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 고향 ‘서울’ 이야기 실어
- 망우리 공동묘지, 박인환 방정환 유관순 혼 담겨 있어
- 용산 이전 관련 尹 대통령 ·인수위 연락 기다렸지만..
- 文 대통령 광화문 이전, 비용 논란으로 접어
- 청와대 개방 이후 직접 가 보진 않아.. 차기 대통령 대응 궁금해
- 문화유산 답사기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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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명 : 최경영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2022년 11월 22일 (화) 오전 7:20 – 8:57
■ 진행 : 최경영 기자 (KBS)
■ 출연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 최경영 : 오늘은 우리가 사는 서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이 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역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특별하신 분 모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으로 다시 돌아오신 분입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유홍준 : 안녕하세요.
▷ 최경영 : 제가 아까 온에어 되기 전에 말씀을 좀 나누다 보니까 93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 유홍준 : 첫 권이 나왔죠.
▷ 최경영 : 그때 제가 대학 때였는데 기자 생활한 지 26년 됐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29년, 30년 됐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서울편이 두 권으로 나왔습니까?
▶ 유홍준 : 서울편 앞에 경복궁에서부터 종묘로 해서 조선시대 이야기들이 두 권을 냈어요. 또 한양 정도 600년으로 그걸로 서울 답사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북촌, 서촌, 인사동, 성북동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게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증언이 있을 필요가 있다.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런 생각에서 써서 사실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서 이번 책은 안 써도 내가 불성실하다 소리는 안 들을 텐데.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 대신에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100년 후에 가서는 하나의 증언이 될 테니까 그동안 조사하고 또 살면서 느낀 것을 녹여서 썼죠.
▷ 최경영 : 이게 첫 출간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93년인데 인문학 최초로 100만 부 달성했고 누적 판매 부수가 500만 부.
▶ 유홍준 : 난 모르는데 하여튼 출판사에서 500만 부래요.
▷ 최경영 : 아니, 모르실 수가 없는 게 인세가 엄청 들어왔을 것 같기 때문에.
▶ 유홍준 : 한 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끊어서 들어오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내가 뭐 맨날 덧셈할 수도 없고.
▷ 최경영 : 인세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 유홍준 : 인세보다도 광주비엔날레 내가 커미셔너였는데 미국인 커미셔너가, 내가 그때 참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한테 내가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한국에 인구가 몇 명인데. 5,000만 명.
▷ 최경영 : 5,000만 명.
▶ 유홍준 : 5,000만 명이 어떻게 밀리언스가 나올 수 있냐. 영어로 뭐 10억이고 인구를 대상으로 쓰면 몰라도.
▷ 최경영 : 거기는 3억 2,000만 명이니까.
▶ 유홍준 : 거기에 또 외국의 영어 사용권 다 합치니까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확실히 우리 국민들이 민도가 높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거가 있고 그다음에는 시대의 요구인데 이런 책이 나오기를 세상이 기다렸던 거 아닌가 싶어요.
▷ 최경영 : 30년 동안에 답사기를 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쓴 거 아니에요?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이런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계속 쓸 거라고는 예상은 처음에는.
▶ 유홍준 : 아니, 처음에 3권 쓰고 그만 쓰려고 이제 그만 쓰겠다. 나도 충전을 하고 내 본업에 충실해서 미술사 책을 쓴다 그러고서는 갔죠. 갔다가 또 문화재청장까지 지내고.
▷ 최경영 : 그랬잖아요.
▶ 유홍준 :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데 빠진 지역의 요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를테면 제주도, 충청북도 이런 데는 하나도 안 썼거든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그걸 쓰다 보니까 내 고향 서울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서 지난 5년 전에 두 권 내고 이번에 두 권 내서 서울편이 4권으로 완권 했습니다.
▷ 최경영 : 원래 내 고향 서울 이야기, 지금 고향이 서울이시죠?
▶ 유홍준 : 그렇죠. 서울 청운국민학교 나오고.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
▶ 유홍준 : 중, 고, 대학교를 다 종로구 창성동 130번지에서 다녔어요.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면 이제 서촌 바로 너머죠?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서촌은 지금 많이 변했죠?
▶ 유홍준 : 변했어도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서촌에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있었던 양반가들이 일제강점기 되면서 다 분할돼가지고 사람들이 사는데 1930년 넘어가면 일제강점기예요. 한양 도성 안의 인구가 12만 명이었는데.
▷ 최경영 : 12만 명.
▶ 유홍준 : 12만 명, 도성 안에. 그런데 그때 일본인 숫자가 3만 명이 넘었어요. 그리고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여기 오면 뜯어 먹을 게 많으니까. 그래서 주택난이 일어나요. 그래가지고 총독부에서 했던 조치가 도성 바깥으로 택지를 분양하는데 제일 좋았던, 그들이 했던 성공한 정책이 미아리, 이태원, 노고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시키고 그 자리를 택지로 개발한 거였어요.
▷ 최경영 : 그랬군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그렇게.
▶ 유홍준 : 1934년에 개장돼요, 망우리가. 그리고 사람들이 일본 사람하고 이렇게 섞여 살기 싫어하잖아요.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도심으로 오려 그랬잖아요. 이때 북촌에는 정세권이라고 하는 주택업자.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죠. 건축왕이에요. 이분이 도시형 개량 한옥을 만들어요. 설계를 해서 그것도 신문에 공고를 내서 입찰해가지고 한옥이 터가 넓잖아요. 이거를 30평 단위에서 근대식 삶으로써 적합한 것을 만든 게 가회동 31번지예요. 그리고 익선동하고. 그래서 거기는 집과 집이 완전히 붙었잖아요, 담장 없이. 이래서 도시형 한옥을 보급을 한 것이 북촌의 전설을 낳은 거고 서촌만 해도 적산가옥이 많아요.
▷ 최경영 : 그렇군요.
▶ 유홍준 : 나도 창성동 130번지가 적산가옥 2층집이었어요. 일본인이 살던 다다미방 있는.
▷ 최경영 : 그런데 아까 지금 도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도성은 어느 정도의 울타리입니까?
▶ 유홍준 : 18.2km죠. 사대문 안.
▷ 최경영 : 사대문 안이군요. 그러면 우리 지금 25개 구는 대부분 도성 안에 없는 거네요.
▶ 유홍준 : 그렇죠. 거기 종로구하고 중구뿐이 없죠.
▷ 최경영 : 종로구하고 중구 정도가 지금의 옛날 도성이었고 나머지는 다.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그러니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까, 그렇게 되면?
▶ 유홍준 : 양반도 바깥에 살기는 하는데 성북동의 경우는 거기가 본래 그린벨트였습니다. 한양 도성을 쌓을 적에 성저십리라고 해서 성 바깥의 십리는 자연 그대로 놔뒀어요. 그랬다가 농지가 부족하니까 답십리 쪽에서부터 농지로 들어오고 그 뒤는 대개 산이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랬다가 성북동이 30년대부터 택지로 개발하는데 거기는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김용준의 노시산방 전부 문인들이 거기 와서 살았어요. 그래서 성북동은 우리 근대문학의 산실입니다.
▷ 최경영 :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지금은 재벌분들이 많아요.
▶ 유홍준 : 성북동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재벌들 사는 데는 70년에 삼청터널이 북아터널로 개통되면서 거기에 택지가 개발된 게 지금 얘기하는 꿩의 바다 쪽에 있는 대사관하고 재벌들 집이고 가운데 성북천을 따라서 났던 본래의 주거지는 내가 얘기했던 근대 문학인들의 거리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성 밑에 있는 북정동이라는 데는 우리나라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예요. 여기가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 치고 살았던 곳이에요.
▷ 최경영 : 택시기사분들이 자주 가는 돼지.
▶ 유홍준 : 쌍다리.
▷ 최경영 : 쌍다리.
▶ 유홍준 : 쌍다리 돼지갈비. 거기가 성북동의 다운타운이고 바로 그 옆이 수연산방이에요. 그 쌍다리에 다리 하나는 없어졌죠.
▷ 최경영 : 그렇게 되는 거군요, 이게. 직접 이렇게 다 답사를 지금도 다니시면 체력적으로도 좀 힘드시지 않습니까?
▶ 유홍준 : 즐겁게 다니죠. 그리고 내가 안 가서 못 다 가서 못 쓴 거는 없는데 우리 국토가 얼마나 넓은데 이 12권 가지고 되겠어요? 그 대신에 내가 이 책을 시리즈는 이제 곧 끝내고 싶은데 끝내기 전에 그래도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서 이게 빠졌으면 안 되겠다 싶은 것을 좀 추려서 국토박물관 순례라고 해서 한두 권 더 쓰고 이제 내년이나 내후년에 피어리어드 찍으려고 합니다.
▷ 최경영 : 이번에 서울 여행 추천도 좀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유산 답사기기 때문에. 핫플레이스 같은 거, 젊은이들에게.
▶ 유홍준 : 이 책 이후라 그럴까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핫플이 됐죠. 망우리 공동묘지가 아니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다시 설명하면 주변에 있는 미아리 공동묘지까지 합쳐서 만들었잖아요. 50만 평에다가 거기 이제 해서 들어온 게 공동묘지는 보장 기간이 있는데 38년입니다. 40년이 안 돼요. 40년 되면 자기가 파가든지 화장하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74년에 만장이 됐어요, 끝났어요. 그다음부터는 화장하고 이장만 허가하고 들어오질 못하고 하니까 지금 현재는 7,000개만 남았어요. 앞으로 더 빠질 거죠. 그런 중에 중요한 역사 인물의 무덤은 망우리 중랑구에서, 지금은 중랑구에서 보존, 관리하는데 거기에 목마 숙녀의 박인환, 이중섭, 화가 이인성, 권진교,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거기에다가 설산 장수, 죽산 조봉암 무덤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그 길을 한 바퀴를 돌면 공동묘지가 아니고 그냥 우리 자연 야산이에요. 야산으로 환원된 곳곳에 역사 인물들. 거기 차중락 묘소도 있고 또 지석영 선생도 있는 중에 슬픈 게 유관순 열사의 혼이 거기에 있습니다.
▷ 최경영 : 그러니까요.
▶ 유홍준 : 이태원에 있었는데 이태원을 망우리로 옮기면서 연고 있는 사람 찾아가라고 했는데 유관순 열사는 자식이 있을 리 없죠. 부모님은 아우내장터 때 돌아가셨죠. 그러니까 2만 8,000개의 무연고 묘가 한꺼번에 화장된 속에 한 줌의 재로 해서 망우리에 와 있어요. 슬퍼요.
▷ 최경영 : 참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그 말씀은 뭐 전 국민이 지금 다 알고 있는데 다시 느끼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게.
▶ 유홍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아주 멋있는 공개 컴피티션을 해서 비지팅하우스를 참 예쁘게 지었어요. 그래서 쓸쓸할 것 같은 공동묘지가 또 옛날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안 갔잖아요. 그런데 그게 서울 근교에 아름다운 야산에 역사문화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리로 치면 쇼팽의 무덤이 있고 뻬르 라쉐즈 같은 그런 분위기로 이해하시면 좋고 늦가을에 한번 산보 가보세요.
