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아동사망]③ “해마다 170명씩”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통계의 4배

입력 2022.11.22 (08:40) 수정 2022.11.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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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개월 정인이 사건, 11살 아이 쇠사슬 탈출 사건, 9살 아이 가방 사망 사건… 온 사회가 공분한 아동학대 사건들입니다. 아이들의 비극이 드러날 때마다 모두가 분노하며 대책을 촉구하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시사멘터리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동 변사사건을 토대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수상한 죽음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최초로 추적해 비극을 막을 대책을 찾아봤습니다.

세 번째 순서는 국과수 조사 결과 드러난 아동학대 사망의 실체입니다. 3층에서 던져졌다가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가 가해자인 엄마에게 돌아간 뒤 숨진 사건, 심리적‧경제적 스트레스가 커진 친부가 5개월 딸을 떨어뜨려 숨지게 하고도 수 개월간 감춘 사건은 은폐되기 쉬운 아동학대의 전형이었습니다. 국과수는 아동학대 관련으로 해마다 170명씩 숨지고, 이 중 80%는 살릴 수 있었다고 추정했습니다.


글 싣는 순서
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338
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549
③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4배
④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들…아동 사망 줄일 대책은?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 죽지 않을 수 있던 아기들…숨지고도 드러나기 힘든 아동학대 사건들의 실체

태어나자마자 빌라 3층에서 던져졌지만, 쓰레기더미에 떨어져 살아난 아기. 지능이 낮아 임신조차 몰랐던 엄마가 집에서 출산한 뒤 가족에게 숨기려 저지른 범행이었다. 아기는 위탁가정에서 한 달간 무럭무럭 자랐고 장기위탁도 가능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친권자인 엄마가 양육을 원한다는 이유로 아기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엄마에게 간 지 열흘째, 아기는 끝내 숨졌지만, 사망 경위와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은 종결됐고, 7년이 지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비슷한 시기, 5개월 아기도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를 마치고 갑자기 뇌사에 빠져 치료 끝에 숨졌지만, 경찰 수사는 수개월 간 난항을 겪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를 앞두고서야 아기 아빠는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커진 상태에서 아기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병원 이송조차 늦춘 것을 시인했다. 두 사건 모두 아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져도 은폐되기 쉽다는 아동학대 사건의 전형을 드러냈다.

[연관 기사]
[추적/아동사망]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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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아동사망]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549

자료 화면 : 아기와 부모 재연 장면자료 화면 : 아기와 부모 재연 장면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상당수가 집에서 일어나 목격자나 CCTV 같은 증거가 거의 없는 데다, 아이가 어릴수록 피해가 심각하고 스스로 피해를 알리기 힘든 탓이다.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아동학대는 과소 추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예요. 집에서 일어나서 목격자나 CCTV 같은 증거가 없고, 양육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한해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2019년 42명, 2020년 43명, 지난해는 40명이다. 이조차 수사로 범죄 혐의가 입증된 사건들일 뿐이다. 빌라에서 추락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가 엄마에게 되돌아가 숨진 아기의 사건처럼, 수사로 밝히지 못했지만, 학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은 곳곳에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은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 사망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추정해보기 위해 숨진 아이들의 부검 자료를 토대로 아동학대와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과연 이렇게 아동학대 사망이 적었을까? 그런 문제점에서 출발해 연구했어요. 아동학대 사망으로 처벌한 사건만으로는 본질을 이해하기 부족하다고 봤죠. 학대가 의심되는 사망까지 모두 살펴봐야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최대 4배!

0~18세까지 해마다 숨지는 아이들은 2천 명 안팎, 범죄 혐의가 드러난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일반 변사로 종결돼 실체를 들여다보기 힘들다. 이 가운데 15%가량은 수사기관이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다. 2016년 국과수가 부검한 아동 변사는 341건, 국과수 심리분석실은 이 아이들의 기록부터 분석했다. 아동 사망에 대한 최초의 심층 전수 분석이었다.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국가기관에 있는 사망 아동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층 분석한 건 우리 연구팀이 처음이에요. 2016년에 숨진 0~18세는 2천 3백여 명인데, 그중 15%가 수상한 사건으로 인지돼 국과수에 부검 의뢰가 됐어요. 이 15%만이라도 꼼꼼하게 보기로 한 거죠."

