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OECD 최저 수준이라고?

입력 2022.12.18 (09:01) 수정 2022.12.21 (14: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지난 5년 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12월 13일 국무회의 발언

윤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전 정부의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을 공식화했습니다.

개편안의 핵심은 재정 효율화입니다. 과다 진료를 막고 필수의료 지원을 강화해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국무회의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의 건강보험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간호사·약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개편안이 추진되면 현재 적용 중인 MRI·초음파 검사에 대한 보장과 중증·희귀질환에 적용되는 산정 특례,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혜택 등이 감소해 결과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줄고 국민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특히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며 오히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적어도 국제적 평균에는 맞춰야 한다는 건데, 현 정부가 안 그래도 낮은 보장성을 더 줄이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정말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래도 우리나라만큼 공적보험으로 의료비를 충당해주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했던 분들에겐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따져봤습니다.

■ OECD 데이터 분석 결과…공공재원↓ 직접부담↑

건강보험 보장성과 보장률이란 표현이 혼용되고 있어 지금부터는 보장률로 통일해 표현하겠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란 환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용 중에서 보험을 통해 얼마까지 보장되는지를 비율(%)로 나타낸 것입니다. 가령, 진료비 총액이 100만 원이 나왔고 보장률이 70%라면 환자 본인이 30만 원, 건보공단이 70만 원을 낸다는 말입니다. 보장률 수치가 높을수록 당연히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적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려면 전체 의료비 대비 '공공재원 비율''직접 부담 비율'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OECD 보건통계(OECD health data)는 나라별로 취합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관련 지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회원국의 보건수준을 비교적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어 각국의 정책 참고 자료로 활용됩니다.

우선, 의료비 총액 대비 공공재원(정부지원+건강보험)의 의료비 지출 비율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변화 추이를 함께 파악하기 위해 지난 10년 치(2012~2021년)를 취합해 분석했습니다.

OECD 평균치는 10년 내내 70% 이상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10% 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였습니다. 모든 나라의 데이터가 온전히 취합되지 않은 2021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38개국 중 34~36위를 오르내려 지난 9년 내내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보다 공공재원 지출이 적었던 나라들은 멕시코, 미국, 그리스, 칠레, 라트비아, 포르투갈입니다. 반면 80% 중반을 기록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국가와 일본은 공공재원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들로 파악됐습니다.

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

의료비 지출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9월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상의료비 중 정부·의무가입제도 비중이 지난 11년(2010~2020)간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상의료비는 한 나라의 국민이 보건의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지출한 총 비용으로 의료복지 지출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아래 표는 한국의 경상의료비에서 건강보험, 산재보험, 장기요양보험 등을 포함한 공공재원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자료 중 발췌〈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자료 중 발췌

이번엔 반대로, 지난 10년(2012~2021)간 OECD 의료비 총액에서 민간보험과 가계가 직접 부담한 비율을 따져봤습니다. 이는 공적보험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조사대상 국가의 경제 규모가 다 다른 만큼 GDP 대비 부담 정도를 파악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2.5~3.2%로 OECD 평균치인 2.2~2.3%보다 최대 1% 포인트 가까이 높았습니다. 2012년 OECD 38개국 중 15번째로 높았던 민간보험·직접 부담 비율이 2020년에는 6번째로 높게 나타날 만큼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보다 민간보험·직접 부담 비율이 높았던 나라는 미국, 캐나다, 포르투갈, 그리스, 칠레 등입니다.

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

위 결과를 종합하면, 대한민국의 의료비 지출 구조에서 건강보험 등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들보다 낮았지만, 민간보험이나 직접 부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때문에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합니다. 기사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밖에도 여러 유관 지표들을 확인해봐도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여러모로 국제적 평균보다 떨어졌습니다.

■ 역대 정부가 약속한 '장밋빛 미래'는 어디로 갔나

사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진보·보수할 것 없이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약속해왔습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다 오랜 세월 국제적 평균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매번 대선공약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선 찾아보기 힘든 '건강보험 보장률'이라는 우리만의 지표를 만들어 집계할 정도입니다.