▷ 최경영 :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서울 하면 또 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번에 사실 대통령실 이전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 경복궁 옆에 청와대가 있고 이랬는데 그전에 보면 사람이 자고 이렇게 하기에는, 이 책에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좀 음습한 곳이다, 청와대가.
▶ 유홍준 : 그게 정확히 얘기하면 관저가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양택으로 좋으냐 어쩌냐 하는 얘기가 있는 거고 청와대 그 자리 자체야 참 천하제일 복지죠. 그 히스토리를 얘기하면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만들었을 때 그 뒤는 아까 얘기한 성저십리로 자연 녹지였어요. 군사보호지역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숙정문으로 해서 나가는 데는 민간인 들어가지도 못했잖아요. 북쪽으로 가는 길은 저쪽 창의문 쪽으로 했는데 거기도 문 닫아놓고. 그리고 거기에 오직 시설이라고 하면 회맹단이라고 하는 단이 하나 있는데 공신들, 역대 계급 공신에서 스물네 분의 공신 수여가 있었어요. 그 공신들이 국가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임을 할 때는 그 자리에서 했어요. 그게 유명한 회맹단이에요. 그거 외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칠궁이 들어왔죠. 바로 옆으로 육상공을 비롯해서 칠공은 후궁 중에서 후궁은 이제 임금이 죽으면 밖으로 나가야 돼요. 그랬는데 후궁 중에서 왕을 낳은 후궁이 일곱 분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장희빈을 비롯해가지고.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보호를 하죠.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때 그 뒤에다가 과거시험을 보는 육문당, 육무당이라는 멋진 한옥과 경무대라고 하는 뜰을 만들었어요. 그때 경무대라는 말이 나와요.
▷ 최경영 : 그게 경무대군요.
▶ 유홍준 : 그래서 거기에서 과거시험을 치렀어요. 그게 그 당시, 나중에는 거기 이서 과거시험 치르면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집들 한옥의 구조와 모든 거는 다 흑백 사진으로 잘 남아 있죠.
▷ 최경영 : 근 현대사라고.
▶ 유홍준 : 들어가는 거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그랬다가 1934년에 총독 관저가 들어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총독부가 경복궁으로 들어오니까 용산에 있던 관저하고 멀잖아요. 그때 마차 타고 그러는데. 이쪽으로 가까이에 관저가 들어와서 그냥 경무대라 그랬어요.
▷ 최경영 : 그러니까 집무실로는 위치는 아주 좋은데 사람이 살고 잠을 자는 어떤 관저로는 조금.
▶ 유홍준 : 더군다나.
▷ 최경영 : 그 관저 위치가?
▶ 유홍준 : 지금 현재 청와대에 새로 지은 관저, 쑥 들어가서 있는 곳. 거기는 풍수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죠.
▷ 최경영 : 풍수 쪽에서는.
▶ 유홍준 : 그런데 풍수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데 그게 뭐 미신이고 과학이고 전에 어느 지역에 딱 가서 보면 여기는 터가 좋다 소리 우리 나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양지바르다.
▶ 유홍준 : 아니, 산에 가서 보면 터 좋은 데는 다 절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식으로 봤을 적에 그런 거고 아무튼 그렇게 했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 지은 것이 지금의 청와대잖아요. 그 청와대를 지을 적에 먹고 자는 관저는 본관 있는 데서 저 속에다가 갖다 지금 지어놓은 것이 그게 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그게 아니고 또 거기에 참 기념적인 것이 팔도배미라고 해가지고 팔도를 이렇게 디자인을 도 크기대로 이렇게 해서 거기에 별을 심고 왕이 지금 농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거를 관찰하면서 또 풍년을 기원했던 팔도배미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얘기하기도 청와대를 개방하는 건 좋은데 또 지금 당장 저렇게 열어놨는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최종 형태로 가져갈 건가에 대해서는 마스터 플랜을 국민한테 제시하는 게 맞지 않냐.
▷ 최경영 :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까? 개방을 해서.
▶ 유홍준 : 그럴 경우에는 제일 좋은 것이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건축가들이 멋진 아이디어를 가져와야죠.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아이엠 페이가 피라미드 해가지고 더 유명해지듯이.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런 내용들의 히스토리를 다 제공하고 그다음에 여기에다가 우리가 기념으로 해놓을 수 있는 거는 뭐 대통령 기록실에서 가져와가지고 예를 들면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했던 사진들부터 받았던 선물 또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이런 것들을 어느 건물에 어떤 걸 배치하고 또 어떤 것을 현재 공간으로 쓰고 어느 건물은 헐어버리고 어느 건물은 복원을 해서 그 자리의 역사성을 살려서 영원히 서울의 상징이고 100년 동안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최고 통치자가 있었던 곳으로서의 역사성과 품위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쉬움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그게 마스터 플랜이고 뛰어난 건축가가 하면 제일 좋은데 그게 누구냐를 뽑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나라면 뛰어난 건축가를 커미션으로 해가지고 국제 컴피티션을 열고 싶어요.
▷ 최경영 : 기왕 개방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용산 이전 관련해서는 혹시 윤석열 정부로부터 어떤 전화 받은 것이.
▶ 유홍준 : 없어요.
▷ 최경영 : 인수위로부터도 무슨 자문이나 이런 것들.
▶ 유홍준 : 혹시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왜 그때 이전한다고 해놓고 이전 안 했냐, 이런 얘기 들을 만하잖아요. 제가 또 위원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안 왔어요.
▷ 최경영 : 그때는 왜 이전한다고 하고 이전을 안 했습니까? 광화문이었잖아요, 그때는.
▶ 유홍준 : 그때는 광화문으로 오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한 번 옮긴다는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 온다는 거는 모르고 낭만적으로 그렇게 문 대통령이 한 거예요. 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이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중에 지금 헐기로 돼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민속박물관하고 맞바꾸면 좋겠습니다.
▷ 최경영 : 경복궁 옆에 있는 거?
▶ 유홍준 : 네. 그건 바꾸면 돼요. 그랬더니 그 당시 야당에서 광화문에 가서 시민 만난다는 사람이 궁으로 들어간다고 비판했어요. 그래서 이게 정치적 논쟁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확 접어버렸죠. 접어버리고 나서는 정부 청사로 해서 나가려고 하면 이런 돈들이 드는데 그 액수가 엄청 많이 드는 거예요, 용산에서 지금 보이듯이.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문 대통령이 나한테 그 얘기는 안 했지만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럼 여기에다가 돈 투자해갖고 다 해놓고 또 그때 가가지고 세종시에다가 대통령실 짓는다고 했을 적에 그때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감당하냐. 차라리 내가 공약을 어겼다고 하고 사과하고 그냥 빨리 접어버리는 게 낫겠다. 그래서 안 했죠.
▷ 최경영 : 그런 스토리였군요. 용산 공원 조성 관련해서도 추진기획단의 민간공동위원장이셨는데.
▶ 유홍준 : 그거는 지금도 위원장인데요.
▷ 최경영 : 그러시군요.
▶ 유홍준 : 그러니까 용산 대통령 관저하고 용산공원하고는 뭐 전혀.
▷ 최경영 : 관련이 없습니까?
▶ 유홍준 : 관련이 없죠. 그쪽으로 들어와 있지도 않고. 용산공원은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게 100만 평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꺼번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받는 거예요. 그것도 2027년에 다 반납받기로 했어요. 평택으로 갔잖아요. 그중에 가지 않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게 약 10%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스포츠필드를 비롯해가지고 또 받아요. 그러니까 미군 쪽에서도 이제 반환하는 데 속도를 내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걸 받아놓으면 그냥 2027년까지 놔둘 수는 없어서 일부 개장을 해서 사용을 하는 거고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이미 용산공원을 어떻게 할 건가는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네덜란드의 웨스트에이트 우리나라 이로재가 합쳐서 낸 안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실시설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실시설계 들어가려 그러면 토지 조사도 하고 뭐 해야 되는데 미군이 아직 방을 빼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부 확정된 것만 내놓은 거가 장교 숙소 있는 곳에 우리가 받은 곳을 지금 오픈해 있는 상태고 내년에는 일부 넓은 터로 공원으로 산책할 수 있게 할 그런 계획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 최경영 : 지금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개방을 했는데 혹시 개방된 이후에 가보셨습니까?
▶ 유홍준 : 안 갔어요. 갔다가는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것 같아가지고.
▷ 최경영 : 그거 여쭤보려 그랬는데. 개방 자체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해도 상관없다라고 보세요?
▶ 유홍준 : 지금 망가질 거야 없지 않겠습니까.
▷ 최경영 : 망가질 거야 없다.
▶ 유홍준 : 그냥 잘 갖고 있으면 난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할는지도 좀 궁금해요. 그 자리로 그대로 인수받을지.
▷ 최경영 : 도성부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강남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서울의 강남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적으로.
▶ 유홍준 : 문화적으로보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아덴은 바깥으로 확장될 공간이 없어서 그걸로 끝났어요. 서울은 무한히 넓어가지고 이렇게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00년 넘어 수도를 유지하는 거는 우리 터가 갖고 있는.
▷ 최경영 : 확장선이네요.
▶ 유홍준 : 그렇죠. 태조 이성계가 참 터 잘 잡은 거죠.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수용을 했겠습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세계 7대 강국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겠어요? 그래서 서울 강남에 있는 유적은 예를 들면 봉원사나 선정릉 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 유적이죠. 그리고 뭐 태릉도 그렇고. 왕릉들은 물론 다 그렇고. 그리고 이게 양천구에서부터 경기도 광주분까지 다 합쳤기 때문에 인물들로 이렇게 또 따져서 들어갔을 적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 이야기를 갖고 있죠. 그래서 그중에 가양동에 있는 경제박물관과 허준박물관 2개는 내가 샘플로 소개를 했습니다.
▷ 최경영 : 그러셨군요. 지금 문자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박형근 님은 "최근 몇 달 동안의 잡음과 소음이 씻겨나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소라 님은 "25년 전 대학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어요" 2415님은 "작가님, 우리나라 유배지 답사기도 써주세요"라고 말씀하셨네요. 좀 아시는 분이네, 이분도.
▶ 유홍준 : 그렇죠. 강진이 유배지로 시작했으니까요.
▷ 최경영 : 이상숙 님도 "유홍준 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30주년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특별히 계획하시는 여행이 또 있으세요?
▶ 유홍준 : 여행보다도 글 쓸 계획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빠진 데를 국토박물관 순례로 해서 쫙 어디까지 쓰든 쓸 건데 이번에는 지역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대로 쓰려 그래요.
▷ 최경영 : 시대로.
▶ 유홍준 :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들을 쭉 찾아가서 구석기 시대는 전곡리 유적지, 신석기 시대는 울주반구대 그렇게 해서 맨 마지막에 독도로. 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하고 이렇게.
▷ 최경영 : 독도.
▶ 유홍준 : 답사기로 해서 이 시리즈 30년을 끝맺으려 그럽니다.