김희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장
"아동사망과 학대와의 연관성을 분석했습니다. 부검 자료, 피해자의 나이와 증상, 가해자로 추정되는 보호자의 특성과 경제적 요인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서 학대와의 관련성이 얼마나 되는지 기계학습을 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16년 부검한 아이들 341명 가운데 148명이 학대와 관련된 사망으로 나타났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나 의료 기록, 수사 및 부검 자료를 통해 아동학대 사망이 확실한 경우가 84명, 서류상 확실한 증거는 부족하지만 의심스러운 요인이 있어 학대가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가 13명, 사건기록 등에서 위험요인이 확인된 경우가 51명이었다. 같은 해 공식 통계로 확인된 아동학대 사망자는 36명, 국과수의 추정치는 이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 더 많았다.

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2016년에 부검한 아동 중 3분의 1 이상이 학대가 한 가지 요인이라도 의심된다고 나타났습니다. 직접적으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요인 말고도 방임, 부주의 등 어른의 의무를 간과해 벌어진 사망이 있다고 본 거죠. 이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들처럼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사망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연구 기간을 확대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국과수가 부검한 아동 변사 사건 천여 건을 분석했더니 아동학대와 관련된 죽음은 최대 391명이었다. 같은 기간 공식 통계에 나타난 아동학대 사망자는 90명,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분석 대상을 점차 늘려 2021년 자료까지 연구한 결과, 해마다 140~170명의 아이가 학대와 관련해 숨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 출처: KCSI 매거진 2021년 5월호 ‘은밀한 살인, 아동학대 위험성 평가 개발’자료 출처: KCSI 매거진 2021년 5월호 ‘은밀한 살인, 아동학대 위험성 평가 개발’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아동 부검자료 6~7년 치를 계속 조사했더니 한해 아동학대 관련으로 몇 명 정도 숨지는지 비슷하게 나타났어요. 매우 심각하고 잔혹하고 지속적인 학대부터 굉장히 약한 수준의 학대까지 해마다 140명에서 170명씩 아이들이 꾸준히 숨지고 있었어요."

어떤 아이들이 어떻게 숨졌을까? 2016년 학대와 관련해 숨진 아이들은 148명, 절반 정도인 47.2%가 생후 1년도 안 된 영아들이었다. 추정되는 가해자의 86.2%는 친부모였다.

아이들은 신체 학대뿐만 아니라, 방임과 부주의에도 취약했다. 사망 유형을 피해 정도에 따라 여섯 가지로 분류했더니, 지속적으로 심각한 학대를 당했거나 신체 공격으로 숨진 경우는 각각 8%대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질식이나 온도 이상 등으로 인한 영유아 살해는 27%, 의심스러운 영아 급사증후군 등 학대 관련 사망은 45.3%로 가장 많았다.

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사망 유형마다 전형성이 있었어요. 영유아가 두부외상으로 숨진 사건을 모으니 60~70%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빠와 있다가 벌어졌어요. 엄마가 나중에 아이가 숨진 것을 발견하자 아버지가 ‘모르겠다’고 하는 게 판화처럼 겹치더라고요. 부모들은 25세 이하였고 정서적, 사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거나 육체적으로 피곤했고요.”

"방임에 의한 사망도 전형성이 있었어요. 엄마의 나이가 어리거나 지능이 낮아서 스스로도 잘 관리하지 못했고 아빠도 육아에 무관심했어요. 아이의 몸에 기저귀 발진이 광범위하게 있거나 집안이 매우 비위생적이고 실내 온도가 안 맞아서 너무 춥거나 너무 뜨겁고, 총체적으로 난국인 경우가 많았어요."

■ "아동학대 사망, 80%는 제대로 도와주면 예방 가능…아이 100명 구할 수 있다"

국과수 연구진은 아동학대와 관련된 사망에 가학성이 있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상당수가 사각지대에 놓였던 ‘위기가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이들 가정의 위험 요인을 파악해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동학대 사망의 80%는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 백여 명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특히 영아가 숨진 경우 부모의 육아 스트레스, 아기가 울 때 대처하는 방법, 경제적 상황이나 부부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아이의 사망과 관련 있었어요. 필요한 도움을 못 받고 고립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어요."

