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오늘 밥상 얼마에 차렸나요?…허리휘는데 ‘통행세’까지

입력 2022.12.19 (07:01) 수정 2022.12.1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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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하셨습니까? 혹시 최근 반찬 한 두 가지 줄이진 않으셨나요? 어제 저녁 밥상은 만족스럽게 마련하셨나요?

올 하반기를 관통하는 말은 '고물가' 였습니다.

점심식사와 인플레이션을 혼합한 '런치플레이션',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편도족'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지난달 우유 출고 가격이 평균 6% 인상된 이후에는 치즈와 버터·빵 등 우유를 원료로 한 제품이 연쇄적으로 함께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구내식당 물가 5%, 도시락 가격도 8.7% 오르자 '그래도 집밥이 싸다'고 집으로 돌아서지만, 이마저 녹록치는 않습니다. 품목을 옮겨가며 요동치는 물가엔 채소, 과일 등 식재료 가격도 한 몫하고 있으니까요.

■생산지는 3만 원…소비자는 25만 원

제품마다 '원가'가 있습니다.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더 비싼 이유는 원재료 등 생산 원가가 더 높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 원칙이 가끔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농산물입니다. 생산비로 1만 원이 들었는데, 그 농민이 받은 농산물 가격은 1만 원이 안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차라리 인건비라도 아끼자며 밭을 갈아엎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소비자들은 분명, 그 어느때보다 비싼 값을 내고 장을 보고 있거든요.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지난 9월 취재진이 고추를 수확하던 농민을 만난 날 생긴 일입니다.

" 풋고추 10Kg 한 박스에 3만 원에 팔았어요 .인건비도 안 나와요.
그런데 소비자 가격이 100g에 2,500원이예요. 그럼 10kg이면 25만 원이잖아요.
정말 그 정도만 받는다면 저는 대통령 하라고 해도 대통령 안 하고 농사 짓겠어요"

농민과 소비자 사이, 거의 10배에 가까운 가격 차이가 났습니다. 이 엄청난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유통 단계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단계를 거칠수록 비용은 오를 수 밖에 없는데요. 취재진은 우선, 그 첫 단추부터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정해지는 곳, 공영 도매시장

국내 농산물의 67%는 공영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됩니다. 판매가 익숙치 않은 농어민 입장에선, 숙련된 사람이 물건을 대신 팔아준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죠. 바로 이 역할을 공영 도매시장이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시설을 짓고, 유통 전문 회사에 판매를 맡겼습니다.


농민들이 농산물을 보내면 회사는 경매를 열고, 상인들에게 판매합니다. 이 때 농산물에 '가격'이 처음으로 생겨납니다. 전국 33개 공영 도매시장 가운데 '서울 가락시장'은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유통되는 만큼, 여기서 형성된 가격이 국내 농산물 값의 기준이 됩니다.

■ "관리하는 농가가 다 있어요"

그런데, 이 가격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고, 부부가 이름만 다르게 물건을 동시에 출하해도 낙찰 가격이 다릅니다. 그날 그날 수요와 공급량이 달라 생긴 현상이라지만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듯 합니다.


건국대 김윤두 교수팀에 의뢰해 가락시장 출하자 17만 5천여 명의 거래 자료를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26개 품목 가운데 19개 품목에서, 거래 물량이 많은 상위 10%의 농가에서 낙찰된 경매 가격이, 하위 10% 농가의 경매 가격보다 높았습니다. 김 교수는 연구 결과를 두고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도매시장에서 경매 입찰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공정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보다 영세한 소농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의도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거래를 많이 하는 이른바 '대농'에게 유리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대규모 출하자들에게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이들과 거래하는 상인에게 굉장한 압력을 주고, 또한 소매 가격이 높아지는 한 요인이 됩니다."

