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듯이 기뻐서 펄쩍”…조선시대 여성들의 ‘해돋이’ 직관기

입력 2023.01.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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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강릉 경포대 해돋이 장면 ©KBS새해 첫날 강릉 경포대 해돋이 장면 ©KBS

어김없이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해돋이 구경들 하셨나요? 1년 365일 뜨고 지는 해라지만, 새해 첫 일출의 의미는 확실히 남다른 것 같습니다.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응어리져 올라오는 흥분과 감격을 느끼게 되죠. 올해는 부디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길, 그리고 웃을 수 있는 날들이길…

옛사람들이라고 달랐을까요. 쏟아지는 잠을 잠시 아껴두고 부지런을 떠는 정성에, 날씨까지 도와주는 행운도 따라야 합니다. 일상이란 게 뭐 그리 각박한지, 일평생 해 뜨는 것 한 번 못 본 게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해돋이 한 번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죠.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에 해돋이를 직관하는 감격을 누린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만고천하에 그런 멋진 광경은 견줄 데가 없을 듯"

첫 번째 주인공은 1727년에 태어나 96세까지 장수를 누린 의령 남씨 의유당(意幽堂)이란 분입니다. 남편은 함흥판관을 지낸 신대손, 외조카가 정조대왕의 부인 효의왕후였을 정도로 그 시대에 최고로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었죠. 남편이 함흥판관으로 발령을 받아 새 근무지인 함흥에 갈 때 의유당도 남편을 따라 함께 갑니다. 1769년, 영조 45년의 일입니다.

‘의유당관북유람일기’로도 불리는 ‘의유당일기’ (이미지출처: 나무위키)‘의유당관북유람일기’로도 불리는 ‘의유당일기’ (이미지출처: 나무위키)

오늘날 남아 전하는 의유당의 여행기 『의유당관북유람일기』에는 함흥의 명소 낙민루(樂民樓)와 북산루(北山樓)를 돌아보고 쓴 「낙민루」, 「북산루」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동명일기」가 수록돼 있는데요. 바로 이 「동명일기」에 의유당의 동해 해돋이 감상문이 실려 있습니다.

1772년 의유당은 함흥에서 동쪽으로 5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명(東溟)이라는 일출 명소에 갑니다. 한 해 전에 동명을 보고 온 그 기억을 차마 잊을 수가 없었던 의유당은 이듬해 다시 남편을 조릅니다. 처음엔 남편이 허락을 안 해주죠. 하지만 평생에 다시 얻기 힘든 기회를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죠. 의유당은 남편에게 매달려 거듭 간청합니다.

"인생이 얼마나 되오? 사람이 한번 돌아가면 다시 오는 일이 없고, 깊은 근심과 지극한 아픔을 쌓아 내내 우울하니 한번 놀아 울적함을 푸는 것이 만금과도 바꾸지 못하리니 덕분에 가고 싶소."

이 간절한 호소는 통했습니다. 아내의 바람을 마냥 외면할 수 없었던 남편은 자신도 평생에 본 적 없는 일출을 함께 가서 보기로 하죠. 그렇게 떠난 1박 2일의 짧은 여정에서 의유당은 해 뜨는 모습을 설마 못 보는가 싶어 밤새 잠 못 자고 뒤척이며 노심초사합니다. 종들을 닦달해서 쑨 떡국도 안 먹고 행여 해돋이 놓칠세라 새벽부터 갖은 부산을 떨죠. 옆에서 쯧쯧 하는 남편 눈치 살피며 입 꾹 닫고 귀경대(龜景臺)에서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찰나.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쪽에 길게 뻗치니 진홍 비단 여러 필을 물 위에 펼친 듯 드넓은 푸른 바다가 일시에 붉어지며 하늘에 자욱하고, 성난 물결 소리는 더욱 크고 붉은 담요 같은 물빛이 황홀하게 환히 비치니 차마 끔찍하였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차마 끔찍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겠죠.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주길 또다시 애타게 기다립니다. 이제 소개할 대목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한글 수필의 맛을 한껏 보여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기다리다 지쳐 가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평생에 잊지 못할 일대 장관이었죠.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붉은 구름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하고 진홍빛 기운이 차차 나오는데 손바닥 너비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았다. 서서히 나오는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밥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 구슬 같고, 맑고 투명하기는 호박보다 더 고왔다. 그 붉은 위로 슬슬 움직여 도니 처음 나왔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너비만큼 뚜렷이 비치면서 밤 같던 기운이 해가 되어 차차 커지다가 큰 쟁반만한 것이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붉은색이 온 바다에 퍼지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고 해가 흔들리며 뛰놀기를 더욱 자주 하며 항아리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하게 번득이니 두 눈이 어질했다. 붉은 기운이 밝고 환하게 첫 붉은색을 헤치고 하늘에 쟁반 같고 수레바퀴 같은 것이 물속에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오자 항아리,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게 겉을 비추던 것이 모여 소 혀처럼 드리우며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했다. 날이 밝아오고 물결의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햇빛이 맑게 빛나니 만고천하에 그런 멋진 광경은 견줄 데가 없을 듯했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해돋이 직관 성공! 평생에 소원 하나를 이뤘으니 아랫사람들이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넨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무려 아들딸 12명을 낳았으나,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일찍 죽고만 비운의 여성 의유당. 아직 자식들이 살아있었을 마흔다섯 나이에 난생 처음 동해 해돋이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감격을 누린 의유당은 마음속으로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당돌한 열네 살 소녀의 꿈결 같은 금강산 여행