정규희/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이 사람들이 다 악마라서 자기 자식을 숨지게 한 게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때로는 악하게 만들고 특히 약한 사람들이 더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직, 어린 나이, 낮은 사회적 지지. 가해자로 추정된 부모들의 공통점이에요. 이런 위기가정을 제때 도와줬다면 아이들의 죽음을 막았을 것 같아요. 아동학대 사망의 80%가 이런 경우였어요. 한해에 아이 백 명은 살릴 수 있다는 얘기예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진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진

■ 연구 성과 컸지만…국과수 개별 연구의 한계, "아동 사망 전수 조사 제도 필요"

숨진 아이들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 성과도 컸지만, 한계도 컸다. 국내에는 아동 사망 전수 조사와 관련한 제도가 없어 정부 차원의 연구가 아닌, 국과수 심리분석실의 별도 연구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연구 범위도 국과수의 한해 부검 사례 3백여 건으로만 제한되고, 전체 아동 사망 2천여 건에 대한 심층 조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과수 연구진도 2명뿐, 이마저 다른 업무와 병행 하고 있어 연구 진행도 더디다.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아동 사망을 막을 예방 방안을 만드는 게 목표이지만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실질적으로 1~2명이 연구를 진행하는 상황이라 논문 게재도 하고 출간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의 감정 의뢰도 병행해야 하고요. 저희가 분석한 데이터와 지자체마다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들을 비교해 학대의 위험성을 예측해서 사망을 막도록 도움을 주는 게 목표죠."

우리와 달리, 미국은 40여 년 전부터 아동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숨지는 아이들의 사례를 전수 조사하는 '아동 사망 검토'(Child Death Review)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 정부가 관련 법을 만들었는데, 의료인과 법조인, 수사기관, 아동 복지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0~18살까지 숨지는 모든 아이의 사망 사례를 상세히 조사해 주기적으로 예방안을 만든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덕분이다.

정규희/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숨진 아이들의 기록을 안 봐서 그렇지,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이때 도와줬더라면 하는 지점이 다 보여요. '죽은 사람의 자료는 산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숨진 아이들의 자료가 다른 아기들을 살릴 수 있겠더라고요. 모든 연구자는 그렇게 결론 내려요. 아이들의 사망은 전부 살펴봐야 한다고요. 이미 영미권에서는 의심되는 사망이 아니라도 모든 아동의 사망은 다 보자는 흐름으로 가고 있어요."

"이게 애초에 국가의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은 처벌해야 하고, 어떤 건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고, 어떤 경우는 부모가 몰라서, 어떤 경우는 능력이 안 돼서 일어난 게 있더라고요. 아이들의 죽음을 직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숨졌는지 봄으로써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 다음 기사에서는 아동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이 40여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아동 사망 검토' 제도와 우리의 해법은 무엇일지를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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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적/아동사망]③ “해마다 170명씩”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통계의 4배
    • 입력 2022-11-22 08:40:15
    • 수정2022-11-22 08:46:36
    취재K
16개월 정인이 사건, 11살 아이 쇠사슬 탈출 사건, 9살 아이 가방 사망 사건… 온 사회가 공분한 아동학대 사건들입니다. 아이들의 비극이 드러날 때마다 모두가 분노하며 대책을 촉구하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br /> <br />KBS 시사멘터리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동 변사사건을 토대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수상한 죽음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최초로 추적해 비극을 막을 대책을 찾아봤습니다.<br /> <br />세 번째 순서는 국과수 조사 결과 드러난 아동학대 사망의 실체입니다. 3층에서 던져졌다가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가 가해자인 엄마에게 돌아간 뒤 숨진 사건, 심리적‧경제적 스트레스가 커진 친부가 5개월 딸을 떨어뜨려 숨지게 하고도 수 개월간 감춘 사건은 은폐되기 쉬운 아동학대의 전형이었습니다. 국과수는 아동학대 관련으로 해마다 170명씩 숨지고, 이 중 80%는 살릴 수 있었다고 추정했습니다.<br />

글 싣는 순서
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338
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549
③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4배
④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들…아동 사망 줄일 대책은?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 죽지 않을 수 있던 아기들…숨지고도 드러나기 힘든 아동학대 사건들의 실체

태어나자마자 빌라 3층에서 던져졌지만, 쓰레기더미에 떨어져 살아난 아기. 지능이 낮아 임신조차 몰랐던 엄마가 집에서 출산한 뒤 가족에게 숨기려 저지른 범행이었다. 아기는 위탁가정에서 한 달간 무럭무럭 자랐고 장기위탁도 가능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친권자인 엄마가 양육을 원한다는 이유로 아기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엄마에게 간 지 열흘째, 아기는 끝내 숨졌지만, 사망 경위와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은 종결됐고, 7년이 지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비슷한 시기, 5개월 아기도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를 마치고 갑자기 뇌사에 빠져 치료 끝에 숨졌지만, 경찰 수사는 수개월 간 난항을 겪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를 앞두고서야 아기 아빠는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커진 상태에서 아기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병원 이송조차 늦춘 것을 시인했다. 두 사건 모두 아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져도 은폐되기 쉽다는 아동학대 사건의 전형을 드러냈다.

