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방역 직접 겪어보니…이게 ‘정밀 방역’이라고?

입력 2022.11.25 (07:01) 수정 2022.11.2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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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시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인가 이동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중국 베이징시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인가 이동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세요! 거부하면 경찰이 갈 겁니다."

자신을 방역 당국 관계자라고 밝힌 여성은 기자가 전화를 받자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지난 17일 탄 택시가 코로나19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다며 기자가 밀접 접촉자라고 말했습니다.

'응? 17일이라면 택시를 탄 적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잠시, 이 관계자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 합니다!"

■증거 내밀어도 '무조건 격리' 주장

'그 날 택시를 탄 적이 없다'는 설명을 이후 백번쯤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같은 말뿐이었습니다.

'일단은 집으로 가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면 24일 방역 당국이 나와서 PCR 검사를 한 뒤 결과가 음성이면 25일 집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3일 자가 격리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문제의 택시를 탔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차량 두 대의 번호를 알려주고, 이 차량들이 문제라고만 소리쳤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봉쇄된 베이징시 한 아파트 (출처 : 연합뉴스)코로나19 확산세로 봉쇄된 베이징시 한 아파트 (출처 : 연합뉴스)

무작정 같은 말만 소리치면서 반복하는 것도 황당했지만 화가 났던 것은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다는 17일에 택시를 타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며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3일 격리가 '과연 과학적인 방역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기자에게 방역 당국이 격리를 통보한 것은 23일 오후, 주장처럼 17일 감염자와 밀접 접촉을 했다면 이미 엿새가 흐른 뒤입니다. 그사이 기자는 2번 PCR 검사를 했고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방역 당국이 문에 달아놓은 감지기 (촬영: 이랑 베이징 특파원)방역 당국이 문에 달아놓은 감지기 (촬영: 이랑 베이징 특파원)

집에 돌아온 뒤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감지기'입니다. 격리 중인 사람이 집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문이 열리는 순간을 감지하는 기계입니다. 역시나 감지기계를 문 앞에 달아놓겠다는 사전 설명은 없었습니다.


'택시를 탄 적이 없다', '그건 알아서 스스로 증명하라'는 방역 당국과의 실랑이는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당국은 거주지 관리사무소를 통해 계속해서 지침을 내려보냈습니다. 하루 3번 이상 문을 열면 안 되며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으라는 등의 지침이었습니다.

■항의 포기하고 격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에는 거주지 관리사무소에서 격리 삭감 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3일 격리를 하는 것이 낫다는 회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비슷한 경우의 사람이 격리 삭감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5일 뒤에 나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는데 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는 신청 절차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질병통제센터에서 판정한 감염자 접촉 날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시해야 하는데, 회사 증명서와 당일 행적을 증명하는 자료 등을 내야 합니다. 최근 3번 핵산검사 결과 보고서도 필요했습니다. 당장 집으로 가서 격리해야 하는 와중에 회사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격리 삭감 신청을 해도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격리가 끝나는 상황, '더는 방법이 없겠구나'라고 포기하려고 할 때쯤 관리사무소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격리 안 하셔도 됩니다."

기자가 17일 탔던 승합차 정보, 갔던 곳에서 결제한 사진 등이 갑자기 설득력을 얻은 것인지, 도움을 청했던 중국인들이 중국 사정에 맞게 방역 당국에 설명을 잘했던 덕분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택시 두 대의 번호를 대며 같은 이유로 3일 격리를 통보받은 사람이 무려 6명이 더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기자와 함께 승합차를 탔던 사람들입니다. 이 6명은 방역 당국의 '똑같은 행태'를 겪은 뒤 집에서 격리 중입니다.

■'정밀 방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스템 오류였든 방역 당국의 실수였든 아니면 정말 밀접 접촉을 했든 간에, 당국의 전화를 받으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하던 것을 멈추고 무조건 집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 중국 베이징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기자뿐만 아니라 KBS 베이징지국 직원 3명이 23일과 24일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집으로 가서 격리 중입니다. 거주지역에서 감염자가 나왔으니 모두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집에서 대기하라는 겁니다.

봉쇄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PCR 검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봉쇄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PCR 검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런 식으로 감염자가 나오면 주거지를 봉쇄했다가 풀었다가 하는 조치가 반복되고 있는데, 중국은 최근 이걸 '정밀 방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같으면 확진자가 1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했지만, 11일 중국 국무원 코로나19 대응 합동 방역 통제기구가 과학·정밀방역을 하겠다고 고강도 방역을 일부 완화한 뒤부터는 확진자가 나온 동은 봉쇄해도 다른 동은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여길 수 있겠지만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임시 봉쇄 조치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3일 지났으니 봉쇄가 풀리나 싶지만, 또다시 감염자가 나오는 순간 기간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23일 기준 베이징시 하루 감염자 수가 1,600명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선제적'으로 주거 단지 전체를 봉쇄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퉁저우구 신화렌지야위앤 베이취 등이 대표적입니다. 감염자가 있는 곳만 선별 봉쇄하는 정밀 방역을 넘어서는 조치입니다. 주민들이 왜 전체 봉쇄를 하는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감염자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주민을 '잠재적 바이러스 유포자'로 보고 이동을 막고 있습니다.

