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수사 vs 적법 수사…‘피고인’ 된 경찰 마약수사팀

입력 2022.12.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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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범을 쫓는 경찰관 5명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검찰은 경찰관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했고, 경찰관들은 최후 진술에서 무죄를 호소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검찰이 마약 수사 경찰관들을 기소한 사건, 내용은 이렇습니다.

■ 경찰 '적법 수사' vs 검찰 '위법 수사'

피고인 5명은 대구 강북경찰서 소속 마약 수사팀 경찰관들입니다.

이들은 올해 초부터 외국인 마약 사범 검거에 주력해왔습니다.

지난 5월 당시 이들의 목표는 마약밀매 조직 총책인 태국인 A 씨였습니다.

경찰은 5월 22일 A 씨를 잡겠다며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다음날인 23일 검찰은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고 보강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대로 행동에 나섰고, 25일 경남 김해의 한 모텔에서 A 씨를 체포합니다.

25일 체포 당시, 경찰에게는 '적법한 체포영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불법 체류자였고, 경찰은 이 점을 노려 A 씨를 불법체류자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도주 중인 A 씨의 소재에 대한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았고,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는 게 수사관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경찰관이 불법 체류자를 현행범으로 붙잡은 건 당연히 적법한 체포였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경찰은 A 씨를 체포한 이후 모텔 방을 수색해 마약류를 찾아냈습니다.

대구 강북서 마약 수사팀의 태국인 A씨 수사 과정입니다. 경찰은 체포 영장을 받지 못하자 현행범 체포에 나섰지만, ‘위법 수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대구 강북서 마약 수사팀의 태국인 A씨 수사 과정입니다. 경찰은 체포 영장을 받지 못하자 현행범 체포에 나섰지만, ‘위법 수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반면 검찰은 일련의 과정이 모두 잘못된 '위법한 수사'라는 입장입니다.

먼저 경찰이 마약 혐의로 A 씨에 대해 수사를 해놓고서는 정작 현장에선 적법한 영장 없이 다른 혐의로 A 씨를 체포한 것은 위법이라는 겁니다.

또 체포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권과 진술 거부권 등을 알리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던 점, 수색영장 없이 모텔 방을 뒤진 것도 모두 문제가 됐습니다.

현장에서 A 씨는 방값을 내라는 종업원의 말을 듣고선 모텔 복도로 나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불법 체류' 혐의로 복도에서 체포해 놓고선, 모텔 방을 수색한 건 엄연한 불법 수색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검찰은 경찰관 5명 모두에게 '직권남용체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또 하나, 경찰관 중 일부는 A 씨를 붙잡아 수갑을 채운 뒤에도 A 씨를 폭행했습니다.

이는 모텔 CCTV에 고스란히 찍혔죠.

검찰은 이 부분 역시 과잉 진압이자 불법 수사라는 입장입니다.

폭력 행위를 한 경찰관에겐 '독직폭행' 혐의도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A 씨와 일당들이 태국어로 뭔가 소리치며 저항했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물리적인 제압이 필요했다고 해명합니다.

통상 마약사범 체포 과정에서 마약 사범들이 환각 상태일 때가 많은데, 불의의 사고를 막으려면 강력한 제압이 필요하다는 게 경찰 측 항변입니다.

실제 모텔 방에서는 공범들이 달아나려 했었습니다.

해당 경찰관은 법정 진술에서 "CCTV가 복도를 찍고 있다는 걸, 우리 행동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한 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태국인 A 씨는 '경찰로부터 부당한 체포를 당했다'는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7월 다른 혐의로 대전지검에 구속됐습니다.

■ 물러설 수 없는 싸움, 검경 갈등 연장선?

경찰 내부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의 경찰 길들이기라는 불만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장 경찰관들의 어려움은 무시한 채 꼬투리를 잡아 기소했다는 거죠.

문기영 /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 대표
"마약 범죄자들이 경찰관에게 주저 없이 칼이나 흉기를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고,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매우 급한 현장 상황을 검찰에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문제가 발생한 5월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른바 검수완박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점입니다.

극심한 갈등 국면에서 검찰이 경찰 손봐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또한 검사 출신인 대통령까지 나서 마약 사범 근절을 강조하는 상황에, 마약 수사관 처벌은 마약 수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형법(124조, 125조)은 경찰관들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징역형을 내리라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만약 경찰관들이 징역형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공무원에서 자동 해임됩니다.

가뜩이나 마약 수사가 어려운데, 일선 수사관들이 현장에서 벌어진 논란으로 직장마저 잃게 된다면 앞으로 누가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겠냐는 겁니다.

반면 검찰은 첫 공판 때부터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위법한 현행범 체포, 영장 없는 압수수색, 독직폭행 등은 형사소송법과 영장주의 대원칙을 위반한 중대한 불법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위법한 체포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런 일이 용인된다면 헌법과 형사소송법 체계의 근간을 위협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검찰은 경찰관들에게 각각 징역 6개월부터 3년까지와 자격정지를 구형했습니다.

당연히 검수완박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입장입니다.

'과정이 잘못됐다면, 그 결과도 잘못됐다'면서 원칙을 지키겠다는 검찰.

최선을 다해 외국인 마약 사범을 쫓고 잡았는데 도리어 범죄자로 몰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찰.

