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고개 드는 보호무역주의…미국 IRA에 이어 유럽은 CBAM?

입력 2022.12.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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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중국 견제가 국제 사회를 '신냉전'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에서 '세계화'의 바람이 저물고 '보호무역(블록화)주의'가 강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세계화는 빈부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지만, 저물가 속 풍요라는 단맛을 세계인들에게 선사했다. 따라서 세계화의 종말은 단기적으로 고물가와 '허리 졸라매기'라는 쓴맛(특히 젊은 세대는 처음 경험하는)을 맛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세계화 속에서 가장 많은 혜택(빈부격차라는 고통과 함께)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도 세계화로 대변되는 자유무역 기조에서 가능했다. 따라서 '신냉전',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도래는 막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고 퍼트린 건 미국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죽의 장막'으로 불렸던 중국이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또 미국이 이끈 자유무역 시대에서 첨병 역할을 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2018년 트럼프 정부가 부과했던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WTO 규정 위반이라고 최근 판정하고,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이 판정이 '잘못된 해석과 걸정이라며 강력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매우 낯선 풍경이다.

■ 유럽에서도 고개드는 보호무역주의

중요한 건 서방 선진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 EU에서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을 건데 이어 EU도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을 내년 1월부터 시범운영하겠다고 나서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CBAM은 탄소배출 감축을 덜 한 나라에 대해 그 차이를 보정하겠다는 무역제한 조치를 의미한다.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등 5개 품목에 적용되며 2023년에 시범 도입해 2026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CBAM을 쉽게 정리하면 EU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써서 만들어진 제품을 EU에 수출하려면 그 차이만큼 관세(EU 탄소배출권 거래제에서 정한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를 더 물리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앞세우고 있지만, EU 내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로 볼 수 있다.

최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EU를 방문해 'CBAM을 잘못 관리하면 이 사안이 유럽판 IRA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아직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EU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원자재법'도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IRA나 EU의 CBAM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아직은 미지수다. 이런 조치가 경우에 따라서는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견제해 한국이 오히려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다만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이 선진국 시장으로 진입하는데 다양한 규제가 새로 생긴다는 건 일단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특히 IRA를 피하기 위해 한국의 공장이 미국 본토로 옮겨가야 할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줄 충격과 함께 과연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면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EU의 CBAM 역시, OECD 국가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이 가장 낮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출품들이 당장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철강 공장이나 시멘트 공장을 유럽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어느 나라보다 국제적인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변화와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경쟁력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엄청난 충격 후에 오는 변화의 조짐은 평소 수준과는 다른 심각성을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파도와 맞설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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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고개 드는 보호무역주의…미국 IRA에 이어 유럽은 CBAM?
    • 입력 2022-12-13 11:00:13
    특파원 리포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중국 견제가 국제 사회를 '신냉전'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에서 '세계화'의 바람이 저물고 '보호무역(블록화)주의'가 강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세계화는 빈부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지만, 저물가 속 풍요라는 단맛을 세계인들에게 선사했다. 따라서 세계화의 종말은 단기적으로 고물가와 '허리 졸라매기'라는 쓴맛(특히 젊은 세대는 처음 경험하는)을 맛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세계화 속에서 가장 많은 혜택(빈부격차라는 고통과 함께)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도 세계화로 대변되는 자유무역 기조에서 가능했다. 따라서 '신냉전',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도래는 막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고 퍼트린 건 미국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죽의 장막'으로 불렸던 중국이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또 미국이 이끈 자유무역 시대에서 첨병 역할을 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2018년 트럼프 정부가 부과했던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WTO 규정 위반이라고 최근 판정하고,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이 판정이 '잘못된 해석과 걸정이라며 강력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매우 낯선 풍경이다.

■ 유럽에서도 고개드는 보호무역주의

중요한 건 서방 선진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 EU에서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을 건데 이어 EU도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을 내년 1월부터 시범운영하겠다고 나서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CBAM은 탄소배출 감축을 덜 한 나라에 대해 그 차이를 보정하겠다는 무역제한 조치를 의미한다.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등 5개 품목에 적용되며 2023년에 시범 도입해 2026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CBAM을 쉽게 정리하면 EU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써서 만들어진 제품을 EU에 수출하려면 그 차이만큼 관세(EU 탄소배출권 거래제에서 정한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를 더 물리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앞세우고 있지만, EU 내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로 볼 수 있다.

최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EU를 방문해 'CBAM을 잘못 관리하면 이 사안이 유럽판 IRA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아직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EU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원자재법'도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IRA나 EU의 CBAM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아직은 미지수다. 이런 조치가 경우에 따라서는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견제해 한국이 오히려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다만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이 선진국 시장으로 진입하는데 다양한 규제가 새로 생긴다는 건 일단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특히 IRA를 피하기 위해 한국의 공장이 미국 본토로 옮겨가야 할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줄 충격과 함께 과연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면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EU의 CBAM 역시, OECD 국가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이 가장 낮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출품들이 당장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철강 공장이나 시멘트 공장을 유럽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어느 나라보다 국제적인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변화와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경쟁력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엄청난 충격 후에 오는 변화의 조짐은 평소 수준과는 다른 심각성을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파도와 맞설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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