[연관 기사]
[추적/아동사망]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338
[추적/아동사망]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549

자료 화면 : 아기와 부모 재연 장면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상당수가 집에서 일어나 목격자나 CCTV 같은 증거가 거의 없는 데다, 아이가 어릴수록 피해가 심각하고 스스로 피해를 알리기 힘든 탓이다.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아동학대는 과소 추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예요. 집에서 일어나서 목격자나 CCTV 같은 증거가 없고, 양육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한해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2019년 42명, 2020년 43명, 지난해는 40명이다. 이조차 수사로 범죄 혐의가 입증된 사건들일 뿐이다. 빌라에서 추락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가 엄마에게 되돌아가 숨진 아기의 사건처럼, 수사로 밝히지 못했지만, 학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은 곳곳에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은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 사망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추정해보기 위해 숨진 아이들의 부검 자료를 토대로 아동학대와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과연 이렇게 아동학대 사망이 적었을까? 그런 문제점에서 출발해 연구했어요. 아동학대 사망으로 처벌한 사건만으로는 본질을 이해하기 부족하다고 봤죠. 학대가 의심되는 사망까지 모두 살펴봐야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최대 4배!

0~18세까지 해마다 숨지는 아이들은 2천 명 안팎, 범죄 혐의가 드러난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일반 변사로 종결돼 실체를 들여다보기 힘들다. 이 가운데 15%가량은 수사기관이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다. 2016년 국과수가 부검한 아동 변사는 341건, 국과수 심리분석실은 이 아이들의 기록부터 분석했다. 아동 사망에 대한 최초의 심층 전수 분석이었다.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국가기관에 있는 사망 아동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층 분석한 건 우리 연구팀이 처음이에요. 2016년에 숨진 0~18세는 2천 3백여 명인데, 그중 15%가 수상한 사건으로 인지돼 국과수에 부검 의뢰가 됐어요. 이 15%만이라도 꼼꼼하게 보기로 한 거죠."

김희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장
"아동사망과 학대와의 연관성을 분석했습니다. 부검 자료, 피해자의 나이와 증상, 가해자로 추정되는 보호자의 특성과 경제적 요인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서 학대와의 관련성이 얼마나 되는지 기계학습을 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16년 부검한 아이들 341명 가운데 148명이 학대와 관련된 사망으로 나타났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나 의료 기록, 수사 및 부검 자료를 통해 아동학대 사망이 확실한 경우가 84명, 서류상 확실한 증거는 부족하지만 의심스러운 요인이 있어 학대가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가 13명, 사건기록 등에서 위험요인이 확인된 경우가 51명이었다. 같은 해 공식 통계로 확인된 아동학대 사망자는 36명, 국과수의 추정치는 이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 더 많았다.

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2016년에 부검한 아동 중 3분의 1 이상이 학대가 한 가지 요인이라도 의심된다고 나타났습니다. 직접적으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요인 말고도 방임, 부주의 등 어른의 의무를 간과해 벌어진 사망이 있다고 본 거죠. 이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들처럼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사망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연구 기간을 확대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국과수가 부검한 아동 변사 사건 천여 건을 분석했더니 아동학대와 관련된 죽음은 최대 391명이었다. 같은 기간 공식 통계에 나타난 아동학대 사망자는 90명,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분석 대상을 점차 늘려 2021년 자료까지 연구한 결과, 해마다 140~170명의 아이가 학대와 관련해 숨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 출처: KCSI 매거진 2021년 5월호 ‘은밀한 살인, 아동학대 위험성 평가 개발’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아동 부검자료 6~7년 치를 계속 조사했더니 한해 아동학대 관련으로 몇 명 정도 숨지는지 비슷하게 나타났어요. 매우 심각하고 잔혹하고 지속적인 학대부터 굉장히 약한 수준의 학대까지 해마다 140명에서 170명씩 아이들이 꾸준히 숨지고 있었어요."

어떤 아이들이 어떻게 숨졌을까? 2016년 학대와 관련해 숨진 아이들은 148명, 절반 정도인 47.2%가 생후 1년도 안 된 영아들이었다. 추정되는 가해자의 86.2%는 친부모였다.

