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심장충격기 의무화됐는데…“저희가 해당되나요?”

입력 2022.12.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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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병원 밖 급성 심정지 사고는 3만 1,652건입니다. 하루 평균 약 87건이 발생할만큼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급성 심정지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4~5분 정도입니다. 환자에게 아무런 조치 없이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생존율은 4.9%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과 함께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하면 생존율을 8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자동심장충격기 등 응급 장치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22일부터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하는 사업장 중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인 사업장에 자동심장충격기(AED)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 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시행됐습니다.

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출입구나 눈에 띄는 곳 등에 안내표지판 역시 부착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6일 기준 자동심장충격기 등을 설치한 곳은 서울에 단 12개 사업장뿐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그 수는 148개소에 그쳤습니다.

해당 법에 적용되는 사업장이 전국 5천여 곳으로 추정되는 것을 생각할 때 매우 적은 수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법 시행 일주일을 맞아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 법 시행 1주일 지났지만, 준비 안 된 현장… "저희가 해당되나요?"

서울 서초구의 한 미용 관련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취재진이 건물 입구나 사무실 입구 등을 확인해봐도 자동심장충격기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해당 업체는 "(해당 법에) 해당되는 줄은 알았다"라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업체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구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최대한 빨리 설치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업체만의 일일까? 서울 금천구의 한 의류 업체도 찾아가 봤지만, 여기에도 자동심장충격기는 없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 설치 의무가 된 것을 알게 됐다며, 해당 법이 업체에 적용되는 것이 맞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여기가 200명이고, 전국에 180명이 흩어져 있다"면서 "(근로자) 총 합계는 300명 이상이 되긴 하는데, 이 장소에는 또 300명이 안 된다"면서 이 법이 해당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안전과 관련된 조치이기 때문에 법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심장충격기를 설치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면서도 "갑작스럽게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자동심장충격기가 품절된 판매 사이트도 많이 보인다"라고 하소였했습니다.

그는 법을 관리하고 홍보해야 하는 자치구 등에서 공문을 보내는 등 홍보가 전혀 안 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며 "동종업계 몇 군데 전화를 해봤지만, 전혀 지금 모르고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 관리·감독해야할 지자체 "법 적용 사업장 목록 없어 홍보도 못 해"

실제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홍보나 현장 점검은커녕 법 적용 사업장에 대한 목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서울 금천구 보건소 관계자는 "서울시나 (보건)복지부에서 파악해서 내려준다는 상황이다"면서 "현재는 리스트 현황도 없고 홍보도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시나 복지부에서 법 적용 업체 목록을 주면 그때부터 계도와 홍보에 힘을 쓰겠다"라고 해명했습니다.


■ 법 시행 1주일 지났지만…보건복지부 "법 해석 기준 등 세부 기준 정하는 중"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사정 역시 부실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지부 역시 법 적용 사업장의 목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법에 적용되는 사업장 목록을 정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실무적인 상의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기 안에 (법 적용 사업장 목록을)마련하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법이 현장에 적용되는 데 필요한 법의 세부 기준 역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부 기준 마련에) 실무적으로 쉽지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고용(노동)부와 함께 해석 기준이라든지 그런 보완책을 마련해서 안내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 "이대로라면 다 '고철' 될 뿐… 응급 장비 사용 교육으로 이어져야"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300인 이상의 사업장 중에서 어떤 업종의 사업장들이 심정지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자동심장충격기 등 사용)교육을 통해서 실제 사용했을 때 (급성심정지 환자)생존율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전문가 의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다 고철이 된다.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일 년에 최소 몇 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며, 안전 관리 책임자는 누구이며 막상 이제 사고가 났을 때 위치 파악이라든지 가져오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가 다 훈련이 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어제(30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상시근로자 수의 유동성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업장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의무 사업장 세부 기준 마련을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조속한 시일 내 세부 기준을 확정하고, (관련 내용을 사업장들에 해당 법을)안내하고 홍보하여 (자동심장충격기 등 응급 장비)의무 설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현황 등에 대한 파악과 점검을 내년 상반기까지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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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동심장충격기 의무화됐는데…“저희가 해당되나요?”
    • 입력 2022-12-31 09:05:21
    취재K

2020년 기준 병원 밖 급성 심정지 사고는 3만 1,652건입니다. 하루 평균 약 87건이 발생할만큼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급성 심정지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4~5분 정도입니다. 환자에게 아무런 조치 없이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생존율은 4.9%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과 함께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하면 생존율을 8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자동심장충격기 등 응급 장치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22일부터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하는 사업장 중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인 사업장에 자동심장충격기(AED)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 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시행됐습니다.