▷ 최경영 :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랍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홍준 : 감사합니다.
- 망우리 공동묘지, 박인환 방정환 유관순 혼 담겨 있어
- 용산 이전 관련 尹 대통령 ·인수위 연락 기다렸지만..
- 文 대통령 광화문 이전, 비용 논란으로 접어
- 청와대 개방 이후 직접 가 보진 않아.. 차기 대통령 대응 궁금해
- 문화유산 답사기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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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명 : 최경영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2022년 11월 22일 (화) 오전 7:20 – 8:57
■ 진행 : 최경영 기자 (KBS)
■ 출연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 최경영 : 오늘은 우리가 사는 서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이 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역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특별하신 분 모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으로 다시 돌아오신 분입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유홍준 : 안녕하세요.
▷ 최경영 : 제가 아까 온에어 되기 전에 말씀을 좀 나누다 보니까 93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 유홍준 : 첫 권이 나왔죠.
▷ 최경영 : 그때 제가 대학 때였는데 기자 생활한 지 26년 됐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29년, 30년 됐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서울편이 두 권으로 나왔습니까?
▶ 유홍준 : 서울편 앞에 경복궁에서부터 종묘로 해서 조선시대 이야기들이 두 권을 냈어요. 또 한양 정도 600년으로 그걸로 서울 답사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북촌, 서촌, 인사동, 성북동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게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증언이 있을 필요가 있다.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런 생각에서 써서 사실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서 이번 책은 안 써도 내가 불성실하다 소리는 안 들을 텐데.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 대신에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100년 후에 가서는 하나의 증언이 될 테니까 그동안 조사하고 또 살면서 느낀 것을 녹여서 썼죠.
▷ 최경영 : 이게 첫 출간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93년인데 인문학 최초로 100만 부 달성했고 누적 판매 부수가 500만 부.
▶ 유홍준 : 난 모르는데 하여튼 출판사에서 500만 부래요.
▷ 최경영 : 아니, 모르실 수가 없는 게 인세가 엄청 들어왔을 것 같기 때문에.
▶ 유홍준 : 한 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끊어서 들어오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내가 뭐 맨날 덧셈할 수도 없고.
▷ 최경영 : 인세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 유홍준 : 인세보다도 광주비엔날레 내가 커미셔너였는데 미국인 커미셔너가, 내가 그때 참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한테 내가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한국에 인구가 몇 명인데. 5,000만 명.
▷ 최경영 : 5,000만 명.
▶ 유홍준 : 5,000만 명이 어떻게 밀리언스가 나올 수 있냐. 영어로 뭐 10억이고 인구를 대상으로 쓰면 몰라도.
▷ 최경영 : 거기는 3억 2,000만 명이니까.
▶ 유홍준 : 거기에 또 외국의 영어 사용권 다 합치니까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확실히 우리 국민들이 민도가 높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거가 있고 그다음에는 시대의 요구인데 이런 책이 나오기를 세상이 기다렸던 거 아닌가 싶어요.
▷ 최경영 : 30년 동안에 답사기를 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쓴 거 아니에요?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이런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계속 쓸 거라고는 예상은 처음에는.
▶ 유홍준 : 아니, 처음에 3권 쓰고 그만 쓰려고 이제 그만 쓰겠다. 나도 충전을 하고 내 본업에 충실해서 미술사 책을 쓴다 그러고서는 갔죠. 갔다가 또 문화재청장까지 지내고.
▷ 최경영 : 그랬잖아요.
▶ 유홍준 :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데 빠진 지역의 요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를테면 제주도, 충청북도 이런 데는 하나도 안 썼거든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그걸 쓰다 보니까 내 고향 서울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서 지난 5년 전에 두 권 내고 이번에 두 권 내서 서울편이 4권으로 완권 했습니다.
▷ 최경영 : 원래 내 고향 서울 이야기, 지금 고향이 서울이시죠?
▶ 유홍준 : 그렇죠. 서울 청운국민학교 나오고.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
▶ 유홍준 : 중, 고, 대학교를 다 종로구 창성동 130번지에서 다녔어요.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면 이제 서촌 바로 너머죠?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서촌은 지금 많이 변했죠?
▶ 유홍준 : 변했어도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서촌에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있었던 양반가들이 일제강점기 되면서 다 분할돼가지고 사람들이 사는데 1930년 넘어가면 일제강점기예요. 한양 도성 안의 인구가 12만 명이었는데.
▷ 최경영 : 12만 명.
▶ 유홍준 : 12만 명, 도성 안에. 그런데 그때 일본인 숫자가 3만 명이 넘었어요. 그리고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여기 오면 뜯어 먹을 게 많으니까. 그래서 주택난이 일어나요. 그래가지고 총독부에서 했던 조치가 도성 바깥으로 택지를 분양하는데 제일 좋았던, 그들이 했던 성공한 정책이 미아리, 이태원, 노고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시키고 그 자리를 택지로 개발한 거였어요.
▷ 최경영 : 그랬군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그렇게.
▶ 유홍준 : 1934년에 개장돼요, 망우리가. 그리고 사람들이 일본 사람하고 이렇게 섞여 살기 싫어하잖아요.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도심으로 오려 그랬잖아요. 이때 북촌에는 정세권이라고 하는 주택업자.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죠. 건축왕이에요. 이분이 도시형 개량 한옥을 만들어요. 설계를 해서 그것도 신문에 공고를 내서 입찰해가지고 한옥이 터가 넓잖아요. 이거를 30평 단위에서 근대식 삶으로써 적합한 것을 만든 게 가회동 31번지예요. 그리고 익선동하고. 그래서 거기는 집과 집이 완전히 붙었잖아요, 담장 없이. 이래서 도시형 한옥을 보급을 한 것이 북촌의 전설을 낳은 거고 서촌만 해도 적산가옥이 많아요.
▷ 최경영 : 그렇군요.
▶ 유홍준 : 나도 창성동 130번지가 적산가옥 2층집이었어요. 일본인이 살던 다다미방 있는.
▷ 최경영 : 그런데 아까 지금 도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도성은 어느 정도의 울타리입니까?
▶ 유홍준 : 18.2km죠. 사대문 안.
▷ 최경영 : 사대문 안이군요. 그러면 우리 지금 25개 구는 대부분 도성 안에 없는 거네요.
▶ 유홍준 : 그렇죠. 거기 종로구하고 중구뿐이 없죠.
▷ 최경영 : 종로구하고 중구 정도가 지금의 옛날 도성이었고 나머지는 다.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그러니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까, 그렇게 되면?
▶ 유홍준 : 양반도 바깥에 살기는 하는데 성북동의 경우는 거기가 본래 그린벨트였습니다. 한양 도성을 쌓을 적에 성저십리라고 해서 성 바깥의 십리는 자연 그대로 놔뒀어요. 그랬다가 농지가 부족하니까 답십리 쪽에서부터 농지로 들어오고 그 뒤는 대개 산이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랬다가 성북동이 30년대부터 택지로 개발하는데 거기는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김용준의 노시산방 전부 문인들이 거기 와서 살았어요. 그래서 성북동은 우리 근대문학의 산실입니다.
▷ 최경영 :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지금은 재벌분들이 많아요.
▶ 유홍준 : 성북동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재벌들 사는 데는 70년에 삼청터널이 북아터널로 개통되면서 거기에 택지가 개발된 게 지금 얘기하는 꿩의 바다 쪽에 있는 대사관하고 재벌들 집이고 가운데 성북천을 따라서 났던 본래의 주거지는 내가 얘기했던 근대 문학인들의 거리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성 밑에 있는 북정동이라는 데는 우리나라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예요. 여기가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 치고 살았던 곳이에요.
▷ 최경영 : 택시기사분들이 자주 가는 돼지.
▶ 유홍준 : 쌍다리.
▷ 최경영 : 쌍다리.
▶ 유홍준 : 쌍다리 돼지갈비. 거기가 성북동의 다운타운이고 바로 그 옆이 수연산방이에요. 그 쌍다리에 다리 하나는 없어졌죠.
▷ 최경영 : 그렇게 되는 거군요, 이게. 직접 이렇게 다 답사를 지금도 다니시면 체력적으로도 좀 힘드시지 않습니까?
▶ 유홍준 : 즐겁게 다니죠. 그리고 내가 안 가서 못 다 가서 못 쓴 거는 없는데 우리 국토가 얼마나 넓은데 이 12권 가지고 되겠어요? 그 대신에 내가 이 책을 시리즈는 이제 곧 끝내고 싶은데 끝내기 전에 그래도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서 이게 빠졌으면 안 되겠다 싶은 것을 좀 추려서 국토박물관 순례라고 해서 한두 권 더 쓰고 이제 내년이나 내후년에 피어리어드 찍으려고 합니다.
▷ 최경영 : 이번에 서울 여행 추천도 좀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유산 답사기기 때문에. 핫플레이스 같은 거, 젊은이들에게.
▶ 유홍준 : 이 책 이후라 그럴까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핫플이 됐죠. 망우리 공동묘지가 아니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다시 설명하면 주변에 있는 미아리 공동묘지까지 합쳐서 만들었잖아요. 50만 평에다가 거기 이제 해서 들어온 게 공동묘지는 보장 기간이 있는데 38년입니다. 40년이 안 돼요. 40년 되면 자기가 파가든지 화장하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74년에 만장이 됐어요, 끝났어요. 그다음부터는 화장하고 이장만 허가하고 들어오질 못하고 하니까 지금 현재는 7,000개만 남았어요. 앞으로 더 빠질 거죠. 그런 중에 중요한 역사 인물의 무덤은 망우리 중랑구에서, 지금은 중랑구에서 보존, 관리하는데 거기에 목마 숙녀의 박인환, 이중섭, 화가 이인성, 권진교,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거기에다가 설산 장수, 죽산 조봉암 무덤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그 길을 한 바퀴를 돌면 공동묘지가 아니고 그냥 우리 자연 야산이에요. 야산으로 환원된 곳곳에 역사 인물들. 거기 차중락 묘소도 있고 또 지석영 선생도 있는 중에 슬픈 게 유관순 열사의 혼이 거기에 있습니다.
▷ 최경영 : 그러니까요.
▶ 유홍준 : 이태원에 있었는데 이태원을 망우리로 옮기면서 연고 있는 사람 찾아가라고 했는데 유관순 열사는 자식이 있을 리 없죠. 부모님은 아우내장터 때 돌아가셨죠. 그러니까 2만 8,000개의 무연고 묘가 한꺼번에 화장된 속에 한 줌의 재로 해서 망우리에 와 있어요. 슬퍼요.
▷ 최경영 : 참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그 말씀은 뭐 전 국민이 지금 다 알고 있는데 다시 느끼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게.
▶ 유홍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아주 멋있는 공개 컴피티션을 해서 비지팅하우스를 참 예쁘게 지었어요. 그래서 쓸쓸할 것 같은 공동묘지가 또 옛날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안 갔잖아요. 그런데 그게 서울 근교에 아름다운 야산에 역사문화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리로 치면 쇼팽의 무덤이 있고 뻬르 라쉐즈 같은 그런 분위기로 이해하시면 좋고 늦가을에 한번 산보 가보세요.
