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현직 판사까지 가담한 ‘독일 쿠데타’ 시도…얼마나 위험했나?

입력 2022.12.09 (09: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독일 경찰의 반테러 작전 현장독일 경찰의 반테러 작전 현장

■ 2022년 독일에서 벌어진 국가 전복 시도

쿠데타 : 특정 세력이 무장 등 비합법적 수단을 이용해 정부를 전복하고 통치권을 빼앗는 것

정세가 불안한 작은 나라가 아닌 유럽연합(EU)의 핵심국인 독일에서 쿠데타 시도가 발각됐다. 독일 경찰은 지난 7일(현지 시간) 정예 대테러 부대를 포함해 3천 명이 넘은 인력을 독일 11개 주 130여 곳에 투입해 대규모 반테러 작전을 펼쳤다. 현재까지 독일에서 23명,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 각 1명씩 총 25명이 체포됐다. 추5가로 용의자 27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극우 세력의 폭력 행위는 있었지만, 독일에서 쿠데타 모의가 드러난 건 처음이다.

마르코 부시만 독일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 이들은 폭력을 사용해 인명 피해까지 감수하고 스스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계획 중 하나는 독일 연방 의회에 무장 진입하려고 한 것이다"고 밝혔다. 체포된 이들은 지난해 11월쯤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주모자는 하인리히 13세라는 귀족 가문의 71세 남성으로, 쿠데타가 성공하면 이 남성을 지도자로 삼으려고 했다.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된 하인리히 13세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된 하인리히 13세

■ 쿠데타 모의한 '제국시민'은 어떤 단체?

현재까지 확인된 쿠데타 모의 핵심 세력 중 하나는 ' 제국시민(Reichsbürger)'이라는 단체다. 인종 차별과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극우 세력이다. 이들은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전까지 있었던 '독일 제국' 을 모델로 삼았다. 독일 제국은 1871년 프랑스와의 보불전쟁에서 승리해 독일이 나폴레옹에게 당했던 치욕을 되갚았던 영광의 시기에 탄생했다.

조직 결속의 기반은 바로 '음모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연합국이 현재 독일 정부를 비밀리에 통치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현 독일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는 세금 납부도 거부한 채 화폐와 신분증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19확산과 백신도 국가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제국시민'은 이번 사건으로 처음 등장한 단체는 아니다. 독일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극우 세력 가운데 하나로 이미 여러 건의 폭력 사건에 관여돼 경찰 감시망 안에 있었다. 지난해 4월 코로나 방역 정책을 이끄는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을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납치하려고 한 사건에도 '제국시민' 조직원이 관여했다. 2016년엔 조직원이 경찰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 현직 판사 ·군인도 가담 … 얼마나 위험했나?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받는 건 범행에 가담한 구성원들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는 독일의 주류 엘리트들도 있었다. 특히 주목받은 인물은 베를린 지방법원 현직 판사인 비르기트 말자크 빈케만. 빈케만 판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의원 활동을 마치고서는 베를린 지방 법원에서 민사 판사로 일해왔다. 그녀는 의원 활동 초기 당 대회에서 급진적인 내용의 연설로 주목받기도 했다.

'제국시민' 가운데는 특수부대 소속인 현역군인, 전직 군 고위 간부도 있었다. 이들은 무장에도 적극적이었는데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무기 50여 점을 발견했다. 전문 지식과 무장을 기반으로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러시아의 도움도 받으려고 했다. 주모자 하인리히 13세의 동거녀가 러시아인이었는데 이 여성을 통해 러시아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쿠데타가 성공하면 이후에 서방 세계와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자 한 것이다. 쿠데타 계획에 대외 여건까지 고려한 치밀함이 드러난다. 다만 러시아 크렘린궁은 언론을 보며 사건을 알았다며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번 계획이 만약 실천으로 옮겨졌다면 성공 여부를 떠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다행히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독일 정부의 감시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범행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독일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현장을 연결하며 관련 뉴스를 이어갔고, BBC 등 다른 나라 주요 언론들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무엇보다 2 1세기 유럽에서 '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점이 여러 의미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치 독일에 대한 철저한 반성 아래 민주주의 공화국을 꾸려가고 있는 독일에서 1차대전으로 패망한 '독일 제국(또는 '제2 제국')'을 추앙하는 극우집단이 발호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단순히 일부 정신나간 자들의 준동 정도로 치부하기엔 유럽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미 이탈리아에선 극우 세력이 집권을 했고, 많은 나라에서 극우파가 약진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힘의 우위를 앞세우는 극우세력이 힘을 넓힐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역사는 보여줬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현직 판사까지 가담한 ‘독일 쿠데타’ 시도…얼마나 위험했나?
    • 입력 2022-12-09 09:04:04
    특파원 리포트
독일 경찰의 반테러 작전 현장
■ 2022년 독일에서 벌어진 국가 전복 시도

