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박지원만 구속 피한 이유는?

입력 2023.01.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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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해 피격' 관련자 중 박지원만 유일하게 구속 피해
검찰, '월북 가능성 작다'는 국정원의 첩보 정확성 참작
박지원, 당시 서훈에게 피격 사실 대통령에 보고하자고 설득
공소장에 '삭제 지시 시간' 등 다툼 여지 사실은 빠져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가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가 일단락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이 씨의 '자진 월북' 결론이 타당했는지, 그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어떤 의사 결정과 개입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수사의 핵심이었는데요.

검찰은 안보 콘트롤타워의 수장이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박지원 전 국정원장,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모두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씨의 피격 사실이 담긴 첩보를 삭제하고, 근거가 부족한데도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려고 했다는 게 핵심 범죄 혐의입니다.

따라서 주요 피고인으로 지목된 서훈 전 실장뿐 아니라, 서욱 전 장관, 김홍희 전 청장 모두 구속 상태로 기소되거나 구속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지원 전 원장만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채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혐의는 강하게 의심되지만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낮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볼까 합니다.

■ 국정원 "월북 가능성 작다" … 검찰 "첩보 분석 정확"

검찰은 지난해 1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 이대준 씨의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잠정 결론을 밝혔습니다.

이 씨가 월북을 위해 배에서 스스로 이탈한 게 아니라, 실족했다고 보는 게 더 사실과 가깝다는 겁니다.

실제 월북할 의도였다면 타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구명조끼 등 여러 구조 장비들을 챙겨갔어야 했는데 챙겨가지 않았고, 당시 바다의 조류를 살펴봐도 충분히 북한 해역으로 표류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 관련 국가기관인 통일부와 국방부, 국정원과 해양경찰청 가운데 국정원을 포함한 두 곳만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또 KBS 취재 결과, 검찰은 박 전 원장이 피격 당일 서훈 전 실장에게 가장 먼저 '피격'과 '시신 소각' 사실을 알렸다는 정황도 확보했습니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11시 20분쯤, 첩보 분석을 처음으로 서 전 실장에게 전화로 알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결국, 검찰은 박 전 원장과 국정원은 서훈 전 실장이 주도한 이른바 '월북몰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보고, 박 전 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 공소장에 '첩보 삭제' 지시 시간 빠져…"범죄 시점 불명확"

검찰은 박 전 원장이 서훈 전 실장의 첩보 삭제 지침을 받은 뒤 국정원 실무자에게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 전 원장이 보안 지침을 공유해 첩보 삭제를 지시했고, 이를 이행했다는 실무자들의 진술과 함께 '이행 보고서' 두 건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범죄 시점은 명확하게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당초 박 전 원장이 첫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인 새벽 3시 공관에 돌아가 비서실장에게 삭제를 지시했고, 이후 비서실장이 오전 10시에 정무직 회의를 소집해 오전 11시까지 삭제가 이뤄졌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을 소환한 뒤 공소장에는 정확히 비서실장에게 삭제를 언제 지시했는지, 삭제 이행 시점이 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범죄 혐의는 소명되지만, 자세한 정황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 박지원 "삭제 지시 안 했으나 삭제된 것 인정.. 재판서 다툴 것"

박 전 원장은 KBS 취재진을 만나 "첩보 삭제 지시를 한 적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서 전 실장에게 보안 유지 지침을 받은 적이 없고, 내가 이런 지침을 실무진에게 전달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다만 "검찰 조사에서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삭제 지침 보고서를 확인했고, 당초 생각과는 달리 국정원 서버에서 첩보가 삭제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박 전 원장은 피격 직후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던 그날 밤의 상황에 대해서도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할 수 없던 근거들을 재판에서 제시할 것"이라며 "국정원 첩보 분석은 정확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삭제 지시 정황에 대한 여죄 수사를 이어간 뒤, '서해 피격'과 관련한 공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날 밤의 진실을 다투는 첫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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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 공무원 피격’ 박지원만 구속 피한 이유는?
    • 입력 2023-01-06 13:03:23
    취재K
'서해 피격' 관련자 중 박지원만 유일하게 구속 피해<br />검찰, '월북 가능성 작다'는 국정원의 첩보 정확성 참작<br />박지원, 당시 서훈에게 피격 사실 대통령에 보고하자고 설득<br />공소장에 '삭제 지시 시간' 등 다툼 여지 사실은 빠져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가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가 일단락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이 씨의 '자진 월북' 결론이 타당했는지, 그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어떤 의사 결정과 개입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수사의 핵심이었는데요.

