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97세 마하티르 퇴장…그리고 이슬람 정당의 직진

입력 2022.11.23 (14:19) 수정 2022.11.2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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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총선이 끝났다. 진보 개혁성향의 희망연대(PH)가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총리 추대를 못한다. 2위를 차지한 중도 정당 연대(PN)가 이번 총선에 30석에 그친 보수 국민전선(BN)과 연정을 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민전선(BN)은 이를 거부했다.

모든 내각제 국가가 그러듯 이제 이합집단 연정을 해야 하는데 대진표가 자꾸 꼬인다. 화교 등 다민족의 연대를 추구하는 PH와 이슬람 말레이족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PN은 애초에 화학적 결합이 안된다. 특히 말레이시아를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자는 이슬람 정당 'PAS'가 4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해졌다. 동남아에서 가장 반듯한 민주주의를 꾸려오던 말레이시아의 정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1. 마하티르 시대의 퇴장

말레이시아의 국부라는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Mohamad)' 전 총리, 올해 97세다. (얼마전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한 살, 송해 선생님보다 두살 연상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마하티르는 예상대로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자신의 정당은 물론, 자신의 지역구인 랑카위에서조차 5명의 후보 중 4위를 기록했다. 그는 한국의 '박정희',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했던 지도자다.

마하티르, 박정희, 리콴유. 민주주의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지독한 독재를 펼쳤지만, 그들의 시기 이들 세 나라 경제는 무섭게 성장했다. 그중 한 명은 딸이 다시 집권했지만 실패했고, 또다른 한 명은 아들(리셴륭총리, 70)이 대를 이어 집권 중이다. 그리고 마하티르는 이번 총선에 스스로 링에 올랐지만 패배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젊은 시절 의사로 활동하던 마하티르는 1965년에 정치에 뛰어들어 1981년 56세의 나이로 집권했다. 이후 집권 22년간 말레이시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고무나 주석을 수출하던 나라는 제철소를 짓고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그는 특히 인구의 23%에 불과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제권을 쥐고있던 중국계 화교들을 드러나게 차별했다. (말레이족은 화교들이 장악한 섬나라 싱가포르에 위협을 느껴 1965년 싱가포르를 강제 독립시켰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독립을 '당한' 나라다)

마하티르는 다수 이슬람 말레이족에게는 단결과 분발을 촉구하면서 한국인의 부지런함을 배워야한다고 했다 . "어렸을 때 저의 형은 늘 염소와 오리를 키우겠다고 했지만, 한번도 나는 그가 실제로 염소와 오리를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말레이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 성장모델로 '일본'과 '한국' 을 추앙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돈도 자원도 없는 나라의 유일한 성장모델이라고 믿었다(둘 다 선글라스를 좋아했고, 야당인사를 구속시키고, 언론사를 폐쇄했다). 그의 독재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과는 툭하면 날을 세웠다. 자원을 빼가면서 기술을 주지 않는 서방국가들이 아시아만의 성장모델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미국을 등에 업고 독재에 반기를 든 자신의 후계자(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를 '동성애'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2. 다섯번의 집권과 마이웨이

집권 후반기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말레이시아는 매년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 등 달러가 바닥난 나라들이 모두 IMF(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항복할 때도 그는 "서구 투기자본때문에 발생한 위기인데 왜 아시아인들이 책임을 지느냐"고 반발했다. IMF 처방과 반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폭락한 화폐가치를 '고정환율제'로 묶어 버렸다.

"환투기로 아시아인의 피를 빨아먹는 당신은 히틀러와 똑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1998년 마하티르, 조지 소로스와 설전을 벌이면서

'마하티르의 마이웨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말레이시아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다. 이듬해 가을에 열린 총선에서 그는 다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2003년 그는 다섯번의 집권을 뒤로하고 약속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국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여전했다. 그는 "물러난 뒤에도 뒷좌석의 운전자처럼 정부에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은퇴에 성공한 독재자'로 남을 수 있었다.