▷ 최경영 :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서울 하면 또 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번에 사실 대통령실 이전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 경복궁 옆에 청와대가 있고 이랬는데 그전에 보면 사람이 자고 이렇게 하기에는, 이 책에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좀 음습한 곳이다, 청와대가.
▶ 유홍준 : 그게 정확히 얘기하면 관저가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양택으로 좋으냐 어쩌냐 하는 얘기가 있는 거고 청와대 그 자리 자체야 참 천하제일 복지죠. 그 히스토리를 얘기하면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만들었을 때 그 뒤는 아까 얘기한 성저십리로 자연 녹지였어요. 군사보호지역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숙정문으로 해서 나가는 데는 민간인 들어가지도 못했잖아요. 북쪽으로 가는 길은 저쪽 창의문 쪽으로 했는데 거기도 문 닫아놓고. 그리고 거기에 오직 시설이라고 하면 회맹단이라고 하는 단이 하나 있는데 공신들, 역대 계급 공신에서 스물네 분의 공신 수여가 있었어요. 그 공신들이 국가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임을 할 때는 그 자리에서 했어요. 그게 유명한 회맹단이에요. 그거 외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칠궁이 들어왔죠. 바로 옆으로 육상공을 비롯해서 칠공은 후궁 중에서 후궁은 이제 임금이 죽으면 밖으로 나가야 돼요. 그랬는데 후궁 중에서 왕을 낳은 후궁이 일곱 분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장희빈을 비롯해가지고.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보호를 하죠.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때 그 뒤에다가 과거시험을 보는 육문당, 육무당이라는 멋진 한옥과 경무대라고 하는 뜰을 만들었어요. 그때 경무대라는 말이 나와요.
▷ 최경영 : 그게 경무대군요.
▶ 유홍준 : 그래서 거기에서 과거시험을 치렀어요. 그게 그 당시, 나중에는 거기 이서 과거시험 치르면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집들 한옥의 구조와 모든 거는 다 흑백 사진으로 잘 남아 있죠.
▷ 최경영 : 근 현대사라고.
▶ 유홍준 : 들어가는 거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그랬다가 1934년에 총독 관저가 들어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총독부가 경복궁으로 들어오니까 용산에 있던 관저하고 멀잖아요. 그때 마차 타고 그러는데. 이쪽으로 가까이에 관저가 들어와서 그냥 경무대라 그랬어요.
▷ 최경영 : 그러니까 집무실로는 위치는 아주 좋은데 사람이 살고 잠을 자는 어떤 관저로는 조금.
▶ 유홍준 : 더군다나.
▷ 최경영 : 그 관저 위치가?
▶ 유홍준 : 지금 현재 청와대에 새로 지은 관저, 쑥 들어가서 있는 곳. 거기는 풍수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죠.
▷ 최경영 : 풍수 쪽에서는.
▶ 유홍준 : 그런데 풍수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데 그게 뭐 미신이고 과학이고 전에 어느 지역에 딱 가서 보면 여기는 터가 좋다 소리 우리 나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양지바르다.
▶ 유홍준 : 아니, 산에 가서 보면 터 좋은 데는 다 절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식으로 봤을 적에 그런 거고 아무튼 그렇게 했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 지은 것이 지금의 청와대잖아요. 그 청와대를 지을 적에 먹고 자는 관저는 본관 있는 데서 저 속에다가 갖다 지금 지어놓은 것이 그게 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그게 아니고 또 거기에 참 기념적인 것이 팔도배미라고 해가지고 팔도를 이렇게 디자인을 도 크기대로 이렇게 해서 거기에 별을 심고 왕이 지금 농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거를 관찰하면서 또 풍년을 기원했던 팔도배미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얘기하기도 청와대를 개방하는 건 좋은데 또 지금 당장 저렇게 열어놨는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최종 형태로 가져갈 건가에 대해서는 마스터 플랜을 국민한테 제시하는 게 맞지 않냐.
▷ 최경영 :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까? 개방을 해서.
▶ 유홍준 : 그럴 경우에는 제일 좋은 것이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건축가들이 멋진 아이디어를 가져와야죠.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아이엠 페이가 피라미드 해가지고 더 유명해지듯이.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런 내용들의 히스토리를 다 제공하고 그다음에 여기에다가 우리가 기념으로 해놓을 수 있는 거는 뭐 대통령 기록실에서 가져와가지고 예를 들면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했던 사진들부터 받았던 선물 또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이런 것들을 어느 건물에 어떤 걸 배치하고 또 어떤 것을 현재 공간으로 쓰고 어느 건물은 헐어버리고 어느 건물은 복원을 해서 그 자리의 역사성을 살려서 영원히 서울의 상징이고 100년 동안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최고 통치자가 있었던 곳으로서의 역사성과 품위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쉬움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그게 마스터 플랜이고 뛰어난 건축가가 하면 제일 좋은데 그게 누구냐를 뽑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나라면 뛰어난 건축가를 커미션으로 해가지고 국제 컴피티션을 열고 싶어요.
▷ 최경영 : 기왕 개방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용산 이전 관련해서는 혹시 윤석열 정부로부터 어떤 전화 받은 것이.
▶ 유홍준 : 없어요.
▷ 최경영 : 인수위로부터도 무슨 자문이나 이런 것들.
▶ 유홍준 : 혹시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왜 그때 이전한다고 해놓고 이전 안 했냐, 이런 얘기 들을 만하잖아요. 제가 또 위원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안 왔어요.
▷ 최경영 : 그때는 왜 이전한다고 하고 이전을 안 했습니까? 광화문이었잖아요, 그때는.
▶ 유홍준 : 그때는 광화문으로 오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한 번 옮긴다는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 온다는 거는 모르고 낭만적으로 그렇게 문 대통령이 한 거예요. 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이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중에 지금 헐기로 돼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민속박물관하고 맞바꾸면 좋겠습니다.
▷ 최경영 : 경복궁 옆에 있는 거?
▶ 유홍준 : 네. 그건 바꾸면 돼요. 그랬더니 그 당시 야당에서 광화문에 가서 시민 만난다는 사람이 궁으로 들어간다고 비판했어요. 그래서 이게 정치적 논쟁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확 접어버렸죠. 접어버리고 나서는 정부 청사로 해서 나가려고 하면 이런 돈들이 드는데 그 액수가 엄청 많이 드는 거예요, 용산에서 지금 보이듯이.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문 대통령이 나한테 그 얘기는 안 했지만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럼 여기에다가 돈 투자해갖고 다 해놓고 또 그때 가가지고 세종시에다가 대통령실 짓는다고 했을 적에 그때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감당하냐. 차라리 내가 공약을 어겼다고 하고 사과하고 그냥 빨리 접어버리는 게 낫겠다. 그래서 안 했죠.
▷ 최경영 : 그런 스토리였군요. 용산 공원 조성 관련해서도 추진기획단의 민간공동위원장이셨는데.
▶ 유홍준 : 그거는 지금도 위원장인데요.
▷ 최경영 : 그러시군요.
▶ 유홍준 : 그러니까 용산 대통령 관저하고 용산공원하고는 뭐 전혀.
▷ 최경영 : 관련이 없습니까?
▶ 유홍준 : 관련이 없죠. 그쪽으로 들어와 있지도 않고. 용산공원은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게 100만 평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꺼번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받는 거예요. 그것도 2027년에 다 반납받기로 했어요. 평택으로 갔잖아요. 그중에 가지 않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게 약 10%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스포츠필드를 비롯해가지고 또 받아요. 그러니까 미군 쪽에서도 이제 반환하는 데 속도를 내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걸 받아놓으면 그냥 2027년까지 놔둘 수는 없어서 일부 개장을 해서 사용을 하는 거고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이미 용산공원을 어떻게 할 건가는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네덜란드의 웨스트에이트 우리나라 이로재가 합쳐서 낸 안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실시설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실시설계 들어가려 그러면 토지 조사도 하고 뭐 해야 되는데 미군이 아직 방을 빼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부 확정된 것만 내놓은 거가 장교 숙소 있는 곳에 우리가 받은 곳을 지금 오픈해 있는 상태고 내년에는 일부 넓은 터로 공원으로 산책할 수 있게 할 그런 계획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 최경영 : 지금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개방을 했는데 혹시 개방된 이후에 가보셨습니까?
▶ 유홍준 : 안 갔어요. 갔다가는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것 같아가지고.
▷ 최경영 : 그거 여쭤보려 그랬는데. 개방 자체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해도 상관없다라고 보세요?
▶ 유홍준 : 지금 망가질 거야 없지 않겠습니까.
▷ 최경영 : 망가질 거야 없다.
▶ 유홍준 : 그냥 잘 갖고 있으면 난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할는지도 좀 궁금해요. 그 자리로 그대로 인수받을지.
▷ 최경영 : 도성부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강남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서울의 강남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적으로.
▶ 유홍준 : 문화적으로보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아덴은 바깥으로 확장될 공간이 없어서 그걸로 끝났어요. 서울은 무한히 넓어가지고 이렇게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00년 넘어 수도를 유지하는 거는 우리 터가 갖고 있는.
▷ 최경영 : 확장선이네요.
▶ 유홍준 : 그렇죠. 태조 이성계가 참 터 잘 잡은 거죠.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수용을 했겠습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세계 7대 강국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겠어요? 그래서 서울 강남에 있는 유적은 예를 들면 봉원사나 선정릉 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 유적이죠. 그리고 뭐 태릉도 그렇고. 왕릉들은 물론 다 그렇고. 그리고 이게 양천구에서부터 경기도 광주분까지 다 합쳤기 때문에 인물들로 이렇게 또 따져서 들어갔을 적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 이야기를 갖고 있죠. 그래서 그중에 가양동에 있는 경제박물관과 허준박물관 2개는 내가 샘플로 소개를 했습니다.
▷ 최경영 : 그러셨군요. 지금 문자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박형근 님은 "최근 몇 달 동안의 잡음과 소음이 씻겨나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소라 님은 "25년 전 대학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어요" 2415님은 "작가님, 우리나라 유배지 답사기도 써주세요"라고 말씀하셨네요. 좀 아시는 분이네, 이분도.
▶ 유홍준 : 그렇죠. 강진이 유배지로 시작했으니까요.
▷ 최경영 : 이상숙 님도 "유홍준 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30주년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특별히 계획하시는 여행이 또 있으세요?
▶ 유홍준 : 여행보다도 글 쓸 계획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빠진 데를 국토박물관 순례로 해서 쫙 어디까지 쓰든 쓸 건데 이번에는 지역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대로 쓰려 그래요.
▷ 최경영 : 시대로.
▶ 유홍준 :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들을 쭉 찾아가서 구석기 시대는 전곡리 유적지, 신석기 시대는 울주반구대 그렇게 해서 맨 마지막에 독도로. 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하고 이렇게.
▷ 최경영 : 독도.
▶ 유홍준 : 답사기로 해서 이 시리즈 30년을 끝맺으려 그럽니다.
