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군함도는 살기 좋은 곳” 도쿄 전시장 직접 가보니

입력 2022.1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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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기재하라'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나가시키현 군함도(하시마). 일본 정부는 군함도에서 있었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유네스코는 2021년 6월 현지 시찰 후 '전체 역사'(full history)에 대한 일본의 해석이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고,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유감'(strongly regrets)이란 표현과 함께 일본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냈습니다.

일본 총무성 제2청사 별관. 우측에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이 걸려 있다일본 총무성 제2청사 별관. 우측에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이 걸려 있다

2020년 3월 도쿄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왜곡의 장으로 활용돼 왔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전체 역사' 기재와 관련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을 보름여 앞두고(11월 14일) 전시장에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도쿄 신주쿠구에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입니다. 일본 총무성 제 2청사 별관 한 켠에 전시실을 만들어 외부에선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일반인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전시장에 들어갈 때도 다른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다시 한 번 기입해야 합니다.

전시장 내부에선 촬영도, 녹음도 금지돼 있습니다. 아래(사진) '연락처 카드'를 제출하니 전시장 입구의 직원이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말합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입장 시 날짜와 이름, 긴급연락처 등을 기재하는 ‘연락처 카드’산업유산정보센터 입장 시 날짜와 이름, 긴급연락처 등을 기재하는 ‘연락처 카드’

센터의 전시 공간은 크게 3개의 구역(메이지일본 산업혁명유산으로의 초대, 산업국가의 기적, 자료실)으로 나뉩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장 구성(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장 구성(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

관람객은 먼저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도입전시'와 '메인전시' 공간을 통과합니다. 일본의 산업화와 그에 기여한 인물, 산업유산의 개요 등에 대해 설명하고, 특히 "비서양 국가인 일본이 단기간에 산업혁명을 달성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한 팀당 두 시간가량의 관람 시간 중,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세 번째 공간인 자료실에 들어섰습니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공간입니다.

이 때부턴 자신이 84살의 군함도의 옛 주민이라고 소개한 가이드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관람객들은 먼저 쇼파에 앉아 설명을 듣게 되는데요. 그 정면에는 군함도의 옛 주민 16명의 대형 얼굴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관람객들 앞에 서서 '강제동원은 없었다' 혹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학대는 없었다'는 옛 주민들의 인터뷰 사례를 길게 소개했습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자료실’에 군함도 옛 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산업유산정보센터 ‘자료실’에 군함도 옛 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

현장에서 그대로 받아 적은 가이드의 말 일부를 수정이나 보탬없이 옮겨봅니다. 가이드가 옛 주민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있고, 본인의 생각을 말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 옛 주민들은 '군함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원래 섬의 이름인 '하시마(端島)'만 사용한다고 해서 이 또한 그대로 적습니다.

"1916년부터 조선인들이 몰려왔다. 생활이 어려워서 일본에서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왔다. 아버지가 먼저 오고, 다음 해에 아내를 부르고, 하시마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과 같이 공부했다"

"일본의 징용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인도 당시엔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조선인이 징용된 기간은 7개월에 불과하다. 그 전에는 자유 의지로 왔거나 정부나 회사의 일 때문에 온 것이다"

"강제로 동원돼서 학대와 차별을 받았다는 한국 측 피해자의 증언도 '1차 증언'이 아니다. 거짓말도 1000번 하면 진실이 된다"

"하시마에는 조선인이 경영하고 조선인들만 드나드는 술집도 있었다. 급여를 주지 않았다면 그런 게 가능했겠나"

"섬에 들어갈 때 조선인과 일본인은 운명공동체였다"


유네스코에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임박했는데도 여전히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운영에는 군함도의 옛 주민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요. 옛 주민 50명가량으로 구성된 '진실의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真実の歴史を追求する端島島民の会)'는 '군함도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겠다'며 관련 영상 제작을 위한 펀딩도 실시했습니다.

군함도 옛 주민들의 모임의 영상 제작을 위한 펀딩 결과군함도 옛 주민들의 모임의 영상 제작을 위한 펀딩 결과

최근 마감된 펀딩은 목표액 500만 엔을 168% 초과 달성해 844만 4천 엔(약 8천만 원)이 모인 걸로 집계됐습니다. 도민회가 작성한 펀딩을 위한 게시물의 제목은 '[군함도는 지옥섬이 아닙니다] 새로운 영상을 제작하겠습니다!' 입니다.

펀딩을 당부하는 게시물에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진두지휘한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올라와 있습니다.


