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우크라이나 ‘전쟁’ vs ‘위기’…이스탄불 선언문 막전막후 ‘외교전’

입력 2022.11.20 (15:58) 수정 2022.11.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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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민간인이 희생된다면 어떠한 테러도,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저 아이는 겨우 9살이었습니다. 이번 폭발로 희생됐습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관광 명소 이스티크랄 거리 한편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소. 한 시민이 흑백 사진을 가리키며 이번 폭발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희생자의 이름은 '메렉 에크린'(MELEK ECRIN), 주말에 번화가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가족은 지난 13일 발생한 폭발로 한순간에 해체됐다. 아빠와 어린 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엄마는 치명상을 입은 채 병원에 옮겨졌다. 또 다른 희생자인 아르주 오즈소이는 15살이었다. 학사모를 쓴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꽃과 터키 국기 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튀르키예 시민들은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를 읊조리며 희생자들을 위해 애도를 표했다.

이스티크랄에서의 폭발로 발생한 사상자는 87명(현지시간 19일 기준), 이 가운데 6명이 사망했다. 튀르키예 경찰은 쿠르시리아인 여성 용의자 아할람 알바셔(Ahlam Albashir)를 포함해 46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 폭발의 배후에 쿠르드노동자당(PKK)가 있다고 밝혔다.
PKK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 조직으로 40년 이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튀르키예는 이들을 테러세력으로 규정짓고 있다.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모소 운영 마지막 날(현지시간 17일), 아시아정당국제회의 참석차 이스탄불을 방문한 각국의 정당 관계자들은 현장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PKK는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명백히 '테러'라고 규정한다. 민간인이 희생된 이상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철통 보안 속에 개최된 11차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에서도 각 국의 정당 참석자들은 이스탄불 폭발은 '테러'라며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폭발 참사가 발생한지 나흘 만에 행사가 개최된 만큼 행사가 그대로 진행될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모였지만 행사 주최측인 튀르키예측의 개최 의지는 확고했고 참석자들도 예정대로 이스탄불에 모였다.

ICAPP 관계자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리는 것은 혼돈(Chaos)이다. 우리가 위축되지 않고 연대(Solidarity)로 맞선다면 그 자체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류는 19일 채택된 이스탄불 선언에서 "테러리즘과 같은 심각한 안전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을 우려한다" 라는 내용으로 반영됐다.

■ '전쟁'이냐 '위기'냐, 선언문 채택을 놓고 신경전


선언문 채택 전 최대 난관은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ICAPP 회원국 대부분은 선언문에 '우크라이나 전쟁'(Ukraine War)으로 표기하길 원했지만, 러시아 정당 대표들은 '우크라이나 위기'(Ukraine Crisis)라고 주장했다. 이스탄불 선언 채택에 앞서 전날(현지시간 18일) 밤에 열린 초안 회의(Draft Meeting)에서는 양측 간 미묘한 신경전이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정상국제회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안드레이 클리모프 러시아 상원 국제위원회 부위원장"모든 전쟁은 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위기'라고 표기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당대표들은 유라시아 회원국 자격으로 이번 아시아정당국제회의에 참석했다.
다음은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과 나눈 일문 일답.

질문: 이스탄불 선언에 표기될 문구는 우크라이나 '전쟁'입니까, 아니면 '위기'입니까?
안드레이: 이 세상에서 벌어진,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모든 전쟁은 위기입니다. 국제 원유와 곡물 가격이 상승했고, 원자재 수급도 불안합니다. 이런 현상이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질문: 위기라고 말씀하시면서 러시아가 외교적 해결 방안 대신 '군사적 점령'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드레이: 러시아는 8년을 기다렸습니다. 자그만치 8년이요. 8년 동안 외교적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성공하지 못했죠. 이건 부득이한 조칩니다.

질문: 그렇다면 크렘린궁은 전쟁 종식을 위해 협상할 의지가 있습니까?
안드레이: 우리는 협상을 제안해 왔습니다.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죠.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NATO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왜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를요.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은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러시아가 8년을 기다려왔다는 발언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 끝에 2014년 축출된 사건을 의미한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갔다며 정부군에 맞서 분리주의 반군 세력을 지원해 왔다. 이런 노력이 통하지 않자 2021년 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러시아군 병력을 증강하기 시작했다.

최근 크렘린궁에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종전 회담을 공개 협상하자고 역제안한데 대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우크라이나 측이 역제안한 것은 협상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협상론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쪽도 압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전방위로 협상론을 거론하며 출구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열린 아시아정상국제회의장은 그야말로 외교전을 방불케 했다.

