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법과 원칙’…대화는 왜 안 보일까?

입력 2022.12.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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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2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류 운송 차질에 따른 피해액이 3조 5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민생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우려된다'고 상황을 진단했지만, 위기를 타개하려는 대화나 설득 작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부터 총리, 주무 장관까지 연일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강조할 뿐입니다.

노조 집단 행동에 원칙적 대응을 천명하는 건 과거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물밑에서는 대화를 통한 중재와 사태 해결 노력이 병행돼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밑 접촉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만 다른 걸까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자신들 이익 관철 위해 국민과 경제 볼모로 삼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를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이라며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안전운임제 확대와 일몰제 폐지(유지) 등 화물연대의 요구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를 얻어내기 위한 집단 운송거부는 '국민과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이라고 못 박은 것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을 제시했다"면서, 안전운임제의 효과 등을 더 따져보자는 건데, 그런 것 없이 '당장 확대하자, 영구화하자'고 하는 게 어떤 명분이 있느냐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 있어 당장 타협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면 또 다른 불법 파업을 유발하게 된다"면서 "노사관계가 평화롭게 해결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화물연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당하지 않은 요구를 하며 불법 집단 행동을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적당히 타협하면 또 다른 집단행동이 나올 수 있으니, 절대 타협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겠다. 밀리지 않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과거부터 모든 분야에서 '법과 원칙'을 유독 강조해 온 윤 대통령 특유의 대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노동 개혁' 문제가 있습니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노동개혁"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사태를 언급할 때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함께 거론하고 있습니다.

"민노총 산하의 철도, 지하철 노조들은 산업 현장의 진정한 약자들, 절대 다수의 임금 근로자들에 비하면 더 높은 소득과 더 나은 근로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정부는 조직화되지 못한 산업 현장의 진정한 약자들을 더욱 잘 챙길 수 있도록 …"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민생과 국민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은 조직화되지 못한 약한 근로자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하고 미래세대와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
-지난 4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국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두가 돼 온 얘기입니다.

노동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과 비노조원 등 질적 차이가 있는 두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부문은 '고임금·고용 안정', 다른 부문은 '저임금·고용 불안정' 구조를 갖고 있고, 부문 사이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구조를 문제로 인식하면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노동 개혁'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 발언을 보면 '고임금·고용 안정'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기득권'으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조의 파업을 '기득권 지키기'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윤 대통령에게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나 민주노총의 파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경제를 볼모로 잡는 불법 집단행동'이고, '상대적으로 저임금·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로,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타협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화물 노동자는 고용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운송 부문별 소득 격차가 적지 않은 데다, 노동 시간에 따른 평균 소득을 따져보면 '고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조직화되지 않은 약자'와 구분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기득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여소야대 국회 상황 속에 임기 첫해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국민들 지지를 바탕으로 내년에 속도를 낼 동력을 얻기 위해 이번 화물연대 사태에 '원칙적 대응'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 지지층 결집 효과?…"원칙적 대응일 뿐"

대통령실의 '원칙적 대응', '강경 대응'은 지지층을 결집해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민주노총 등의 노동 운동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고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이런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으니,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30%대 초반을 오가던 국정 지지율이 30%대 후반까지 높아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실은 "국정 지지율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입장입니다. '강경 대응'이 아니라 '원칙적 대응'이고,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그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사회적 대화 필요…설득 없으면 충돌만"

앞서 살펴본 이유로, 정부가 대화와 타협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오히려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검토하며 압박 수위를 더 높일 분위기입니다. 이런 대응에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거부에서 복귀한다면, 정부는 '법과 원칙'이 통했다고 자평할 것입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지낸 어수봉 전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2014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주요 쟁점과 원칙'이라는 글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는, 이중구조의 원인이 대기업·정규직 노조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돼있는 것이니, 해고 규제 완화, 임금체계 개편 등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부문 간 이동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노동 개혁'도 이런 방향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저임금·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부문의 처우를 제도를 통해 개선하면 이중구조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수봉 전 교수는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고, 두 견해 모두를 수용해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면서 "두 견해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충분히 설득하지 않은 채 처방을 강행하면 물리적 충돌만 남게 된다는 게 그간 우리의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노동 개혁'이 한가지 방향만 있는 게 아니고, 노조의 파업을 '기득권 지키기'로만 보는 것도 한쪽의 시각일 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적당히 타협하면 또 다른 집단행동을 부를 수 있다고 했지만, 대화와 설득 없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건 결국 또다시 물리적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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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대통령의 ‘법과 원칙’…대화는 왜 안 보일까?
    • 입력 2022-12-07 18:17:22
    취재K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2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류 운송 차질에 따른 피해액이 3조 5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민생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우려된다'고 상황을 진단했지만, 위기를 타개하려는 대화나 설득 작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부터 총리, 주무 장관까지 연일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강조할 뿐입니다.