도민회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조사해 온 내용과 증언 등을 영상으로 만들어 '일본의 근대화와 고도성장을 지탱한 하시마탄광', 또 '하시마처럼 살기 좋은 곳은 없었다'는 걸 일본 국내외에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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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7 12:02:13
    특파원 리포트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기재하라'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나가시키현 군함도(하시마). 일본 정부는 군함도에서 있었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유네스코는 2021년 6월 현지 시찰 후 '전체 역사'(full history)에 대한 일본의 해석이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고,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유감'(strongly regrets)이란 표현과 함께 일본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냈습니다.

일본 총무성 제2청사 별관. 우측에 산업유산정보센터 간판이 걸려 있다
2020년 3월 도쿄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왜곡의 장으로 활용돼 왔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전체 역사' 기재와 관련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을 보름여 앞두고(11월 14일) 전시장에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도쿄 신주쿠구에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입니다. 일본 총무성 제 2청사 별관 한 켠에 전시실을 만들어 외부에선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일반인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화나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전시장에 들어갈 때도 다른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다시 한 번 기입해야 합니다.

전시장 내부에선 촬영도, 녹음도 금지돼 있습니다. 아래(사진) '연락처 카드'를 제출하니 전시장 입구의 직원이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말합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입장 시 날짜와 이름, 긴급연락처 등을 기재하는 ‘연락처 카드’
센터의 전시 공간은 크게 3개의 구역(메이지일본 산업혁명유산으로의 초대, 산업국가의 기적, 자료실)으로 나뉩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장 구성(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
관람객은 먼저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도입전시'와 '메인전시' 공간을 통과합니다. 일본의 산업화와 그에 기여한 인물, 산업유산의 개요 등에 대해 설명하고, 특히 "비서양 국가인 일본이 단기간에 산업혁명을 달성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한 팀당 두 시간가량의 관람 시간 중,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세 번째 공간인 자료실에 들어섰습니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공간입니다.

이 때부턴 자신이 84살의 군함도의 옛 주민이라고 소개한 가이드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관람객들은 먼저 쇼파에 앉아 설명을 듣게 되는데요. 그 정면에는 군함도의 옛 주민 16명의 대형 얼굴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관람객들 앞에 서서 '강제동원은 없었다' 혹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학대는 없었다'는 옛 주민들의 인터뷰 사례를 길게 소개했습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자료실’에 군함도 옛 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홈페이지)
현장에서 그대로 받아 적은 가이드의 말 일부를 수정이나 보탬없이 옮겨봅니다. 가이드가 옛 주민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있고, 본인의 생각을 말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 옛 주민들은 '군함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원래 섬의 이름인 '하시마(端島)'만 사용한다고 해서 이 또한 그대로 적습니다.

"1916년부터 조선인들이 몰려왔다. 생활이 어려워서 일본에서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왔다. 아버지가 먼저 오고, 다음 해에 아내를 부르고, 하시마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과 같이 공부했다"

"일본의 징용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인도 당시엔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조선인이 징용된 기간은 7개월에 불과하다. 그 전에는 자유 의지로 왔거나 정부나 회사의 일 때문에 온 것이다"

"강제로 동원돼서 학대와 차별을 받았다는 한국 측 피해자의 증언도 '1차 증언'이 아니다. 거짓말도 1000번 하면 진실이 된다"

"하시마에는 조선인이 경영하고 조선인들만 드나드는 술집도 있었다. 급여를 주지 않았다면 그런 게 가능했겠나"

"섬에 들어갈 때 조선인과 일본인은 운명공동체였다"


유네스코에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임박했는데도 여전히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운영에는 군함도의 옛 주민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요. 옛 주민 50명가량으로 구성된 '진실의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真実の歴史を追求する端島島民の会)'는 '군함도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겠다'며 관련 영상 제작을 위한 펀딩도 실시했습니다.

군함도 옛 주민들의 모임의 영상 제작을 위한 펀딩 결과
최근 마감된 펀딩은 목표액 500만 엔을 168% 초과 달성해 844만 4천 엔(약 8천만 원)이 모인 걸로 집계됐습니다. 도민회가 작성한 펀딩을 위한 게시물의 제목은 '[군함도는 지옥섬이 아닙니다] 새로운 영상을 제작하겠습니다!' 입니다.

펀딩을 당부하는 게시물에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진두지휘한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올라와 있습니다.


도민회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조사해 온 내용과 증언 등을 영상으로 만들어 '일본의 근대화와 고도성장을 지탱한 하시마탄광', 또 '하시마처럼 살기 좋은 곳은 없었다'는 걸 일본 국내외에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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