보장률 강화정책을 본격화한 건 참여정부 때부터입니다. 당시 정부는 2013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을 공언했습니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목표치를 80%로 더 올려잡았지만, 실제 2013년 보장률은 62%에 그쳤습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해 박근혜 정부는 2018년까지 목표치를 68%로 대폭 낮춰 잡았지만, 실제 성적표는 63.8%에 그쳐 과거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 때 못다 이룬 목표치인 70%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달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입니다. 워낙 다양한 이해 주체들이 얽혀있는 데다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경제여건에서 정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보니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역대 정부의 약속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은 이른바 '재난적 의료비 지출'에 따른 파산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란 가계 의료비 지출이 연간소득의 40% 이상인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중병에 걸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과 맞닿아있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OECD 보건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별 재난적 의료비 지출 비율은 7.5%로 OECD 31개 국가 평균치인 5.4%보다 2.1%포인트 높았습니다. 조사대상국 중 9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런 부분입니다.

■ "제한적 보장" VS "보장률 제고"…건강보험 취지 살리는 게 핵심

바로 그 지점에서 해묵은 갈등이 재현됩니다.

정부는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재정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반대로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측은 보장률을 더 높여도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양측 나름대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도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제적으로 낮은 공공재원 비율과 높은 재난적 의료비 지출비, 더불어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 현황이 양호하다는 점 등은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측의 주요 논거입니다. 지난달엔 복지부 스스로도 "2021년 건보 누적 적립금이 20조 2,000억 원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정부는 현 추세대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가정하면 내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는 388조 원 적자가 예상된다는 건보공단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안정적 재정운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세도 주요 고려 사안입니다.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에 대한 입장 차 정리건강보험 보장률 제고에 대한 입장 차 정리

여기에 더해 각종 의료인 단체와 협회, 병원 측 이해 당사자들의 요구도 다 달라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많고 복잡합니다. 그런 만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대로 가기에는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제도나 구조 또 보건의료전달체계는 사실 논의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전문가와 함께 많은 논의를 해서 국민들께서 좀 더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운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건보재정을 어느 수준에서 조정하고 감당할지에 대한 얘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정부 당국자가 별로 없었어요. 미래를 내다보는 일에 우리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장)

※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 발언

건강보험의 존재 가치는 의료비 지출에 대한 국민부담을 줄이고 특히 취약계층을 국가가 재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현실적 한계 속에서 근본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내느냐일 텐데요.

윤 대통령이 15일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돈 걱정 하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강조한 약속이 지켜질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팩트체크K]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OECD 최저 수준이라고?
    • 입력 2022-12-18 09:01:49
    • 수정2022-12-21 14:55:43
    팩트체크K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지난 5년 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12월 13일 국무회의 발언

윤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전 정부의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을 공식화했습니다.

개편안의 핵심은 재정 효율화입니다. 과다 진료를 막고 필수의료 지원을 강화해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국무회의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의 건강보험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간호사·약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개편안이 추진되면 현재 적용 중인 MRI·초음파 검사에 대한 보장과 중증·희귀질환에 적용되는 산정 특례,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혜택 등이 감소해 결과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줄고 국민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특히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며 오히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적어도 국제적 평균에는 맞춰야 한다는 건데, 현 정부가 안 그래도 낮은 보장성을 더 줄이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정말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래도 우리나라만큼 공적보험으로 의료비를 충당해주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했던 분들에겐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따져봤습니다.

■ OECD 데이터 분석 결과…공공재원↓ 직접부담↑

건강보험 보장성과 보장률이란 표현이 혼용되고 있어 지금부터는 보장률로 통일해 표현하겠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란 환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용 중에서 보험을 통해 얼마까지 보장되는지를 비율(%)로 나타낸 것입니다. 가령, 진료비 총액이 100만 원이 나왔고 보장률이 70%라면 환자 본인이 30만 원, 건보공단이 70만 원을 낸다는 말입니다. 보장률 수치가 높을수록 당연히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적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려면 전체 의료비 대비 '공공재원 비율''직접 부담 비율'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OECD 보건통계(OECD health data)는 나라별로 취합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관련 지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회원국의 보건수준을 비교적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어 각국의 정책 참고 자료로 활용됩니다.

우선, 의료비 총액 대비 공공재원(정부지원+건강보험)의 의료비 지출 비율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변화 추이를 함께 파악하기 위해 지난 10년 치(2012~2021년)를 취합해 분석했습니다.

OECD 평균치는 10년 내내 70% 이상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10% 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였습니다. 모든 나라의 데이터가 온전히 취합되지 않은 2021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38개국 중 34~36위를 오르내려 지난 9년 내내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보다 공공재원 지출이 적었던 나라들은 멕시코, 미국, 그리스, 칠레, 라트비아, 포르투갈입니다. 반면 80% 중반을 기록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국가와 일본은 공공재원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들로 파악됐습니다.

