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도 못할 예산 타가는 의원님부터 멈춰주세요!

입력 2022.1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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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제일 중요한 예산'이 불용(不用)?

국회 입법과 정책개발 예산이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국회가 법 만들기 위해서 세미나를 열거나 공청회를 여는 데 쓸 비용을 이 예산으로 집행합니다. 소규모 연구 용역도 진행합니다. 전문가에 의뢰하거나 자체 조사 인력을 동원해 연구하는 활동입니다. 국회사무처에서는 '국회 예산 중 사실 제일 중요한 예산'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 예산,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이어 집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6억 원이 배정되었는데 49억여 원, 65% 집행에 그쳤습니다. 올해는 더 저조합니다. 66억 원이 배정되었는데 7월까지 불과 16억 원 집행했습니다. 집행률은 25%에 불과합니다. 국회 측이 설명한 집행 부진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언론·시민단체 지적 등에 따른 보수적 집행> 표현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국회사무처에 물어봤습니다. 애매한 답이 돌아옵니다. 2018년 언론 보도 영향이란 얘기였습니다. 찾아봤습니다.

언론 지적은 <뉴스타파> 등의 보도였습니다. 당시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 등과 인터넷 언론매체 뉴스타파는 150여 명의 국회의원이 500만 원 이하 소규모 정책연구용역 지출 항목을 은밀히 쓰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보좌진에게 3건, 1,220만 원의 연구비를 준 것처럼 한 뒤 되돌려 받은 의혹을 받았습니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600만 원을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가 되돌려 받았단 의혹을 샀습니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에 8번에 걸쳐 4,000만 원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의혹을 받습니다. 전·현직 인턴, 보좌관, 아르바이트, 지인 등에 맡긴 의심받는 집행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표절이나 베끼기, 복사해 붙여넣기 연구도 수없이 발견됐습니다. 아예 연구 내용 자체를 비공개로 해 알 수 없는 연구도 많았습니다.

문제 행태가 보도되자 의원들은 "연구비 환수나 사비 출연을 통한 세비 반환"을 약속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는 의원들의 이런 세비 집행에 대해 "이른바 연구비 깡을 한 건데, 국민 세금을 빼돌린 명백한 사기"라고 소리 높였습니다. 이후 연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등 관련 국회 집행규정은 까다로워졌습니다.

다시 말해, <언론·시민단체 지적 등에 따른 보수적 집행>은 '잘못된 연구비 집행 관행 등이 지적당하자 관련 예산을 아예 안 썼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한 국회 보좌진은 "사무처에서 증빙하라고 할 때 기준 자체가 좀 늘었고, 보좌진 단계에서 이미 많이 좀 조심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습니다. "감시한다고 해서 예산을 쓰질 못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요. 그동안 돈을 엉터리로 써왔단 얘기가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오히려 10억 원 늘었습니다.

■ 언론이 '비판'할수록 의원은 '치적 홍보' 열 올려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은 안개 속이지만, 어쨌든 내년 예산안은 곧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벌어질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의원들의 '치적 홍보'입니다. "저희 지역구에 예산 폭탄을 내렸습니다."라거나 "일꾼인 내가 해냈다"는 의정 보고서가 쏟아질 겁니다.


언론은 비판합니다만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홍보가 됩니다. 지역구에선 '언론 비판을 무릅쓰고 용감히 일한 의원'이라고 홍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 의원들이 홍보하지 못할 '예산 보도'는 불가능할까

취재진은 고민스럽습니다. 국회 통과과정에서 의원이 '힘써서 예산 타가는 문화'는 지적하면 의원들의 홍보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의원들이 즐겁지 않고 불편할 지적이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 시민운동단체 활동가들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힘 있는 의원이 미는 예산은 어지간히 억지 예산이 아니면 막기 힘들다', 또 '정부 입장에선 증액해줘도 못 쓸 예산이 눈에 보인다, 그러면 오히려 더 마음 편하게 준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의원은 홍보만 하면 되고, 공무원은 회수될 것으로 기대하는 무늬만 증액, 현수막 증액'이 해마다 벌어진단 얘깁니다.

이걸 검증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당초 예산안과 국회 통과 예산을 비교했습니다. 2020년과 21년 예산을 대상으로 살펴봤습니다. 분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교통부 소관 예산으로 한정했습니다.

단순히 증액 자체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또 의원님들의 홍보수단이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국회 증액이 되었는데 집행이 부진한 예산으로 보도 범위를 좁혔습니다. <국회증액 집행부진 예산>입니다. 한편에선 지역구민 기만행위이고, 다른 한편에선 국가예산의 기회비용을 늘리는 행위입니다.