나머지 7개 품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귤'이나 '포도' '버섯' 등인데, 황금향이나 레드향, 혹은 샤인머스켓이나 고가의 버섯을 취급하는 농가의 경우는 규모가 적더라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소 예외적인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오랜 경력의 한 경매사는 회사 수익을 위해 출하 규모가 큰 농가를 상대로 한 영업은 주요한 업무이며, 때로 이것이 경매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대규모 농가'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노력 안 해도 수익을 얻는 시스템 입니다"

이 공영도매시장에서 고등어, 삼치, 갈치 등 수산물을 오래 취급해 온 상인들은 경매를 담당하는 회사에 내는 수수료를 '통행세'라고 부릅니다. 실제로는 산지에서 선어류를 직접 사들이지만, 법적으로 도매시장법인이란 경매 회사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겉으로 문제 없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서류상으로 경매를 한 것처럼 꾸민다는 증언입니다.

지난해, 중도매인의 62%가 이런 '불법 행위'로 행정처분을 받을 정도로 이 세계에선 관행이 된 형국입니다. 문제는 이런 '형식적 경매'를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비용이 또 투입된다는 점입니다. 수수료 3~4%를 회사에 내는데, 상인들은 결국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가혹한 연말 ·불안한 새해

소비자 물가는 좀처럼 꺾일 줄 모릅니다. 전년 동기 대비, 8월에 5.7%, 9월 5.6%, 10월 5.7% 지난달에도 5% 상승하는 등 7개월 째 5%를 웃도는 오름세가 이어졌고, 내년에도 원자재값과 환율 ·금리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조금 부담되는 상황에 그칠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겐 절박한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가 세금, 집값 등 필수 지출 항목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돈은 월 90만 2천 원인데, 이 가운데 42만9천 원을 식비로 사용했습니다. 즉, 실질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먹는데 쓰인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듣고 싶은 발표는 '물가 전망'이 아니라 '물가 안정' 일지도 모릅니다.

12월 20일 KBS1TV 밤 10시 시사기획 창 <누가 밥상 물가 흔드나>에서 먹거리 가격과 안전을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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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 오늘 밥상 얼마에 차렸나요?…허리휘는데 ‘통행세’까지
    • 입력 2022-12-19 07:01:30
    • 수정2022-12-19 07:19:19
    취재K
아침 식사 하셨습니까? 혹시 최근 반찬 한 두 가지 줄이진 않으셨나요? 어제 저녁 밥상은 만족스럽게 마련하셨나요?

올 하반기를 관통하는 말은 '고물가' 였습니다.

점심식사와 인플레이션을 혼합한 '런치플레이션',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편도족'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지난달 우유 출고 가격이 평균 6% 인상된 이후에는 치즈와 버터·빵 등 우유를 원료로 한 제품이 연쇄적으로 함께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구내식당 물가 5%, 도시락 가격도 8.7% 오르자 '그래도 집밥이 싸다'고 집으로 돌아서지만, 이마저 녹록치는 않습니다. 품목을 옮겨가며 요동치는 물가엔 채소, 과일 등 식재료 가격도 한 몫하고 있으니까요.

■생산지는 3만 원…소비자는 25만 원

제품마다 '원가'가 있습니다.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더 비싼 이유는 원재료 등 생산 원가가 더 높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 원칙이 가끔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농산물입니다. 생산비로 1만 원이 들었는데, 그 농민이 받은 농산물 가격은 1만 원이 안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차라리 인건비라도 아끼자며 밭을 갈아엎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소비자들은 분명, 그 어느때보다 비싼 값을 내고 장을 보고 있거든요.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지난 9월 취재진이 고추를 수확하던 농민을 만난 날 생긴 일입니다.