▷ 최경영 :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랍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홍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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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1-22 11: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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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명 : 최경영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2022년 11월 22일 (화) 오전 7:20 – 8:57
■ 진행 : 최경영 기자 (KBS)
■ 출연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 최경영 : 오늘은 우리가 사는 서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이 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역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특별하신 분 모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으로 다시 돌아오신 분입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유홍준 : 안녕하세요.
▷ 최경영 : 제가 아까 온에어 되기 전에 말씀을 좀 나누다 보니까 93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 유홍준 : 첫 권이 나왔죠.
▷ 최경영 : 그때 제가 대학 때였는데 기자 생활한 지 26년 됐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29년, 30년 됐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서울편이 두 권으로 나왔습니까?
▶ 유홍준 : 서울편 앞에 경복궁에서부터 종묘로 해서 조선시대 이야기들이 두 권을 냈어요. 또 한양 정도 600년으로 그걸로 서울 답사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북촌, 서촌, 인사동, 성북동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게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증언이 있을 필요가 있다.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런 생각에서 써서 사실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서 이번 책은 안 써도 내가 불성실하다 소리는 안 들을 텐데.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 대신에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100년 후에 가서는 하나의 증언이 될 테니까 그동안 조사하고 또 살면서 느낀 것을 녹여서 썼죠.
▷ 최경영 : 이게 첫 출간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93년인데 인문학 최초로 100만 부 달성했고 누적 판매 부수가 500만 부.
▶ 유홍준 : 난 모르는데 하여튼 출판사에서 500만 부래요.
▷ 최경영 : 아니, 모르실 수가 없는 게 인세가 엄청 들어왔을 것 같기 때문에.
▶ 유홍준 : 한 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끊어서 들어오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내가 뭐 맨날 덧셈할 수도 없고.
▷ 최경영 : 인세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 유홍준 : 인세보다도 광주비엔날레 내가 커미셔너였는데 미국인 커미셔너가, 내가 그때 참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한테 내가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한국에 인구가 몇 명인데. 5,000만 명.
▷ 최경영 : 5,000만 명.
▶ 유홍준 : 5,000만 명이 어떻게 밀리언스가 나올 수 있냐. 영어로 뭐 10억이고 인구를 대상으로 쓰면 몰라도.
▷ 최경영 : 거기는 3억 2,000만 명이니까.
▶ 유홍준 : 거기에 또 외국의 영어 사용권 다 합치니까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확실히 우리 국민들이 민도가 높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거가 있고 그다음에는 시대의 요구인데 이런 책이 나오기를 세상이 기다렸던 거 아닌가 싶어요.
▷ 최경영 : 30년 동안에 답사기를 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쓴 거 아니에요?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이런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계속 쓸 거라고는 예상은 처음에는.
▶ 유홍준 : 아니, 처음에 3권 쓰고 그만 쓰려고 이제 그만 쓰겠다. 나도 충전을 하고 내 본업에 충실해서 미술사 책을 쓴다 그러고서는 갔죠. 갔다가 또 문화재청장까지 지내고.
▷ 최경영 : 그랬잖아요.
▶ 유홍준 :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데 빠진 지역의 요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를테면 제주도, 충청북도 이런 데는 하나도 안 썼거든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그걸 쓰다 보니까 내 고향 서울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서 지난 5년 전에 두 권 내고 이번에 두 권 내서 서울편이 4권으로 완권 했습니다.
▷ 최경영 : 원래 내 고향 서울 이야기, 지금 고향이 서울이시죠?
▶ 유홍준 : 그렇죠. 서울 청운국민학교 나오고.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
▶ 유홍준 : 중, 고, 대학교를 다 종로구 창성동 130번지에서 다녔어요.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면 이제 서촌 바로 너머죠?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서촌은 지금 많이 변했죠?
▶ 유홍준 : 변했어도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서촌에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있었던 양반가들이 일제강점기 되면서 다 분할돼가지고 사람들이 사는데 1930년 넘어가면 일제강점기예요. 한양 도성 안의 인구가 12만 명이었는데.
▷ 최경영 : 12만 명.
▶ 유홍준 : 12만 명, 도성 안에. 그런데 그때 일본인 숫자가 3만 명이 넘었어요. 그리고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여기 오면 뜯어 먹을 게 많으니까. 그래서 주택난이 일어나요. 그래가지고 총독부에서 했던 조치가 도성 바깥으로 택지를 분양하는데 제일 좋았던, 그들이 했던 성공한 정책이 미아리, 이태원, 노고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시키고 그 자리를 택지로 개발한 거였어요.
▷ 최경영 : 그랬군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그렇게.
▶ 유홍준 : 1934년에 개장돼요, 망우리가. 그리고 사람들이 일본 사람하고 이렇게 섞여 살기 싫어하잖아요.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도심으로 오려 그랬잖아요. 이때 북촌에는 정세권이라고 하는 주택업자.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죠. 건축왕이에요. 이분이 도시형 개량 한옥을 만들어요. 설계를 해서 그것도 신문에 공고를 내서 입찰해가지고 한옥이 터가 넓잖아요. 이거를 30평 단위에서 근대식 삶으로써 적합한 것을 만든 게 가회동 31번지예요. 그리고 익선동하고. 그래서 거기는 집과 집이 완전히 붙었잖아요, 담장 없이. 이래서 도시형 한옥을 보급을 한 것이 북촌의 전설을 낳은 거고 서촌만 해도 적산가옥이 많아요.
▷ 최경영 : 그렇군요.
▶ 유홍준 : 나도 창성동 130번지가 적산가옥 2층집이었어요. 일본인이 살던 다다미방 있는.
▷ 최경영 : 그런데 아까 지금 도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도성은 어느 정도의 울타리입니까?
▶ 유홍준 : 18.2km죠. 사대문 안.
▷ 최경영 : 사대문 안이군요. 그러면 우리 지금 25개 구는 대부분 도성 안에 없는 거네요.
▶ 유홍준 : 그렇죠. 거기 종로구하고 중구뿐이 없죠.
▷ 최경영 : 종로구하고 중구 정도가 지금의 옛날 도성이었고 나머지는 다.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그러니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까, 그렇게 되면?
▶ 유홍준 : 양반도 바깥에 살기는 하는데 성북동의 경우는 거기가 본래 그린벨트였습니다. 한양 도성을 쌓을 적에 성저십리라고 해서 성 바깥의 십리는 자연 그대로 놔뒀어요. 그랬다가 농지가 부족하니까 답십리 쪽에서부터 농지로 들어오고 그 뒤는 대개 산이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랬다가 성북동이 30년대부터 택지로 개발하는데 거기는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김용준의 노시산방 전부 문인들이 거기 와서 살았어요. 그래서 성북동은 우리 근대문학의 산실입니다.
▷ 최경영 :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지금은 재벌분들이 많아요.
▶ 유홍준 : 성북동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재벌들 사는 데는 70년에 삼청터널이 북아터널로 개통되면서 거기에 택지가 개발된 게 지금 얘기하는 꿩의 바다 쪽에 있는 대사관하고 재벌들 집이고 가운데 성북천을 따라서 났던 본래의 주거지는 내가 얘기했던 근대 문학인들의 거리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성 밑에 있는 북정동이라는 데는 우리나라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예요. 여기가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 치고 살았던 곳이에요.
▷ 최경영 : 택시기사분들이 자주 가는 돼지.
▶ 유홍준 : 쌍다리.
▷ 최경영 : 쌍다리.
▶ 유홍준 : 쌍다리 돼지갈비. 거기가 성북동의 다운타운이고 바로 그 옆이 수연산방이에요. 그 쌍다리에 다리 하나는 없어졌죠.
▷ 최경영 : 그렇게 되는 거군요, 이게. 직접 이렇게 다 답사를 지금도 다니시면 체력적으로도 좀 힘드시지 않습니까?
▶ 유홍준 : 즐겁게 다니죠. 그리고 내가 안 가서 못 다 가서 못 쓴 거는 없는데 우리 국토가 얼마나 넓은데 이 12권 가지고 되겠어요? 그 대신에 내가 이 책을 시리즈는 이제 곧 끝내고 싶은데 끝내기 전에 그래도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서 이게 빠졌으면 안 되겠다 싶은 것을 좀 추려서 국토박물관 순례라고 해서 한두 권 더 쓰고 이제 내년이나 내후년에 피어리어드 찍으려고 합니다.
▷ 최경영 : 이번에 서울 여행 추천도 좀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유산 답사기기 때문에. 핫플레이스 같은 거, 젊은이들에게.
▶ 유홍준 : 이 책 이후라 그럴까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핫플이 됐죠. 망우리 공동묘지가 아니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다시 설명하면 주변에 있는 미아리 공동묘지까지 합쳐서 만들었잖아요. 50만 평에다가 거기 이제 해서 들어온 게 공동묘지는 보장 기간이 있는데 38년입니다. 40년이 안 돼요. 40년 되면 자기가 파가든지 화장하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74년에 만장이 됐어요, 끝났어요. 그다음부터는 화장하고 이장만 허가하고 들어오질 못하고 하니까 지금 현재는 7,000개만 남았어요. 앞으로 더 빠질 거죠. 그런 중에 중요한 역사 인물의 무덤은 망우리 중랑구에서, 지금은 중랑구에서 보존, 관리하는데 거기에 목마 숙녀의 박인환, 이중섭, 화가 이인성, 권진교,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거기에다가 설산 장수, 죽산 조봉암 무덤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그 길을 한 바퀴를 돌면 공동묘지가 아니고 그냥 우리 자연 야산이에요. 야산으로 환원된 곳곳에 역사 인물들. 거기 차중락 묘소도 있고 또 지석영 선생도 있는 중에 슬픈 게 유관순 열사의 혼이 거기에 있습니다.
▷ 최경영 : 그러니까요.
▶ 유홍준 : 이태원에 있었는데 이태원을 망우리로 옮기면서 연고 있는 사람 찾아가라고 했는데 유관순 열사는 자식이 있을 리 없죠. 부모님은 아우내장터 때 돌아가셨죠. 그러니까 2만 8,000개의 무연고 묘가 한꺼번에 화장된 속에 한 줌의 재로 해서 망우리에 와 있어요. 슬퍼요.
▷ 최경영 : 참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그 말씀은 뭐 전 국민이 지금 다 알고 있는데 다시 느끼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게.
▶ 유홍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아주 멋있는 공개 컴피티션을 해서 비지팅하우스를 참 예쁘게 지었어요. 그래서 쓸쓸할 것 같은 공동묘지가 또 옛날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안 갔잖아요. 그런데 그게 서울 근교에 아름다운 야산에 역사문화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리로 치면 쇼팽의 무덤이 있고 뻬르 라쉐즈 같은 그런 분위기로 이해하시면 좋고 늦가을에 한번 산보 가보세요.
▷ 최경영 :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서울 하면 또 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번에 사실 대통령실 이전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 경복궁 옆에 청와대가 있고 이랬는데 그전에 보면 사람이 자고 이렇게 하기에는, 이 책에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좀 음습한 곳이다, 청와대가.
