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침체가 가져올 고통은 이제 누구 몫인가

입력 2023.0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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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에서 진짜 세입은 줄고, 복지지출은 줄어들까. 올해 정부의 예산안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다 이유가 있다.
#정부 재정적자는 그만큼 또 커진다. 다들 걱정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2019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같은 기간 우리 가계빚은 얼마나 늘었을까? 그래서 지금 진짜 어려운 것은 우리 정부일까 우리 국민일까?
#금리가 급등하면서 빚을 진 가계의 고통이 커진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예금이 많을까 대출이 더 많을까? 리 국민은 생각보다 부자이며 생각보다 가난하다. 올해 우리를 기다리는 경제적 고통은 대부분 생각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보수정부도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있다.


1. 5.1%(우리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액/2023년 예산안)

올해 정부 살림이 지난해보다 또 5.1% 커졌다. 나라살림이 커지는 만큼 세금을 더 내야한다. 브레이크는 없다. 올해 정부 수입에서 정부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0.6%다. 정부 지출은 늘었는데 적자가 0.6%라는 말은 그만큼 세금을 더 걷는다는 뜻이다. 보수정부도 뚜렷한 수가 없다. 올해 우리국민과 기업의 국세만 지난해보다 16.6%를 더 내야한다(정부는 이를 '주요세목 세입기반 확충'이라고 표현한다. 세금 더 거둘 곳을 찾았단 뜻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출을 늘리고 줄였을까? 복지 재정이 4.1%나 늘어난다. 국방예산도 4.6% 증가하는데 상당부분 사병월급 인상분이니, 따지고 보면 복지예산이다. 반면 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예산 지출은 18.0% 줄어든다. 우리 정부는 이번 재정계획을 통해 '민간 주도의 역동적 경제를 뒷받침하겠다'고 했다.(자료 기획재정부 2023년 예산안 홍보자료). 하지만 현실은 복지 증액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 7.9%p(팬데믹 기간중 늘어난 한국의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

다들 우리 재정이 걱정이다. 경제신문들은 정부 부채비율이 50%를 넘는다고 연일 탄식한다.(기획재정부 추정치 /2022.12). 실제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자 그럼, 팬데믹 기간 우리 정부는 돈을 얼마나 펑펑 썼을까? 2019년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3년간 우리 정부의 부채비율은 7.9%p나 높아졌다. 이 기간 일본은 21.9%p, 미국은 13.4%p, 영국은 9.5%p가 높아졌다. 우리보다 부채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재정을 훨씬 더 쏟아부었다. 우리와 GDP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부채비율이 각각 13.5%P, 12.1%P높아졌다. (자료 BIS 국제결제은행)

한국 정부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분명하게 재정을 '덜' 썼다. 그럼 누가 돈을 더 썼을까? 우리 국민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가계부채는 1.9%p높아졌다. 일본은 6.2%p, 영국은 1.1%p가 높아졌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부채는 2%p, 스페인 국민들의 부채는 거의 늘지않았다. 반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이 기간 또 10.4%p나 급등했다. 정부가 팬데믹에도 지갑을 조이자 국민들은 대출을 더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좀 산다는 나라 중 유일하게 GDP대비 가계부채가 100%가 넘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3. 81.6%(한국의 중앙은행이나 금융권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채 잔고 비율)

우리 정부의 부채비율이 50%를 넘는 동안, 빚쟁이로 소문난 일본 정부의 부채비율은 곧 250%를 넘어간다. (JAPAN이라는 식당의 매출이 연간 1억 원이라면 빚이 2억 5천만 원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모두 재정을 확대하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1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섰다.