ICAPP 핵심 관계자는 "러시아측 대표단이 각국 대표단을 전방위로 접촉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마치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 회의에 참석한 것 같다 "고 귀띔했다. 러시아가 이렇게 표현 하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전쟁으로 표기되는 순간 국제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게 러시아의 입장이었다.

■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표기에 달렸다

[출처: 위키디피아][출처: 위키디피아]

보스포루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튀르키예의 해협이다. 길이는 30 km,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이다. 1936년에 체결한 몽트뢰 조약은 튀르키예 전쟁 때 군함이 다르다넬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튀르키예 정부에 몽트뢰 조약을 발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에르도안 튀르키에 대통령도 지난 3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겨냥해 "교전국 군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법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규정될 경우 러시아 선박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공식 문서에 '전쟁'이란 표현이 담기지 않도록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 외교전은 통했나? 이스탄불 최종 선언에 담긴 표현은?

현지시간 19일 채택된 이스탄불 선언 최종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We are gravely concerned about the on-going military conflict in Ukraine"(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군사적 충돌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종 문건에는 '전쟁'도 '위기'도 아닌 '군사적 충돌'로 표기됐다. ICAPP 핵심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각국 대표단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문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가 러시아 내 인권 문제와 관련해 검토한 초안에도 "ongoing military invasion in Ukraine(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군사적 침공)" 이란 표현이 담겼다. 위원회의 위원인 서창록 고려대 교수는 "내부적으로 토론 끝에 ongoing armed conflict in Ukraine(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무력 충돌)로 최종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론'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회의장에서 만난 각국 정당 대표들도 이 전쟁이 겨울을 넘겨 계속된다면 내년 전세계가 경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사적 충돌'로 기록된 전쟁, 지금까지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고 폴란드에 미사일까지 떨어지며 확산 위기로 번지고 있다. 우려는 우려로만 끝나선 안된다.


*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아시아 정당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공동 번영을 달성하자는 목표로 설립된 정당 모임. 유라시아 지역 53개국 360여 개 정당이 가입돼 있다.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이 공동의장을 맡게 됐고, 사무총장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11차 총회에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의힘 하태경·강민국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조정식·윤관석·강훈식 의원이 참석했다.


대문사진·그래픽: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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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우크라이나 ‘전쟁’ vs ‘위기’…이스탄불 선언문 막전막후 ‘외교전’
    • 입력 2022-11-20 15:58:15
    • 수정2022-11-20 19: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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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em>"민간인이 희생된다면 어떠한 테러도,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em></strong>

"저 아이는 겨우 9살이었습니다. 이번 폭발로 희생됐습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관광 명소 이스티크랄 거리 한편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소. 한 시민이 흑백 사진을 가리키며 이번 폭발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희생자의 이름은 '메렉 에크린'(MELEK ECRIN), 주말에 번화가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가족은 지난 13일 발생한 폭발로 한순간에 해체됐다. 아빠와 어린 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엄마는 치명상을 입은 채 병원에 옮겨졌다. 또 다른 희생자인 아르주 오즈소이는 15살이었다. 학사모를 쓴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꽃과 터키 국기 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튀르키예 시민들은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를 읊조리며 희생자들을 위해 애도를 표했다.

이스티크랄에서의 폭발로 발생한 사상자는 87명(현지시간 19일 기준), 이 가운데 6명이 사망했다. 튀르키예 경찰은 쿠르시리아인 여성 용의자 아할람 알바셔(Ahlam Albashir)를 포함해 46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 폭발의 배후에 쿠르드노동자당(PKK)가 있다고 밝혔다.
PKK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 조직으로 40년 이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튀르키예는 이들을 테러세력으로 규정짓고 있다.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모소 운영 마지막 날(현지시간 17일), 아시아정당국제회의 참석차 이스탄불을 방문한 각국의 정당 관계자들은 현장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PKK는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명백히 '테러'라고 규정한다. 민간인이 희생된 이상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철통 보안 속에 개최된 11차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에서도 각 국의 정당 참석자들은 이스탄불 폭발은 '테러'라며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폭발 참사가 발생한지 나흘 만에 행사가 개최된 만큼 행사가 그대로 진행될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모였지만 행사 주최측인 튀르키예측의 개최 의지는 확고했고 참석자들도 예정대로 이스탄불에 모였다.

ICAPP 관계자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리는 것은 혼돈(Chaos)이다. 우리가 위축되지 않고 연대(Solidarity)로 맞선다면 그 자체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류는 19일 채택된 이스탄불 선언에서 "테러리즘과 같은 심각한 안전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을 우려한다" 라는 내용으로 반영됐다.