▶ 유홍준 : 그게 정확히 얘기하면 관저가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양택으로 좋으냐 어쩌냐 하는 얘기가 있는 거고 청와대 그 자리 자체야 참 천하제일 복지죠. 그 히스토리를 얘기하면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만들었을 때 그 뒤는 아까 얘기한 성저십리로 자연 녹지였어요. 군사보호지역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숙정문으로 해서 나가는 데는 민간인 들어가지도 못했잖아요. 북쪽으로 가는 길은 저쪽 창의문 쪽으로 했는데 거기도 문 닫아놓고. 그리고 거기에 오직 시설이라고 하면 회맹단이라고 하는 단이 하나 있는데 공신들, 역대 계급 공신에서 스물네 분의 공신 수여가 있었어요. 그 공신들이 국가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임을 할 때는 그 자리에서 했어요. 그게 유명한 회맹단이에요. 그거 외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칠궁이 들어왔죠. 바로 옆으로 육상공을 비롯해서 칠공은 후궁 중에서 후궁은 이제 임금이 죽으면 밖으로 나가야 돼요. 그랬는데 후궁 중에서 왕을 낳은 후궁이 일곱 분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장희빈을 비롯해가지고.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보호를 하죠.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때 그 뒤에다가 과거시험을 보는 육문당, 육무당이라는 멋진 한옥과 경무대라고 하는 뜰을 만들었어요. 그때 경무대라는 말이 나와요.
▷ 최경영 : 그게 경무대군요.
▶ 유홍준 : 그래서 거기에서 과거시험을 치렀어요. 그게 그 당시, 나중에는 거기 이서 과거시험 치르면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집들 한옥의 구조와 모든 거는 다 흑백 사진으로 잘 남아 있죠.
▷ 최경영 : 근 현대사라고.
▶ 유홍준 : 들어가는 거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그랬다가 1934년에 총독 관저가 들어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총독부가 경복궁으로 들어오니까 용산에 있던 관저하고 멀잖아요. 그때 마차 타고 그러는데. 이쪽으로 가까이에 관저가 들어와서 그냥 경무대라 그랬어요.
▷ 최경영 : 그러니까 집무실로는 위치는 아주 좋은데 사람이 살고 잠을 자는 어떤 관저로는 조금.
▶ 유홍준 : 더군다나.
▷ 최경영 : 그 관저 위치가?
▶ 유홍준 : 지금 현재 청와대에 새로 지은 관저, 쑥 들어가서 있는 곳. 거기는 풍수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죠.
▷ 최경영 : 풍수 쪽에서는.
▶ 유홍준 : 그런데 풍수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데 그게 뭐 미신이고 과학이고 전에 어느 지역에 딱 가서 보면 여기는 터가 좋다 소리 우리 나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양지바르다.
▶ 유홍준 : 아니, 산에 가서 보면 터 좋은 데는 다 절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식으로 봤을 적에 그런 거고 아무튼 그렇게 했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 지은 것이 지금의 청와대잖아요. 그 청와대를 지을 적에 먹고 자는 관저는 본관 있는 데서 저 속에다가 갖다 지금 지어놓은 것이 그게 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그게 아니고 또 거기에 참 기념적인 것이 팔도배미라고 해가지고 팔도를 이렇게 디자인을 도 크기대로 이렇게 해서 거기에 별을 심고 왕이 지금 농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거를 관찰하면서 또 풍년을 기원했던 팔도배미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얘기하기도 청와대를 개방하는 건 좋은데 또 지금 당장 저렇게 열어놨는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최종 형태로 가져갈 건가에 대해서는 마스터 플랜을 국민한테 제시하는 게 맞지 않냐.
▷ 최경영 :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까? 개방을 해서.
▶ 유홍준 : 그럴 경우에는 제일 좋은 것이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건축가들이 멋진 아이디어를 가져와야죠.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아이엠 페이가 피라미드 해가지고 더 유명해지듯이.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런 내용들의 히스토리를 다 제공하고 그다음에 여기에다가 우리가 기념으로 해놓을 수 있는 거는 뭐 대통령 기록실에서 가져와가지고 예를 들면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했던 사진들부터 받았던 선물 또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이런 것들을 어느 건물에 어떤 걸 배치하고 또 어떤 것을 현재 공간으로 쓰고 어느 건물은 헐어버리고 어느 건물은 복원을 해서 그 자리의 역사성을 살려서 영원히 서울의 상징이고 100년 동안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최고 통치자가 있었던 곳으로서의 역사성과 품위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쉬움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그게 마스터 플랜이고 뛰어난 건축가가 하면 제일 좋은데 그게 누구냐를 뽑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나라면 뛰어난 건축가를 커미션으로 해가지고 국제 컴피티션을 열고 싶어요.
▷ 최경영 : 기왕 개방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용산 이전 관련해서는 혹시 윤석열 정부로부터 어떤 전화 받은 것이.
▶ 유홍준 : 없어요.
▷ 최경영 : 인수위로부터도 무슨 자문이나 이런 것들.
▶ 유홍준 : 혹시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왜 그때 이전한다고 해놓고 이전 안 했냐, 이런 얘기 들을 만하잖아요. 제가 또 위원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안 왔어요.
▷ 최경영 : 그때는 왜 이전한다고 하고 이전을 안 했습니까? 광화문이었잖아요, 그때는.
▶ 유홍준 : 그때는 광화문으로 오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한 번 옮긴다는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 온다는 거는 모르고 낭만적으로 그렇게 문 대통령이 한 거예요. 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이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중에 지금 헐기로 돼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민속박물관하고 맞바꾸면 좋겠습니다.
▷ 최경영 : 경복궁 옆에 있는 거?
▶ 유홍준 : 네. 그건 바꾸면 돼요. 그랬더니 그 당시 야당에서 광화문에 가서 시민 만난다는 사람이 궁으로 들어간다고 비판했어요. 그래서 이게 정치적 논쟁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확 접어버렸죠. 접어버리고 나서는 정부 청사로 해서 나가려고 하면 이런 돈들이 드는데 그 액수가 엄청 많이 드는 거예요, 용산에서 지금 보이듯이.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문 대통령이 나한테 그 얘기는 안 했지만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럼 여기에다가 돈 투자해갖고 다 해놓고 또 그때 가가지고 세종시에다가 대통령실 짓는다고 했을 적에 그때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감당하냐. 차라리 내가 공약을 어겼다고 하고 사과하고 그냥 빨리 접어버리는 게 낫겠다. 그래서 안 했죠.
▷ 최경영 : 그런 스토리였군요. 용산 공원 조성 관련해서도 추진기획단의 민간공동위원장이셨는데.
▶ 유홍준 : 그거는 지금도 위원장인데요.
▷ 최경영 : 그러시군요.
▶ 유홍준 : 그러니까 용산 대통령 관저하고 용산공원하고는 뭐 전혀.
▷ 최경영 : 관련이 없습니까?
▶ 유홍준 : 관련이 없죠. 그쪽으로 들어와 있지도 않고. 용산공원은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게 100만 평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꺼번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받는 거예요. 그것도 2027년에 다 반납받기로 했어요. 평택으로 갔잖아요. 그중에 가지 않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게 약 10%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스포츠필드를 비롯해가지고 또 받아요. 그러니까 미군 쪽에서도 이제 반환하는 데 속도를 내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걸 받아놓으면 그냥 2027년까지 놔둘 수는 없어서 일부 개장을 해서 사용을 하는 거고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이미 용산공원을 어떻게 할 건가는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네덜란드의 웨스트에이트 우리나라 이로재가 합쳐서 낸 안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실시설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실시설계 들어가려 그러면 토지 조사도 하고 뭐 해야 되는데 미군이 아직 방을 빼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부 확정된 것만 내놓은 거가 장교 숙소 있는 곳에 우리가 받은 곳을 지금 오픈해 있는 상태고 내년에는 일부 넓은 터로 공원으로 산책할 수 있게 할 그런 계획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 최경영 : 지금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개방을 했는데 혹시 개방된 이후에 가보셨습니까?
▶ 유홍준 : 안 갔어요. 갔다가는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것 같아가지고.
▷ 최경영 : 그거 여쭤보려 그랬는데. 개방 자체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해도 상관없다라고 보세요?
▶ 유홍준 : 지금 망가질 거야 없지 않겠습니까.
▷ 최경영 : 망가질 거야 없다.
▶ 유홍준 : 그냥 잘 갖고 있으면 난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할는지도 좀 궁금해요. 그 자리로 그대로 인수받을지.
▷ 최경영 : 도성부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강남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서울의 강남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적으로.
▶ 유홍준 : 문화적으로보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아덴은 바깥으로 확장될 공간이 없어서 그걸로 끝났어요. 서울은 무한히 넓어가지고 이렇게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00년 넘어 수도를 유지하는 거는 우리 터가 갖고 있는.
▷ 최경영 : 확장선이네요.
▶ 유홍준 : 그렇죠. 태조 이성계가 참 터 잘 잡은 거죠.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수용을 했겠습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세계 7대 강국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겠어요? 그래서 서울 강남에 있는 유적은 예를 들면 봉원사나 선정릉 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 유적이죠. 그리고 뭐 태릉도 그렇고. 왕릉들은 물론 다 그렇고. 그리고 이게 양천구에서부터 경기도 광주분까지 다 합쳤기 때문에 인물들로 이렇게 또 따져서 들어갔을 적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 이야기를 갖고 있죠. 그래서 그중에 가양동에 있는 경제박물관과 허준박물관 2개는 내가 샘플로 소개를 했습니다.
▷ 최경영 : 그러셨군요. 지금 문자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박형근 님은 "최근 몇 달 동안의 잡음과 소음이 씻겨나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소라 님은 "25년 전 대학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어요" 2415님은 "작가님, 우리나라 유배지 답사기도 써주세요"라고 말씀하셨네요. 좀 아시는 분이네, 이분도.
▶ 유홍준 : 그렇죠. 강진이 유배지로 시작했으니까요.
▷ 최경영 : 이상숙 님도 "유홍준 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30주년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특별히 계획하시는 여행이 또 있으세요?
▶ 유홍준 : 여행보다도 글 쓸 계획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빠진 데를 국토박물관 순례로 해서 쫙 어디까지 쓰든 쓸 건데 이번에는 지역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대로 쓰려 그래요.
▷ 최경영 : 시대로.
▶ 유홍준 :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들을 쭉 찾아가서 구석기 시대는 전곡리 유적지, 신석기 시대는 울주반구대 그렇게 해서 맨 마지막에 독도로. 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하고 이렇게.
▷ 최경영 : 독도.
▶ 유홍준 : 답사기로 해서 이 시리즈 30년을 끝맺으려 그럽니다.
▷ 최경영 :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랍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홍준 : 감사합니다.
- 망우리 공동묘지, 박인환 방정환 유관순 혼 담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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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 답사기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최경영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2022년 11월 22일 (화) 오전 7:20 – 8:57
■ 진행 : 최경영 기자 (KBS)
■ 출연 :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 최경영 : 오늘은 우리가 사는 서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이 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역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특별하신 분 모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으로 다시 돌아오신 분입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유홍준 : 안녕하세요.