마하티르는 2018년 93세의 나이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2019년 방한 당시 문재인대통령과 정상회담후 환담하는 마하티르 총리  사진 연합마하티르는 2018년 93세의 나이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2019년 방한 당시 문재인대통령과 정상회담후 환담하는 마하티르 총리 사진 연합

3. 93세에 재집권 그리고 다시 던진 승부수

2018년, 한때 자신이 밀어줬던 '나집 라작' 총리의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마하티르는 ‘반(反)나집 연대’를 만들어 다시 총선에 도전했다. 국민들은 반 나집연대를 선택하며 또다시 마하티르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나이 93세. 마하티르는 그렇게 자신이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61년 집권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2020년, 재신임을 묻겠다며 총리직 사임 승부수를 던졌지만, 재신임에는 실패했다. 그는 올해 1월 세 차례나 심장병으로 입원했다. 위독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퇴원하면서 스스로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며 총선 불출마를 약속했다. 하지만 갑자기 '야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며 이번 총선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당선되면 무려 103세까지 의원직이 유지됐지만) 이변은 없었다. 이제 진짜 떠날 시간이 됐다.

자서전 앞에 선 마하티르. 사진 연합뉴스자서전 앞에 선 마하티르. 사진 연합뉴스

마하티르는 젊은이들이 정치상황을 더 잘 이해한다며 투표연령을 18세로 낮춰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투표에서 처음으로 투표가능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600만 명의 젊은이들이 새로 유권자가 됐다. 하지만 이들은 97세의 마하티르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총선 패배는 1969년 이후 처음이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4. 꼬여버린 연정 대진표

연방제 입헌군주제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 9개주의 술탄(최고 통치자)이 5년 임기로 국왕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일종의 국왕순번제다. '양 디-뻐르뚜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 주인이신 분)이라 칭하는데, 말레이 연방의 상징적인 대표일 뿐이다. 국왕은 총선에서 과반을 얻은 당이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한다. 총리가 실질적인 국가 수반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 1위 정당(PH)과 2위 정당(PN)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 중소 정당과의 연정도 경우의 수가 복잡해졌다. 특히 PN에 속한 '범 말레이시안 이슬람당(PAS)'이 49석을 확보하는 이변을 보였다. PAS는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를 추구한다. 이미 편의점에서 술 판매와 카지노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총선 이후 그래서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그래서 PN의 연정에서 총리가 나오면 말레이시아 정치는 종교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진보개혁정당 PH(희망연대)가 집권하면 다수인 이슬람 말레이족이 반발할 수있다. 연정의 경우의 수가 자꾸 꼬인다. 불확실성이 커진다. 총리 인선 이후에도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계속 될 것 같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국민들에게 SNS에 종교나 인종 관련 '도발적인' 언급을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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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97세 마하티르 퇴장…그리고 이슬람 정당의 직진
    • 입력 2022-11-23 14:19:06
    • 수정2022-11-23 16:29:18
    특파원 리포트

말레이시아 총선이 끝났다. 진보 개혁성향의 희망연대(PH)가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총리 추대를 못한다. 2위를 차지한 중도 정당 연대(PN)가 이번 총선에 30석에 그친 보수 국민전선(BN)과 연정을 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민전선(BN)은 이를 거부했다.

모든 내각제 국가가 그러듯 이제 이합집단 연정을 해야 하는데 대진표가 자꾸 꼬인다. 화교 등 다민족의 연대를 추구하는 PH와 이슬람 말레이족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PN은 애초에 화학적 결합이 안된다. 특히 말레이시아를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자는 이슬람 정당 'PAS'가 4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해졌다. 동남아에서 가장 반듯한 민주주의를 꾸려오던 말레이시아의 정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1. 마하티르 시대의 퇴장

말레이시아의 국부라는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Mohamad)' 전 총리, 올해 97세다. (얼마전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한 살, 송해 선생님보다 두살 연상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마하티르는 예상대로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자신의 정당은 물론, 자신의 지역구인 랑카위에서조차 5명의 후보 중 4위를 기록했다. 그는 한국의 '박정희',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했던 지도자다.

마하티르, 박정희, 리콴유. 민주주의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지독한 독재를 펼쳤지만, 그들의 시기 이들 세 나라 경제는 무섭게 성장했다. 그중 한 명은 딸이 다시 집권했지만 실패했고, 또다른 한 명은 아들(리셴륭총리, 70)이 대를 이어 집권 중이다. 그리고 마하티르는 이번 총선에 스스로 링에 올랐지만 패배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젊은 시절 의사로 활동하던 마하티르는 1965년에 정치에 뛰어들어 1981년 56세의 나이로 집권했다. 이후 집권 22년간 말레이시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고무나 주석을 수출하던 나라는 제철소를 짓고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그는 특히 인구의 23%에 불과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제권을 쥐고있던 중국계 화교들을 드러나게 차별했다. (말레이족은 화교들이 장악한 섬나라 싱가포르에 위협을 느껴 1965년 싱가포르를 강제 독립시켰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독립을 '당한' 나라다)

