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또 울린 ‘그들만의 빚잔치’

입력 2022.12.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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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또 울린 '편파 변제'>…KBS 단독 보도
수만 명 예금자 피해 복구 대신, 땅 팔아 '200% 수익금' 빚잔치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 논란된 'K고 인맥 카르텔' 또 드러나
지방 공기업 사장도 부당하게 돈 챙겨…KBS 보도 뒤 결국 '사퇴'


■ '부산저축은행 파산' 그리고 '캄코시티 사태'

2005년, 부동산개발업체 대표 이 모 씨는 부산저축은행에서 2천3백억여 원을 빌려 캄보디아로 갑니다. 그리고 이 돈을 밑천 삼아 수도 프놈펜에 116만㎡짜리 땅을 삽니다. 캄보디아에 한국형 신도시를 짓는, 이른바 '캄코시티'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려 20억 6천만 달러짜리(당시 환율 2조 3천억 원 규모) 초대형 개발 사업은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6단계로 계획된 사업은 1단계도 달성하지 못한 채 중단됐고, '실제 분양률' 23.2%에 그치며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사업에 돈을 댄 부산저축은행은 2010년 9월부터 원리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출 채권의 부실 심화를 이유로 2011년 2월 영업정지, 2012년 8월엔 끝내 파산하고 맙니다. 은행에 돈을 맡긴 3만 8천 명 가슴에 비수가 꽂힌 순간이었습니다.

2011년 2월 17일. 영업정지로 굳게 닫힌 부산저축은행에 몰려든 예금자2011년 2월 17일. 영업정지로 굳게 닫힌 부산저축은행에 몰려든 예금자

부산저축은행 예금자 피해 복구에 써야 할 돈, 누군가 챙겼다

그런데 당시 이 씨는 '캄코시티'와 함께 또 다른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캄보디아 해변 휴양지 시하누크빌에 리조트를 짓는 사업인데, 마찬가지로 땅부터 샀습니다. 79만㎡ 규모입니다. 하지만 리조트 사업 역시 좌초되며 이 땅은 팔게 됩니다.

이때가 2016년 11월입니다. 이미 저축은행 피해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채권의 변제를, 그러니까 이 씨의 회사가 빚을 갚아주길 고대하던 때입니다. 리조트 터 매각 대금은 이들 모든 채권자에게 고루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몇몇 채권자'가 나눠 챙긴 사실을 KBS가 확인했습니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파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투자 원금 30억 원을 한 푼 손해 없이 되찾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축은행 피해자 눈물은 '남 일'인 양, 85억 원을 수익금 명목으로 또 나눠 챙겼습니다. 채권자 간 평등을 깨고 '편파 변제'가 이뤄진 겁니다.

<채권자 평등의 원칙>
동일한 채무자에게 여러 사람의 채권자가 있을 때는 채권 발생의 원인이나 시효의 전후와 관계없이 모든 채권자는 채무자의 총재산(總財産)으로부터 균등하게 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원칙


■ '몇몇 채권자'는 누구?… 무슨 수로 수만 명 제치고 돈 챙겼나?

부산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는 이들 '몇몇 채권자'가 부당하게 돈을 챙긴 사실을 확인하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취재진은 재판 기록과 부동산가압류 이력, 한국과 캄보디아 현지 법인들을 차례로 쫓아 이들의 명단을 입수하고 관계를 추적했습니다.

'편파 변제'로 돈을 챙긴 이들은 모두 11명이었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은 가족, 임직원, 친구 등 이 씨를 중심으로 얽힌 일종의 공동체였습니다. 내부 정보를 잘 아는 특수 관계인끼리 부당하게 돈을 챙긴 정황이 진해지는 대목인데, 그 방법이 악의적입니다.

부산저축은행에 영업정지 명령이 떨어진 건 2011년 2월 17일. 이들은 딱 하루 전인 2월 16일, 자신들 이름을 쓰고 '질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고 채권 압류가 들어올 걸 미리 알고, 남들보다 먼저 돈을 챙길 장치를 서둘러 끼워 넣은 겁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 이들은 법적 조치를 예상하고 편파적인 질권 설정 계약을 맺었다.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 이들은 법적 조치를 예상하고 편파적인 질권 설정 계약을 맺었다.

■ 10년 만에 또 등장한 'K고 인맥'

KBS는 이들 관계 속 특별한 고리 하나를 찾았습니다. '학연'입니다. 편파 변제 사건의 피고들 가운데 3명이 이 씨와 광주 K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K고 인맥은 과거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났을 때도 여러 비리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된 적 있습니다.

