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사용’ 위법 아니다…“양질의 진료” vs “오진 위험”

입력 2022.12.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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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오늘(22일) 한의사 A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동양철학에 기반한 한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이 현대 과학의 산물인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사법부가 "가능하다"고 답한 겁니다.

■ 대법원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 '보조적'으로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아"

한의사 A 씨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한의원에서 초음파 진단기를 이용해 환자를 진단하는 등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앞서 1·2심은 모두 A씨가 유죄라고 봤습니다. 초음파 진단기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에 기초해 개발됐다고 볼 수 없고, 한의사 전문의 전문과목에 영상의학과가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쓰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진단 '보조수단'으로 쓴다면 보건위생에 위험이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한 겁니다.

이번 판결은 한의사가 현대 과학과 의료공학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첫 번째 대법원 판단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한의사가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며 "명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없으면서 진단용 의료기기인 경우에 한정해 보조 수단으로 쓰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초음파 진단기와 달리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한의사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한의사협회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 사용 활성화할 것"

판결 직후 한의사협회는 환영의 뜻을 내놨습니다. 한홍구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KBS와 통화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이 활성화돼 양질의 진료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한 부회장은 "맥만 짚고 얼굴색을 보는 한의사들의 전통적인 진단법에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며 "초음파를 사용하면 더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의사들도 초음파 기기 활용을 원하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한의사가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도 오해라고 했습니다. 한 부회장은 "법에도 한의약은 '전통적 의료행위'와 '과학적 의료행위'의 결합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과학적인 의료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전기 침과 주사기를 활용한 약침, 추나요법 등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고, 큰 문제 없이 '과학적인 진료'가 한의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한의약 육성법 제2조에는 '한의약이란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韓醫學)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ㆍ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를 활용한 진료가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초음파 진단법은 이미 국내 한의대에서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한의사협회 차원에서의 교육도 활성화할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 의사협회 "숙련되지 않은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은 오진의 위험"

대한의사협회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의사협회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KBS에 "초음파 진단기의 위험성은 '진단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진단'을 내릴 때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골절인데 이를 초음파로 오진해서 침을 놓으면 감염이 생길 수 있고, 자궁내막암 등을 제대로 보지 못해 때를 놓치면 자궁 적출 등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박 대변인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어야 겨우 전문적인 진단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교과 과정에 초음파 진단이 있다고 해서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대한의사협회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계속 다퉈볼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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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사 ‘초음파 사용’ 위법 아니다…“양질의 진료” vs “오진 위험”
    • 입력 2022-12-22 17:24:07
    취재K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오늘(22일) 한의사 A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동양철학에 기반한 한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이 현대 과학의 산물인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사법부가 "가능하다"고 답한 겁니다.

■ 대법원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 '보조적'으로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아"

한의사 A 씨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한의원에서 초음파 진단기를 이용해 환자를 진단하는 등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앞서 1·2심은 모두 A씨가 유죄라고 봤습니다. 초음파 진단기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에 기초해 개발됐다고 볼 수 없고, 한의사 전문의 전문과목에 영상의학과가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쓰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진단 '보조수단'으로 쓴다면 보건위생에 위험이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한 겁니다.

이번 판결은 한의사가 현대 과학과 의료공학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첫 번째 대법원 판단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한의사가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며 "명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없으면서 진단용 의료기기인 경우에 한정해 보조 수단으로 쓰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초음파 진단기와 달리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한의사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한의사협회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 사용 활성화할 것"

판결 직후 한의사협회는 환영의 뜻을 내놨습니다. 한홍구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KBS와 통화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이 활성화돼 양질의 진료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한 부회장은 "맥만 짚고 얼굴색을 보는 한의사들의 전통적인 진단법에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며 "초음파를 사용하면 더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의사들도 초음파 기기 활용을 원하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한의사가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도 오해라고 했습니다. 한 부회장은 "법에도 한의약은 '전통적 의료행위'와 '과학적 의료행위'의 결합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과학적인 의료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전기 침과 주사기를 활용한 약침, 추나요법 등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고, 큰 문제 없이 '과학적인 진료'가 한의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한의약 육성법 제2조에는 '한의약이란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韓醫學)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ㆍ개발한 한방의료행위'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를 활용한 진료가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초음파 진단법은 이미 국내 한의대에서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한의사협회 차원에서의 교육도 활성화할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 의사협회 "숙련되지 않은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은 오진의 위험"

대한의사협회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의사협회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KBS에 "초음파 진단기의 위험성은 '진단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진단'을 내릴 때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골절인데 이를 초음파로 오진해서 침을 놓으면 감염이 생길 수 있고, 자궁내막암 등을 제대로 보지 못해 때를 놓치면 자궁 적출 등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박 대변인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어야 겨우 전문적인 진단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교과 과정에 초음파 진단이 있다고 해서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대한의사협회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계속 다퉈볼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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