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가장 사랑받는 공주가 쓰러졌다…엉켜버린 태국 왕실의 후계구도

입력 2022.12.19 (15:14) 수정 2022.12.1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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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쓰러진 왕가의 맏딸

지난 15일 오후, 북동부 나콘랏차시마의 한 병원에서 헬기가 떴다 (이날 관제국 기록을 보면 모두 1,088명이 이 헬기의 이동 경로(트랙)를 주시했다.) 방콕 쭐라롱껀 대학병원으로 향한 이 헬기에는 현 국왕의 맏딸인 팟차라까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 공주(44)가 타고 있었다.

공주는 육군 주최로 열리는 군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반려견을 훈련하던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한때 안정을 찾았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후 닷새째 의식 불명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병원을 찾은 국왕 부부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공주가 입원한 쭐라롱껀대학병원에는 쁘라윳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공주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병원에서 만난 지랏 웡쁘라윗은 자신이 공주의 대학 2년 선배이며 함께 공부하며 일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누구보다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왕실호위대에 근무하기위해 단발머리를 한 ‘파’공주. 스카이다이빙 등 익스트림스포츠를 좋아하고 소외받는 여성들과 특히 여성수감자 인권 등에 관심을 가졌다. 사진은 지난해 스카이다이빙에 참여한 '파'공주. 사진 트위터 등 왕실호위대에 근무하기위해 단발머리를 한 ‘파’공주. 스카이다이빙 등 익스트림스포츠를 좋아하고 소외받는 여성들과 특히 여성수감자 인권 등에 관심을 가졌다. 사진은 지난해 스카이다이빙에 참여한 '파'공주. 사진 트위터 등

2. 익스트림 스포츠를 사랑한 검사 프린세스

‘파(P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팟차라까띠야파 공주는 국왕의 첫 번째 배우자인 쏨와사리의 큰딸이다. 탐마삿대(민주화 시위로 유명한 대학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로 일했고, 이후 주 유엔(UN)대사와 주 오스트리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공식 직함을 가진 국왕의 3명의 자녀 중 단연 뚜렷한 업무능력을 보여왔다. 최근까지 왕실 호위대에서 근무했다.

태국 왕실은 좀처럼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맏딸 ‘파’ 공주는 대중들과 소탈하게 어울린다. 보통 사람처럼 크게 웃고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고 특히 여성 문제와 여성 수감자들의 인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익스트림 스포츠도 좋아한다. ‘조심조심’이 몸에 밴 왕실에서 최근에는 보란 듯이 스카이다이빙 실력을 보여줬다. 왕실에 부정적인 젊은이들도 '파' 공주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인기가 시들고 있는 태국 왕실에서 ‘파’ 공주는 대중과 왕실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다리가 끊어지면 왕실과 대중과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쁘라윳 태국 총리와 장관들이 쭐라롱껀 대학병원을 찾아 ‘파’공주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12월 16일. 사진 로이터 쁘라윳 태국 총리와 장관들이 쭐라롱껀 대학병원을 찾아 ‘파’공주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12월 16일. 사진 로이터

3. 왕위 계승 1순위는?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지만 국왕이 상징적인 존재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사실상 국가 수반이며 최고 권력자다. 국왕은 총리 등 내각의 임명권을 갖고 있고, 총리는 왕에게 걸어서 다가갈 수도 없다. 왕실모독제가 여전히 형법(112조)으로 존재한다. 왕실의 맏딸이 쓰러지면서 관심은 다시 후계구도에 모아진다. 지난 2016년 라마 9세의 서거 이후 즉위한 현 와치라롱껀 국왕은 올해 70세다.

 왼쪽부터 ‘파’공주와 와찌라롱껀 국왕(70)과 수티타 왕비         사진 AP 왼쪽부터 ‘파’공주와 와찌라롱껀 국왕(70)과 수티타 왕비 사진 AP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는 아직 공식 지명되지 않았다.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인 디파콘왕자(Prince Dipangkorn Rasmijoty, 17)가 가장 유력하지만, 아직 어리고 끊임없이 건강이상설이 제기된다. 디파콘왕자는 아직 한 번도 대중 앞에서 인터뷰나 연설을 해본 적이 없다.

‘파’ 공주는 그래서 디파콘왕자가 언젠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파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 태국 최초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지난 1974년 태국 정부는, 왕자가 없을 경우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만약 ‘파’ 공주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왕위 계승 셈법은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왕의 첫째 배우자 쏨사와리의 무남독녀('파' 공주)는 쓰려져 의식이 없고, 두 번째 배우자는 사실상 왕가에서 퇴출 돼 막내딸(Princess Sirivannavari, 디자이너)만 왕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 번째 배우자와 낳은 유일한 아들인 디파콘왕자는 이제 17살이다. 건강이 안 좋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현 왕비인 퀸 수티타(Queen Suthida)는 자녀가 없다. 다섯 번째 배우자인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전투기 조종사 출신, 37) 역시 아직 자녀가 없다(시니낫은 왕비를 제외하고 태국 왕실이 인정하는 유일한 공식 배우자다)

왕가의 직계존속이 서거하면 태국왕실의 애도 기간이 선포된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푸미폰국왕(라마9세)은 서거 후 1년의 애도 기간을 지난 뒤에야 장례가 치러졌다. 이 기간 화려한 쇼나 대중공연은 대부분 취소된다. 왕실은 오늘 '파' 공주가 여전히 의료장비에 의존하고 있으며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짧은 메시지만 발표했다.

