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줄게” “안 받아”…‘예산 증액’ 거절한 이 부처는?

입력 2022.11.29 (15: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해마다 11월이면 국회에선 '쩐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확보하려는 정부 부처와, 이를 깎으려는 국회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올해는 국회의 증액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는 정부 부처가 등장했습니다.

■ "예산 더 주겠다" vs "안 받겠다"

지난 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예산을 늘려주겠다"는 일부 여가위 소속 위원들의 제안에, 여가부는 "정부안을 유지해 달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회의록을 보면, 여가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55억 원 늘어난 1조 5,505억 원으로 편성했습니다. 총액만 보면 늘었지만, 주요 사업들은 올해보다 삭감된 것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청년성평등문화사업 추진단인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이 올해보다 4억 5천만 원 감액됐습니다.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은 앞서 지난 8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며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고, 여가부가 하루 만에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깎인 내년 예산을 올해 수준으로 증액하자"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이런 말을 꺼냅니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저희가 올해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재검토 결정을 내렸고, 내년부터는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으로 개편해서 추진할 사항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저희는 '원안 유지'를 희망합니다.

■ 솔직한, 너무나 솔직한 여가부

여가부의 '셀프 삭감 예산'은 또 있습니다.

내년도 '성별영향평가 운영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3억 300만 원 감액됐고, '성인지 예결산 운영'도 올해에 비해 2억 2천만 원이 줄었습니다.

"이를 올해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여가부는 또다시 '원안 유지'를 주장했는데요. 그런데 여가부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저희 전체 사업 중 '재정사업 자율평가' 대상 사업들이 있었고, 그 해에 '미흡'을 받게 되면 대략 한 10% 정도를 구조조정해서 예산 편성을 하겠다는 게 정부의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이기는 합니다.

최연숙 위원 : 지금까지의 관례지요, 그게?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예.

각 부처에는 자체적으로 사업을 평가하는 '재정사업 자율평가'라는 제도가 있는데, 여기서 '미흡'을 받은 사업들에 대해선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해 감액하는 게 관례라는 설명입니다.

다른 부처들도 그렇게 했을까요?

나라살림연구소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각 부처에서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들에 대해 지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는 비율은 10개 중 1~2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부처가 '비목 변경' 등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하려는 속성을 보이는 겁니다.

이렇게 여가부가 자진해서 예산을 깎겠다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선교 위원 : 예결위에서 되고 안 되는 것은 예결위 문제이고 우리 여성가족부가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증액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반대할 필요가 없는데……

최승재 위원 : 기초적인 예산은 확대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위에서 예산을 좀 증액을 해서, 나중에 정부 예산처에서 또 예결위에서 논의는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자세, 인식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증액이 타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야당 의원들도 부처가 폐지되고 통합된다 하더라도 예산이 제대로 있어야 역할을 한다며 적극적인 예산 확보를 당부했습니다.

이원택 위원 : 여가부 장관이나 차관이나 고충은 이해하겠어요, 기재부에서 '미흡' 판정을 냈기 때문에. 그런데 예산 심의 과정에서 좀 적극적 수용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저희가 요청을 하면 적극적 수용 자세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상황이 이쯤 되자, 여가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산 증액' 제안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유정주 소위원장 : 차관님, 이 내용은 위원님들 간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요청 건에 대해서 증액을 하고자 하는데, 여가부 동의하시나요?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위원님들이 모두 그렇게 말씀을 주시면…

이원택 위원 : 차관님, 그냥 저희 핑계 대세요. 저희 핑계 대시면 되잖아요.

■ 장·차관 업무추진비는 '예외'

정부 예산 절감에 앞장선 것처럼 보이는 여가부, 그러나 증액을 요청한 항목도 있었습니다.

바로 장·차관 업무추진비입니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 : 이 부분은 저희는 정부 원안 유지를 희망합니다. 조금 더 보충 설명을 드리면 관서 업무추진비는 별도로 장·차관 업추비로만 구분돼 있는 게 아니라 저희 기관 전체의 행사라든가 회의비라든가 또 여러 가지 민생 현장 방문이라든가 이렇게 운영을 하고 있어서, 저희 여가부 예산은 정부 예산 중에서도 가장 적은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산을 삭감하시면 사실상 실제 저희가 사업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편 여가부는 이른바 '셀프 예산 삭감' 논란에 대해 어제(28일) 정부 공식 홈페이지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의 '사실은 이렇습니다' 코너에 해명 글을 올렸습니다.

여가부는 "국가재정법 제85조의 8에 따라 '재정사업 자율평가'를 실시하고, 미흡 판정을 받은 사업 예산을 일부 삭감해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면서 "타 부처에서도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를 예산 편성안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안에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 성폭력통합지원센터 아동 영상지원, 인신매매지역 지원센터 예산 등이 신규로 편성됐으며, 한부모가족 지원대상 및 아이 돌보미 지원시간 등을 확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더 줄게” “안 받아”…‘예산 증액’ 거절한 이 부처는?
    • 입력 2022-11-29 15:12:48
    취재K

해마다 11월이면 국회에선 '쩐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확보하려는 정부 부처와, 이를 깎으려는 국회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올해는 국회의 증액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는 정부 부처가 등장했습니다.

