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값, 오늘이 제일 쌉니다” 악순환의 나팔

입력 2022.12.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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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에는 늘 “집을 사야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은 “이러다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다하다 A 전문가는 공중파 방송이 만든 유튜브 경제프로그램에 나와 “집은 어쨌든 빨리 살수록 좋다”고 말한다. “제 동생이 지금 집을 사지 않는다면 알밤을 한 대 쥐어 박겠어욧!”

지난해 11월 부동산 전문가 77%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세값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분석한 전문가가 더 많았다. 사진 모 경제신문지난해 11월 부동산 전문가 77%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세값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분석한 전문가가 더 많았다. 사진 모 경제신문

1. 늘 ‘집을 사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그들의 말을 듣고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수많은 소비자들은 이제 시세 하락과 급등한 이자부담을 모두 짊어져야 한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이들의 ‘고통지수’나 ‘통곡비용’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말한다. “집값은 오를 수 밖에 없고, 또 오른다니까요!”

우리는 라면물의 끓는 온도나 건물이 지진에 버틸 수 있는 임계점, 얼룩말의 평균수명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은 정말로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가격예측 게임에서 사실 정답은 오직 하나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주택이 너무 부족해서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니까요!”

“아파트값 오늘이 제일 싸다”…한 경제신문의 지난해 8월 기사. 신문 캡처“아파트값 오늘이 제일 싸다”…한 경제신문의 지난해 8월 기사. 신문 캡처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특징이 있다. 일사천리 달변이다. 진행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이 술술 나온다. 예전에 뭐 했던 사람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무슨 그럴듯하고 달달한 이름의 연구소장이다. 자신이 유리한 통계만 참 잘 가져다 설명을 한다.

무슨 무슨 교수와 제법 공신력있는 직함을 가진 전문가들도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들은 늘 토건업계와 함께 한다. 이들은 대형 건설사의 사외이사가 되거나, 건설사가 출자한 연구소가 마련한 컨퍼런스에서 발제를 하거나, 대도시의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한다.

수억 원씩 하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도 이들의 몫이다. 이 모든 게 대형 건설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의 주장이 토건업계와 수십년째 일치하는 것이 우연이기만 한 걸까.

그들은 오늘도 점심을 함께하며 “집값은 계속 오를 거예요. 공급이 부족하니까요, 오를 수 밖에 없답니다“ 는 믿음을 공유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오염된 주장은 오늘도 검증에 게으른 우리 언론에 등장해 주택 공급을 부추긴다. 그런데 진짜 공급이 많이 부족한 것일까? 그럼 우리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왜 그토록 집을 팔려고만 했을까.

2. 주택공급론의 허와 실

지난 6월부터 주택 가격이 급락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쏙 사라졌다. 갑자기 수도권에 수십만 채가 들어선 것일까. 사람은 그대로인데 집은 늘 ‘부족했다’ ‘넘치다’를 반복한다. 사실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었을 뿐이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지난해 5백 만호가 부족하다던 미국의 주택시장은 집값이 하락 반전하자 지금 또 빈집 2천만호 설이 고개를 든다)

흔히들 서울에는 해마다 2~5만가구의 아파트가 새로 공급된다고 한다. 여기서 공급이란 사업승인일까, 분양일까, 입주일까? 정확히 한해 몇 가구가 순증했는지 계산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파트뿐 아니라 전체 주택의 분양 수치와 준공 수치, 입주수치를 찾아야한다. 여기에 또 멸실된 주택 수를 빼야한다.

서울시 통계가 다르고 한국감정원 통계가 다르다. 부동산 업계와 언론은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수치만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진짜 서울의 아파트는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예를들어 중앙일보는 지난 정부의 임기 동안 서울의 주택 공급이 절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 정부 들어 주택수가 적지 않게 늘었다.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서울 주택 준공물량이 연평균 8만가구로 2011~2016년 연평균(7만4000가구)보다 8%가량 더 많다. 같은 기간 아파트는 3만2000여 가구에서 4만4000가구로 36% 늘었다]
- 2022년 1월 2일 중앙일보


