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6.1지방선거에서 실험한 중·대선거구제, 그 결과 보니

입력 2023.0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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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중략)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윤석열 대통령 / 1월 2일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 내용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공론화했습니다. 선거구는 대표를 선출하는 지역적 단위입니다. 그 규모에 따라 소·중·대 선거구로 나뉘는데 선거구당 1인을 선출하면 소선거구, 2~4인이면 중선거구, 5인 이상을 대선거구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윤 대통령 제안에 입법부 수장인 김진표 국회의장 뿐 아니라 정치권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소수 정당과 다양한 정치세력의 유입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수도 없이 나왔던 얘기지만 매번 가시적인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 보고서가 공개돼 주목됩니다. 이는 정부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 한해 시범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했는데 그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선거 이후 학계에서 별도의 분석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정식 보고서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6.1지방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 한해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한 건 앞서 여야가 해당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한 데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 "양당 체제, 크게 개선 안 됐다"

관련법에 따라 지난 6.1 지방선거, 즉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기초의회의원선거 지역구 1,030곳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습니다. 6개 지역 11곳이 해당됩니다.

자료: 국회입법조사처자료: 국회입법조사처

그런데 선거 결과 이들 지역에서 '소수 정당의 후보 공천과 당선자 비율'이 전국 대비 높게 나타났지만, 양대 정당(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집중은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당체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결과입니다.

소수 정당은 시범 지역 30개 선거구 가운데 총 18개 선거구에서 19명의 후보(정의당 11·진보당 7·우리공화당 1)를 공천했습니다. 이를 '소수정당 후보 공천율'로 따져보면 10.1%로 전체 선거구의 5.4%보다 2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소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비율은 시범 지역에서 3.7%로 나타나 역시 전국 기준인 0.9%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비율이 아닌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양대 정당으로 표가 집중된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시범 지역 30개 선거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양대 정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압도적(96.3%)이었던 반면, 소수 정당 소속 당선자는 4명(3.7%)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당선자 4명 중 3명이 민주당의 절대 우세 지역인 광주에서 당선돼 '지역 쏠림'이 두드러졌습니다.


■ 제도 영향 추론엔 한계…"3인 이상 선거구 중요성 확인"

보고서는 다만, 6.1 지방선거에서의 시범실시 결과만 가지고 중대선거구제의 확대 영향을 추론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일단 시범실시 지역이 전체 선거구의 2.9%에 불과하고 지방선거를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 시범실시가 전격적으로 결정돼 소수 정당이 선거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분석 결과의 주요 한계로 꼽힙니다.

소수 정당 당선자가 몰린 광주 지역의 경우 애초 진보 정당의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결과가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한 데 따른 결과라고만 보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3인 이상 선거구의 중요성이 확인됐다는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시범실시 지역을 포함해 소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23곳 가운데 20곳이 3인 이상 선거구였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3곳은 모두 2인 선거구였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결과를 두고 "3인 이상 선거구가 소수 정당에 유리한 선거환경을 제공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제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학계에서 나온 연구들을 종합하면, 기본적으로 2인 선거구를 축소하는 게 정당이나 지방의회 등에서 다양성이나 비례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대선거구제를 하게 되면 소수 정당에게는 좀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요."
-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KBS와의 통화 내용)

■ 선거구제별 장·단점 혼재, 이번엔 바뀔까

그렇다고 무조건 '중·대선거구제가 옳다'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소선거구제와 중·대 선거구제 모두 현실에 적용했을 때 장·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매번 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야 간, 또 각 주체별로 유불리 '셈법'이 달라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는 점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상황에 맞는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야도 당연히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개특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1차 논의를 이어가고 필요하다면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서 우리 당 입장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해 주십시오"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 3일 원내대책회의 발언