" 풋고추 10Kg 한 박스에 3만 원에 팔았어요 .인건비도 안 나와요.
그런데 소비자 가격이 100g에 2,500원이예요. 그럼 10kg이면 25만 원이잖아요.
정말 그 정도만 받는다면 저는 대통령 하라고 해도 대통령 안 하고 농사 짓겠어요"

농민과 소비자 사이, 거의 10배에 가까운 가격 차이가 났습니다. 이 엄청난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유통 단계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단계를 거칠수록 비용은 오를 수 밖에 없는데요. 취재진은 우선, 그 첫 단추부터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정해지는 곳, 공영 도매시장

국내 농산물의 67%는 공영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됩니다. 판매가 익숙치 않은 농어민 입장에선, 숙련된 사람이 물건을 대신 팔아준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죠. 바로 이 역할을 공영 도매시장이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시설을 짓고, 유통 전문 회사에 판매를 맡겼습니다.


농민들이 농산물을 보내면 회사는 경매를 열고, 상인들에게 판매합니다. 이 때 농산물에 '가격'이 처음으로 생겨납니다. 전국 33개 공영 도매시장 가운데 '서울 가락시장'은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유통되는 만큼, 여기서 형성된 가격이 국내 농산물 값의 기준이 됩니다.

■ "관리하는 농가가 다 있어요"

그런데, 이 가격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고, 부부가 이름만 다르게 물건을 동시에 출하해도 낙찰 가격이 다릅니다. 그날 그날 수요와 공급량이 달라 생긴 현상이라지만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듯 합니다.


건국대 김윤두 교수팀에 의뢰해 가락시장 출하자 17만 5천여 명의 거래 자료를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26개 품목 가운데 19개 품목에서, 거래 물량이 많은 상위 10%의 농가에서 낙찰된 경매 가격이, 하위 10% 농가의 경매 가격보다 높았습니다. 김 교수는 연구 결과를 두고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도매시장에서 경매 입찰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공정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보다 영세한 소농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의도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거래를 많이 하는 이른바 '대농'에게 유리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대규모 출하자들에게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이들과 거래하는 상인에게 굉장한 압력을 주고, 또한 소매 가격이 높아지는 한 요인이 됩니다."

나머지 7개 품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귤'이나 '포도' '버섯' 등인데, 황금향이나 레드향, 혹은 샤인머스켓이나 고가의 버섯을 취급하는 농가의 경우는 규모가 적더라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소 예외적인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오랜 경력의 한 경매사는 회사 수익을 위해 출하 규모가 큰 농가를 상대로 한 영업은 주요한 업무이며, 때로 이것이 경매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대규모 농가'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노력 안 해도 수익을 얻는 시스템 입니다"

이 공영도매시장에서 고등어, 삼치, 갈치 등 수산물을 오래 취급해 온 상인들은 경매를 담당하는 회사에 내는 수수료를 '통행세'라고 부릅니다. 실제로는 산지에서 선어류를 직접 사들이지만, 법적으로 도매시장법인이란 경매 회사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겉으로 문제 없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서류상으로 경매를 한 것처럼 꾸민다는 증언입니다.

지난해, 중도매인의 62%가 이런 '불법 행위'로 행정처분을 받을 정도로 이 세계에선 관행이 된 형국입니다. 문제는 이런 '형식적 경매'를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비용이 또 투입된다는 점입니다. 수수료 3~4%를 회사에 내는데, 상인들은 결국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가혹한 연말 ·불안한 새해

소비자 물가는 좀처럼 꺾일 줄 모릅니다. 전년 동기 대비, 8월에 5.7%, 9월 5.6%, 10월 5.7% 지난달에도 5% 상승하는 등 7개월 째 5%를 웃도는 오름세가 이어졌고, 내년에도 원자재값과 환율 ·금리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조금 부담되는 상황에 그칠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겐 절박한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가 세금, 집값 등 필수 지출 항목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돈은 월 90만 2천 원인데, 이 가운데 42만9천 원을 식비로 사용했습니다. 즉, 실질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먹는데 쓰인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듣고 싶은 발표는 '물가 전망'이 아니라 '물가 안정' 일지도 모릅니다.

12월 20일 KBS1TV 밤 10시 시사기획 창 <누가 밥상 물가 흔드나>에서 먹거리 가격과 안전을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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