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산안 처리’ 안 됐는데…유럽행 비행기 탄 의원들

입력 2022.12.14 (08:00) 수정 2022.12.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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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늘리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만 14조 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당장 회사채 발행을 늘리지 않으면 '채무 불이행'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할 수 있고, 이점에 공감한 여야가 합의로 본회의에 상정했던 건데, 최종 관문에서 뒤집어진 겁니다.

이날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03명 중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됐습니다. 재적 의원 299명 중 97명, 즉 3분의 1가량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건데, 이 중 26명만 더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으면 법안은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여야는 1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을 다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어처구니없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 예산안 시급한데…해외 나간 의원들

지금 국회에는 또 다른 시급한 안건이 있습니다. 이미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이미 훌쩍 넘긴데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 내 처리하지 못한, 새해 예산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소속 위원 17명 중 8명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지난 11일 본회의가 끝난 뒤 시차를 두고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정개특위는 선거 제도 개편을 포함한 정치개혁 문제 전반을 논의하기 위한 비상설 특별위원회입니다.

이들은 17일까지, 6박 7일의 일정으로 아일랜드·프랑스·독일을 차례로 방문합니다. 이 일정대로라면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예고한 오는 15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불참하게 되는 셈입니다.

헌법 제54조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안 됐는데 해외에 나갔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외유성 아냐…일정 변경 어려워"

해당 의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외유성 출장도 아니고, 몇 달 전부터 유럽 국가·의회 등과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갑자기 취소하는 게 오히려 '외교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일정 자체가 정기국회(12월 9일) 이후였는데, 예산안이 정기국회 이후로도 처리가 안 될 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항변했습니다.

A 의원실 관계자는 "아일랜드의 경우 다당제가,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자리를 잘 잡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제기됐던 위성 정당 등의 문제점 등을 논의하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정은 해당국 의회 관계자 면담 등으로만 가득하다"며 "독일에서는 내무부, 선거법개혁위, 아덴하워 재단과, 프랑스에서는 유럽의회를 찾아 헌법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공무에 충실한 일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B 의원실 측은 "의원님이 (출장을) 가기 전에 책을 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했고, C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예산안 본회의 전에 돌아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국회의장도 해외 일정 취소했는데...

이들의 주장도 일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해당 국가 의회와의 신뢰, 정치개혁 문제도 분명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들은 애 초 지난 10일 출국 예정이었다가, 이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 맞춰 출국일도 하루 미룬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국가 예산은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이고, 예산심의권은 국회의 고유한 독립적 기능입니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해외 출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오는 16일에 해외 일정을 고려했으나, 예산안 처리 문제가 쉽지 않아 보여 구상 단계에서부터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국민 눈높이'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의장실은 설명했습니다.

다만,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과 최형두 의원은 15일 귀국해 예산안을 위한 당 의원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중 한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원래 15일 예산안 합의 처리 시점을 염두에 두고 귀국 일정을 잡았었다"며 "여야가 예산안을 합의해도 숫자 조정 작업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의원들도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면 귀국하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래픽 : 김서린 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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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예산안 처리’ 안 됐는데…유럽행 비행기 탄 의원들
    • 입력 2022-12-14 08:00:12
    • 수정2022-12-15 19:34:52
    취재K

지난 8일,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늘리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만 14조 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당장 회사채 발행을 늘리지 않으면 '채무 불이행'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할 수 있고, 이점에 공감한 여야가 합의로 본회의에 상정했던 건데, 최종 관문에서 뒤집어진 겁니다.

이날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03명 중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됐습니다. 재적 의원 299명 중 97명, 즉 3분의 1가량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건데, 이 중 26명만 더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으면 법안은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여야는 1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을 다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어처구니없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 예산안 시급한데…해외 나간 의원들

지금 국회에는 또 다른 시급한 안건이 있습니다. 이미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이미 훌쩍 넘긴데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 내 처리하지 못한, 새해 예산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소속 위원 17명 중 8명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지난 11일 본회의가 끝난 뒤 시차를 두고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정개특위는 선거 제도 개편을 포함한 정치개혁 문제 전반을 논의하기 위한 비상설 특별위원회입니다.

이들은 17일까지, 6박 7일의 일정으로 아일랜드·프랑스·독일을 차례로 방문합니다. 이 일정대로라면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예고한 오는 15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불참하게 되는 셈입니다.

헌법 제54조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안 됐는데 해외에 나갔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외유성 아냐…일정 변경 어려워"

해당 의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외유성 출장도 아니고, 몇 달 전부터 유럽 국가·의회 등과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갑자기 취소하는 게 오히려 '외교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일정 자체가 정기국회(12월 9일) 이후였는데, 예산안이 정기국회 이후로도 처리가 안 될 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항변했습니다.

A 의원실 관계자는 "아일랜드의 경우 다당제가,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자리를 잘 잡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제기됐던 위성 정당 등의 문제점 등을 논의하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정은 해당국 의회 관계자 면담 등으로만 가득하다"며 "독일에서는 내무부, 선거법개혁위, 아덴하워 재단과, 프랑스에서는 유럽의회를 찾아 헌법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공무에 충실한 일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B 의원실 측은 "의원님이 (출장을) 가기 전에 책을 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했고, C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예산안 본회의 전에 돌아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국회의장도 해외 일정 취소했는데...

이들의 주장도 일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해당 국가 의회와의 신뢰, 정치개혁 문제도 분명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들은 애 초 지난 10일 출국 예정이었다가, 이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 맞춰 출국일도 하루 미룬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국가 예산은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이고, 예산심의권은 국회의 고유한 독립적 기능입니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해외 출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오는 16일에 해외 일정을 고려했으나, 예산안 처리 문제가 쉽지 않아 보여 구상 단계에서부터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국민 눈높이'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의장실은 설명했습니다.

다만,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과 최형두 의원은 15일 귀국해 예산안을 위한 당 의원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중 한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원래 15일 예산안 합의 처리 시점을 염두에 두고 귀국 일정을 잡았었다"며 "여야가 예산안을 합의해도 숫자 조정 작업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의원들도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면 귀국하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래픽 : 김서린 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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