두 번째 주인공은 김금원(金錦園, 1817~?).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지 훗날 관청 소속의 기생으로 생활하다가 의주부윤을 지낸 김덕희의 첩으로 들어갑니다. 어렸을 때 병을 자주 앓아서 부모가 집안일 대신 글을 가르친 덕분에, 금앵(錦鶯)이란 이름으로 관청 기생 노릇을 하는 동안 시 잘 쓰기로 꽤나 알려졌다고 합니다. 금원은 이 여성의 호(號)입니다.

김홍도 〈옥순봉도〉 《병진년화첩》 1796년,  26.7×36.6㎝, 종이에 엷은 채색, 보물, 리움미술관김홍도 〈옥순봉도〉 《병진년화첩》 1796년, 26.7×36.6㎝, 종이에 엷은 채색, 보물, 리움미술관

금원은 서른네 살 되던 1850년에 『호동서락기』라는 여행기를 쓰는데, 실제로 여행을 떠난 건 20년 전인 1830년, 불과 열네 살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 열네 살 소녀가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실행에 옮긴 것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움을 줍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깊은 담장 안에서 문을 닫아걸고 법도를 지키는 것이 옳은가. (중략) 내 뜻은 결정되었다."라고 쓴 걸 보면 금원은 어릴 때부터 아주 당찬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장하고 원주에서 출발한 금원은 의림지, 사인암, 옥순봉 등 충북 제천과 단양의 네 고을 명승지를 둘러본 뒤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의 명소들을 빠짐없이 섭렵하고 상세하게 적은 김금원의 금강산 여행기는 그 내용이 자못 볼 만하죠.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 만이천봉을 바라보니 옥이 서 있고 눈이 쌓인 것 같았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금강산의 명소들을 행여나 놓칠세라 하나하나 직접 답사하고 글로 남겼습니다.

정선 〈단발령망금강산〉 《신묘년풍악도첩》 1711년, 36.1×37.6cm, 비단에 수묵채색, 보물, 국립중앙박물관정선 〈단발령망금강산〉 《신묘년풍악도첩》 1711년, 36.1×37.6cm, 비단에 수묵채색,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

금강산 여행을 마친 김금원은 동해안을 따라 낙산사를 방문한 뒤 의경대(의상대)에 오릅니다. 조종현 시인의 '의상대 해돋이'라는 시로 유명한 동해안 일출 명소의 하나죠. 여행의 멋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았던 금원에게 의경대 일출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평생에 다시 없을 해돋이 직관의 기회였을 겁니다.

얼마 지나 문득 붉은 거울 하나가 바다 가운데서 불쑥 솟더니 구름 끝이 부드럽게 늘어진 데서 차츰 올라갔다. 빛이 출렁이니 마치 백옥 쟁반 위에 진주 항아리를 높이 들어올린 것 같고, 만(灣)의 바깥으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니 붉은 비단 우산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 잠시 뒤 어지러운 기운을 깨뜨리며 둥근 해가 솟구치니 나도 모르게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 상서로운 햇무리가 바닷물을 내리비추니 한 무리 붉은 구름이 펼쳐지고 또다시 평지를 거꾸로 비추니 위아래로 붉은빛이 통해서 갑자기 천지 사이로 빛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참으로 일대 장관이었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앞서 의유당이 "차마 끔찍하였다."고 했다면, 금원은 "나도 모르게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해 해돋이를 직관한 조선시대 여성들의 감격이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여행이 전적으로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성들이 여행의 기회를 얻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남성들조차 여행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대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리하여 끝내는 당당히 그 '꿈'을 이룬 여성들의 사연. 다른 필요 때문에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가 조선시대 여성들의 여행기를 모아 묶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를 읽다가 마주친 조선 여성들의 '해돋이 직관기'는, 뜻밖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꿈이 있는 삶, 그 꿈을 이루는 2023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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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칠듯이 기뻐서 펄쩍”…조선시대 여성들의 ‘해돋이’ 직관기
    • 입력 2023-01-03 10:24:59
    취재K
새해 첫날 강릉 경포대 해돋이 장면 ©KBS
어김없이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해돋이 구경들 하셨나요? 1년 365일 뜨고 지는 해라지만, 새해 첫 일출의 의미는 확실히 남다른 것 같습니다.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응어리져 올라오는 흥분과 감격을 느끼게 되죠. 올해는 부디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길, 그리고 웃을 수 있는 날들이길…