■ <국토부, 문체부 소관 국회 증액>, 사실은 할 필요 없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 모두 207개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약 11조 8천억 원이었습니다. 6천7백억 원가량이 국회에서 늘어났는데, 쓰이지 않은 예산이 두 배가 넘는 1조 5천억 원에 이릅니다. 국회 증액 규모가 6천억 원대인데, 불용예산이 두 배가 넘는다는 건 국회에서 증액하지 않았어도 수천억 원을 못 썼을 것이란 얘깁니다. 증액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례1. 대구산업선
대구지역 산업단지를 지나는 국가철도사업인 대구 산업선 사업에는 2019년 12월 국회에서 10억 원이 증액되어 99억 원이 반영됐습니다. 2020년 12월에도 역시 국회에서 20억 원이 증액되어 164억 원이 반영됐습니다. 그런데 이 예산은 한 푼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애초에 쓸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현재 대구 산업선은 턴키 사업(설계와 시공 일괄 사업)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본설계 자체는 내년(2023년) 3월 종료 예정이나 확실치 않습니다. 기본설계가 끝나도 예산 집행은 불가능합니다. 실시설계를 해야 합니다. 국토부는 '실시설계에는 보통 1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이 실시설계 뒤 착공에 들어가야 사업자에게 설계비를 줄 수 있습니다. 실시설계는 빨라야 2024년에야 끝납니다. 다시 말하면 2024년 정도까지는 예산 집행을 못합니다.

결국 '쓸 수 없는 예산에다가 국회에서 증액까지 한 셈'입니다. 증액 직후 지역구 추경호, 김상훈 의원(국민의 힘)이 '숙원사업 예산을 증액했다'는 지역 언론 보도가 다수 나왔습니다. 추경호 의원은 당시 의정 보고서를 통해 "달성 발전 예산 폭탄" 사례로 이 대구 산업선 예산 164억 원을 들었습니다.

# 사례2. 태릉-구리광역 도로건설
올해 태릉 구리 간 광역도로 건설비 38억 원은 국회에서 전액 신규 증액됐습니다. 언론은 지역구 윤호중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확보한 예산으로 홍보했고, 윤 의원도 스스로 "해냈습니다!"라며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이 돈도 올해 한 푼도 못 썼습니다.

편성된 예산은 '보상비와 공사비'. 앞선 대구산업선과 마찬가지로 이 돈도 애초에 쓸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설계가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보완설계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총사업비를 협의해야 하고 그 뒤에나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공사는 시작도 안 했기 때문에 올해 집행될 예산은 거의 없습니다.

내년이 되어 실시설계를 할 때나 예산은 사용될 겁니다. 그 내년 예산도 32억 원 정도만 반영되어 있습니다. 국토부는 '원래 사업 첫 해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예산을 많이 집행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른바 '실세 급' 의원의 예를 둘만 들었지만, 이런 '무늬만 증액'은 한 둘이 아닙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증액된 것도 실제로 쓰이지는 못하고 있는 거예요. 홍보하기 위해서 현수막을 붙이기 위한 현수막 증액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거죠." 라고 설명합니다.


■의원들의 현수막 증액을 중단하라

이런 국회 증액 예산, '쪽지 예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국회의 '민원성' 예산 증액을 표현하는 말인데, 국회에선 '쪽지 예산'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물리적으로 쪽지를 쓰지 않는단 건데, 취재해보니 겉으론 그래 보이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지역구 예산 증액은 서면 질의라는 공식 절차를 거칩니다. 그러나 말은 '공식'인데 누가, 왜 증액을 요청했는지를 국민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비공개된다는 얘깁니다.

이유를 설명할 때 '소소위'라는 익숙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지역구 예산 증액은 공식 협의가 아닌 비공식 협의체 '소소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참석자가 예결위원장, 예결위 여야 간사, 기재부 장·차관 정도입니다. 회의 내용도, 기록도 남지 않는 회의입니다.


시민단체인 나라 살림연구소가 분석을 해보니 올해 국회 증액 예산 8조 9천억 원 중, 공식 예결위 회의를 통해 확정된 건 0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회 증액'은 모두 비공개로(소소위를 거치면서) 증액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바뀌지 않는 관행입니다. 예산이 증액된 과정이 공개돼야, 시비를 따져볼 수 있을 텐데 공개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KBS가 데이터로 살펴보았듯, 이렇게 증액된 민원성 예산, 실제로는 쓰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최소한의 설명을 요구하여야 할 차례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료 공개 역시 다시 한번 강조할 부분입니다. 비공개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당장 그게 힘들다면 추후에라도 확인할 수 있게 기록이라도 남겨야 합니다. '못 쓸 예산 타가고, 현수막 거는' 구태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올 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을 더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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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지도 못할 예산 타가는 의원님부터 멈춰주세요!
    • 입력 2022-12-07 07:00:24
    취재K

■ '국회에서 제일 중요한 예산'이 불용(不用)?