■ "예산 더 주겠다" vs "안 받겠다"

지난 1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예산을 늘려주겠다"는 일부 여가위 소속 위원들의 제안에, 여가부는 "정부안을 유지해 달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회의록을 보면, 여가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55억 원 늘어난 1조 5,505억 원으로 편성했습니다. 총액만 보면 늘었지만, 주요 사업들은 올해보다 삭감된 것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청년성평등문화사업 추진단인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이 올해보다 4억 5천만 원 감액됐습니다.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은 앞서 지난 8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며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고, 여가부가 하루 만에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깎인 내년 예산을 올해 수준으로 증액하자"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이런 말을 꺼냅니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저희가 올해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재검토 결정을 내렸고, 내년부터는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으로 개편해서 추진할 사항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저희는 '원안 유지'를 희망합니다.

■ 솔직한, 너무나 솔직한 여가부

여가부의 '셀프 삭감 예산'은 또 있습니다.

내년도 '성별영향평가 운영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3억 300만 원 감액됐고, '성인지 예결산 운영'도 올해에 비해 2억 2천만 원이 줄었습니다.

"이를 올해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여가부는 또다시 '원안 유지'를 주장했는데요. 그런데 여가부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저희 전체 사업 중 '재정사업 자율평가' 대상 사업들이 있었고, 그 해에 '미흡'을 받게 되면 대략 한 10% 정도를 구조조정해서 예산 편성을 하겠다는 게 정부의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이기는 합니다.

최연숙 위원 : 지금까지의 관례지요, 그게?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예.

각 부처에는 자체적으로 사업을 평가하는 '재정사업 자율평가'라는 제도가 있는데, 여기서 '미흡'을 받은 사업들에 대해선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해 감액하는 게 관례라는 설명입니다.

다른 부처들도 그렇게 했을까요?

나라살림연구소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각 부처에서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들에 대해 지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는 비율은 10개 중 1~2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부처가 '비목 변경' 등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하려는 속성을 보이는 겁니다.

이렇게 여가부가 자진해서 예산을 깎겠다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선교 위원 : 예결위에서 되고 안 되는 것은 예결위 문제이고 우리 여성가족부가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증액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반대할 필요가 없는데……

최승재 위원 : 기초적인 예산은 확대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위에서 예산을 좀 증액을 해서, 나중에 정부 예산처에서 또 예결위에서 논의는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자세, 인식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증액이 타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야당 의원들도 부처가 폐지되고 통합된다 하더라도 예산이 제대로 있어야 역할을 한다며 적극적인 예산 확보를 당부했습니다.

이원택 위원 : 여가부 장관이나 차관이나 고충은 이해하겠어요, 기재부에서 '미흡' 판정을 냈기 때문에. 그런데 예산 심의 과정에서 좀 적극적 수용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저희가 요청을 하면 적극적 수용 자세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상황이 이쯤 되자, 여가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산 증액' 제안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유정주 소위원장 : 차관님, 이 내용은 위원님들 간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요청 건에 대해서 증액을 하고자 하는데, 여가부 동의하시나요?

이기순 여가부 차관 : 위원님들이 모두 그렇게 말씀을 주시면…

이원택 위원 : 차관님, 그냥 저희 핑계 대세요. 저희 핑계 대시면 되잖아요.

■ 장·차관 업무추진비는 '예외'

정부 예산 절감에 앞장선 것처럼 보이는 여가부, 그러나 증액을 요청한 항목도 있었습니다.

바로 장·차관 업무추진비입니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 : 이 부분은 저희는 정부 원안 유지를 희망합니다. 조금 더 보충 설명을 드리면 관서 업무추진비는 별도로 장·차관 업추비로만 구분돼 있는 게 아니라 저희 기관 전체의 행사라든가 회의비라든가 또 여러 가지 민생 현장 방문이라든가 이렇게 운영을 하고 있어서, 저희 여가부 예산은 정부 예산 중에서도 가장 적은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산을 삭감하시면 사실상 실제 저희가 사업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편 여가부는 이른바 '셀프 예산 삭감' 논란에 대해 어제(28일) 정부 공식 홈페이지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의 '사실은 이렇습니다' 코너에 해명 글을 올렸습니다.

여가부는 "국가재정법 제85조의 8에 따라 '재정사업 자율평가'를 실시하고, 미흡 판정을 받은 사업 예산을 일부 삭감해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면서 "타 부처에서도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를 예산 편성안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안에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 성폭력통합지원센터 아동 영상지원, 인신매매지역 지원센터 예산 등이 신규로 편성됐으며, 한부모가족 지원대상 및 아이 돌보미 지원시간 등을 확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