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
의료비 지출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9월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상의료비 중 정부·의무가입제도 비중이 지난 11년(2010~2020)간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상의료비는 한 나라의 국민이 보건의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지출한 총 비용으로 의료복지 지출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아래 표는 한국의 경상의료비에서 건강보험, 산재보험, 장기요양보험 등을 포함한 공공재원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자료 중 발췌
이번엔 반대로, 지난 10년(2012~2021)간 OECD 의료비 총액에서 민간보험과 가계가 직접 부담한 비율을 따져봤습니다. 이는 공적보험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조사대상 국가의 경제 규모가 다 다른 만큼 GDP 대비 부담 정도를 파악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2.5~3.2%로 OECD 평균치인 2.2~2.3%보다 최대 1% 포인트 가까이 높았습니다. 2012년 OECD 38개국 중 15번째로 높았던 민간보험·직접 부담 비율이 2020년에는 6번째로 높게 나타날 만큼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보다 민간보험·직접 부담 비율이 높았던 나라는 미국, 캐나다, 포르투갈, 그리스, 칠레 등입니다.

2021년은 38개국 중 20개 국가 데이터가 없어 비교 불가
위 결과를 종합하면, 대한민국의 의료비 지출 구조에서 건강보험 등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들보다 낮았지만, 민간보험이나 직접 부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때문에 "한국이 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합니다. 기사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밖에도 여러 유관 지표들을 확인해봐도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여러모로 국제적 평균보다 떨어졌습니다.

■ 역대 정부가 약속한 '장밋빛 미래'는 어디로 갔나

사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진보·보수할 것 없이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약속해왔습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다 오랜 세월 국제적 평균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매번 대선공약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선 찾아보기 힘든 '건강보험 보장률'이라는 우리만의 지표를 만들어 집계할 정도입니다.

보장률 강화정책을 본격화한 건 참여정부 때부터입니다. 당시 정부는 2013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을 공언했습니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목표치를 80%로 더 올려잡았지만, 실제 2013년 보장률은 62%에 그쳤습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해 박근혜 정부는 2018년까지 목표치를 68%로 대폭 낮춰 잡았지만, 실제 성적표는 63.8%에 그쳐 과거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 때 못다 이룬 목표치인 70%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달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입니다. 워낙 다양한 이해 주체들이 얽혀있는 데다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경제여건에서 정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보니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역대 정부의 약속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은 이른바 '재난적 의료비 지출'에 따른 파산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란 가계 의료비 지출이 연간소득의 40% 이상인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중병에 걸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과 맞닿아있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OECD 보건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별 재난적 의료비 지출 비율은 7.5%로 OECD 31개 국가 평균치인 5.4%보다 2.1%포인트 높았습니다. 조사대상국 중 9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런 부분입니다.

■ "제한적 보장" VS "보장률 제고"…건강보험 취지 살리는 게 핵심

바로 그 지점에서 해묵은 갈등이 재현됩니다.

정부는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재정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반대로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측은 보장률을 더 높여도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양측 나름대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도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제적으로 낮은 공공재원 비율과 높은 재난적 의료비 지출비, 더불어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 현황이 양호하다는 점 등은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를 촉구하는 측의 주요 논거입니다. 지난달엔 복지부 스스로도 "2021년 건보 누적 적립금이 20조 2,000억 원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정부는 현 추세대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가정하면 내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는 388조 원 적자가 예상된다는 건보공단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안정적 재정운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세도 주요 고려 사안입니다.

건강보험 보장률 제고에 대한 입장 차 정리
여기에 더해 각종 의료인 단체와 협회, 병원 측 이해 당사자들의 요구도 다 달라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많고 복잡합니다. 그런 만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대로 가기에는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제도나 구조 또 보건의료전달체계는 사실 논의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전문가와 함께 많은 논의를 해서 국민들께서 좀 더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운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건보재정을 어느 수준에서 조정하고 감당할지에 대한 얘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정부 당국자가 별로 없었어요. 미래를 내다보는 일에 우리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장)

※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 발언

건강보험의 존재 가치는 의료비 지출에 대한 국민부담을 줄이고 특히 취약계층을 국가가 재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현실적 한계 속에서 근본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내느냐일 텐데요.

윤 대통령이 15일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돈 걱정 하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강조한 약속이 지켜질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