국회 입법과 정책개발 예산이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국회가 법 만들기 위해서 세미나를 열거나 공청회를 여는 데 쓸 비용을 이 예산으로 집행합니다. 소규모 연구 용역도 진행합니다. 전문가에 의뢰하거나 자체 조사 인력을 동원해 연구하는 활동입니다. 국회사무처에서는 '국회 예산 중 사실 제일 중요한 예산'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핵심 예산,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이어 집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6억 원이 배정되었는데 49억여 원, 65% 집행에 그쳤습니다. 올해는 더 저조합니다. 66억 원이 배정되었는데 7월까지 불과 16억 원 집행했습니다. 집행률은 25%에 불과합니다. 국회 측이 설명한 집행 부진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언론·시민단체 지적 등에 따른 보수적 집행> 표현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국회사무처에 물어봤습니다. 애매한 답이 돌아옵니다. 2018년 언론 보도 영향이란 얘기였습니다. 찾아봤습니다.

언론 지적은 <뉴스타파> 등의 보도였습니다. 당시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 등과 인터넷 언론매체 뉴스타파는 150여 명의 국회의원이 500만 원 이하 소규모 정책연구용역 지출 항목을 은밀히 쓰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보좌진에게 3건, 1,220만 원의 연구비를 준 것처럼 한 뒤 되돌려 받은 의혹을 받았습니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600만 원을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가 되돌려 받았단 의혹을 샀습니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에 8번에 걸쳐 4,000만 원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의혹을 받습니다. 전·현직 인턴, 보좌관, 아르바이트, 지인 등에 맡긴 의심받는 집행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표절이나 베끼기, 복사해 붙여넣기 연구도 수없이 발견됐습니다. 아예 연구 내용 자체를 비공개로 해 알 수 없는 연구도 많았습니다.

문제 행태가 보도되자 의원들은 "연구비 환수나 사비 출연을 통한 세비 반환"을 약속했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는 의원들의 이런 세비 집행에 대해 "이른바 연구비 깡을 한 건데, 국민 세금을 빼돌린 명백한 사기"라고 소리 높였습니다. 이후 연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등 관련 국회 집행규정은 까다로워졌습니다.

다시 말해, <언론·시민단체 지적 등에 따른 보수적 집행>은 '잘못된 연구비 집행 관행 등이 지적당하자 관련 예산을 아예 안 썼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한 국회 보좌진은 "사무처에서 증빙하라고 할 때 기준 자체가 좀 늘었고, 보좌진 단계에서 이미 많이 좀 조심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습니다. "감시한다고 해서 예산을 쓰질 못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요. 그동안 돈을 엉터리로 써왔단 얘기가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오히려 10억 원 늘었습니다.

■ 언론이 '비판'할수록 의원은 '치적 홍보' 열 올려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은 안개 속이지만, 어쨌든 내년 예산안은 곧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벌어질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의원들의 '치적 홍보'입니다. "저희 지역구에 예산 폭탄을 내렸습니다."라거나 "일꾼인 내가 해냈다"는 의정 보고서가 쏟아질 겁니다.


언론은 비판합니다만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홍보가 됩니다. 지역구에선 '언론 비판을 무릅쓰고 용감히 일한 의원'이라고 홍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 의원들이 홍보하지 못할 '예산 보도'는 불가능할까

취재진은 고민스럽습니다. 국회 통과과정에서 의원이 '힘써서 예산 타가는 문화'는 지적하면 의원들의 홍보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의원들이 즐겁지 않고 불편할 지적이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 시민운동단체 활동가들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힘 있는 의원이 미는 예산은 어지간히 억지 예산이 아니면 막기 힘들다', 또 '정부 입장에선 증액해줘도 못 쓸 예산이 눈에 보인다, 그러면 오히려 더 마음 편하게 준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의원은 홍보만 하면 되고, 공무원은 회수될 것으로 기대하는 무늬만 증액, 현수막 증액'이 해마다 벌어진단 얘깁니다.

이걸 검증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당초 예산안과 국회 통과 예산을 비교했습니다. 2020년과 21년 예산을 대상으로 살펴봤습니다. 분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교통부 소관 예산으로 한정했습니다.

단순히 증액 자체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또 의원님들의 홍보수단이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국회 증액이 되었는데 집행이 부진한 예산으로 보도 범위를 좁혔습니다. <국회증액 집행부진 예산>입니다. 한편에선 지역구민 기만행위이고, 다른 한편에선 국가예산의 기회비용을 늘리는 행위입니다.

