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그대 아직 ‘독일제국’을 꿈꾸는가…혹시 이 영화도?

입력 2022.12.11 (11:00) 수정 2022.12.26 (09: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978년 어느 겨울, 독일의 한 거리에서 전직 고위 공무원 됴링이 차에 치여 숨진다. 길가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참이었다. 향년 65세. 같은 달, 영국인 신사 해링턴이 교살된다. 범인은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여성의 남자 친구. 애인을 먼저 살해한 뒤 곧바로 집에 있던 해링턴을 노렸다. 향년 65세. 또 며칠 뒤, 미국 메사추세츠에선 한 교사가 세상을 떠난다. 총기 우발 사고가 원인이었다. 학생들의 통곡 속에서 이승을 하직한 그의 나이 역시…65살. 사는 곳도 직업도 다르고,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이 남성들에겐 남모를 공통점이라도 있는 걸까? 이들은 왜 하나같이 65살에 목숨을 잃었을까?

미국의 전설적 대중 작가 아이라 레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1978년 작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은 알 듯 말 듯 한 단서를 던지며 관객을 충격적 진상으로 데려간다. 역사 지식이 있는 인물이라면 영화 속 악당이 요제프 멩겔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순간 얼개를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상상을 버무린 이야기에서 관객은 마지막까지 인물의 속내를 의심해야 하는 처지일 뿐이다. 지금 화면 속 저 이는 악인(惡人)일까, 선인(善人)일까? 인간의 성격은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경험과 환경의 산물일까? 여러 인물과 장소를 오가는 초중반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멩겔레 박사가 마지막 희생양의 집에 한발 먼저 도착해 자신의 적수인 척하며 시작되는 마지막 20여 분 간은 꼭 봐야 하는 영화의 백미다. 오로지 배우의 연기와 컷과 컷을 이어붙이는 절묘한 솜씨만으로 인간의 섬뜩함을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

지난 8일, 독일에서는 연방정부 쿠데타를 계획한 극우단체 회원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미 사라진 '독일 제국'을 재건해 황제를 옹립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자신을 스스로 '하인리히 13세 왕자'라고 부르는 귀족 집안 혈통 하인리히 로이스가 이들이 추대하던 '예비 황제'다. 전직 특수부대 사령관과 장교, 경찰 특공대원에 의원 출신까지 가담했다. 2022년에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음모가 이토록 체계적으로, 심지어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로 여겨지던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들을 보며 이 영화를 떠올린 건 악당들이 추구하는 허무맹랑한 계획이 어쩌면 있을 법한 얘기일지 모른다는 오싹함 때문이다. 70여 년 전 사라진 제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이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여전히 인류 개량을 꿈꾸는 미친 과학자라고 없을 이유가 뭔가. 실제로 붙잡힌 쿠데타 세력들은 '독일인이 주축이 된 국가'를 세우려 했다고 한다. 이 '독일인'이 무엇을 뜻할지는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인간의 '기본값'을 백인에 두는 세태가 남 일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함이 더 크다. 오리지널 '혹성 탈출'과 '빠삐용' 등을 만든 프랭클린 샤프너의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왓챠'와 유튜브, 구글 플레이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로마의 휴일'과 '레베카' 같은 낭만적 고전을 좋아하는 젊은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씨네마진국] 그대 아직 ‘독일제국’을 꿈꾸는가…혹시 이 영화도?
    • 입력 2022-12-11 11:00:21
    • 수정2022-12-26 09:39:16
    씨네마진국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978년 어느 겨울, 독일의 한 거리에서 전직 고위 공무원 됴링이 차에 치여 숨진다. 길가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참이었다. 향년 65세. 같은 달, 영국인 신사 해링턴이 교살된다. 범인은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여성의 남자 친구. 애인을 먼저 살해한 뒤 곧바로 집에 있던 해링턴을 노렸다. 향년 65세. 또 며칠 뒤, 미국 메사추세츠에선 한 교사가 세상을 떠난다. 총기 우발 사고가 원인이었다. 학생들의 통곡 속에서 이승을 하직한 그의 나이 역시…65살. 사는 곳도 직업도 다르고,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이 남성들에겐 남모를 공통점이라도 있는 걸까? 이들은 왜 하나같이 65살에 목숨을 잃었을까?

미국의 전설적 대중 작가 아이라 레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1978년 작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은 알 듯 말 듯 한 단서를 던지며 관객을 충격적 진상으로 데려간다. 역사 지식이 있는 인물이라면 영화 속 악당이 요제프 멩겔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순간 얼개를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상상을 버무린 이야기에서 관객은 마지막까지 인물의 속내를 의심해야 하는 처지일 뿐이다. 지금 화면 속 저 이는 악인(惡人)일까, 선인(善人)일까? 인간의 성격은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경험과 환경의 산물일까? 여러 인물과 장소를 오가는 초중반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멩겔레 박사가 마지막 희생양의 집에 한발 먼저 도착해 자신의 적수인 척하며 시작되는 마지막 20여 분 간은 꼭 봐야 하는 영화의 백미다. 오로지 배우의 연기와 컷과 컷을 이어붙이는 절묘한 솜씨만으로 인간의 섬뜩함을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의 한 장면. 출처 IMDB.
지난 8일, 독일에서는 연방정부 쿠데타를 계획한 극우단체 회원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미 사라진 '독일 제국'을 재건해 황제를 옹립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자신을 스스로 '하인리히 13세 왕자'라고 부르는 귀족 집안 혈통 하인리히 로이스가 이들이 추대하던 '예비 황제'다. 전직 특수부대 사령관과 장교, 경찰 특공대원에 의원 출신까지 가담했다. 2022년에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음모가 이토록 체계적으로, 심지어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로 여겨지던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들을 보며 이 영화를 떠올린 건 악당들이 추구하는 허무맹랑한 계획이 어쩌면 있을 법한 얘기일지 모른다는 오싹함 때문이다. 70여 년 전 사라진 제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이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여전히 인류 개량을 꿈꾸는 미친 과학자라고 없을 이유가 뭔가. 실제로 붙잡힌 쿠데타 세력들은 '독일인이 주축이 된 국가'를 세우려 했다고 한다. 이 '독일인'이 무엇을 뜻할지는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인간의 '기본값'을 백인에 두는 세태가 남 일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함이 더 크다. 오리지널 '혹성 탈출'과 '빠삐용' 등을 만든 프랭클린 샤프너의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왓챠'와 유튜브, 구글 플레이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로마의 휴일'과 '레베카' 같은 낭만적 고전을 좋아하는 젊은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