▷ 최경영 : 제가 아까 온에어 되기 전에 말씀을 좀 나누다 보니까 93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 유홍준 : 첫 권이 나왔죠.
▷ 최경영 : 그때 제가 대학 때였는데 기자 생활한 지 26년 됐는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29년, 30년 됐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서울편이 두 권으로 나왔습니까?
▶ 유홍준 : 서울편 앞에 경복궁에서부터 종묘로 해서 조선시대 이야기들이 두 권을 냈어요. 또 한양 정도 600년으로 그걸로 서울 답사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북촌, 서촌, 인사동, 성북동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게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증언이 있을 필요가 있다.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런 생각에서 써서 사실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서 이번 책은 안 써도 내가 불성실하다 소리는 안 들을 텐데.
▷ 최경영 : 그럼요.
▶ 유홍준 : 그 대신에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100년 후에 가서는 하나의 증언이 될 테니까 그동안 조사하고 또 살면서 느낀 것을 녹여서 썼죠.
▷ 최경영 : 이게 첫 출간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93년인데 인문학 최초로 100만 부 달성했고 누적 판매 부수가 500만 부.
▶ 유홍준 : 난 모르는데 하여튼 출판사에서 500만 부래요.
▷ 최경영 : 아니, 모르실 수가 없는 게 인세가 엄청 들어왔을 것 같기 때문에.
▶ 유홍준 : 한 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끊어서 들어오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내가 뭐 맨날 덧셈할 수도 없고.
▷ 최경영 : 인세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 유홍준 : 인세보다도 광주비엔날레 내가 커미셔너였는데 미국인 커미셔너가, 내가 그때 참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한테 내가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한국에 인구가 몇 명인데. 5,000만 명.
▷ 최경영 : 5,000만 명.
▶ 유홍준 : 5,000만 명이 어떻게 밀리언스가 나올 수 있냐. 영어로 뭐 10억이고 인구를 대상으로 쓰면 몰라도.
▷ 최경영 : 거기는 3억 2,000만 명이니까.
▶ 유홍준 : 거기에 또 외국의 영어 사용권 다 합치니까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확실히 우리 국민들이 민도가 높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거가 있고 그다음에는 시대의 요구인데 이런 책이 나오기를 세상이 기다렸던 거 아닌가 싶어요.
▷ 최경영 : 30년 동안에 답사기를 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쓴 거 아니에요?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이런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계속 쓸 거라고는 예상은 처음에는.
▶ 유홍준 : 아니, 처음에 3권 쓰고 그만 쓰려고 이제 그만 쓰겠다. 나도 충전을 하고 내 본업에 충실해서 미술사 책을 쓴다 그러고서는 갔죠. 갔다가 또 문화재청장까지 지내고.
▷ 최경영 : 그랬잖아요.
▶ 유홍준 :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데 빠진 지역의 요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를테면 제주도, 충청북도 이런 데는 하나도 안 썼거든요.
▷ 최경영 :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 그래서 그걸 쓰다 보니까 내 고향 서울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서 지난 5년 전에 두 권 내고 이번에 두 권 내서 서울편이 4권으로 완권 했습니다.
▷ 최경영 : 원래 내 고향 서울 이야기, 지금 고향이 서울이시죠?
▶ 유홍준 : 그렇죠. 서울 청운국민학교 나오고.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
▶ 유홍준 : 중, 고, 대학교를 다 종로구 창성동 130번지에서 다녔어요.
▷ 최경영 : 청운국민학교면 이제 서촌 바로 너머죠?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서촌은 지금 많이 변했죠?
▶ 유홍준 : 변했어도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서촌에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있었던 양반가들이 일제강점기 되면서 다 분할돼가지고 사람들이 사는데 1930년 넘어가면 일제강점기예요. 한양 도성 안의 인구가 12만 명이었는데.
▷ 최경영 : 12만 명.
▶ 유홍준 : 12만 명, 도성 안에. 그런데 그때 일본인 숫자가 3만 명이 넘었어요. 그리고 막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여기 오면 뜯어 먹을 게 많으니까. 그래서 주택난이 일어나요. 그래가지고 총독부에서 했던 조치가 도성 바깥으로 택지를 분양하는데 제일 좋았던, 그들이 했던 성공한 정책이 미아리, 이태원, 노고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시키고 그 자리를 택지로 개발한 거였어요.
▷ 최경영 : 그랬군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그렇게.
▶ 유홍준 : 1934년에 개장돼요, 망우리가. 그리고 사람들이 일본 사람하고 이렇게 섞여 살기 싫어하잖아요.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도심으로 오려 그랬잖아요. 이때 북촌에는 정세권이라고 하는 주택업자.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죠. 건축왕이에요. 이분이 도시형 개량 한옥을 만들어요. 설계를 해서 그것도 신문에 공고를 내서 입찰해가지고 한옥이 터가 넓잖아요. 이거를 30평 단위에서 근대식 삶으로써 적합한 것을 만든 게 가회동 31번지예요. 그리고 익선동하고. 그래서 거기는 집과 집이 완전히 붙었잖아요, 담장 없이. 이래서 도시형 한옥을 보급을 한 것이 북촌의 전설을 낳은 거고 서촌만 해도 적산가옥이 많아요.
▷ 최경영 : 그렇군요.
▶ 유홍준 : 나도 창성동 130번지가 적산가옥 2층집이었어요. 일본인이 살던 다다미방 있는.
▷ 최경영 : 그런데 아까 지금 도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도성은 어느 정도의 울타리입니까?
▶ 유홍준 : 18.2km죠. 사대문 안.
▷ 최경영 : 사대문 안이군요. 그러면 우리 지금 25개 구는 대부분 도성 안에 없는 거네요.
▶ 유홍준 : 그렇죠. 거기 종로구하고 중구뿐이 없죠.
▷ 최경영 : 종로구하고 중구 정도가 지금의 옛날 도성이었고 나머지는 다.
▶ 유홍준 : 그렇죠.
▷ 최경영 : 그러니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까, 그렇게 되면?
▶ 유홍준 : 양반도 바깥에 살기는 하는데 성북동의 경우는 거기가 본래 그린벨트였습니다. 한양 도성을 쌓을 적에 성저십리라고 해서 성 바깥의 십리는 자연 그대로 놔뒀어요. 그랬다가 농지가 부족하니까 답십리 쪽에서부터 농지로 들어오고 그 뒤는 대개 산이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랬다가 성북동이 30년대부터 택지로 개발하는데 거기는 이태준의 수연산방에서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김용준의 노시산방 전부 문인들이 거기 와서 살았어요. 그래서 성북동은 우리 근대문학의 산실입니다.
▷ 최경영 :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지금은 재벌분들이 많아요.
▶ 유홍준 : 성북동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재벌들 사는 데는 70년에 삼청터널이 북아터널로 개통되면서 거기에 택지가 개발된 게 지금 얘기하는 꿩의 바다 쪽에 있는 대사관하고 재벌들 집이고 가운데 성북천을 따라서 났던 본래의 주거지는 내가 얘기했던 근대 문학인들의 거리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성 밑에 있는 북정동이라는 데는 우리나라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예요. 여기가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 치고 살았던 곳이에요.
▷ 최경영 : 택시기사분들이 자주 가는 돼지.
▶ 유홍준 : 쌍다리.
▷ 최경영 : 쌍다리.
▶ 유홍준 : 쌍다리 돼지갈비. 거기가 성북동의 다운타운이고 바로 그 옆이 수연산방이에요. 그 쌍다리에 다리 하나는 없어졌죠.
▷ 최경영 : 그렇게 되는 거군요, 이게. 직접 이렇게 다 답사를 지금도 다니시면 체력적으로도 좀 힘드시지 않습니까?
▶ 유홍준 : 즐겁게 다니죠. 그리고 내가 안 가서 못 다 가서 못 쓴 거는 없는데 우리 국토가 얼마나 넓은데 이 12권 가지고 되겠어요? 그 대신에 내가 이 책을 시리즈는 이제 곧 끝내고 싶은데 끝내기 전에 그래도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서 이게 빠졌으면 안 되겠다 싶은 것을 좀 추려서 국토박물관 순례라고 해서 한두 권 더 쓰고 이제 내년이나 내후년에 피어리어드 찍으려고 합니다.
▷ 최경영 : 이번에 서울 여행 추천도 좀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유산 답사기기 때문에. 핫플레이스 같은 거, 젊은이들에게.
▶ 유홍준 : 이 책 이후라 그럴까요? 망우리 공동묘지가 핫플이 됐죠. 망우리 공동묘지가 아니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다시 설명하면 주변에 있는 미아리 공동묘지까지 합쳐서 만들었잖아요. 50만 평에다가 거기 이제 해서 들어온 게 공동묘지는 보장 기간이 있는데 38년입니다. 40년이 안 돼요. 40년 되면 자기가 파가든지 화장하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74년에 만장이 됐어요, 끝났어요. 그다음부터는 화장하고 이장만 허가하고 들어오질 못하고 하니까 지금 현재는 7,000개만 남았어요. 앞으로 더 빠질 거죠. 그런 중에 중요한 역사 인물의 무덤은 망우리 중랑구에서, 지금은 중랑구에서 보존, 관리하는데 거기에 목마 숙녀의 박인환, 이중섭, 화가 이인성, 권진교,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소파 방정환 거기에다가 설산 장수, 죽산 조봉암 무덤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그 길을 한 바퀴를 돌면 공동묘지가 아니고 그냥 우리 자연 야산이에요. 야산으로 환원된 곳곳에 역사 인물들. 거기 차중락 묘소도 있고 또 지석영 선생도 있는 중에 슬픈 게 유관순 열사의 혼이 거기에 있습니다.
▷ 최경영 : 그러니까요.
▶ 유홍준 : 이태원에 있었는데 이태원을 망우리로 옮기면서 연고 있는 사람 찾아가라고 했는데 유관순 열사는 자식이 있을 리 없죠. 부모님은 아우내장터 때 돌아가셨죠. 그러니까 2만 8,000개의 무연고 묘가 한꺼번에 화장된 속에 한 줌의 재로 해서 망우리에 와 있어요. 슬퍼요.
▷ 최경영 : 참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그 말씀은 뭐 전 국민이 지금 다 알고 있는데 다시 느끼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게.
▶ 유홍준 :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아주 멋있는 공개 컴피티션을 해서 비지팅하우스를 참 예쁘게 지었어요. 그래서 쓸쓸할 것 같은 공동묘지가 또 옛날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안 갔잖아요. 그런데 그게 서울 근교에 아름다운 야산에 역사문화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파리로 치면 쇼팽의 무덤이 있고 뻬르 라쉐즈 같은 그런 분위기로 이해하시면 좋고 늦가을에 한번 산보 가보세요.
▷ 최경영 :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서울 하면 또 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번에 사실 대통령실 이전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 경복궁 옆에 청와대가 있고 이랬는데 그전에 보면 사람이 자고 이렇게 하기에는, 이 책에도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좀 음습한 곳이다, 청와대가.
