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15년 근무 뒤 폐암…“다시 일 못할까 봐 겁나요”

입력 2022.12.11 (09:00) 수정 2022.12.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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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참고 150~160인분 요리했지만, 급식실 15년 근무 뒤 폐암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15년 동안 일한 50대 박 모 씨는 폐암 1기 판정을 받고 최근 수술을 받았습니다. 집 청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는 바로 일자리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박 씨는 '엄마이니까' 힘들어도 조리실무사 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박00 / 15년 경력 조리실무사(폐암 1기)
조리실무사라는 직업이 힘들어도 엄마이니까…일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가장이다 보니까. 아파서 제가 뭐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또 현장에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사실 그것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모를 때는 괜찮지만 알고 나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두렵죠.

박00 / 15년 경력 조리실무사(폐암 1기)
숨 쉴 수도 없는데 거기서 버티고 해야 하는 게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진짜 호흡을 안 한 상태에서 (음식을) 뒤집어요. 그 앞에서는 호흡을 안 하려고 애를 쓰죠. 그냥 옆에 짝꿍한테 '잠깐만 5분만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하고 밖에 잠시 나갔다가 돌아와서 자기가 맡은 조리를 하는 거죠. 누구한테 부탁할 인원이 없어요. (150~160명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 각자 자기에 책임지고 있는 요리들이 있어서 누구한테 '내 요리 좀 해줄래?'라는 그런 말 못해요.

현재 박 씨는 산업재해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학교급식 노동자 1% '폐암 의심'… '폐암' 50명 산업재해 인정, 이 중 5명 사망

국회 교육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동용 의원실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검진 중간 결과' 검진자의 29%가 폐에 이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검진자의 1%인 191명은 폐암이 의심됐습니다.

이에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지난달 25일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달라'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급식실 환기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이 지침에 맞게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지침에는 후드의 구조와 성능 등 환기설비 설치기준과 유지관리 기준이 담겨있습니다.

■ 급식실 환기설비 개선된 학교 수 '설명' 없는 교육부

이미 학교 급식 노동자 중 폐암 진단을 받은 79명 중 50명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고, 이 가운데 5명은 산재 인정을 받은 뒤 사망한 상황, 취재 과정에서 교육부에 학교 급식실의 환기설비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물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급식 현장의 사업주는 교육감이라 교육부 권한이 아니고, 지침은 탄력 적용하도록 하고 있어 급식실이 지침에 맞게 개선됐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 KBS의 <급식 노동자 1%가 폐암 의심인데, 교육부는 “교육청 소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20022 보도 뒤 교육부는 지난 9일 설명자료를 냈습니다.

교육부는 "관련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교육부는 급식 근로자들의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시도교육청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교육 환경개선비(보통교부금) 일반보수비에 학교 급식조리실 노후 환기설비 개선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면서 "시도교육청 부교육감회의 등을 통해 예산 확보 및 노후 환기 시설 개선 등 자체 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연도별 자체 계획을 수립해 급식시설 점검 및 노후 환기설비를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도 급식실 환경이 개선된 학교가 몇 곳인지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 "교육부의 보다 적극적 개입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시도교육청 소속 근로자 산업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시도교육감에게 있고, 또 학교급식 사업은 지방으로 이양됐지만, 각 교육청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교육부에 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며 "만약에 교육부가 안 된다고 하면, 강제할 방법은 고용노동부가 보건진단 명령을 내리거나 개선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교육계에서는 현재 급식실 환경개선에 필요한 사업비를 보통교부금 형태인 일반보수비가 아닌 특별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통 교부금은 시도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있지만, 특별교부금은 어떤 '특별한 목적'이 정해져 교부되는 것으로 시도교육청에서도 그 목적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일반보수비 안에는 급식실 환경개선 외에도 건물 누수 등 노후시설 보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만큼, 노동자들은 "급식실 환기 개선을 위한 한 가지 명목으로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일반보수비(보통교부금)는 1조 3천여억 원으로 올해보다 1천4백억 원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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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식실 15년 근무 뒤 폐암…“다시 일 못할까 봐 겁나요”
    • 입력 2022-12-11 09:00:04
    • 수정2022-12-11 09:38:18
    취재K