"중·대선거구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고려해서 당내 의견을 지금 모아가는 중입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2일 민주당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 발언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의회의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3인 이상 선거구 확대 ▲선거구획정위원회 권한 강화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남발 방지책 마련 ▲비례대표 정수 확대 방안 모색 등 4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공식 제안하고 정치권이 큰 틀에서 동의의 뜻을 밝힌 만큼 이번에는 35년을 이어온 소선거구제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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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체크K] 6.1지방선거에서 실험한 중·대선거구제, 그 결과 보니
    • 입력 2023-01-04 07:00:01
    팩트체크K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중략)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윤석열 대통령 / 1월 2일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 내용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공론화했습니다. 선거구는 대표를 선출하는 지역적 단위입니다. 그 규모에 따라 소·중·대 선거구로 나뉘는데 선거구당 1인을 선출하면 소선거구, 2~4인이면 중선거구, 5인 이상을 대선거구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윤 대통령 제안에 입법부 수장인 김진표 국회의장 뿐 아니라 정치권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소수 정당과 다양한 정치세력의 유입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수도 없이 나왔던 얘기지만 매번 가시적인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 보고서가 공개돼 주목됩니다. 이는 정부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 한해 시범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했는데 그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선거 이후 학계에서 별도의 분석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정식 보고서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6.1지방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 한해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한 건 앞서 여야가 해당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한 데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 "양당 체제, 크게 개선 안 됐다"

관련법에 따라 지난 6.1 지방선거, 즉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기초의회의원선거 지역구 1,030곳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습니다. 6개 지역 11곳이 해당됩니다.

자료: 국회입법조사처
그런데 선거 결과 이들 지역에서 '소수 정당의 후보 공천과 당선자 비율'이 전국 대비 높게 나타났지만, 양대 정당(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집중은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당체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결과입니다.

소수 정당은 시범 지역 30개 선거구 가운데 총 18개 선거구에서 19명의 후보(정의당 11·진보당 7·우리공화당 1)를 공천했습니다. 이를 '소수정당 후보 공천율'로 따져보면 10.1%로 전체 선거구의 5.4%보다 2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소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비율은 시범 지역에서 3.7%로 나타나 역시 전국 기준인 0.9%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비율이 아닌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양대 정당으로 표가 집중된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시범 지역 30개 선거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양대 정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압도적(96.3%)이었던 반면, 소수 정당 소속 당선자는 4명(3.7%)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당선자 4명 중 3명이 민주당의 절대 우세 지역인 광주에서 당선돼 '지역 쏠림'이 두드러졌습니다.


■ 제도 영향 추론엔 한계…"3인 이상 선거구 중요성 확인"

보고서는 다만, 6.1 지방선거에서의 시범실시 결과만 가지고 중대선거구제의 확대 영향을 추론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일단 시범실시 지역이 전체 선거구의 2.9%에 불과하고 지방선거를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 시범실시가 전격적으로 결정돼 소수 정당이 선거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분석 결과의 주요 한계로 꼽힙니다.

소수 정당 당선자가 몰린 광주 지역의 경우 애초 진보 정당의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결과가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한 데 따른 결과라고만 보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3인 이상 선거구의 중요성이 확인됐다는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시범실시 지역을 포함해 소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23곳 가운데 20곳이 3인 이상 선거구였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3곳은 모두 2인 선거구였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결과를 두고 "3인 이상 선거구가 소수 정당에 유리한 선거환경을 제공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제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학계에서 나온 연구들을 종합하면, 기본적으로 2인 선거구를 축소하는 게 정당이나 지방의회 등에서 다양성이나 비례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대선거구제를 하게 되면 소수 정당에게는 좀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요."
-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KBS와의 통화 내용)

■ 선거구제별 장·단점 혼재, 이번엔 바뀔까

그렇다고 무조건 '중·대선거구제가 옳다'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소선거구제와 중·대 선거구제 모두 현실에 적용했을 때 장·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매번 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야 간, 또 각 주체별로 유불리 '셈법'이 달라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는 점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상황에 맞는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야도 당연히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개특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1차 논의를 이어가고 필요하다면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서 우리 당 입장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해 주십시오"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 3일 원내대책회의 발언

"중·대선거구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고려해서 당내 의견을 지금 모아가는 중입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2일 민주당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 발언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의회의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3인 이상 선거구 확대 ▲선거구획정위원회 권한 강화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남발 방지책 마련 ▲비례대표 정수 확대 방안 모색 등 4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공식 제안하고 정치권이 큰 틀에서 동의의 뜻을 밝힌 만큼 이번에는 35년을 이어온 소선거구제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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