아이들은 신체 학대뿐만 아니라, 방임과 부주의에도 취약했다. 사망 유형을 피해 정도에 따라 여섯 가지로 분류했더니, 지속적으로 심각한 학대를 당했거나 신체 공격으로 숨진 경우는 각각 8%대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질식이나 온도 이상 등으로 인한 영유아 살해는 27%, 의심스러운 영아 급사증후군 등 학대 관련 사망은 45.3%로 가장 많았다.

논문 출처: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사망 유형마다 전형성이 있었어요. 영유아가 두부외상으로 숨진 사건을 모으니 60~70%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빠와 있다가 벌어졌어요. 엄마가 나중에 아이가 숨진 것을 발견하자 아버지가 ‘모르겠다’고 하는 게 판화처럼 겹치더라고요. 부모들은 25세 이하였고 정서적, 사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거나 육체적으로 피곤했고요.”

"방임에 의한 사망도 전형성이 있었어요. 엄마의 나이가 어리거나 지능이 낮아서 스스로도 잘 관리하지 못했고 아빠도 육아에 무관심했어요. 아이의 몸에 기저귀 발진이 광범위하게 있거나 집안이 매우 비위생적이고 실내 온도가 안 맞아서 너무 춥거나 너무 뜨겁고, 총체적으로 난국인 경우가 많았어요."

■ "아동학대 사망, 80%는 제대로 도와주면 예방 가능…아이 100명 구할 수 있다"

국과수 연구진은 아동학대와 관련된 사망에 가학성이 있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상당수가 사각지대에 놓였던 ‘위기가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이들 가정의 위험 요인을 파악해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동학대 사망의 80%는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 백여 명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특히 영아가 숨진 경우 부모의 육아 스트레스, 아기가 울 때 대처하는 방법, 경제적 상황이나 부부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아이의 사망과 관련 있었어요. 필요한 도움을 못 받고 고립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어요."

정규희/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이 사람들이 다 악마라서 자기 자식을 숨지게 한 게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때로는 악하게 만들고 특히 약한 사람들이 더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직, 어린 나이, 낮은 사회적 지지. 가해자로 추정된 부모들의 공통점이에요. 이런 위기가정을 제때 도와줬다면 아이들의 죽음을 막았을 것 같아요. 아동학대 사망의 80%가 이런 경우였어요. 한해에 아이 백 명은 살릴 수 있다는 얘기예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진
■ 연구 성과 컸지만…국과수 개별 연구의 한계, "아동 사망 전수 조사 제도 필요"

숨진 아이들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 성과도 컸지만, 한계도 컸다. 국내에는 아동 사망 전수 조사와 관련한 제도가 없어 정부 차원의 연구가 아닌, 국과수 심리분석실의 별도 연구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연구 범위도 국과수의 한해 부검 사례 3백여 건으로만 제한되고, 전체 아동 사망 2천여 건에 대한 심층 조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과수 연구진도 2명뿐, 이마저 다른 업무와 병행 하고 있어 연구 진행도 더디다.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아동 사망을 막을 예방 방안을 만드는 게 목표이지만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실질적으로 1~2명이 연구를 진행하는 상황이라 논문 게재도 하고 출간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의 감정 의뢰도 병행해야 하고요. 저희가 분석한 데이터와 지자체마다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들을 비교해 학대의 위험성을 예측해서 사망을 막도록 도움을 주는 게 목표죠."

우리와 달리, 미국은 40여 년 전부터 아동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숨지는 아이들의 사례를 전수 조사하는 '아동 사망 검토'(Child Death Review)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 정부가 관련 법을 만들었는데, 의료인과 법조인, 수사기관, 아동 복지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0~18살까지 숨지는 모든 아이의 사망 사례를 상세히 조사해 주기적으로 예방안을 만든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덕분이다.

정규희/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숨진 아이들의 기록을 안 봐서 그렇지,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이때 도와줬더라면 하는 지점이 다 보여요. '죽은 사람의 자료는 산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숨진 아이들의 자료가 다른 아기들을 살릴 수 있겠더라고요. 모든 연구자는 그렇게 결론 내려요. 아이들의 사망은 전부 살펴봐야 한다고요. 이미 영미권에서는 의심되는 사망이 아니라도 모든 아동의 사망은 다 보자는 흐름으로 가고 있어요."

"이게 애초에 국가의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은 처벌해야 하고, 어떤 건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고, 어떤 경우는 부모가 몰라서, 어떤 경우는 능력이 안 돼서 일어난 게 있더라고요. 아이들의 죽음을 직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숨졌는지 봄으로써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 다음 기사에서는 아동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이 40여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아동 사망 검토' 제도와 우리의 해법은 무엇일지를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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