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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미래로] 축사에서 찾은 희망… 귀농 탈북민의 꿈
입력 2022.12.03 (08:40) 수정 2022.12.03 (09:05)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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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탈북민이란 말 앞엔 흔히 ‘목숨을 걸고 탈북하신’ 이란 말을 덧붙이게 되는데요.

이렇게 어렵게 넘어오신 분들의 우리 땅 정착기를 듣다 보면 대개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네, 이런 사연을 가진 여성 탈북민, 영농인 한 분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이하영 리포터, 이 분 만나러 멀리 김제까지 다녀오셨다고요?

[기자]

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북 김제에서 한우를 키우는, 축산 영농인 이순실 씨입니다.

축사엘 가보니까요, 120여 마리나 되는 소들을 키우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앵커]

소가 이렇게 많으니 부농 소릴 들을 법도 한데요, 어려움도 많았겠죠?

[기자]

네, 탈북민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외로움도 있었고요.

또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남편분과 함께 이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있었는데요.

이순실 씨의 도전과 꿈 이야기, 지금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리포트]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녘, 굵은 빗소리 사이로 아침을 깨우는 우렁찬 울음이 들려옵니다.

이내 축사에 불이 켜지고, 부부의 분주한 손길이 이어지는데요.

오늘은 정성껏 키운 소 두 마리를 경매장으로 보내는 날입니다.

["지금 소 경매 나가요~ (소 몇 번이여?) 32583!"]

생계를 위해 흘린 땀이 결실을 맺는 순간, 하지만 만감이 교차합니다.

정든 소를 떠나보내려니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송아지들 나갈 때는 기분 좋은데요, 엄마들이 나갈 때는요, 최대한으로 안 보려고 해요. 마음 아파요. 명이 거기까지라고 하지 않아, 신랑이."]

정착 12년 차인 순실 씨는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3년째 한우 축사를 운영 중인데요.

부부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소들을 돌보는 일로 채워집니다.

막 출산을 기다리는 어미 소의 새끼를 받는 일도 순실 씨의 몫입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오늘은 새끼 낳을 거지? 새끼 낳아주라, 고마워! 송아지들 봐라~ 얘네들 이렇게 예뻐."]

영양제 주사도 직접 놓고 육아일지까지 쓰며 꼼꼼히 돌보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송아지를 키우는 데서는 육아니까, 송아지도 아기잖아요. 아기니까 금방 낳아서 키우니까 육아일지라고 했어요."]

이날은 밤새 내린 비로 비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완전 여기 물바다네. 어떡하냐 너희들, 이렇게 얼굴이 새까매서. 나 이것들 문제다, 어떡하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역시 남편으로, 축사 운영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렇게 1년 365일 붙어 지낸다는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한번 말해서 안 들으면 큰 소리 나와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일하다 보면 큰 소리 좀 나죠, 왜 안 나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큰 소리는 당신이 치지, 내가 쳐?"]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큰 소리 내가 친디야, 우리 아저씨는 그저 좋다 주의야."]

탈북해서 정착, 결혼해서 귀농, 그리고 한우를 키우는 축사 사장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최근 남북 하나재단이 주최한 발표회에서 성공적인 정착 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나와 20년을 중국에서 살다 북송돼 2년간 감옥에 갔다 온 뒤 안정적인 삶을 위해 한국에 온 순실 씨의 첫 직업은 간호조무사.

당시 마흔여섯 나이로,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병원에 취직하게 된 건데요.

6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병원장이 해외로 나가면서 새 직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나 연애와 이별을 반복했고, 2018년 혼인 신고를 마쳤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좀 화끈하고 그냥 성격이 그냥 좋더라고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외형상도 그렇고 마음상도 그렇고. 이만하면은 사람이 일단 깨끗하고 술 안 먹고 담배 안 먹고 하니까 일단 실수 같은 건 없고 여자들이 그래도 바라는 그것이 한 가지 로망이잖아요."]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젖소를 키운 경험이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목축업 얘기를 꺼냈고, 그렇게 순실 씨 부부는 연고지가 아니지만 축산업이 발달한 전북 김제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나를 믿고 따라오는 게 고마운 점이죠. 가진 것도 없고 특별하게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믿고 따라오니까."]

열심히 일한 만큼 조금씩 성과도 보이고, 축산에 자신감이 붙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내 밥 먹으니까 아침에 조금 늦어도 누가 큰 소리 하는 사람 없고 누구 터치를 안 받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좋은 거예요."]

하지만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탈북민이 연고지도 아닌 낯선 곳에서 경험 없이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실제로 현장에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소를 내보내게 된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송아지가 다 자랄 때까지 꼬박 3년을 기다린 끝에 이제 막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건데요.