옛사람들이라고 달랐을까요. 쏟아지는 잠을 잠시 아껴두고 부지런을 떠는 정성에, 날씨까지 도와주는 행운도 따라야 합니다. 일상이란 게 뭐 그리 각박한지, 일평생 해 뜨는 것 한 번 못 본 게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해돋이 한 번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죠.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에 해돋이를 직관하는 감격을 누린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만고천하에 그런 멋진 광경은 견줄 데가 없을 듯"

첫 번째 주인공은 1727년에 태어나 96세까지 장수를 누린 의령 남씨 의유당(意幽堂)이란 분입니다. 남편은 함흥판관을 지낸 신대손, 외조카가 정조대왕의 부인 효의왕후였을 정도로 그 시대에 최고로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었죠. 남편이 함흥판관으로 발령을 받아 새 근무지인 함흥에 갈 때 의유당도 남편을 따라 함께 갑니다. 1769년, 영조 45년의 일입니다.

‘의유당관북유람일기’로도 불리는 ‘의유당일기’ (이미지출처: 나무위키)
오늘날 남아 전하는 의유당의 여행기 『의유당관북유람일기』에는 함흥의 명소 낙민루(樂民樓)와 북산루(北山樓)를 돌아보고 쓴 「낙민루」, 「북산루」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동명일기」가 수록돼 있는데요. 바로 이 「동명일기」에 의유당의 동해 해돋이 감상문이 실려 있습니다.

1772년 의유당은 함흥에서 동쪽으로 5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명(東溟)이라는 일출 명소에 갑니다. 한 해 전에 동명을 보고 온 그 기억을 차마 잊을 수가 없었던 의유당은 이듬해 다시 남편을 조릅니다. 처음엔 남편이 허락을 안 해주죠. 하지만 평생에 다시 얻기 힘든 기회를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죠. 의유당은 남편에게 매달려 거듭 간청합니다.

"인생이 얼마나 되오? 사람이 한번 돌아가면 다시 오는 일이 없고, 깊은 근심과 지극한 아픔을 쌓아 내내 우울하니 한번 놀아 울적함을 푸는 것이 만금과도 바꾸지 못하리니 덕분에 가고 싶소."

이 간절한 호소는 통했습니다. 아내의 바람을 마냥 외면할 수 없었던 남편은 자신도 평생에 본 적 없는 일출을 함께 가서 보기로 하죠. 그렇게 떠난 1박 2일의 짧은 여정에서 의유당은 해 뜨는 모습을 설마 못 보는가 싶어 밤새 잠 못 자고 뒤척이며 노심초사합니다. 종들을 닦달해서 쑨 떡국도 안 먹고 행여 해돋이 놓칠세라 새벽부터 갖은 부산을 떨죠. 옆에서 쯧쯧 하는 남편 눈치 살피며 입 꾹 닫고 귀경대(龜景臺)에서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찰나.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쪽에 길게 뻗치니 진홍 비단 여러 필을 물 위에 펼친 듯 드넓은 푸른 바다가 일시에 붉어지며 하늘에 자욱하고, 성난 물결 소리는 더욱 크고 붉은 담요 같은 물빛이 황홀하게 환히 비치니 차마 끔찍하였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차마 끔찍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겠죠.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주길 또다시 애타게 기다립니다. 이제 소개할 대목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한글 수필의 맛을 한껏 보여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기다리다 지쳐 가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평생에 잊지 못할 일대 장관이었죠.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붉은 구름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하고 진홍빛 기운이 차차 나오는데 손바닥 너비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았다. 서서히 나오는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밥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 구슬 같고, 맑고 투명하기는 호박보다 더 고왔다. 그 붉은 위로 슬슬 움직여 도니 처음 나왔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너비만큼 뚜렷이 비치면서 밤 같던 기운이 해가 되어 차차 커지다가 큰 쟁반만한 것이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붉은색이 온 바다에 퍼지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고 해가 흔들리며 뛰놀기를 더욱 자주 하며 항아리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하게 번득이니 두 눈이 어질했다. 붉은 기운이 밝고 환하게 첫 붉은색을 헤치고 하늘에 쟁반 같고 수레바퀴 같은 것이 물속에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오자 항아리,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게 겉을 비추던 것이 모여 소 혀처럼 드리우며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했다. 날이 밝아오고 물결의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햇빛이 맑게 빛나니 만고천하에 그런 멋진 광경은 견줄 데가 없을 듯했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해돋이 직관 성공! 평생에 소원 하나를 이뤘으니 아랫사람들이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넨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무려 아들딸 12명을 낳았으나,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일찍 죽고만 비운의 여성 의유당. 아직 자식들이 살아있었을 마흔다섯 나이에 난생 처음 동해 해돋이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감격을 누린 의유당은 마음속으로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요.

