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령골 유전자 감식’ 추진…‘해원과 상봉’ 이뤄지나

입력 2022.12.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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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골령골에서 미군이 촬영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 학살 장면.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골령골에서 미군이 촬영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 학살 장면.

한국전쟁 당시 7천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한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유전자 감식 예산이 세밑에 가까워져 오던 어제(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내년부터 그동안 발굴된 1,361명의 희생자 유해에 대한 검체 수집부터 유가족의 유전자 신원확인정보자료 구축 사업이 본격화될 예정입니다.

유족들은 말합니다. “내 평생, 최고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토록 반가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핍박 속에 70년을 넘게 참아왔던 유가족들,
땅 밑에서 70년을 넘게 기다려온 희생자들.

내년에는 서로 상봉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국회.대한민국 국회.

■내년부터 골령골 ‘유전자감식’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7일 제49차 전체위원회를 통해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고 국가 주도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서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 예산이 통과됨에 따라 모두 34억 원의 예산이 내년부터 투입됩니다.

올해 예산보다 6배 증액된 건데, 이중 유전자 감식에만 15억 원이 쓰입니다.

진실화해위는 내년부터 한국전쟁 전후로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임시 봉안된 세종 추모의집에서 검체 수집에 3억 4천만 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특히 대전시 낭월동에 위치한 골령골 발굴 유해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검사, 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 구축에 12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1기 위원회가 유전자 감식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관련 사업비가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예결위에서 부결되면서 무산됐었습니다.

지난 4월 당시 국회 행안위 위원이었던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유해를 발굴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라 본다.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올해로 임기를 마친 전임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도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년에는 반드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말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유족들의 청원 끝에 지난해 부결된 예산은 올해 통과돼 내년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올해까지 골령골 한곳에서만 발굴된 희생자 유해는 모두 1,361구입니다.

충남 서산시 갈산동 ‘서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충남 서산시 갈산동 ‘서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국가주도 유해발굴도 추진

유전자감식뿐 아니라 국가주도의 유해발굴도 내년부터 본격화됩니다.

먼저 6개 지역, 7곳을 대상으로 유해발굴에 나섭니다.

대상지로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의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그리고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부역혐의 희생사건, 아산시 염치읍 배방리 ‘새지리 2지점 부역혐의 희생사건’ 등입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또, 충북 충주시 호암동, 경남 진주시 명석면 삭평마을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의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지역도 발굴 대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 발굴지는 선사문화연구원이 발굴을 맡아 내년 5월까지 이뤄질 예정입니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73년간 땅 속에 묻혀 있던 분들을 정성껏 모셔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가려진 진실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유해발굴 가능지 37곳... 1,800구 이상 추정

진실화해위원회가 부경대에 맡긴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에선 전국의 추정지 381개소 가운데 37곳이 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꼽혔습니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1,800여 구에 달합니다.

권역별로는 충청권이 15곳으로 가장 많고 전라권 6곳, 수도권과 강원권이 각각 5곳입니다.

이밖에 잠재적 발굴 가능지역으로 조사된 곳도 45곳으로 집계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7곳의 유해발굴뿐 아니라 지자체 보조사업도 벌일 예정입니다.

지자체에 배정된 유해발굴 보조금은 모두 11억 원인데 내년 초 심사를 거쳐 대상자치단체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김광동 2기 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실체적 증거”라며 “방치된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인권 회복과 유족의 해원이라는 의미도 깊다”고 말했습니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제일 반가운 소식” 학수고대한 유족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이번 유전자 감식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두고 “이런 반가운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전 유족회장은 “지난해 유전자 사업이 무산됐다는 소식에 상처와 좌절감이 너무 심해서 유족들 모두 낙심했었다”며 “기대도 못 하고 있던 유전자 감식이 내년부터 이뤄진다니 꿈만 같고 믿기질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골령골 산내 유족회 측은 또,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고령의 유족 먼저 미리 채혈이라도 해놓겠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양성홍 제주4·3 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양성홍 제주4·3 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

골령골 희생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제주4·3사건 유족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양성홍 제주4·3 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제주4·3 유족들은 모두 채혈을 마쳐놔 유해에서 DNA만 나오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며 서둘러 유해 검체 수집을 바랐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해 비석만 세워둔 제주4·3사건 행방불명인 묘역.유해를 찾지 못해 비석만 세워둔 제주4·3사건 행방불명인 묘역.