누구의 입장이 더 옳은지, 더 상식적인지, 법원의 판단은 내년 1월 31일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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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법 수사 vs 적법 수사…‘피고인’ 된 경찰 마약수사팀
    • 입력 2022-12-18 10:00:19
    취재K

마약 사범을 쫓는 경찰관 5명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검찰은 경찰관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했고, 경찰관들은 최후 진술에서 무죄를 호소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검찰이 마약 수사 경찰관들을 기소한 사건, 내용은 이렇습니다.

■ 경찰 '적법 수사' vs 검찰 '위법 수사'

피고인 5명은 대구 강북경찰서 소속 마약 수사팀 경찰관들입니다.

이들은 올해 초부터 외국인 마약 사범 검거에 주력해왔습니다.

지난 5월 당시 이들의 목표는 마약밀매 조직 총책인 태국인 A 씨였습니다.

경찰은 5월 22일 A 씨를 잡겠다며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합니다.

다음날인 23일 검찰은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고 보강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대로 행동에 나섰고, 25일 경남 김해의 한 모텔에서 A 씨를 체포합니다.

25일 체포 당시, 경찰에게는 '적법한 체포영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불법 체류자였고, 경찰은 이 점을 노려 A 씨를 불법체류자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도주 중인 A 씨의 소재에 대한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았고,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는 게 수사관들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경찰관이 불법 체류자를 현행범으로 붙잡은 건 당연히 적법한 체포였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경찰은 A 씨를 체포한 이후 모텔 방을 수색해 마약류를 찾아냈습니다.

대구 강북서 마약 수사팀의 태국인 A씨 수사 과정입니다. 경찰은 체포 영장을 받지 못하자 현행범 체포에 나섰지만, ‘위법 수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반면 검찰은 일련의 과정이 모두 잘못된 '위법한 수사'라는 입장입니다.

먼저 경찰이 마약 혐의로 A 씨에 대해 수사를 해놓고서는 정작 현장에선 적법한 영장 없이 다른 혐의로 A 씨를 체포한 것은 위법이라는 겁니다.

또 체포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권과 진술 거부권 등을 알리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던 점, 수색영장 없이 모텔 방을 뒤진 것도 모두 문제가 됐습니다.

현장에서 A 씨는 방값을 내라는 종업원의 말을 듣고선 모텔 복도로 나왔다가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불법 체류' 혐의로 복도에서 체포해 놓고선, 모텔 방을 수색한 건 엄연한 불법 수색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검찰은 경찰관 5명 모두에게 '직권남용체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또 하나, 경찰관 중 일부는 A 씨를 붙잡아 수갑을 채운 뒤에도 A 씨를 폭행했습니다.

이는 모텔 CCTV에 고스란히 찍혔죠.

검찰은 이 부분 역시 과잉 진압이자 불법 수사라는 입장입니다.

폭력 행위를 한 경찰관에겐 '독직폭행' 혐의도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A 씨와 일당들이 태국어로 뭔가 소리치며 저항했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물리적인 제압이 필요했다고 해명합니다.

통상 마약사범 체포 과정에서 마약 사범들이 환각 상태일 때가 많은데, 불의의 사고를 막으려면 강력한 제압이 필요하다는 게 경찰 측 항변입니다.

실제 모텔 방에서는 공범들이 달아나려 했었습니다.

해당 경찰관은 법정 진술에서 "CCTV가 복도를 찍고 있다는 걸, 우리 행동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한 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태국인 A 씨는 '경찰로부터 부당한 체포를 당했다'는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7월 다른 혐의로 대전지검에 구속됐습니다.

■ 물러설 수 없는 싸움, 검경 갈등 연장선?

경찰 내부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의 경찰 길들이기라는 불만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장 경찰관들의 어려움은 무시한 채 꼬투리를 잡아 기소했다는 거죠.

문기영 /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 대표
"마약 범죄자들이 경찰관에게 주저 없이 칼이나 흉기를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고,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매우 급한 현장 상황을 검찰에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문제가 발생한 5월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른바 검수완박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점입니다.

극심한 갈등 국면에서 검찰이 경찰 손봐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또한 검사 출신인 대통령까지 나서 마약 사범 근절을 강조하는 상황에, 마약 수사관 처벌은 마약 수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형법(124조, 125조)은 경찰관들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징역형을 내리라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만약 경찰관들이 징역형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공무원에서 자동 해임됩니다.

가뜩이나 마약 수사가 어려운데, 일선 수사관들이 현장에서 벌어진 논란으로 직장마저 잃게 된다면 앞으로 누가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겠냐는 겁니다.

반면 검찰은 첫 공판 때부터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위법한 현행범 체포, 영장 없는 압수수색, 독직폭행 등은 형사소송법과 영장주의 대원칙을 위반한 중대한 불법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위법한 체포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런 일이 용인된다면 헌법과 형사소송법 체계의 근간을 위협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검찰은 경찰관들에게 각각 징역 6개월부터 3년까지와 자격정지를 구형했습니다.

당연히 검수완박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입장입니다.

'과정이 잘못됐다면, 그 결과도 잘못됐다'면서 원칙을 지키겠다는 검찰.

최선을 다해 외국인 마약 사범을 쫓고 잡았는데 도리어 범죄자로 몰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찰.

누구의 입장이 더 옳은지, 더 상식적인지, 법원의 판단은 내년 1월 31일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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