부족한 공급이 집값을 올렸다는 주장은 일부분만 맞는 이야기다. 예를들어 MB 정부 5년간 서울에는 32만가구가 공급(인허가 기준)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38만 가구가 공급됐다. 그런데 왜 MB정부때는 집값이 계속 내렸을까. 왜 그때는 다수의 전문가들과 언론이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큰일”이라고 매일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서울 시민들이 잠깐 지방에 살다 왔을까...(이건 대한민국 정부 통계다. 지금 e나라지표 주택건설인허가지표/주택건설인허가 실적을 들어가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자들은 정작 이런 지표보다는 직원수가 5명 정도인 무슨 무슨 부동산 업체 통계를 인용한다)


혹자는 주택 공급은 늘었는데 가구수가 더 늘면서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신규가구는 대부분 1~2인 가구다. 이들이 진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을까(1인가구의 78%가 연소득 3천만 원 이하다). 진짜 공급부족이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일까?

혹자는 주택공급론덕분에 공급이 많이 늘어 이제서야 집값이 잡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2만여 가구)와 내년(3만여 가구)에 유독 낮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줄어서 그렇다. 공급은 (인간의 마음에 비하면)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주택공급이 멈추면 수익도 멈추는 토건업계에선 1)주택이 너무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2)문제가 심각하니 3) 여러 규제를 다 풀어서 4) 주택을 더 공급하자고 해야한다. 이 논리는 언론을 통해 어떻게 부풀려질까.

3. 전세주택은 왜 갑자기 부족해졌을까?

예를 들어 전세시장은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없다. ‘나도 부자가 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가격에 끼어들 여지가 매우 작다. 그러니 전셋값은 ‘장기적으로는’ 오직 수급이 결정한다. 그런데 주택이 부족하니 전셋집도 부족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전셋값이 오르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따라온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비교적 넉넉했던 서울의 전세 주택은 2015년부터 갑자기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 규제가 주택 공급을 가로막기 때문에 규제를 흔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세계약갱신청구권’도 결국 서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해야 한다. “전월세 혼란, 2년 뒤엔 대란!” “2022년 전세값 폭등 불보듯 뻔한데...” 같은 기사 수천 건이 쏟아졌다. 지금 전세시장은 어떤가?
그 주장을 한 전문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압권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2년뒤 전세를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한 대치 A아파트 집주인은 미리 전세값을 5천만원 더 올리기로 했다” 같은 기사다. 이게 가능하다면 “내년 반도체 시장 불황을 예상한 삼성전자, D램 반도체 가격 미리 10% 올리기로!”도 가능해야 한다. 이런 시장경제는 없다.


한 언론의 부동산 시장 분석 인터뷰. 지난해 7월과 올 11월의 전망이 정확히 반대다. 심지어 같은 언론사의 같은 기자가 쓴 기사다. 사진 기사 캡처한 언론의 부동산 시장 분석 인터뷰. 지난해 7월과 올 11월의 전망이 정확히 반대다. 심지어 같은 언론사의 같은 기자가 쓴 기사다. 사진 기사 캡처

‘공급부족’론은 이렇게 토건업계의 본격적인 이익으로 연결된다. 우연일까? 그래서 재건축 안전진단도 풀고 분양가상한제(나는 개인적으로 이 제도에 반대한다)도 풀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풀고, 용적률도 풀어주자고 한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을 옥죄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주인의 임대료를 공공위원회가 정해주는 베를린시의 사례나, 캘리포니아에서는 20억 주택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가 1년 5천만 원에 육박하거나, 프랑스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계약이 끝난 세입자도 쫓아낼 수 없다(트레브 이베흐날)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 나라는 단지 날이 춥다는 이유로 계약이 끝난 세입자마저 쫓아낼 수 없다.

런던에서 92만파운드(14억원) 이상 주택을 구입하는 다주택자는 취득세를 얼마쯤 낼까? 정답은 13%다. 14억 주택을 구입하면 1억8천만원의 취득세를 낸다)

4. 악순환의 나팔을 부는 사람들

그래서 잠실 주공5단지나 대치 은마 아파트의 용적률도 올리고 층수 제한도 풀기로 했다. 그럼 그동안 용적률 상향이나 층고 제한 해제 없이 재건축을 한 주민들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종상향이나 층고 제한 해제는 사실상 조합원 한 명 한 명에게 막대한 현금을 쥐어주는 정책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왜 대치 은마아파트는 높이 올려주고 신림동 00아파트는 안올려주는가? 왜 망우동의 5층 연립은 7층으로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는가?