이 씨의 캄보디아 사업에 대규모 대출을 주도한 부산저축은행 핵심 관계자부터 은행의 주요 경영진, 대주주,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된 인물까지 모두 K고 인맥을 고리 삼아 엮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파 변제 사건 피고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쫓아 정리한 취재진이 K고 인맥으로 구분해놨던 그는, 서경석 전북개발공사 사장이었습니다.

‘K고 인맥’은 부산저축은행 금융 비리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됐다.‘K고 인맥’은 부산저축은행 금융 비리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됐다.

■ 부당하게 돈 챙긴 공기업 사장…KBS 보도 뒤 '사퇴'

취재 결과, 당시 캄보디아 리조트 사업에 1억 원을 투자한 서경석 사장은 편파 변제를 통해 원금을 회수하고 2억 원가량을 수익금 취지로 또 챙겼습니다. 공의를 따져 개발 사업을 이끌고, 사회적 책임을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공기업 수장이 금융 비리 사태가 낳은 피해자 몫을 부당하게 챙겼던 겁니다.

취재 요청을 거부했던 서 사장은 KBS 보도가 나간 뒤 하루 만에 만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그는 법원에서 편파 변제가 인정돼 원금을 반환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쪽 사업에 관여한 적 없고, 편파 변제 과정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억울하다던 서 사장은, 하지만 또다시 하루 만에 "저로 인한 논란은 더이상 전라북도와 전북개발공사를 위해 불필요하다"는 글을 남기고 사퇴했습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곧바로 입장을 내고 서 사장의 사직 의사를 수용한다며 우려를 끼친 것을 사과했습니다.


■ 법원 "편파 변제 원금 반환하라"…수익금 반환 소송은 진행 중

법원은 11명의 특수 관계인이 부당하게 자금을 회수한 행위가 인정된다며 원금을 반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 체결한 편파적 질권 설정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30억 원의 원금은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저축은행 피해자 등 정당한 채권자들의 몫을 가로챈 이 '편파 변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금 말고, 이들이 수익금 명목으로 따로 챙긴 85억 원을 회수하려는 소송이 지금 진행 중입니다. 피고들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버티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부산저축은행 고통은 남 일?…전북개발공사 사장 ‘편파 변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171

[단독] 서경석 사장 ‘편파 변제’…‘학연 통해 가능했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182

피해자 수만 명 울린 ‘편파 변제’…책임 회피·변명 일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8327

공공 개발 수장 “부적격”…‘자진사퇴론’ 비등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8334

KBS ‘편파 변제’ 보도…서경석 개발공사 사장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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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또 울린 ‘그들만의 빚잔치’
    • 입력 2022-12-02 15:18:55
    취재K
<strong>&lt;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또 울린 '편파 변제'&gt;…KBS 단독 보도</strong><br />수만 명 예금자 피해 복구 대신, <strong>땅 팔아 </strong><strong>'200% 수익금' 빚잔치</strong><br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 논란된 <strong>'K고 인맥 카르텔'</strong> 또 드러나<br /><strong>지방 공기업 사장도 부당하게 돈 챙겨…KBS 보도 뒤 결국 '사퇴'</strong>

■ '부산저축은행 파산' 그리고 '캄코시티 사태'

2005년, 부동산개발업체 대표 이 모 씨는 부산저축은행에서 2천3백억여 원을 빌려 캄보디아로 갑니다. 그리고 이 돈을 밑천 삼아 수도 프놈펜에 116만㎡짜리 땅을 삽니다. 캄보디아에 한국형 신도시를 짓는, 이른바 '캄코시티'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려 20억 6천만 달러짜리(당시 환율 2조 3천억 원 규모) 초대형 개발 사업은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6단계로 계획된 사업은 1단계도 달성하지 못한 채 중단됐고, '실제 분양률' 23.2%에 그치며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사업에 돈을 댄 부산저축은행은 2010년 9월부터 원리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출 채권의 부실 심화를 이유로 2011년 2월 영업정지, 2012년 8월엔 끝내 파산하고 맙니다. 은행에 돈을 맡긴 3만 8천 명 가슴에 비수가 꽂힌 순간이었습니다.

2011년 2월 17일. 영업정지로 굳게 닫힌 부산저축은행에 몰려든 예금자
부산저축은행 예금자 피해 복구에 써야 할 돈, 누군가 챙겼다

그런데 당시 이 씨는 '캄코시티'와 함께 또 다른 개발 사업을 벌였습니다. 캄보디아 해변 휴양지 시하누크빌에 리조트를 짓는 사업인데, 마찬가지로 땅부터 샀습니다. 79만㎡ 규모입니다. 하지만 리조트 사업 역시 좌초되며 이 땅은 팔게 됩니다.