■ '전쟁'이냐 '위기'냐, 선언문 채택을 놓고 신경전


선언문 채택 전 최대 난관은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ICAPP 회원국 대부분은 선언문에 '우크라이나 전쟁'(Ukraine War)으로 표기하길 원했지만, 러시아 정당 대표들은 '우크라이나 위기'(Ukraine Crisis)라고 주장했다. 이스탄불 선언 채택에 앞서 전날(현지시간 18일) 밤에 열린 초안 회의(Draft Meeting)에서는 양측 간 미묘한 신경전이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정상국제회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안드레이 클리모프 러시아 상원 국제위원회 부위원장"모든 전쟁은 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위기'라고 표기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당대표들은 유라시아 회원국 자격으로 이번 아시아정당국제회의에 참석했다.
다음은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과 나눈 일문 일답.

질문: 이스탄불 선언에 표기될 문구는 우크라이나 '전쟁'입니까, 아니면 '위기'입니까?
안드레이: 이 세상에서 벌어진,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모든 전쟁은 위기입니다. 국제 원유와 곡물 가격이 상승했고, 원자재 수급도 불안합니다. 이런 현상이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질문: 위기라고 말씀하시면서 러시아가 외교적 해결 방안 대신 '군사적 점령'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드레이: 러시아는 8년을 기다렸습니다. 자그만치 8년이요. 8년 동안 외교적 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성공하지 못했죠. 이건 부득이한 조칩니다.

질문: 그렇다면 크렘린궁은 전쟁 종식을 위해 협상할 의지가 있습니까?
안드레이: 우리는 협상을 제안해 왔습니다.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죠.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NATO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왜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를요.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은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러시아가 8년을 기다려왔다는 발언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 끝에 2014년 축출된 사건을 의미한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갔다며 정부군에 맞서 분리주의 반군 세력을 지원해 왔다. 이런 노력이 통하지 않자 2021년 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러시아군 병력을 증강하기 시작했다.

최근 크렘린궁에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종전 회담을 공개 협상하자고 역제안한데 대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우크라이나 측이 역제안한 것은 협상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안드레이 클리모프 부위원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협상론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쪽도 압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전방위로 협상론을 거론하며 출구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열린 아시아정상국제회의장은 그야말로 외교전을 방불케 했다.

ICAPP 핵심 관계자는 "러시아측 대표단이 각국 대표단을 전방위로 접촉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마치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 회의에 참석한 것 같다 "고 귀띔했다. 러시아가 이렇게 표현 하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전쟁으로 표기되는 순간 국제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게 러시아의 입장이었다.

■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표기에 달렸다

[출처: 위키디피아]
보스포루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튀르키예의 해협이다. 길이는 30 km,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이다. 1936년에 체결한 몽트뢰 조약은 튀르키예 전쟁 때 군함이 다르다넬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튀르키예 정부에 몽트뢰 조약을 발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에르도안 튀르키에 대통령도 지난 3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겨냥해 "교전국 군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법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규정될 경우 러시아 선박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공식 문서에 '전쟁'이란 표현이 담기지 않도록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 외교전은 통했나? 이스탄불 최종 선언에 담긴 표현은?

현지시간 19일 채택된 이스탄불 선언 최종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We are gravely concerned about the on-going military conflict in Ukraine"(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군사적 충돌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종 문건에는 '전쟁'도 '위기'도 아닌 '군사적 충돌'로 표기됐다. ICAPP 핵심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각국 대표단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문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가 러시아 내 인권 문제와 관련해 검토한 초안에도 "ongoing military invasion in Ukraine(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군사적 침공)" 이란 표현이 담겼다. 위원회의 위원인 서창록 고려대 교수는 "내부적으로 토론 끝에 ongoing armed conflict in Ukraine(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무력 충돌)로 최종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론'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회의장에서 만난 각국 정당 대표들도 이 전쟁이 겨울을 넘겨 계속된다면 내년 전세계가 경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사적 충돌'로 기록된 전쟁, 지금까지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고 폴란드에 미사일까지 떨어지며 확산 위기로 번지고 있다. 우려는 우려로만 끝나선 안된다.


*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아시아 정당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공동 번영을 달성하자는 목표로 설립된 정당 모임. 유라시아 지역 53개국 360여 개 정당이 가입돼 있다.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이 공동의장을 맡게 됐고, 사무총장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11차 총회에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의힘 하태경·강민국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조정식·윤관석·강훈식 의원이 참석했다.


대문사진·그래픽: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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