▶ 유홍준 : 그게 정확히 얘기하면 관저가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양택으로 좋으냐 어쩌냐 하는 얘기가 있는 거고 청와대 그 자리 자체야 참 천하제일 복지죠. 그 히스토리를 얘기하면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만들었을 때 그 뒤는 아까 얘기한 성저십리로 자연 녹지였어요. 군사보호지역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숙정문으로 해서 나가는 데는 민간인 들어가지도 못했잖아요. 북쪽으로 가는 길은 저쪽 창의문 쪽으로 했는데 거기도 문 닫아놓고. 그리고 거기에 오직 시설이라고 하면 회맹단이라고 하는 단이 하나 있는데 공신들, 역대 계급 공신에서 스물네 분의 공신 수여가 있었어요. 그 공신들이 국가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임을 할 때는 그 자리에서 했어요. 그게 유명한 회맹단이에요. 그거 외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칠궁이 들어왔죠. 바로 옆으로 육상공을 비롯해서 칠공은 후궁 중에서 후궁은 이제 임금이 죽으면 밖으로 나가야 돼요. 그랬는데 후궁 중에서 왕을 낳은 후궁이 일곱 분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장희빈을 비롯해가지고.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보호를 하죠.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때 그 뒤에다가 과거시험을 보는 육문당, 육무당이라는 멋진 한옥과 경무대라고 하는 뜰을 만들었어요. 그때 경무대라는 말이 나와요.
▷ 최경영 : 그게 경무대군요.
▶ 유홍준 : 그래서 거기에서 과거시험을 치렀어요. 그게 그 당시, 나중에는 거기 이서 과거시험 치르면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집들 한옥의 구조와 모든 거는 다 흑백 사진으로 잘 남아 있죠.
▷ 최경영 : 근 현대사라고.
▶ 유홍준 : 들어가는 거죠.
▷ 최경영 : 그러네.
▶ 유홍준 : 그랬다가 1934년에 총독 관저가 들어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총독부가 경복궁으로 들어오니까 용산에 있던 관저하고 멀잖아요. 그때 마차 타고 그러는데. 이쪽으로 가까이에 관저가 들어와서 그냥 경무대라 그랬어요.
▷ 최경영 : 그러니까 집무실로는 위치는 아주 좋은데 사람이 살고 잠을 자는 어떤 관저로는 조금.
▶ 유홍준 : 더군다나.
▷ 최경영 : 그 관저 위치가?
▶ 유홍준 : 지금 현재 청와대에 새로 지은 관저, 쑥 들어가서 있는 곳. 거기는 풍수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죠.
▷ 최경영 : 풍수 쪽에서는.
▶ 유홍준 : 그런데 풍수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데 그게 뭐 미신이고 과학이고 전에 어느 지역에 딱 가서 보면 여기는 터가 좋다 소리 우리 나오잖아요.
▷ 최경영 : 그렇죠. 양지바르다.
▶ 유홍준 : 아니, 산에 가서 보면 터 좋은 데는 다 절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식으로 봤을 적에 그런 거고 아무튼 그렇게 했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 지은 것이 지금의 청와대잖아요. 그 청와대를 지을 적에 먹고 자는 관저는 본관 있는 데서 저 속에다가 갖다 지금 지어놓은 것이 그게 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그게 아니고 또 거기에 참 기념적인 것이 팔도배미라고 해가지고 팔도를 이렇게 디자인을 도 크기대로 이렇게 해서 거기에 별을 심고 왕이 지금 농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거를 관찰하면서 또 풍년을 기원했던 팔도배미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얘기하기도 청와대를 개방하는 건 좋은데 또 지금 당장 저렇게 열어놨는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최종 형태로 가져갈 건가에 대해서는 마스터 플랜을 국민한테 제시하는 게 맞지 않냐.
▷ 최경영 :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까? 개방을 해서.
▶ 유홍준 : 그럴 경우에는 제일 좋은 것이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건축가들이 멋진 아이디어를 가져와야죠.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아이엠 페이가 피라미드 해가지고 더 유명해지듯이. 그러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런 내용들의 히스토리를 다 제공하고 그다음에 여기에다가 우리가 기념으로 해놓을 수 있는 거는 뭐 대통령 기록실에서 가져와가지고 예를 들면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했던 사진들부터 받았던 선물 또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이런 것들을 어느 건물에 어떤 걸 배치하고 또 어떤 것을 현재 공간으로 쓰고 어느 건물은 헐어버리고 어느 건물은 복원을 해서 그 자리의 역사성을 살려서 영원히 서울의 상징이고 100년 동안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최고 통치자가 있었던 곳으로서의 역사성과 품위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쉬움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그게 마스터 플랜이고 뛰어난 건축가가 하면 제일 좋은데 그게 누구냐를 뽑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나라면 뛰어난 건축가를 커미션으로 해가지고 국제 컴피티션을 열고 싶어요.
▷ 최경영 : 기왕 개방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용산 이전 관련해서는 혹시 윤석열 정부로부터 어떤 전화 받은 것이.
▶ 유홍준 : 없어요.
▷ 최경영 : 인수위로부터도 무슨 자문이나 이런 것들.
▶ 유홍준 : 혹시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왜 그때 이전한다고 해놓고 이전 안 했냐, 이런 얘기 들을 만하잖아요. 제가 또 위원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안 왔어요.
▷ 최경영 : 그때는 왜 이전한다고 하고 이전을 안 했습니까? 광화문이었잖아요, 그때는.
▶ 유홍준 : 그때는 광화문으로 오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한 번 옮긴다는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 온다는 거는 모르고 낭만적으로 그렇게 문 대통령이 한 거예요. 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이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중에 지금 헐기로 돼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민속박물관하고 맞바꾸면 좋겠습니다.
▷ 최경영 : 경복궁 옆에 있는 거?
▶ 유홍준 : 네. 그건 바꾸면 돼요. 그랬더니 그 당시 야당에서 광화문에 가서 시민 만난다는 사람이 궁으로 들어간다고 비판했어요. 그래서 이게 정치적 논쟁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확 접어버렸죠. 접어버리고 나서는 정부 청사로 해서 나가려고 하면 이런 돈들이 드는데 그 액수가 엄청 많이 드는 거예요, 용산에서 지금 보이듯이.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문 대통령이 나한테 그 얘기는 안 했지만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럼 여기에다가 돈 투자해갖고 다 해놓고 또 그때 가가지고 세종시에다가 대통령실 짓는다고 했을 적에 그때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감당하냐. 차라리 내가 공약을 어겼다고 하고 사과하고 그냥 빨리 접어버리는 게 낫겠다. 그래서 안 했죠.
▷ 최경영 : 그런 스토리였군요. 용산 공원 조성 관련해서도 추진기획단의 민간공동위원장이셨는데.
▶ 유홍준 : 그거는 지금도 위원장인데요.
▷ 최경영 : 그러시군요.
▶ 유홍준 : 그러니까 용산 대통령 관저하고 용산공원하고는 뭐 전혀.
▷ 최경영 : 관련이 없습니까?
▶ 유홍준 : 관련이 없죠. 그쪽으로 들어와 있지도 않고. 용산공원은 미군기지를 반환받은 게 100만 평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꺼번에 받았으면 좋겠는데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받는 거예요. 그것도 2027년에 다 반납받기로 했어요. 평택으로 갔잖아요. 그중에 가지 않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게 약 10%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스포츠필드를 비롯해가지고 또 받아요. 그러니까 미군 쪽에서도 이제 반환하는 데 속도를 내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걸 받아놓으면 그냥 2027년까지 놔둘 수는 없어서 일부 개장을 해서 사용을 하는 거고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이미 용산공원을 어떻게 할 건가는 국제 컴피티션을 열어서 네덜란드의 웨스트에이트 우리나라 이로재가 합쳐서 낸 안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실시설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실시설계 들어가려 그러면 토지 조사도 하고 뭐 해야 되는데 미군이 아직 방을 빼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부 확정된 것만 내놓은 거가 장교 숙소 있는 곳에 우리가 받은 곳을 지금 오픈해 있는 상태고 내년에는 일부 넓은 터로 공원으로 산책할 수 있게 할 그런 계획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 최경영 : 지금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개방을 했는데 혹시 개방된 이후에 가보셨습니까?
▶ 유홍준 : 안 갔어요. 갔다가는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것 같아가지고.
▷ 최경영 : 그거 여쭤보려 그랬는데. 개방 자체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해도 상관없다라고 보세요?
▶ 유홍준 : 지금 망가질 거야 없지 않겠습니까.
▷ 최경영 : 망가질 거야 없다.
▶ 유홍준 : 그냥 잘 갖고 있으면 난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할는지도 좀 궁금해요. 그 자리로 그대로 인수받을지.
▷ 최경영 : 도성부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강남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서울의 강남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적으로.
▶ 유홍준 : 문화적으로보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아덴은 바깥으로 확장될 공간이 없어서 그걸로 끝났어요. 서울은 무한히 넓어가지고 이렇게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00년 넘어 수도를 유지하는 거는 우리 터가 갖고 있는.
▷ 최경영 : 확장선이네요.
▶ 유홍준 : 그렇죠. 태조 이성계가 참 터 잘 잡은 거죠.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수용을 했겠습니까?
▷ 최경영 : 그렇죠.
▶ 유홍준 :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세계 7대 강국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겠어요? 그래서 서울 강남에 있는 유적은 예를 들면 봉원사나 선정릉 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 유적이죠. 그리고 뭐 태릉도 그렇고. 왕릉들은 물론 다 그렇고. 그리고 이게 양천구에서부터 경기도 광주분까지 다 합쳤기 때문에 인물들로 이렇게 또 따져서 들어갔을 적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 이야기를 갖고 있죠. 그래서 그중에 가양동에 있는 경제박물관과 허준박물관 2개는 내가 샘플로 소개를 했습니다.
▷ 최경영 : 그러셨군요. 지금 문자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박형근 님은 "최근 몇 달 동안의 잡음과 소음이 씻겨나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소라 님은 "25년 전 대학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어요" 2415님은 "작가님, 우리나라 유배지 답사기도 써주세요"라고 말씀하셨네요. 좀 아시는 분이네, 이분도.
▶ 유홍준 : 그렇죠. 강진이 유배지로 시작했으니까요.
▷ 최경영 : 이상숙 님도 "유홍준 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30주년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특별히 계획하시는 여행이 또 있으세요?
▶ 유홍준 : 여행보다도 글 쓸 계획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빠진 데를 국토박물관 순례로 해서 쫙 어디까지 쓰든 쓸 건데 이번에는 지역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대로 쓰려 그래요.
▷ 최경영 : 시대로.
▶ 유홍준 :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들을 쭉 찾아가서 구석기 시대는 전곡리 유적지, 신석기 시대는 울주반구대 그렇게 해서 맨 마지막에 독도로. 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하고 이렇게.
▷ 최경영 : 독도.
▶ 유홍준 : 답사기로 해서 이 시리즈 30년을 끝맺으려 그럽니다.
▷ 최경영 : 마지막 시리즈는 독도랍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홍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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