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출입구나 눈에 띄는 곳 등에 안내표지판 역시 부착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6일 기준 자동심장충격기 등을 설치한 곳은 서울에 단 12개 사업장뿐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그 수는 148개소에 그쳤습니다.

해당 법에 적용되는 사업장이 전국 5천여 곳으로 추정되는 것을 생각할 때 매우 적은 수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법 시행 일주일을 맞아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 법 시행 1주일 지났지만, 준비 안 된 현장… "저희가 해당되나요?"

서울 서초구의 한 미용 관련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취재진이 건물 입구나 사무실 입구 등을 확인해봐도 자동심장충격기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해당 업체는 "(해당 법에) 해당되는 줄은 알았다"라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업체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구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최대한 빨리 설치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업체만의 일일까? 서울 금천구의 한 의류 업체도 찾아가 봤지만, 여기에도 자동심장충격기는 없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 설치 의무가 된 것을 알게 됐다며, 해당 법이 업체에 적용되는 것이 맞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여기가 200명이고, 전국에 180명이 흩어져 있다"면서 "(근로자) 총 합계는 300명 이상이 되긴 하는데, 이 장소에는 또 300명이 안 된다"면서 이 법이 해당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안전과 관련된 조치이기 때문에 법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심장충격기를 설치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면서도 "갑작스럽게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자동심장충격기가 품절된 판매 사이트도 많이 보인다"라고 하소였했습니다.

그는 법을 관리하고 홍보해야 하는 자치구 등에서 공문을 보내는 등 홍보가 전혀 안 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며 "동종업계 몇 군데 전화를 해봤지만, 전혀 지금 모르고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 관리·감독해야할 지자체 "법 적용 사업장 목록 없어 홍보도 못 해"

실제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홍보나 현장 점검은커녕 법 적용 사업장에 대한 목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서울 금천구 보건소 관계자는 "서울시나 (보건)복지부에서 파악해서 내려준다는 상황이다"면서 "현재는 리스트 현황도 없고 홍보도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시나 복지부에서 법 적용 업체 목록을 주면 그때부터 계도와 홍보에 힘을 쓰겠다"라고 해명했습니다.


■ 법 시행 1주일 지났지만…보건복지부 "법 해석 기준 등 세부 기준 정하는 중"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사정 역시 부실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지부 역시 법 적용 사업장의 목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법에 적용되는 사업장 목록을 정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실무적인 상의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기 안에 (법 적용 사업장 목록을)마련하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법이 현장에 적용되는 데 필요한 법의 세부 기준 역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부 기준 마련에) 실무적으로 쉽지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고용(노동)부와 함께 해석 기준이라든지 그런 보완책을 마련해서 안내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 "이대로라면 다 '고철' 될 뿐… 응급 장비 사용 교육으로 이어져야"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300인 이상의 사업장 중에서 어떤 업종의 사업장들이 심정지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자동심장충격기 등 사용)교육을 통해서 실제 사용했을 때 (급성심정지 환자)생존율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전문가 의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다 고철이 된다.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일 년에 최소 몇 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며, 안전 관리 책임자는 누구이며 막상 이제 사고가 났을 때 위치 파악이라든지 가져오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가 다 훈련이 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어제(30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상시근로자 수의 유동성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업장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의무 사업장 세부 기준 마련을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조속한 시일 내 세부 기준을 확정하고, (관련 내용을 사업장들에 해당 법을)안내하고 홍보하여 (자동심장충격기 등 응급 장비)의무 설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현황 등에 대한 파악과 점검을 내년 상반기까지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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