이때가 2016년 11월입니다. 이미 저축은행 피해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채권의 변제를, 그러니까 이 씨의 회사가 빚을 갚아주길 고대하던 때입니다. 리조트 터 매각 대금은 이들 모든 채권자에게 고루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몇몇 채권자'가 나눠 챙긴 사실을 KBS가 확인했습니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파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투자 원금 30억 원을 한 푼 손해 없이 되찾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축은행 피해자 눈물은 '남 일'인 양, 85억 원을 수익금 명목으로 또 나눠 챙겼습니다. 채권자 간 평등을 깨고 '편파 변제'가 이뤄진 겁니다.

<채권자 평등의 원칙>
동일한 채무자에게 여러 사람의 채권자가 있을 때는 채권 발생의 원인이나 시효의 전후와 관계없이 모든 채권자는 채무자의 총재산(總財産)으로부터 균등하게 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원칙


■ '몇몇 채권자'는 누구?… 무슨 수로 수만 명 제치고 돈 챙겼나?

부산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는 이들 '몇몇 채권자'가 부당하게 돈을 챙긴 사실을 확인하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취재진은 재판 기록과 부동산가압류 이력, 한국과 캄보디아 현지 법인들을 차례로 쫓아 이들의 명단을 입수하고 관계를 추적했습니다.

'편파 변제'로 돈을 챙긴 이들은 모두 11명이었습니다. 취재 결과 이들은 가족, 임직원, 친구 등 이 씨를 중심으로 얽힌 일종의 공동체였습니다. 내부 정보를 잘 아는 특수 관계인끼리 부당하게 돈을 챙긴 정황이 진해지는 대목인데, 그 방법이 악의적입니다.

부산저축은행에 영업정지 명령이 떨어진 건 2011년 2월 17일. 이들은 딱 하루 전인 2월 16일, 자신들 이름을 쓰고 '질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고 채권 압류가 들어올 걸 미리 알고, 남들보다 먼저 돈을 챙길 장치를 서둘러 끼워 넣은 겁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 이들은 법적 조치를 예상하고 편파적인 질권 설정 계약을 맺었다.
■ 10년 만에 또 등장한 'K고 인맥'

KBS는 이들 관계 속 특별한 고리 하나를 찾았습니다. '학연'입니다. 편파 변제 사건의 피고들 가운데 3명이 이 씨와 광주 K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K고 인맥은 과거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났을 때도 여러 비리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된 적 있습니다.

이 씨의 캄보디아 사업에 대규모 대출을 주도한 부산저축은행 핵심 관계자부터 은행의 주요 경영진, 대주주,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된 인물까지 모두 K고 인맥을 고리 삼아 엮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파 변제 사건 피고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쫓아 정리한 취재진이 K고 인맥으로 구분해놨던 그는, 서경석 전북개발공사 사장이었습니다.

‘K고 인맥’은 부산저축은행 금융 비리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됐다.
■ 부당하게 돈 챙긴 공기업 사장…KBS 보도 뒤 '사퇴'

취재 결과, 당시 캄보디아 리조트 사업에 1억 원을 투자한 서경석 사장은 편파 변제를 통해 원금을 회수하고 2억 원가량을 수익금 취지로 또 챙겼습니다. 공의를 따져 개발 사업을 이끌고, 사회적 책임을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공기업 수장이 금융 비리 사태가 낳은 피해자 몫을 부당하게 챙겼던 겁니다.

취재 요청을 거부했던 서 사장은 KBS 보도가 나간 뒤 하루 만에 만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그는 법원에서 편파 변제가 인정돼 원금을 반환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쪽 사업에 관여한 적 없고, 편파 변제 과정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억울하다던 서 사장은, 하지만 또다시 하루 만에 "저로 인한 논란은 더이상 전라북도와 전북개발공사를 위해 불필요하다"는 글을 남기고 사퇴했습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곧바로 입장을 내고 서 사장의 사직 의사를 수용한다며 우려를 끼친 것을 사과했습니다.


■ 법원 "편파 변제 원금 반환하라"…수익금 반환 소송은 진행 중

법원은 11명의 특수 관계인이 부당하게 자금을 회수한 행위가 인정된다며 원금을 반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하루 전 체결한 편파적 질권 설정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30억 원의 원금은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저축은행 피해자 등 정당한 채권자들의 몫을 가로챈 이 '편파 변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금 말고, 이들이 수익금 명목으로 따로 챙긴 85억 원을 회수하려는 소송이 지금 진행 중입니다. 피고들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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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경석 사장 ‘편파 변제’…‘학연 통해 가능했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182

피해자 수만 명 울린 ‘편파 변제’…책임 회피·변명 일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8327

공공 개발 수장 “부적격”…‘자진사퇴론’ 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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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편파 변제’ 보도…서경석 개발공사 사장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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