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잊지 않는다…영화 ‘쓰리 빌보드’

입력 2022.12.18 (09:05)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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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황량한 초원. 버려진 광고판 세 개가 줄지어 서 있다. 차를 몰던 중년 여성은 이 광고판에 주목한다. 여자의 이름은 밀드레드. 하지만 그는 동네에서 다른 이름으로 통한다. 누구는 숨을 죽이고, 누구는 한 번 더 고개를 쳐들어 쳐다보게 하는 존재. "당신…안젤라 헤이스의 어머니군요?"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시선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안젤라가 땅에 묻힌 지 벌써 7개월이나 지났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은 자유로이 활개 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여자는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그래, 내가 걔 엄마요. 저 광고판 1년 동안 빌리는 데 얼마요?"

영화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잊지 말라고 소리친다. 낡은 광고판 3개가 그녀의 확성기다. 하얀 페인트로 적힌 문구는 간결하다.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아직도 못 잡았다고? 죽어가며 성폭행당한 내 딸을?" 딸의 죽음을 없는 셈 치려는 이들을 향해 부채를 똑똑히 기억하라는 외침은 동네를 뒤흔든다. 사람 좋은 경찰서장의 이름을 명시한 데다 범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다는 게 이웃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다. 급기야 교구 목사까지 광고를 내리라며 설득을 시도하지만, 밀드레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광고판 좀 걸었더니 사방에서 연락이 온다며 코웃음 칠 뿐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

요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좋은 노동자'와 '좋은 피해자'는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뭐라도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 슬퍼하는 건 괜찮지만, 그것도 적당히 하지 않으면 빈축을 산다. 심지어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서로 만나서도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노동 조건에 놓여 있어도, 얼마나 황망한 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묵묵히 알아서 해결하고 조용히 죽어가야만 동정을 베풀어주겠다는 듯하다.

우리 모두 당신 편이에요, 하지만…. 슬픔엔 깊이 공감하지만, 그렇지만…. 진심을 뒤에 숨기는 기만적인 위로에 맞서 밀드레드가 요구하는 건 딱 하나다. 범인을 잡는 게 경찰의 일이라면, 그 역할을 하라는 것. 경찰은 경찰의 일에 관심이 없고, 참견쟁이 치과의사도 진료보다 잔소리가 앞서는 마을에서 밀드레드는 유일하게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해낸다. 아이 잃은 엄마로서, 범죄 사건의 피해자로서, 잘못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 그의 요구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네이버 '시리즈 온'이나 OTT 서비스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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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8 09:05:41
    • 수정2022-12-26 09:39:16
    씨네마진국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황량한 초원. 버려진 광고판 세 개가 줄지어 서 있다. 차를 몰던 중년 여성은 이 광고판에 주목한다. 여자의 이름은 밀드레드. 하지만 그는 동네에서 다른 이름으로 통한다. 누구는 숨을 죽이고, 누구는 한 번 더 고개를 쳐들어 쳐다보게 하는 존재. "당신…안젤라 헤이스의 어머니군요?"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시선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안젤라가 땅에 묻힌 지 벌써 7개월이나 지났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은 자유로이 활개 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여자는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그래, 내가 걔 엄마요. 저 광고판 1년 동안 빌리는 데 얼마요?"

영화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잊지 말라고 소리친다. 낡은 광고판 3개가 그녀의 확성기다. 하얀 페인트로 적힌 문구는 간결하다.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아직도 못 잡았다고? 죽어가며 성폭행당한 내 딸을?" 딸의 죽음을 없는 셈 치려는 이들을 향해 부채를 똑똑히 기억하라는 외침은 동네를 뒤흔든다. 사람 좋은 경찰서장의 이름을 명시한 데다 범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다는 게 이웃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다. 급기야 교구 목사까지 광고를 내리라며 설득을 시도하지만, 밀드레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광고판 좀 걸었더니 사방에서 연락이 온다며 코웃음 칠 뿐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출처 IMDB.
요사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원하는 '좋은 노동자'와 '좋은 피해자'는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뭐라도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 슬퍼하는 건 괜찮지만, 그것도 적당히 하지 않으면 빈축을 산다. 심지어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서로 만나서도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노동 조건에 놓여 있어도, 얼마나 황망한 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묵묵히 알아서 해결하고 조용히 죽어가야만 동정을 베풀어주겠다는 듯하다.

우리 모두 당신 편이에요, 하지만…. 슬픔엔 깊이 공감하지만, 그렇지만…. 진심을 뒤에 숨기는 기만적인 위로에 맞서 밀드레드가 요구하는 건 딱 하나다. 범인을 잡는 게 경찰의 일이라면, 그 역할을 하라는 것. 경찰은 경찰의 일에 관심이 없고, 참견쟁이 치과의사도 진료보다 잔소리가 앞서는 마을에서 밀드레드는 유일하게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해낸다. 아이 잃은 엄마로서, 범죄 사건의 피해자로서, 잘못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 그의 요구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네이버 '시리즈 온'이나 OTT 서비스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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