공주가 툭툭 털고 일어설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하지만, 왕실이 연말 주요 행사들을 앞두고(매년 12월 31일 파타야에서는 아시아 최대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린다) 슬픈 소식의 발표일정을 조율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어느 언론도 이를 공개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그만큼 태국에서 왕실의 안위는 중요하고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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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가장 사랑받는 공주가 쓰러졌다…엉켜버린 태국 왕실의 후계구도
    • 입력 2022-12-19 15:14:20
    • 수정2022-12-19 20:49:12
    특파원 리포트

1. 쓰러진 왕가의 맏딸

지난 15일 오후, 북동부 나콘랏차시마의 한 병원에서 헬기가 떴다 (이날 관제국 기록을 보면 모두 1,088명이 이 헬기의 이동 경로(트랙)를 주시했다.) 방콕 쭐라롱껀 대학병원으로 향한 이 헬기에는 현 국왕의 맏딸인 팟차라까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 공주(44)가 타고 있었다.

공주는 육군 주최로 열리는 군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반려견을 훈련하던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한때 안정을 찾았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후 닷새째 의식 불명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병원을 찾은 국왕 부부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공주가 입원한 쭐라롱껀대학병원에는 쁘라윳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공주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병원에서 만난 지랏 웡쁘라윗은 자신이 공주의 대학 2년 선배이며 함께 공부하며 일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누구보다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왕실호위대에 근무하기위해 단발머리를 한 ‘파’공주. 스카이다이빙 등 익스트림스포츠를 좋아하고 소외받는 여성들과 특히 여성수감자 인권 등에 관심을 가졌다. 사진은 지난해 스카이다이빙에 참여한 '파'공주. 사진 트위터 등
2. 익스트림 스포츠를 사랑한 검사 프린세스

‘파(P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팟차라까띠야파 공주는 국왕의 첫 번째 배우자인 쏨와사리의 큰딸이다. 탐마삿대(민주화 시위로 유명한 대학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로 일했고, 이후 주 유엔(UN)대사와 주 오스트리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공식 직함을 가진 국왕의 3명의 자녀 중 단연 뚜렷한 업무능력을 보여왔다. 최근까지 왕실 호위대에서 근무했다.

태국 왕실은 좀처럼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맏딸 ‘파’ 공주는 대중들과 소탈하게 어울린다. 보통 사람처럼 크게 웃고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고 특히 여성 문제와 여성 수감자들의 인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익스트림 스포츠도 좋아한다. ‘조심조심’이 몸에 밴 왕실에서 최근에는 보란 듯이 스카이다이빙 실력을 보여줬다. 왕실에 부정적인 젊은이들도 '파' 공주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인기가 시들고 있는 태국 왕실에서 ‘파’ 공주는 대중과 왕실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다리가 끊어지면 왕실과 대중과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쁘라윳 태국 총리와 장관들이 쭐라롱껀 대학병원을 찾아 ‘파’공주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12월 16일. 사진 로이터
3. 왕위 계승 1순위는?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지만 국왕이 상징적인 존재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사실상 국가 수반이며 최고 권력자다. 국왕은 총리 등 내각의 임명권을 갖고 있고, 총리는 왕에게 걸어서 다가갈 수도 없다. 왕실모독제가 여전히 형법(112조)으로 존재한다. 왕실의 맏딸이 쓰러지면서 관심은 다시 후계구도에 모아진다. 지난 2016년 라마 9세의 서거 이후 즉위한 현 와치라롱껀 국왕은 올해 70세다.

 왼쪽부터 ‘파’공주와 와찌라롱껀 국왕(70)과 수티타 왕비         사진 AP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는 아직 공식 지명되지 않았다.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인 디파콘왕자(Prince Dipangkorn Rasmijoty, 17)가 가장 유력하지만, 아직 어리고 끊임없이 건강이상설이 제기된다. 디파콘왕자는 아직 한 번도 대중 앞에서 인터뷰나 연설을 해본 적이 없다.

‘파’ 공주는 그래서 디파콘왕자가 언젠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파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 태국 최초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지난 1974년 태국 정부는, 왕자가 없을 경우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만약 ‘파’ 공주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왕위 계승 셈법은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왕의 첫째 배우자 쏨사와리의 무남독녀('파' 공주)는 쓰려져 의식이 없고, 두 번째 배우자는 사실상 왕가에서 퇴출 돼 막내딸(Princess Sirivannavari, 디자이너)만 왕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 번째 배우자와 낳은 유일한 아들인 디파콘왕자는 이제 17살이다. 건강이 안 좋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현 왕비인 퀸 수티타(Queen Suthida)는 자녀가 없다. 다섯 번째 배우자인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전투기 조종사 출신, 37) 역시 아직 자녀가 없다(시니낫은 왕비를 제외하고 태국 왕실이 인정하는 유일한 공식 배우자다)

왕가의 직계존속이 서거하면 태국왕실의 애도 기간이 선포된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푸미폰국왕(라마9세)은 서거 후 1년의 애도 기간을 지난 뒤에야 장례가 치러졌다. 이 기간 화려한 쇼나 대중공연은 대부분 취소된다. 왕실은 오늘 '파' 공주가 여전히 의료장비에 의존하고 있으며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짧은 메시지만 발표했다.

공주가 툭툭 털고 일어설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하지만, 왕실이 연말 주요 행사들을 앞두고(매년 12월 31일 파타야에서는 아시아 최대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린다) 슬픈 소식의 발표일정을 조율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어느 언론도 이를 공개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그만큼 태국에서 왕실의 안위는 중요하고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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