워낙 사업 밑천이 없다 보니 남북하나재단에서 종잣돈을 받았고, 여기에 대출까지 받아 지금껏 근근이 꾸려온 겁니다.

소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한우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 부부의 근심은 여느 한우 농가와 똑같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돈 생각 않고 얘들만 그냥 키우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키우라면 좋겠는데. 돈이 연관이 되니까 수익이 많이 나면 괜찮은데 지금 수익이 안 나니까."]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부부 둘이 소를 키우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인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체력적으로 힘든 일들이 많잖아요. 힘들다고 느끼시거나 이런 적은 없으세요?) 힘들죠. 그래도 내 일이니까 내가 무조건 해야 된다는 그 의지로 지금도 이러고 해요. 어떨 땐 싫어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허리가 너무 아프실 것 같아요.) 허리 아파요. 허리 아파서 근육 이완제도 맞아요. 주사 맞아가면서 해요."]

긍정적인 순실 씨지만, 탈북민이라는 점은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감정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내가 부모 없고 형제 없고 돈은 없고. 옆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공간도 아직 마련이 안 됐고 내 능력껏 잘 할 수도 없고 누가 지원해주면서 응원해주는 사람도 적고 하니까 그것이 많이 힘들어요."]

여기에 가끔씩 접하는 탈북민 사망 소식은 순실 씨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고향이 같은 북한 분들이잖아요. 진짜 명복을 빌죠, 아까워요. 살려고 왔는데 여기서 그 귀한 목숨 끊는다는 것이 그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그것이 얼마나 진짜 말로 표현 못 했으면 그 길까지 선택했을까 싶어요."]

탈북민이면 처할 수 있는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조금만 문 두드렸으면 손 내밀었으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럴까요."]

오늘도 당찬 마음가짐의 3년 차 한우 축사 사장 순실 씨는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치유농원을 만들어 힘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순실 씨.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마음의 치유를 하는 치유농원 같은 거 우리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어르신들 오셔서 그냥 앉아서 드시면서 꽃 보고 다 모든 걸 잊고 잠시나마 그렇게 해주고 싶은 소망이 저의 꿈이에요."]

북녘 고향을 떠난 지 올해로 30년, 평생의 동반자 남편과 함께 타향살이의 설움 속에도 미래를 가꾸는 순실 씨의 일상이, 내년엔 좀 더 다정하기를 바라봅니다.
  • [통일로 미래로] 축사에서 찾은 희망… 귀농 탈북민의 꿈
    • 입력 2022-12-03 08:40:03
    • 수정2022-12-03 09:05:48
    남북의 창
[앵커]

탈북민이란 말 앞엔 흔히 ‘목숨을 걸고 탈북하신’ 이란 말을 덧붙이게 되는데요.

이렇게 어렵게 넘어오신 분들의 우리 땅 정착기를 듣다 보면 대개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네, 이런 사연을 가진 여성 탈북민, 영농인 한 분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이하영 리포터, 이 분 만나러 멀리 김제까지 다녀오셨다고요?

[기자]

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북 김제에서 한우를 키우는, 축산 영농인 이순실 씨입니다.

축사엘 가보니까요, 120여 마리나 되는 소들을 키우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앵커]

소가 이렇게 많으니 부농 소릴 들을 법도 한데요, 어려움도 많았겠죠?

[기자]

네, 탈북민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외로움도 있었고요.

또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남편분과 함께 이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있었는데요.

이순실 씨의 도전과 꿈 이야기, 지금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리포트]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녘, 굵은 빗소리 사이로 아침을 깨우는 우렁찬 울음이 들려옵니다.

이내 축사에 불이 켜지고, 부부의 분주한 손길이 이어지는데요.

오늘은 정성껏 키운 소 두 마리를 경매장으로 보내는 날입니다.

["지금 소 경매 나가요~ (소 몇 번이여?) 32583!"]

생계를 위해 흘린 땀이 결실을 맺는 순간, 하지만 만감이 교차합니다.

정든 소를 떠나보내려니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송아지들 나갈 때는 기분 좋은데요, 엄마들이 나갈 때는요, 최대한으로 안 보려고 해요. 마음 아파요. 명이 거기까지라고 하지 않아, 신랑이."]

정착 12년 차인 순실 씨는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3년째 한우 축사를 운영 중인데요.

부부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소들을 돌보는 일로 채워집니다.

막 출산을 기다리는 어미 소의 새끼를 받는 일도 순실 씨의 몫입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오늘은 새끼 낳을 거지? 새끼 낳아주라, 고마워! 송아지들 봐라~ 얘네들 이렇게 예뻐."]

영양제 주사도 직접 놓고 육아일지까지 쓰며 꼼꼼히 돌보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송아지를 키우는 데서는 육아니까, 송아지도 아기잖아요. 아기니까 금방 낳아서 키우니까 육아일지라고 했어요."]

