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러브 액츄얼리’는 이제 그만…달달한 ‘로코 조상님’의 매력

입력 2022.12.25 (06:00) 수정 2022.12.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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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성탄절과 겹친 일요일 아침, 모두 즐겁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종교가 없으신 분들, 그리고 성탄절을 기념하지 않는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라도 오늘만큼은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별 뜻 없는 날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 자체가, 이 우중충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일 테니까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무거운 시사 이슈 대신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골라 봤습니다. '러브 액츄얼리'는 지겹고, '귀여운 여인'이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고전도 이미 섭렵했다면 원조 중의 원조, 근본 중의 근본인 이 작품은 어떨까요?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현대 거의 모든 로맨틱 코미디물의 조상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입니다.

■ 태초에 이 작품이 있었다…'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백만장자의 버릇 없는 외동딸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몰래 결혼식을 올리러 혼자 씩씩하게 도망 길에 오르지만, 곱게만 자란 아가씨가 세상 물정을 알 리 없을 터.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은 야간 버스에서 능청스러운 사내를 마주치는데, 이 사내의 정체는 사실 특종을 노리는 신문 기자. 대서특필 감이 눈 앞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남자는 어찌저찌 여자의 동행이 되어 여행을 떠나는데….

클라크 게이블(왼쪽)이 당근을 먹는 장면은 ‘토끼는 당근을 좋아한다’는 설정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출처 IMDB.클라크 게이블(왼쪽)이 당근을 먹는 장면은 ‘토끼는 당근을 좋아한다’는 설정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출처 IMDB.

자, 어떠세요? 고작 이 네 문장만으로도 머릿속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스쳐 지나가지 않나요? 줄거리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몇몇 장면과 대사는 그대로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이 각선미를 드러내며 지나가던 차를 멈춰세우던 장면, 기억하시죠? 그런 히치하이킹 장면의 원조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른바 '도망치는 신부'를 담은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고요. 남자 주인공이 설파하는 도넛 맛있게 먹는 법은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넛 프랜차이즈의 상호가 되었고, 영화의 리듬감에 맞추느라 그가 선보인 '내복 생략' 패션은 하도 유행이 되는 바람에 속옷 제조사들이 영화사를 고소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제 와선 클리셰 덩어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설정들을 가지고도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사실입니다. 투닥거리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경이로움이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가 관객을 매료시키는 방식 역시 마법 같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작권이 만료되었는지, 한국어 자막과 함께 통째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직접 느껴보시라고 할 수밖에요. 모든 것의 '원조'가 될 만큼의 영화란 어떤 것인지를요.


이 영화가 세운 최초의 '오스카 그랜드 슬램' 기록과 흥행 실적, 실제론 앙숙이었던 두 주연 배우의 출연 비화 등등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두 주인공은 결국 사랑에 빠집니다. 그건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이기도 하죠. 우리 곁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랑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이죠. 처음엔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상대였지만, 사실은 그 역시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 조금이나마 멋진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는 데에서부터 사랑은 싹틉니다. 부디 새해에는 그런 마법 같은 이해의 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를, 좌절보다 사랑이 조금이라도 승리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끝으로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코너 이름도 없이 일단 쓰고 보자며 시작한 이 영화 추천 칼럼이 다음 주부터 정식 코너로 출발합니다. 국가적인 애사나 개인적인 경사가 있을 때는 종종 건너뛰기도 했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오늘 영화나 볼까? 그런데 뭐 보지?' 하며 인터넷 창을 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쓴 글이 지난 5월부터 모여 모두 25편이 됐습니다. 최신 흥행작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 보며 이야기 나눌 만한 영화, 어렵고 복잡한 시사 이슈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 등을 고르려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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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러브 액츄얼리’는 이제 그만…달달한 ‘로코 조상님’의 매력
    • 입력 2022-12-25 06:00:03
    • 수정2022-12-26 15:09:20
    씨네마진국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한 장면.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성탄절과 겹친 일요일 아침, 모두 즐겁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종교가 없으신 분들, 그리고 성탄절을 기념하지 않는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라도 오늘만큼은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별 뜻 없는 날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 자체가, 이 우중충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일 테니까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무거운 시사 이슈 대신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골라 봤습니다. '러브 액츄얼리'는 지겹고, '귀여운 여인'이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고전도 이미 섭렵했다면 원조 중의 원조, 근본 중의 근본인 이 작품은 어떨까요?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현대 거의 모든 로맨틱 코미디물의 조상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입니다.

■ 태초에 이 작품이 있었다…'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백만장자의 버릇 없는 외동딸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몰래 결혼식을 올리러 혼자 씩씩하게 도망 길에 오르지만, 곱게만 자란 아가씨가 세상 물정을 알 리 없을 터.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은 야간 버스에서 능청스러운 사내를 마주치는데, 이 사내의 정체는 사실 특종을 노리는 신문 기자. 대서특필 감이 눈 앞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남자는 어찌저찌 여자의 동행이 되어 여행을 떠나는데….

클라크 게이블(왼쪽)이 당근을 먹는 장면은 ‘토끼는 당근을 좋아한다’는 설정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출처 IMDB.
자, 어떠세요? 고작 이 네 문장만으로도 머릿속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스쳐 지나가지 않나요? 줄거리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몇몇 장면과 대사는 그대로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이 각선미를 드러내며 지나가던 차를 멈춰세우던 장면, 기억하시죠? 그런 히치하이킹 장면의 원조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른바 '도망치는 신부'를 담은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고요. 남자 주인공이 설파하는 도넛 맛있게 먹는 법은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넛 프랜차이즈의 상호가 되었고, 영화의 리듬감에 맞추느라 그가 선보인 '내복 생략' 패션은 하도 유행이 되는 바람에 속옷 제조사들이 영화사를 고소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제 와선 클리셰 덩어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설정들을 가지고도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사실입니다. 투닥거리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경이로움이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가 관객을 매료시키는 방식 역시 마법 같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작권이 만료되었는지, 한국어 자막과 함께 통째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직접 느껴보시라고 할 수밖에요. 모든 것의 '원조'가 될 만큼의 영화란 어떤 것인지를요.


이 영화가 세운 최초의 '오스카 그랜드 슬램' 기록과 흥행 실적, 실제론 앙숙이었던 두 주연 배우의 출연 비화 등등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두 주인공은 결국 사랑에 빠집니다. 그건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이기도 하죠. 우리 곁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랑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이죠. 처음엔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상대였지만, 사실은 그 역시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 조금이나마 멋진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는 데에서부터 사랑은 싹틉니다. 부디 새해에는 그런 마법 같은 이해의 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를, 좌절보다 사랑이 조금이라도 승리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끝으로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코너 이름도 없이 일단 쓰고 보자며 시작한 이 영화 추천 칼럼이 다음 주부터 정식 코너로 출발합니다. 국가적인 애사나 개인적인 경사가 있을 때는 종종 건너뛰기도 했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오늘 영화나 볼까? 그런데 뭐 보지?' 하며 인터넷 창을 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쓴 글이 지난 5월부터 모여 모두 25편이 됐습니다. 최신 흥행작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 보며 이야기 나눌 만한 영화, 어렵고 복잡한 시사 이슈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 등을 고르려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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