인구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이렇게 계속 마천루로 가득찬 높고 빽빽한 서울을 만들면 이제 머지않아 천안과 목포와 포항과 삼척의 주택에는 누가 살 것인가? (‘아파트공화국’의 저자 쥴레리 발레조가 한강변 아파트를 보고 처음엔 북한이 침략하면 넘어뜨리는 거대한 철골구조물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디스아바바나 방콕처럼 마구마구 층고를 높여주는 게 좋다면 도대체 왜 선진국 전문가들은 이 좋은 것을 외면하고 용적률을 꼭꼭 누르고 있는 것일까. 이들 나라는 제대로된 도시 전문가가 없을까?

세계 어느 대도시나 주택이 부족하다. 그래도 선진국 대부분은 수도의 일정 지역만 상업화와 고층화를 허용한다. 그래야 지방이 살고, 수도의 과밀화를 막을 수 있다(인구밀도 세계 최강인 뭄바이같은 도시도 수십년간 용적률을 133%로 규제했다. 이해는 안되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용적률을 풀어도 때마다 되풀이되는 부동산 투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막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 정원을 2배로 늘리면 진짜 우리의 사교육 열풍은 좀 수그러들까.

지난해 8월 한 경제신문의 부동산 기사.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라”…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사진 기사 캡처지난해 8월 한 경제신문의 부동산 기사.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라”…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사진 기사 캡처

또 집값이 올랐다 내린다. 모든 자산시장이 그렇듯 시장에 흥분이 가시고 가격이 다시 안정되면, 뒤에 들어온 10명의 자산이 앞에 선제적으로 들어온 한두 명의 부유하고 전문적인 계층으로 이전된다. 쉽게말해 자산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나면 힘든 사람들의 돈이 넉넉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이전된다. 늘 그렇다. 이 악순환을 알면서 앞장서 나팔을 불어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서울 집값 오늘이 제일 쌉니다“를 외친 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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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값, 오늘이 제일 쌉니다” 악순환의 나팔
    • 입력 2022-12-06 07:01:08
    취재K

부동산 시장에는 늘 “집을 사야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은 “이러다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다하다 A 전문가는 공중파 방송이 만든 유튜브 경제프로그램에 나와 “집은 어쨌든 빨리 살수록 좋다”고 말한다. “제 동생이 지금 집을 사지 않는다면 알밤을 한 대 쥐어 박겠어욧!”

지난해 11월 부동산 전문가 77%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세값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분석한 전문가가 더 많았다. 사진 모 경제신문
1. 늘 ‘집을 사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그들의 말을 듣고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수많은 소비자들은 이제 시세 하락과 급등한 이자부담을 모두 짊어져야 한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이들의 ‘고통지수’나 ‘통곡비용’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말한다. “집값은 오를 수 밖에 없고, 또 오른다니까요!”

우리는 라면물의 끓는 온도나 건물이 지진에 버틸 수 있는 임계점, 얼룩말의 평균수명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은 정말로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가격예측 게임에서 사실 정답은 오직 하나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주택이 너무 부족해서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니까요!”

“아파트값 오늘이 제일 싸다”…한 경제신문의 지난해 8월 기사. 신문 캡처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특징이 있다. 일사천리 달변이다. 진행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이 술술 나온다. 예전에 뭐 했던 사람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무슨 그럴듯하고 달달한 이름의 연구소장이다. 자신이 유리한 통계만 참 잘 가져다 설명을 한다.

무슨 무슨 교수와 제법 공신력있는 직함을 가진 전문가들도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들은 늘 토건업계와 함께 한다. 이들은 대형 건설사의 사외이사가 되거나, 건설사가 출자한 연구소가 마련한 컨퍼런스에서 발제를 하거나, 대도시의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한다.