검찰은 안보 콘트롤타워의 수장이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박지원 전 국정원장,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모두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씨의 피격 사실이 담긴 첩보를 삭제하고, 근거가 부족한데도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려고 했다는 게 핵심 범죄 혐의입니다.

따라서 주요 피고인으로 지목된 서훈 전 실장뿐 아니라, 서욱 전 장관, 김홍희 전 청장 모두 구속 상태로 기소되거나 구속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지원 전 원장만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채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혐의는 강하게 의심되지만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낮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볼까 합니다.

■ 국정원 "월북 가능성 작다" … 검찰 "첩보 분석 정확"

검찰은 지난해 1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 이대준 씨의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잠정 결론을 밝혔습니다.

이 씨가 월북을 위해 배에서 스스로 이탈한 게 아니라, 실족했다고 보는 게 더 사실과 가깝다는 겁니다.

실제 월북할 의도였다면 타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구명조끼 등 여러 구조 장비들을 챙겨갔어야 했는데 챙겨가지 않았고, 당시 바다의 조류를 살펴봐도 충분히 북한 해역으로 표류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 관련 국가기관인 통일부와 국방부, 국정원과 해양경찰청 가운데 국정원을 포함한 두 곳만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또 KBS 취재 결과, 검찰은 박 전 원장이 피격 당일 서훈 전 실장에게 가장 먼저 '피격'과 '시신 소각' 사실을 알렸다는 정황도 확보했습니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11시 20분쯤, 첩보 분석을 처음으로 서 전 실장에게 전화로 알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결국, 검찰은 박 전 원장과 국정원은 서훈 전 실장이 주도한 이른바 '월북몰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보고, 박 전 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 공소장에 '첩보 삭제' 지시 시간 빠져…"범죄 시점 불명확"

검찰은 박 전 원장이 서훈 전 실장의 첩보 삭제 지침을 받은 뒤 국정원 실무자에게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 전 원장이 보안 지침을 공유해 첩보 삭제를 지시했고, 이를 이행했다는 실무자들의 진술과 함께 '이행 보고서' 두 건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범죄 시점은 명확하게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당초 박 전 원장이 첫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인 새벽 3시 공관에 돌아가 비서실장에게 삭제를 지시했고, 이후 비서실장이 오전 10시에 정무직 회의를 소집해 오전 11시까지 삭제가 이뤄졌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을 소환한 뒤 공소장에는 정확히 비서실장에게 삭제를 언제 지시했는지, 삭제 이행 시점이 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범죄 혐의는 소명되지만, 자세한 정황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 박지원 "삭제 지시 안 했으나 삭제된 것 인정.. 재판서 다툴 것"

박 전 원장은 KBS 취재진을 만나 "첩보 삭제 지시를 한 적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서 전 실장에게 보안 유지 지침을 받은 적이 없고, 내가 이런 지침을 실무진에게 전달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다만 "검찰 조사에서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삭제 지침 보고서를 확인했고, 당초 생각과는 달리 국정원 서버에서 첩보가 삭제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박 전 원장은 피격 직후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던 그날 밤의 상황에 대해서도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할 수 없던 근거들을 재판에서 제시할 것"이라며 "국정원 첩보 분석은 정확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삭제 지시 정황에 대한 여죄 수사를 이어간 뒤, '서해 피격'과 관련한 공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날 밤의 진실을 다투는 첫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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