■당돌한 열네 살 소녀의 꿈결 같은 금강산 여행

두 번째 주인공은 김금원(金錦園, 1817~?).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지 훗날 관청 소속의 기생으로 생활하다가 의주부윤을 지낸 김덕희의 첩으로 들어갑니다. 어렸을 때 병을 자주 앓아서 부모가 집안일 대신 글을 가르친 덕분에, 금앵(錦鶯)이란 이름으로 관청 기생 노릇을 하는 동안 시 잘 쓰기로 꽤나 알려졌다고 합니다. 금원은 이 여성의 호(號)입니다.

김홍도 〈옥순봉도〉 《병진년화첩》 1796년,  26.7×36.6㎝, 종이에 엷은 채색, 보물, 리움미술관
금원은 서른네 살 되던 1850년에 『호동서락기』라는 여행기를 쓰는데, 실제로 여행을 떠난 건 20년 전인 1830년, 불과 열네 살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 열네 살 소녀가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실행에 옮긴 것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움을 줍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깊은 담장 안에서 문을 닫아걸고 법도를 지키는 것이 옳은가. (중략) 내 뜻은 결정되었다."라고 쓴 걸 보면 금원은 어릴 때부터 아주 당찬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장하고 원주에서 출발한 금원은 의림지, 사인암, 옥순봉 등 충북 제천과 단양의 네 고을 명승지를 둘러본 뒤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의 명소들을 빠짐없이 섭렵하고 상세하게 적은 김금원의 금강산 여행기는 그 내용이 자못 볼 만하죠.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 만이천봉을 바라보니 옥이 서 있고 눈이 쌓인 것 같았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금강산의 명소들을 행여나 놓칠세라 하나하나 직접 답사하고 글로 남겼습니다.

정선 〈단발령망금강산〉 《신묘년풍악도첩》 1711년, 36.1×37.6cm, 비단에 수묵채색,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

금강산 여행을 마친 김금원은 동해안을 따라 낙산사를 방문한 뒤 의경대(의상대)에 오릅니다. 조종현 시인의 '의상대 해돋이'라는 시로 유명한 동해안 일출 명소의 하나죠. 여행의 멋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았던 금원에게 의경대 일출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평생에 다시 없을 해돋이 직관의 기회였을 겁니다.

얼마 지나 문득 붉은 거울 하나가 바다 가운데서 불쑥 솟더니 구름 끝이 부드럽게 늘어진 데서 차츰 올라갔다. 빛이 출렁이니 마치 백옥 쟁반 위에 진주 항아리를 높이 들어올린 것 같고, 만(灣)의 바깥으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니 붉은 비단 우산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 잠시 뒤 어지러운 기운을 깨뜨리며 둥근 해가 솟구치니 나도 모르게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 상서로운 햇무리가 바닷물을 내리비추니 한 무리 붉은 구름이 펼쳐지고 또다시 평지를 거꾸로 비추니 위아래로 붉은빛이 통해서 갑자기 천지 사이로 빛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참으로 일대 장관이었다.

-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에서 인용

앞서 의유당이 "차마 끔찍하였다."고 했다면, 금원은 "나도 모르게 너무 놀랍고 미칠 듯이 기뻐서 춤을 추듯 펄쩍 뛰었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해 해돋이를 직관한 조선시대 여성들의 감격이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여행이 전적으로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성들이 여행의 기회를 얻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남성들조차 여행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대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리하여 끝내는 당당히 그 '꿈'을 이룬 여성들의 사연. 다른 필요 때문에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가 조선시대 여성들의 여행기를 모아 묶은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나의시간, 2019)를 읽다가 마주친 조선 여성들의 '해돋이 직관기'는, 뜻밖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꿈이 있는 삶, 그 꿈을 이루는 2023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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