수억 원씩 하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도 이들의 몫이다. 이 모든 게 대형 건설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의 주장이 토건업계와 수십년째 일치하는 것이 우연이기만 한 걸까.

그들은 오늘도 점심을 함께하며 “집값은 계속 오를 거예요. 공급이 부족하니까요, 오를 수 밖에 없답니다“ 는 믿음을 공유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오염된 주장은 오늘도 검증에 게으른 우리 언론에 등장해 주택 공급을 부추긴다. 그런데 진짜 공급이 많이 부족한 것일까? 그럼 우리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왜 그토록 집을 팔려고만 했을까.

2. 주택공급론의 허와 실

지난 6월부터 주택 가격이 급락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쏙 사라졌다. 갑자기 수도권에 수십만 채가 들어선 것일까. 사람은 그대로인데 집은 늘 ‘부족했다’ ‘넘치다’를 반복한다. 사실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었을 뿐이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지난해 5백 만호가 부족하다던 미국의 주택시장은 집값이 하락 반전하자 지금 또 빈집 2천만호 설이 고개를 든다)

흔히들 서울에는 해마다 2~5만가구의 아파트가 새로 공급된다고 한다. 여기서 공급이란 사업승인일까, 분양일까, 입주일까? 정확히 한해 몇 가구가 순증했는지 계산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파트뿐 아니라 전체 주택의 분양 수치와 준공 수치, 입주수치를 찾아야한다. 여기에 또 멸실된 주택 수를 빼야한다.

서울시 통계가 다르고 한국감정원 통계가 다르다. 부동산 업계와 언론은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수치만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진짜 서울의 아파트는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예를들어 중앙일보는 지난 정부의 임기 동안 서울의 주택 공급이 절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 정부 들어 주택수가 적지 않게 늘었다.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서울 주택 준공물량이 연평균 8만가구로 2011~2016년 연평균(7만4000가구)보다 8%가량 더 많다. 같은 기간 아파트는 3만2000여 가구에서 4만4000가구로 36% 늘었다]
- 2022년 1월 2일 중앙일보


부족한 공급이 집값을 올렸다는 주장은 일부분만 맞는 이야기다. 예를들어 MB 정부 5년간 서울에는 32만가구가 공급(인허가 기준)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38만 가구가 공급됐다. 그런데 왜 MB정부때는 집값이 계속 내렸을까. 왜 그때는 다수의 전문가들과 언론이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큰일”이라고 매일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서울 시민들이 잠깐 지방에 살다 왔을까...(이건 대한민국 정부 통계다. 지금 e나라지표 주택건설인허가지표/주택건설인허가 실적을 들어가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기자들은 정작 이런 지표보다는 직원수가 5명 정도인 무슨 무슨 부동산 업체 통계를 인용한다)


혹자는 주택 공급은 늘었는데 가구수가 더 늘면서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신규가구는 대부분 1~2인 가구다. 이들이 진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을까(1인가구의 78%가 연소득 3천만 원 이하다). 진짜 공급부족이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일까?

혹자는 주택공급론덕분에 공급이 많이 늘어 이제서야 집값이 잡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2만여 가구)와 내년(3만여 가구)에 유독 낮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줄어서 그렇다. 공급은 (인간의 마음에 비하면)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주택공급이 멈추면 수익도 멈추는 토건업계에선 1)주택이 너무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2)문제가 심각하니 3) 여러 규제를 다 풀어서 4) 주택을 더 공급하자고 해야한다. 이 논리는 언론을 통해 어떻게 부풀려질까.

3. 전세주택은 왜 갑자기 부족해졌을까?