또다시 '제로 코로나' 방역으로의 회귀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침에 따르라'는 중국식 방역은 이름만 바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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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5 07:01:44
    • 수정2022-11-25 07:14:56
    특파원 리포트
중국 베이징시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인가 이동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세요! 거부하면 경찰이 갈 겁니다."

자신을 방역 당국 관계자라고 밝힌 여성은 기자가 전화를 받자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지난 17일 탄 택시가 코로나19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다며 기자가 밀접 접촉자라고 말했습니다.

'응? 17일이라면 택시를 탄 적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잠시, 이 관계자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 합니다!"

■증거 내밀어도 '무조건 격리' 주장

'그 날 택시를 탄 적이 없다'는 설명을 이후 백번쯤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같은 말뿐이었습니다.

'일단은 집으로 가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면 24일 방역 당국이 나와서 PCR 검사를 한 뒤 결과가 음성이면 25일 집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3일 자가 격리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문제의 택시를 탔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차량 두 대의 번호를 알려주고, 이 차량들이 문제라고만 소리쳤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봉쇄된 베이징시 한 아파트 (출처 : 연합뉴스)
무작정 같은 말만 소리치면서 반복하는 것도 황당했지만 화가 났던 것은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다는 17일에 택시를 타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며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3일 격리가 '과연 과학적인 방역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기자에게 방역 당국이 격리를 통보한 것은 23일 오후, 주장처럼 17일 감염자와 밀접 접촉을 했다면 이미 엿새가 흐른 뒤입니다. 그사이 기자는 2번 PCR 검사를 했고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방역 당국이 문에 달아놓은 감지기 (촬영: 이랑 베이징 특파원)
집에 돌아온 뒤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감지기'입니다. 격리 중인 사람이 집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문이 열리는 순간을 감지하는 기계입니다. 역시나 감지기계를 문 앞에 달아놓겠다는 사전 설명은 없었습니다.


'택시를 탄 적이 없다', '그건 알아서 스스로 증명하라'는 방역 당국과의 실랑이는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당국은 거주지 관리사무소를 통해 계속해서 지침을 내려보냈습니다. 하루 3번 이상 문을 열면 안 되며 정해진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으라는 등의 지침이었습니다.

■항의 포기하고 격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에는 거주지 관리사무소에서 격리 삭감 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3일 격리를 하는 것이 낫다는 회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비슷한 경우의 사람이 격리 삭감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5일 뒤에 나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는데 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는 신청 절차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질병통제센터에서 판정한 감염자 접촉 날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시해야 하는데, 회사 증명서와 당일 행적을 증명하는 자료 등을 내야 합니다. 최근 3번 핵산검사 결과 보고서도 필요했습니다. 당장 집으로 가서 격리해야 하는 와중에 회사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격리 삭감 신청을 해도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격리가 끝나는 상황, '더는 방법이 없겠구나'라고 포기하려고 할 때쯤 관리사무소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격리 안 하셔도 됩니다."

기자가 17일 탔던 승합차 정보, 갔던 곳에서 결제한 사진 등이 갑자기 설득력을 얻은 것인지, 도움을 청했던 중국인들이 중국 사정에 맞게 방역 당국에 설명을 잘했던 덕분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택시 두 대의 번호를 대며 같은 이유로 3일 격리를 통보받은 사람이 무려 6명이 더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기자와 함께 승합차를 탔던 사람들입니다. 이 6명은 방역 당국의 '똑같은 행태'를 겪은 뒤 집에서 격리 중입니다.

■'정밀 방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스템 오류였든 방역 당국의 실수였든 아니면 정말 밀접 접촉을 했든 간에, 당국의 전화를 받으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하던 것을 멈추고 무조건 집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 중국 베이징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기자뿐만 아니라 KBS 베이징지국 직원 3명이 23일과 24일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집으로 가서 격리 중입니다. 거주지역에서 감염자가 나왔으니 모두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집에서 대기하라는 겁니다.

봉쇄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PCR 검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런 식으로 감염자가 나오면 주거지를 봉쇄했다가 풀었다가 하는 조치가 반복되고 있는데, 중국은 최근 이걸 '정밀 방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같으면 확진자가 1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했지만, 11일 중국 국무원 코로나19 대응 합동 방역 통제기구가 과학·정밀방역을 하겠다고 고강도 방역을 일부 완화한 뒤부터는 확진자가 나온 동은 봉쇄해도 다른 동은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여길 수 있겠지만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임시 봉쇄 조치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3일 지났으니 봉쇄가 풀리나 싶지만, 또다시 감염자가 나오는 순간 기간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23일 기준 베이징시 하루 감염자 수가 1,600명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선제적'으로 주거 단지 전체를 봉쇄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퉁저우구 신화렌지야위앤 베이취 등이 대표적입니다. 감염자가 있는 곳만 선별 봉쇄하는 정밀 방역을 넘어서는 조치입니다. 주민들이 왜 전체 봉쇄를 하는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감염자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주민을 '잠재적 바이러스 유포자'로 보고 이동을 막고 있습니다.

또다시 '제로 코로나' 방역으로의 회귀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침에 따르라'는 중국식 방역은 이름만 바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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