■ 숨 참고 150~160인분 요리했지만, 급식실 15년 근무 뒤 폐암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15년 동안 일한 50대 박 모 씨는 폐암 1기 판정을 받고 최근 수술을 받았습니다. 집 청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는 바로 일자리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박 씨는 '엄마이니까' 힘들어도 조리실무사 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박00 / 15년 경력 조리실무사(폐암 1기)
조리실무사라는 직업이 힘들어도 엄마이니까…일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가장이다 보니까. 아파서 제가 뭐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또 현장에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사실 그것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모를 때는 괜찮지만 알고 나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두렵죠.

박00 / 15년 경력 조리실무사(폐암 1기)
숨 쉴 수도 없는데 거기서 버티고 해야 하는 게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진짜 호흡을 안 한 상태에서 (음식을) 뒤집어요. 그 앞에서는 호흡을 안 하려고 애를 쓰죠. 그냥 옆에 짝꿍한테 '잠깐만 5분만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하고 밖에 잠시 나갔다가 돌아와서 자기가 맡은 조리를 하는 거죠. 누구한테 부탁할 인원이 없어요. (150~160명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 각자 자기에 책임지고 있는 요리들이 있어서 누구한테 '내 요리 좀 해줄래?'라는 그런 말 못해요.

현재 박 씨는 산업재해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학교급식 노동자 1% '폐암 의심'… '폐암' 50명 산업재해 인정, 이 중 5명 사망

국회 교육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동용 의원실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검진 중간 결과' 검진자의 29%가 폐에 이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검진자의 1%인 191명은 폐암이 의심됐습니다.

이에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지난달 25일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달라'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급식실 환기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이 지침에 맞게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지침에는 후드의 구조와 성능 등 환기설비 설치기준과 유지관리 기준이 담겨있습니다.

■ 급식실 환기설비 개선된 학교 수 '설명' 없는 교육부

이미 학교 급식 노동자 중 폐암 진단을 받은 79명 중 50명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고, 이 가운데 5명은 산재 인정을 받은 뒤 사망한 상황, 취재 과정에서 교육부에 학교 급식실의 환기설비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물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급식 현장의 사업주는 교육감이라 교육부 권한이 아니고, 지침은 탄력 적용하도록 하고 있어 급식실이 지침에 맞게 개선됐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 KBS의 <급식 노동자 1%가 폐암 의심인데, 교육부는 “교육청 소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20022 보도 뒤 교육부는 지난 9일 설명자료를 냈습니다.

교육부는 "관련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교육부는 급식 근로자들의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시도교육청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교육 환경개선비(보통교부금) 일반보수비에 학교 급식조리실 노후 환기설비 개선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면서 "시도교육청 부교육감회의 등을 통해 예산 확보 및 노후 환기 시설 개선 등 자체 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연도별 자체 계획을 수립해 급식시설 점검 및 노후 환기설비를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도 급식실 환경이 개선된 학교가 몇 곳인지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 "교육부의 보다 적극적 개입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시도교육청 소속 근로자 산업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시도교육감에게 있고, 또 학교급식 사업은 지방으로 이양됐지만, 각 교육청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교육부에 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며 "만약에 교육부가 안 된다고 하면, 강제할 방법은 고용노동부가 보건진단 명령을 내리거나 개선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교육계에서는 현재 급식실 환경개선에 필요한 사업비를 보통교부금 형태인 일반보수비가 아닌 특별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통 교부금은 시도교육청이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있지만, 특별교부금은 어떤 '특별한 목적'이 정해져 교부되는 것으로 시도교육청에서도 그 목적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일반보수비 안에는 급식실 환경개선 외에도 건물 누수 등 노후시설 보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만큼, 노동자들은 "급식실 환기 개선을 위한 한 가지 명목으로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일반보수비(보통교부금)는 1조 3천여억 원으로 올해보다 1천4백억 원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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