노조 집단 행동에 원칙적 대응을 천명하는 건 과거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물밑에서는 대화를 통한 중재와 사태 해결 노력이 병행돼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밑 접촉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만 다른 걸까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자신들 이익 관철 위해 국민과 경제 볼모로 삼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를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이라며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안전운임제 확대와 일몰제 폐지(유지) 등 화물연대의 요구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를 얻어내기 위한 집단 운송거부는 '국민과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이라고 못 박은 것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을 제시했다"면서, 안전운임제의 효과 등을 더 따져보자는 건데, 그런 것 없이 '당장 확대하자, 영구화하자'고 하는 게 어떤 명분이 있느냐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 있어 당장 타협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면 또 다른 불법 파업을 유발하게 된다"면서 "노사관계가 평화롭게 해결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화물연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당하지 않은 요구를 하며 불법 집단 행동을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적당히 타협하면 또 다른 집단행동이 나올 수 있으니, 절대 타협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겠다. 밀리지 않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과거부터 모든 분야에서 '법과 원칙'을 유독 강조해 온 윤 대통령 특유의 대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노동 개혁' 문제가 있습니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노동개혁"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사태를 언급할 때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함께 거론하고 있습니다.

"민노총 산하의 철도, 지하철 노조들은 산업 현장의 진정한 약자들, 절대 다수의 임금 근로자들에 비하면 더 높은 소득과 더 나은 근로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정부는 조직화되지 못한 산업 현장의 진정한 약자들을 더욱 잘 챙길 수 있도록 …"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민생과 국민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은 조직화되지 못한 약한 근로자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하고 미래세대와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
-지난 4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국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두가 돼 온 얘기입니다.

노동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과 비노조원 등 질적 차이가 있는 두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부문은 '고임금·고용 안정', 다른 부문은 '저임금·고용 불안정' 구조를 갖고 있고, 부문 사이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구조를 문제로 인식하면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노동 개혁'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 발언을 보면 '고임금·고용 안정'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기득권'으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조의 파업을 '기득권 지키기'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윤 대통령에게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나 민주노총의 파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경제를 볼모로 잡는 불법 집단행동'이고, '상대적으로 저임금·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로,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타협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화물 노동자는 고용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운송 부문별 소득 격차가 적지 않은 데다, 노동 시간에 따른 평균 소득을 따져보면 '고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조직화되지 않은 약자'와 구분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기득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여소야대 국회 상황 속에 임기 첫해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국민들 지지를 바탕으로 내년에 속도를 낼 동력을 얻기 위해 이번 화물연대 사태에 '원칙적 대응'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 지지층 결집 효과?…"원칙적 대응일 뿐"

대통령실의 '원칙적 대응', '강경 대응'은 지지층을 결집해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민주노총 등의 노동 운동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고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이런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으니,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30%대 초반을 오가던 국정 지지율이 30%대 후반까지 높아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실은 "국정 지지율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입장입니다. '강경 대응'이 아니라 '원칙적 대응'이고,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그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사회적 대화 필요…설득 없으면 충돌만"

앞서 살펴본 이유로, 정부가 대화와 타협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오히려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검토하며 압박 수위를 더 높일 분위기입니다. 이런 대응에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거부에서 복귀한다면, 정부는 '법과 원칙'이 통했다고 자평할 것입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지낸 어수봉 전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2014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주요 쟁점과 원칙'이라는 글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는, 이중구조의 원인이 대기업·정규직 노조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돼있는 것이니, 해고 규제 완화, 임금체계 개편 등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부문 간 이동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노동 개혁'도 이런 방향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저임금·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부문의 처우를 제도를 통해 개선하면 이중구조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수봉 전 교수는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고, 두 견해 모두를 수용해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면서 "두 견해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충분히 설득하지 않은 채 처방을 강행하면 물리적 충돌만 남게 된다는 게 그간 우리의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노동 개혁'이 한가지 방향만 있는 게 아니고, 노조의 파업을 '기득권 지키기'로만 보는 것도 한쪽의 시각일 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적당히 타협하면 또 다른 집단행동을 부를 수 있다고 했지만, 대화와 설득 없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건 결국 또다시 물리적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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