의 마지막 대사다.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고, 그 후로 '키즈 리턴'은 가장 좋아하는 청춘 영화 중 하나가 됐다. 힘들 때마다 이 영화의 대사를 곱씹었다.
입사 시험에서 줄줄이 낙방하던 20대 땐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모아 반강제로 함께 보기도 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마지막 대사를 생각하면 전보다 기운이 솟았다.

하지만 어느새 청춘보다 기성세대에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 이 영화를 추천하는 건 전보다 조심스러운 일이 됐다. 엉망인 현실을 외면하고, '무한 도전'만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위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키즈 리턴'은 열혈과 패기로 가득 찬 일본 소년만화가 아니다.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청춘이 겪는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른들의 말을 너무 믿어 실패한다. 어른들, 즉 기성 사회가 가르치는 '게임의 규칙'엔 도통 일관성이 없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다가, 그래도 꿈만 가지고선 안 된다고 하는 식이다. 반칙은 절대 안 된다던 코치는 막상 시합에서 불리해지자 손이든 발이든 쓰라고 윽박지르고, 자상하게 부모님 안부를 묻던 야쿠자 형님은 같은 말투로 살인죄 복역을 떠넘긴다. 그가 살해됐을 때 마사루는 진심으로 분개하지만, 높으신 형님들에게 중간 간부의 죽음쯤은 골프 약속 잡는 것만큼도 중요치 않다. 세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심약한 동급생 히로시의 이야기를 보면 감독이 하려는 말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래서 다시, '곧 스물' 청춘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홀로 낯선 일들을 겪을 때, 남들이 말하는 장단 중 어느 것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때, 크고 작은 실수 끝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제 전처럼 곧이 곧 대로 어른들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있다. 남이 아닌 내 방식대로 하는 길. 그 길을 찾아갈 청년들에게 이 우울하고 삐딱한 영화가 용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유튜브와 '왓챠', 네이버 '시리즈 온'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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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마지막 대사가 좋다…‘곧 스물’들에게 권하는 고전 청춘영화
    • 입력 2022-11-20 08:02:08
    • 수정2022-12-26 09:39:17
    씨네마진국
영화 ‘키즈 리턴’(1996)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는 비행기조차 우회하게 만드는 '대(大)' 수능이 치러진 주였다. 허나 시험 자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모두에게 중요한 시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만연한 수능 성적 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곧 한 무리의 청년들이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까지는 책상을 누구랑 붙여 쓸지조차 맘대로 정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온다. 뭐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지금부터는 네가 전부 짊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냉정한 사회로. 그 순간을 맞이할 청춘들을 향해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두 청년의 실패담을 그린 1996년 일본 영화 '키즈 리턴'이다.

주인공 신지와 마사루는 대책 없는 문제아다. 인근 학생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성인 영화관에 들락거리고, 맘에 안 드는 교사는 차에다 불을 질러 응징한다. 이런 둘에게도 어쩌다 꿈이 생긴다. 마사루는 야쿠자 조직에 들어가고, 신지는 권투에 소질을 발견해 선수가 된다. "넌 챔피언이, 나는 보스가 돼서 다시 만나자고." 오랜만에 재회한 마사루의 말이 그저 허세로 들리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성공 가도에 오른다. 그러나 신지는 질 나쁜 선배의 꾐에 빠져 술과 약물을 가까이하게 되고, 마사루는 자신을 감싸주던 중간 보스가 총에 맞아 숨지면서 조직에서 버려질 처지에 놓인다.

영화 ‘키즈 리턴’의 등장 인물 히로시(왼쪽)와 마사루(가운데), 신지(오른쪽). 출처 IMDB.
영화는 '현재-과거 회상-현재' 구조를 따라가며 수염이 거뭇한 두 사람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열고 맺는다. 그러니 둘에게 그 후 어떤 일이 닥치는지도 딱히 스포일러는 아닌 셈이다. 꼭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건 이 작품의 마지막 대사다.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고, 그 후로 '키즈 리턴'은 가장 좋아하는 청춘 영화 중 하나가 됐다. 힘들 때마다 이 영화의 대사를 곱씹었다.
입사 시험에서 줄줄이 낙방하던 20대 땐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모아 반강제로 함께 보기도 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마지막 대사를 생각하면 전보다 기운이 솟았다.

하지만 어느새 청춘보다 기성세대에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 이 영화를 추천하는 건 전보다 조심스러운 일이 됐다. 엉망인 현실을 외면하고, '무한 도전'만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위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키즈 리턴'은 열혈과 패기로 가득 찬 일본 소년만화가 아니다.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청춘이 겪는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른들의 말을 너무 믿어 실패한다. 어른들, 즉 기성 사회가 가르치는 '게임의 규칙'엔 도통 일관성이 없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다가, 그래도 꿈만 가지고선 안 된다고 하는 식이다. 반칙은 절대 안 된다던 코치는 막상 시합에서 불리해지자 손이든 발이든 쓰라고 윽박지르고, 자상하게 부모님 안부를 묻던 야쿠자 형님은 같은 말투로 살인죄 복역을 떠넘긴다. 그가 살해됐을 때 마사루는 진심으로 분개하지만, 높으신 형님들에게 중간 간부의 죽음쯤은 골프 약속 잡는 것만큼도 중요치 않다. 세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심약한 동급생 히로시의 이야기를 보면 감독이 하려는 말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래서 다시, '곧 스물' 청춘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홀로 낯선 일들을 겪을 때, 남들이 말하는 장단 중 어느 것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때, 크고 작은 실수 끝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제 전처럼 곧이 곧 대로 어른들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있다. 남이 아닌 내 방식대로 하는 길. 그 길을 찾아갈 청년들에게 이 우울하고 삐딱한 영화가 용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유튜브와 '왓챠', 네이버 '시리즈 온'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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