예를 들어 전세시장은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없다. ‘나도 부자가 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가격에 끼어들 여지가 매우 작다. 그러니 전셋값은 ‘장기적으로는’ 오직 수급이 결정한다. 그런데 주택이 부족하니 전셋집도 부족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전셋값이 오르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따라온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비교적 넉넉했던 서울의 전세 주택은 2015년부터 갑자기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 규제가 주택 공급을 가로막기 때문에 규제를 흔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세계약갱신청구권’도 결국 서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해야 한다. “전월세 혼란, 2년 뒤엔 대란!” “2022년 전세값 폭등 불보듯 뻔한데...” 같은 기사 수천 건이 쏟아졌다. 지금 전세시장은 어떤가?
그 주장을 한 전문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압권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2년뒤 전세를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한 대치 A아파트 집주인은 미리 전세값을 5천만원 더 올리기로 했다” 같은 기사다. 이게 가능하다면 “내년 반도체 시장 불황을 예상한 삼성전자, D램 반도체 가격 미리 10% 올리기로!”도 가능해야 한다. 이런 시장경제는 없다.


한 언론의 부동산 시장 분석 인터뷰. 지난해 7월과 올 11월의 전망이 정확히 반대다. 심지어 같은 언론사의 같은 기자가 쓴 기사다. 사진 기사 캡처
‘공급부족’론은 이렇게 토건업계의 본격적인 이익으로 연결된다. 우연일까? 그래서 재건축 안전진단도 풀고 분양가상한제(나는 개인적으로 이 제도에 반대한다)도 풀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풀고, 용적률도 풀어주자고 한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을 옥죄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주인의 임대료를 공공위원회가 정해주는 베를린시의 사례나, 캘리포니아에서는 20억 주택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가 1년 5천만 원에 육박하거나, 프랑스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계약이 끝난 세입자도 쫓아낼 수 없다(트레브 이베흐날)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 나라는 단지 날이 춥다는 이유로 계약이 끝난 세입자마저 쫓아낼 수 없다.

런던에서 92만파운드(14억원) 이상 주택을 구입하는 다주택자는 취득세를 얼마쯤 낼까? 정답은 13%다. 14억 주택을 구입하면 1억8천만원의 취득세를 낸다)

4. 악순환의 나팔을 부는 사람들

그래서 잠실 주공5단지나 대치 은마 아파트의 용적률도 올리고 층수 제한도 풀기로 했다. 그럼 그동안 용적률 상향이나 층고 제한 해제 없이 재건축을 한 주민들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종상향이나 층고 제한 해제는 사실상 조합원 한 명 한 명에게 막대한 현금을 쥐어주는 정책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왜 대치 은마아파트는 높이 올려주고 신림동 00아파트는 안올려주는가? 왜 망우동의 5층 연립은 7층으로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는가?

인구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이렇게 계속 마천루로 가득찬 높고 빽빽한 서울을 만들면 이제 머지않아 천안과 목포와 포항과 삼척의 주택에는 누가 살 것인가? (‘아파트공화국’의 저자 쥴레리 발레조가 한강변 아파트를 보고 처음엔 북한이 침략하면 넘어뜨리는 거대한 철골구조물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디스아바바나 방콕처럼 마구마구 층고를 높여주는 게 좋다면 도대체 왜 선진국 전문가들은 이 좋은 것을 외면하고 용적률을 꼭꼭 누르고 있는 것일까. 이들 나라는 제대로된 도시 전문가가 없을까?

세계 어느 대도시나 주택이 부족하다. 그래도 선진국 대부분은 수도의 일정 지역만 상업화와 고층화를 허용한다. 그래야 지방이 살고, 수도의 과밀화를 막을 수 있다(인구밀도 세계 최강인 뭄바이같은 도시도 수십년간 용적률을 133%로 규제했다. 이해는 안되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용적률을 풀어도 때마다 되풀이되는 부동산 투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막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 정원을 2배로 늘리면 진짜 우리의 사교육 열풍은 좀 수그러들까.

지난해 8월 한 경제신문의 부동산 기사.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라”…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사진 기사 캡처
또 집값이 올랐다 내린다. 모든 자산시장이 그렇듯 시장에 흥분이 가시고 가격이 다시 안정되면, 뒤에 들어온 10명의 자산이 앞에 선제적으로 들어온 한두 명의 부유하고 전문적인 계층으로 이전된다. 쉽게말해 자산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나면 힘든 사람들의 돈이 넉넉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이전된다. 늘 그렇다. 이 악순환을 알면서 앞장서 나팔을 불어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서울 집값 오늘이 제일 쌉니다“를 외친 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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