양 협의회장은 “이미 제주에 아버지 묘부터 비석을 다 마련해놨다”며 “내년에는 대전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고향 제주로 모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0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입을 모아 내년의 가장 큰 소망과 계획은 해원과 상봉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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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령골 유전자 감식’ 추진…‘해원과 상봉’ 이뤄지나
    • 입력 2022-12-30 07:03:17
    취재K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골령골에서 미군이 촬영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 학살 장면.
한국전쟁 당시 7천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한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유전자 감식 예산이 세밑에 가까워져 오던 어제(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내년부터 그동안 발굴된 1,361명의 희생자 유해에 대한 검체 수집부터 유가족의 유전자 신원확인정보자료 구축 사업이 본격화될 예정입니다.

유족들은 말합니다. “내 평생, 최고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토록 반가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핍박 속에 70년을 넘게 참아왔던 유가족들,
땅 밑에서 70년을 넘게 기다려온 희생자들.

내년에는 서로 상봉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국회.
■내년부터 골령골 ‘유전자감식’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7일 제49차 전체위원회를 통해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고 국가 주도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서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 예산이 통과됨에 따라 모두 34억 원의 예산이 내년부터 투입됩니다.

올해 예산보다 6배 증액된 건데, 이중 유전자 감식에만 15억 원이 쓰입니다.

진실화해위는 내년부터 한국전쟁 전후로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임시 봉안된 세종 추모의집에서 검체 수집에 3억 4천만 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특히 대전시 낭월동에 위치한 골령골 발굴 유해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검사, 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 구축에 12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1기 위원회가 유전자 감식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관련 사업비가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예결위에서 부결되면서 무산됐었습니다.

지난 4월 당시 국회 행안위 위원이었던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유해를 발굴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라 본다.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올해로 임기를 마친 전임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도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년에는 반드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말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유족들의 청원 끝에 지난해 부결된 예산은 올해 통과돼 내년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올해까지 골령골 한곳에서만 발굴된 희생자 유해는 모두 1,361구입니다.

충남 서산시 갈산동 ‘서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국가주도 유해발굴도 추진

유전자감식뿐 아니라 국가주도의 유해발굴도 내년부터 본격화됩니다.

먼저 6개 지역, 7곳을 대상으로 유해발굴에 나섭니다.

대상지로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의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그리고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부역혐의 희생사건, 아산시 염치읍 배방리 ‘새지리 2지점 부역혐의 희생사건’ 등입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또, 충북 충주시 호암동, 경남 진주시 명석면 삭평마을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의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지역도 발굴 대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 발굴지는 선사문화연구원이 발굴을 맡아 내년 5월까지 이뤄질 예정입니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73년간 땅 속에 묻혀 있던 분들을 정성껏 모셔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가려진 진실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 아산 부역혐의사건 희생지’
■유해발굴 가능지 37곳... 1,800구 이상 추정

진실화해위원회가 부경대에 맡긴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에선 전국의 추정지 381개소 가운데 37곳이 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꼽혔습니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1,800여 구에 달합니다.

권역별로는 충청권이 15곳으로 가장 많고 전라권 6곳, 수도권과 강원권이 각각 5곳입니다.

이밖에 잠재적 발굴 가능지역으로 조사된 곳도 45곳으로 집계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7곳의 유해발굴뿐 아니라 지자체 보조사업도 벌일 예정입니다.

지자체에 배정된 유해발굴 보조금은 모두 11억 원인데 내년 초 심사를 거쳐 대상자치단체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김광동 2기 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실체적 증거”라며 “방치된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인권 회복과 유족의 해원이라는 의미도 깊다”고 말했습니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제일 반가운 소식” 학수고대한 유족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이번 유전자 감식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두고 “이런 반가운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전 유족회장은 “지난해 유전자 사업이 무산됐다는 소식에 상처와 좌절감이 너무 심해서 유족들 모두 낙심했었다”며 “기대도 못 하고 있던 유전자 감식이 내년부터 이뤄진다니 꿈만 같고 믿기질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골령골 산내 유족회 측은 또,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고령의 유족 먼저 미리 채혈이라도 해놓겠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양성홍 제주4·3 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
골령골 희생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제주4·3사건 유족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양성홍 제주4·3 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제주4·3 유족들은 모두 채혈을 마쳐놔 유해에서 DNA만 나오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며 서둘러 유해 검체 수집을 바랐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해 비석만 세워둔 제주4·3사건 행방불명인 묘역.
양 협의회장은 “이미 제주에 아버지 묘부터 비석을 다 마련해놨다”며 “내년에는 대전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고향 제주로 모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0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입을 모아 내년의 가장 큰 소망과 계획은 해원과 상봉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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