마하티르는 다수 이슬람 말레이족에게는 단결과 분발을 촉구하면서 한국인의 부지런함을 배워야한다고 했다 . "어렸을 때 저의 형은 늘 염소와 오리를 키우겠다고 했지만, 한번도 나는 그가 실제로 염소와 오리를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말레이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 성장모델로 '일본'과 '한국' 을 추앙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돈도 자원도 없는 나라의 유일한 성장모델이라고 믿었다(둘 다 선글라스를 좋아했고, 야당인사를 구속시키고, 언론사를 폐쇄했다). 그의 독재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과는 툭하면 날을 세웠다. 자원을 빼가면서 기술을 주지 않는 서방국가들이 아시아만의 성장모델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미국을 등에 업고 독재에 반기를 든 자신의 후계자(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를 '동성애'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2. 다섯번의 집권과 마이웨이

집권 후반기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말레이시아는 매년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 등 달러가 바닥난 나라들이 모두 IMF(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항복할 때도 그는 "서구 투기자본때문에 발생한 위기인데 왜 아시아인들이 책임을 지느냐"고 반발했다. IMF 처방과 반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폭락한 화폐가치를 '고정환율제'로 묶어 버렸다.

"환투기로 아시아인의 피를 빨아먹는 당신은 히틀러와 똑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1998년 마하티르, 조지 소로스와 설전을 벌이면서

'마하티르의 마이웨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말레이시아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다. 이듬해 가을에 열린 총선에서 그는 다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2003년 그는 다섯번의 집권을 뒤로하고 약속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국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여전했다. 그는 "물러난 뒤에도 뒷좌석의 운전자처럼 정부에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은퇴에 성공한 독재자'로 남을 수 있었다.

마하티르는 2018년 93세의 나이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2019년 방한 당시 문재인대통령과 정상회담후 환담하는 마하티르 총리  사진 연합
3. 93세에 재집권 그리고 다시 던진 승부수

2018년, 한때 자신이 밀어줬던 '나집 라작' 총리의 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마하티르는 ‘반(反)나집 연대’를 만들어 다시 총선에 도전했다. 국민들은 반 나집연대를 선택하며 또다시 마하티르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나이 93세. 마하티르는 그렇게 자신이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61년 집권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2020년, 재신임을 묻겠다며 총리직 사임 승부수를 던졌지만, 재신임에는 실패했다. 그는 올해 1월 세 차례나 심장병으로 입원했다. 위독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퇴원하면서 스스로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며 총선 불출마를 약속했다. 하지만 갑자기 '야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며 이번 총선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당선되면 무려 103세까지 의원직이 유지됐지만) 이변은 없었다. 이제 진짜 떠날 시간이 됐다.

자서전 앞에 선 마하티르. 사진 연합뉴스
마하티르는 젊은이들이 정치상황을 더 잘 이해한다며 투표연령을 18세로 낮춰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투표에서 처음으로 투표가능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600만 명의 젊은이들이 새로 유권자가 됐다. 하지만 이들은 97세의 마하티르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총선 패배는 1969년 이후 처음이자,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4. 꼬여버린 연정 대진표

연방제 입헌군주제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 9개주의 술탄(최고 통치자)이 5년 임기로 국왕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일종의 국왕순번제다. '양 디-뻐르뚜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 주인이신 분)이라 칭하는데, 말레이 연방의 상징적인 대표일 뿐이다. 국왕은 총선에서 과반을 얻은 당이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한다. 총리가 실질적인 국가 수반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 1위 정당(PH)과 2위 정당(PN)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 중소 정당과의 연정도 경우의 수가 복잡해졌다. 특히 PN에 속한 '범 말레이시안 이슬람당(PAS)'이 49석을 확보하는 이변을 보였다. PAS는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말레이시아를 추구한다. 이미 편의점에서 술 판매와 카지노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총선 이후 그래서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그래서 PN의 연정에서 총리가 나오면 말레이시아 정치는 종교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진보개혁정당 PH(희망연대)가 집권하면 다수인 이슬람 말레이족이 반발할 수있다. 연정의 경우의 수가 자꾸 꼬인다. 불확실성이 커진다. 총리 인선 이후에도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계속 될 것 같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국민들에게 SNS에 종교나 인종 관련 '도발적인' 언급을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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