■ <국토부, 문체부 소관 국회 증액>, 사실은 할 필요 없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 모두 207개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약 11조 8천억 원이었습니다. 6천7백억 원가량이 국회에서 늘어났는데, 쓰이지 않은 예산이 두 배가 넘는 1조 5천억 원에 이릅니다. 국회 증액 규모가 6천억 원대인데, 불용예산이 두 배가 넘는다는 건 국회에서 증액하지 않았어도 수천억 원을 못 썼을 것이란 얘깁니다. 증액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례1. 대구산업선
대구지역 산업단지를 지나는 국가철도사업인 대구 산업선 사업에는 2019년 12월 국회에서 10억 원이 증액되어 99억 원이 반영됐습니다. 2020년 12월에도 역시 국회에서 20억 원이 증액되어 164억 원이 반영됐습니다. 그런데 이 예산은 한 푼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애초에 쓸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현재 대구 산업선은 턴키 사업(설계와 시공 일괄 사업)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본설계 자체는 내년(2023년) 3월 종료 예정이나 확실치 않습니다. 기본설계가 끝나도 예산 집행은 불가능합니다. 실시설계를 해야 합니다. 국토부는 '실시설계에는 보통 1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이 실시설계 뒤 착공에 들어가야 사업자에게 설계비를 줄 수 있습니다. 실시설계는 빨라야 2024년에야 끝납니다. 다시 말하면 2024년 정도까지는 예산 집행을 못합니다.

결국 '쓸 수 없는 예산에다가 국회에서 증액까지 한 셈'입니다. 증액 직후 지역구 추경호, 김상훈 의원(국민의 힘)이 '숙원사업 예산을 증액했다'는 지역 언론 보도가 다수 나왔습니다. 추경호 의원은 당시 의정 보고서를 통해 "달성 발전 예산 폭탄" 사례로 이 대구 산업선 예산 164억 원을 들었습니다.

# 사례2. 태릉-구리광역 도로건설
올해 태릉 구리 간 광역도로 건설비 38억 원은 국회에서 전액 신규 증액됐습니다. 언론은 지역구 윤호중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확보한 예산으로 홍보했고, 윤 의원도 스스로 "해냈습니다!"라며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이 돈도 올해 한 푼도 못 썼습니다.

편성된 예산은 '보상비와 공사비'. 앞선 대구산업선과 마찬가지로 이 돈도 애초에 쓸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설계가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보완설계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총사업비를 협의해야 하고 그 뒤에나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공사는 시작도 안 했기 때문에 올해 집행될 예산은 거의 없습니다.

내년이 되어 실시설계를 할 때나 예산은 사용될 겁니다. 그 내년 예산도 32억 원 정도만 반영되어 있습니다. 국토부는 '원래 사업 첫 해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예산을 많이 집행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른바 '실세 급' 의원의 예를 둘만 들었지만, 이런 '무늬만 증액'은 한 둘이 아닙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증액된 것도 실제로 쓰이지는 못하고 있는 거예요. 홍보하기 위해서 현수막을 붙이기 위한 현수막 증액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거죠." 라고 설명합니다.


■의원들의 현수막 증액을 중단하라

이런 국회 증액 예산, '쪽지 예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국회의 '민원성' 예산 증액을 표현하는 말인데, 국회에선 '쪽지 예산'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물리적으로 쪽지를 쓰지 않는단 건데, 취재해보니 겉으론 그래 보이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지역구 예산 증액은 서면 질의라는 공식 절차를 거칩니다. 그러나 말은 '공식'인데 누가, 왜 증액을 요청했는지를 국민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비공개된다는 얘깁니다.

이유를 설명할 때 '소소위'라는 익숙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지역구 예산 증액은 공식 협의가 아닌 비공식 협의체 '소소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참석자가 예결위원장, 예결위 여야 간사, 기재부 장·차관 정도입니다. 회의 내용도, 기록도 남지 않는 회의입니다.


시민단체인 나라 살림연구소가 분석을 해보니 올해 국회 증액 예산 8조 9천억 원 중, 공식 예결위 회의를 통해 확정된 건 0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회 증액'은 모두 비공개로(소소위를 거치면서) 증액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바뀌지 않는 관행입니다. 예산이 증액된 과정이 공개돼야, 시비를 따져볼 수 있을 텐데 공개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KBS가 데이터로 살펴보았듯, 이렇게 증액된 민원성 예산, 실제로는 쓰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최소한의 설명을 요구하여야 할 차례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료 공개 역시 다시 한번 강조할 부분입니다. 비공개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당장 그게 힘들다면 추후에라도 확인할 수 있게 기록이라도 남겨야 합니다. '못 쓸 예산 타가고, 현수막 거는' 구태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올 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을 더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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