이날은 밤새 내린 비로 비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완전 여기 물바다네. 어떡하냐 너희들, 이렇게 얼굴이 새까매서. 나 이것들 문제다, 어떡하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역시 남편으로, 축사 운영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렇게 1년 365일 붙어 지낸다는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한번 말해서 안 들으면 큰 소리 나와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일하다 보면 큰 소리 좀 나죠, 왜 안 나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큰 소리는 당신이 치지, 내가 쳐?"]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큰 소리 내가 친디야, 우리 아저씨는 그저 좋다 주의야."]

탈북해서 정착, 결혼해서 귀농, 그리고 한우를 키우는 축사 사장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최근 남북 하나재단이 주최한 발표회에서 성공적인 정착 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나와 20년을 중국에서 살다 북송돼 2년간 감옥에 갔다 온 뒤 안정적인 삶을 위해 한국에 온 순실 씨의 첫 직업은 간호조무사.

당시 마흔여섯 나이로,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병원에 취직하게 된 건데요.

6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병원장이 해외로 나가면서 새 직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나 연애와 이별을 반복했고, 2018년 혼인 신고를 마쳤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좀 화끈하고 그냥 성격이 그냥 좋더라고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외형상도 그렇고 마음상도 그렇고. 이만하면은 사람이 일단 깨끗하고 술 안 먹고 담배 안 먹고 하니까 일단 실수 같은 건 없고 여자들이 그래도 바라는 그것이 한 가지 로망이잖아요."]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함께 젖소를 키운 경험이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목축업 얘기를 꺼냈고, 그렇게 순실 씨 부부는 연고지가 아니지만 축산업이 발달한 전북 김제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나를 믿고 따라오는 게 고마운 점이죠. 가진 것도 없고 특별하게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믿고 따라오니까."]

열심히 일한 만큼 조금씩 성과도 보이고, 축산에 자신감이 붙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내 밥 먹으니까 아침에 조금 늦어도 누가 큰 소리 하는 사람 없고 누구 터치를 안 받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좋은 거예요."]

하지만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탈북민이 연고지도 아닌 낯선 곳에서 경험 없이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실제로 현장에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소를 내보내게 된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송아지가 다 자랄 때까지 꼬박 3년을 기다린 끝에 이제 막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건데요.

워낙 사업 밑천이 없다 보니 남북하나재단에서 종잣돈을 받았고, 여기에 대출까지 받아 지금껏 근근이 꾸려온 겁니다.

소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한우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 부부의 근심은 여느 한우 농가와 똑같습니다.

[김창현/남편/한우 축사 운영 : "돈 생각 않고 얘들만 그냥 키우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키우라면 좋겠는데. 돈이 연관이 되니까 수익이 많이 나면 괜찮은데 지금 수익이 안 나니까."]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부부 둘이 소를 키우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인데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체력적으로 힘든 일들이 많잖아요. 힘들다고 느끼시거나 이런 적은 없으세요?) 힘들죠. 그래도 내 일이니까 내가 무조건 해야 된다는 그 의지로 지금도 이러고 해요. 어떨 땐 싫어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허리가 너무 아프실 것 같아요.) 허리 아파요. 허리 아파서 근육 이완제도 맞아요. 주사 맞아가면서 해요."]

긍정적인 순실 씨지만, 탈북민이라는 점은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감정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내가 부모 없고 형제 없고 돈은 없고. 옆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공간도 아직 마련이 안 됐고 내 능력껏 잘 할 수도 없고 누가 지원해주면서 응원해주는 사람도 적고 하니까 그것이 많이 힘들어요."]

여기에 가끔씩 접하는 탈북민 사망 소식은 순실 씨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고향이 같은 북한 분들이잖아요. 진짜 명복을 빌죠, 아까워요. 살려고 왔는데 여기서 그 귀한 목숨 끊는다는 것이 그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그것이 얼마나 진짜 말로 표현 못 했으면 그 길까지 선택했을까 싶어요."]

탈북민이면 처할 수 있는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조금만 문 두드렸으면 손 내밀었으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럴까요."]

오늘도 당찬 마음가짐의 3년 차 한우 축사 사장 순실 씨는 이렇게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치유농원을 만들어 힘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순실 씨.

[이순실/탈북민/한우 축사 운영 : "마음의 치유를 하는 치유농원 같은 거 우리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어르신들 오셔서 그냥 앉아서 드시면서 꽃 보고 다 모든 걸 잊고 잠시나마 그렇게 해주고 싶은 소망이 저의 꿈이에요."]

북녘 고향을 떠난 지 올해로 30년, 평생의 동반자 남편과 함께 타향살이의 설움 속에도 미래를 가꾸는 순실 씨의 일상이, 내년엔 좀 더 다정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