쿠데타 : 특정 세력이 무장 등 비합법적 수단을 이용해 정부를 전복하고 통치권을 빼앗는 것

정세가 불안한 작은 나라가 아닌 유럽연합(EU)의 핵심국인 독일에서 쿠데타 시도가 발각됐다. 독일 경찰은 지난 7일(현지 시간) 정예 대테러 부대를 포함해 3천 명이 넘은 인력을 독일 11개 주 130여 곳에 투입해 대규모 반테러 작전을 펼쳤다. 현재까지 독일에서 23명,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 각 1명씩 총 25명이 체포됐다. 추5가로 용의자 27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극우 세력의 폭력 행위는 있었지만, 독일에서 쿠데타 모의가 드러난 건 처음이다.

마르코 부시만 독일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 이들은 폭력을 사용해 인명 피해까지 감수하고 스스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계획 중 하나는 독일 연방 의회에 무장 진입하려고 한 것이다"고 밝혔다. 체포된 이들은 지난해 11월쯤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주모자는 하인리히 13세라는 귀족 가문의 71세 남성으로, 쿠데타가 성공하면 이 남성을 지도자로 삼으려고 했다.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된 하인리히 13세
■ 쿠데타 모의한 '제국시민'은 어떤 단체?

현재까지 확인된 쿠데타 모의 핵심 세력 중 하나는 ' 제국시민(Reichsbürger)'이라는 단체다. 인종 차별과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극우 세력이다. 이들은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전까지 있었던 '독일 제국' 을 모델로 삼았다. 독일 제국은 1871년 프랑스와의 보불전쟁에서 승리해 독일이 나폴레옹에게 당했던 치욕을 되갚았던 영광의 시기에 탄생했다.

조직 결속의 기반은 바로 '음모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연합국이 현재 독일 정부를 비밀리에 통치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현 독일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는 세금 납부도 거부한 채 화폐와 신분증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19확산과 백신도 국가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제국시민'은 이번 사건으로 처음 등장한 단체는 아니다. 독일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극우 세력 가운데 하나로 이미 여러 건의 폭력 사건에 관여돼 경찰 감시망 안에 있었다. 지난해 4월 코로나 방역 정책을 이끄는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을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납치하려고 한 사건에도 '제국시민' 조직원이 관여했다. 2016년엔 조직원이 경찰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 현직 판사 ·군인도 가담 … 얼마나 위험했나?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받는 건 범행에 가담한 구성원들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는 독일의 주류 엘리트들도 있었다. 특히 주목받은 인물은 베를린 지방법원 현직 판사인 비르기트 말자크 빈케만. 빈케만 판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의원 활동을 마치고서는 베를린 지방 법원에서 민사 판사로 일해왔다. 그녀는 의원 활동 초기 당 대회에서 급진적인 내용의 연설로 주목받기도 했다.

'제국시민' 가운데는 특수부대 소속인 현역군인, 전직 군 고위 간부도 있었다. 이들은 무장에도 적극적이었는데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무기 50여 점을 발견했다. 전문 지식과 무장을 기반으로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러시아의 도움도 받으려고 했다. 주모자 하인리히 13세의 동거녀가 러시아인이었는데 이 여성을 통해 러시아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쿠데타가 성공하면 이후에 서방 세계와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자 한 것이다. 쿠데타 계획에 대외 여건까지 고려한 치밀함이 드러난다. 다만 러시아 크렘린궁은 언론을 보며 사건을 알았다며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번 계획이 만약 실천으로 옮겨졌다면 성공 여부를 떠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다행히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독일 정부의 감시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범행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독일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현장을 연결하며 관련 뉴스를 이어갔고, BBC 등 다른 나라 주요 언론들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무엇보다 2 1세기 유럽에서 '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점이 여러 의미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치 독일에 대한 철저한 반성 아래 민주주의 공화국을 꾸려가고 있는 독일에서 1차대전으로 패망한 '독일 제국(또는 '제2 제국')'을 추앙하는 극우집단이 발호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단순히 일부 정신나간 자들의 준동 정도로 치부하기엔 유럽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미 이탈리아에선 극우 세력이 집권을 했고, 많은 나라에서 극우파가 약진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힘의 우위를 앞세우는 극우세력이 힘을 넓힐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역사는 보여줬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