흔히들 일본은 부채비율이 높아도 그 채권을 일본 중앙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어 걱정이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 일본 정부에 돈을 빌려준 주체는 대부분 일본중앙은행(48%)이나 일본의 시중은행과 보험, 연기금(37%)이다. 그러니 정부 곳간이 비어도 굳이 서둘러 채권추심에 나서지 않을거라고 믿는다. (참고로 올해 일본 정부가 갚아야 할 국채 원리금은 24.3조엔이나 된다. 한 해 재정의 1/4 이상을 나라빚 갚는데 쓴다. 이 나라 진짜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럼 한국 정부는 주로 누구에게 돈을 빌릴까? 우리 국채 역시 외국인 비중은 18.4%(183조 원)밖에 안된다. (22년 6월 기준 /기획재정부 채권잔액현황). 다시말해 한국 정부도 역시 대부분 Korea에서 Korean에게 돈을 빌려 부족한 재정을 확충한다.
그만큼 우리 시장에 전주들이 넉넉해졌고, 우리 경제가 커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젠가 나라 곳간이 비면 일본인 채권자들은 모른척하고, 한국인 채권자들은 득달같이 달려들까?

우리는 우리 경제가 선진국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어색하고, 그래서 부채가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도 두렵다. 문제는 정부 지출의 균형점이 가계에서 정부로 옮겨갈수록 가계의 어느 한 켠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우리 채권이나 국채 보유 비중이 높은 게 절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를 믿고 돈을 빌려 줬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외국인의 국채 인수도 투자다). 이제 힘들다는 우리 국민들의 예금통장을 들여다보자.

4. 2.1배(우리 국민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

가계가 잔뜩 빚을 지고 있는데, 이자율이 올라간다. 큰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예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은 4,922조 원에 달한다. 반면 금융부채는 2,311조 원이다. 우리 국민은 부채보다 금융자산이 2배 넘게 많다(2022년 2분기 자금순환/한국은행).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어느 한쪽에만 몰려 있는거다.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 여유자금이 요즘 한달 40조 원 넘게 은행으로 밀려든다. 그러니 시중 금리가 급등해도 대출 이자 부담보다 예금 이자 수익이 훨씬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 물론 전자는 주로 서민들의 몫이고 후자는 넉넉한 계층의 것이다 (대략 이자율이 1%p오르면 14조 원 정도 이자를 더 내야한다). 전자가 내는 대출 이자는 잠깐 은행을 거쳐 후자의 예금 이자로 옮겨간다. 원래 가난에는 늘 이렇게 이자가 붙는다.


5. 2,361조 원(우리 국민 42만 명이 보유한 자산 가치)

격차가 벌어진다. '소득 5분위 배율' 이런 통계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연봉 1억원은 이제 명함도 못내민다. 이미 월급을 월 1억이상 버는 급여생활자가 3,738명이나 된다(자료 건강보험공단). 진짜 격차는 (피케티의 설명처럼) 소득보다 자산에서 훨씬 더 벌어진다.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개인은 42만여 명으로 1년새 또 8% 늘었다(전년은 10.9% 증가). 금융자산이 100억 ~300억 원 이상 개인도 3만 1천 명이나 된다. 역시 빠른 증가세다 (자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2022년 한국 부자보고서) .

이들 42만 명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은 모두 2,361조 원으로 조사됐다(2021년 말 기준). 전년 대비 또 14.7% 높아졌다. 수 천만 원씩 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나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같은 제품이 매장에 진열도 되기 전에 다 팔리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루이비통은 한해 1조 원, 메르세데스 벤츠는 연 5조 원 어치가 팔린다.

강남 신세계백화점의 연매출이 2조5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일본 도쿄의 ‘이세탄 신주쿠'를 뛰어넘었다. 반면 서울을 조금만 벗어난 수도권 동네 상권은 어떤가. 불편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경기가 안좋은 게 아니다. 격차가 벌어진다.

6. 60%(한국의 주택 대출 가구주들이 매월 소득에서 갚아야할 주택 대출 원리금의 비중)

툭하면 돈을 풀어 위기를 벗어나곤 했던 인류는 지난해 '인플레이션'이라는 매우 클래식한 부작용을 만났다. 적잖이 당황했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잇달아 금리 인상 단추를 눌렀고 글로벌 경기는 빠르게 가라앉는 중이다. 올해 경기하강이나 침체를 예상하지 않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어떤 가계가 여유자금을 계속 은행 예금통장에 넣는 동안, 이제 부채가 잔뜩있는 가계는 빚을 갚아야한다. 고통스런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시간이 왔다. 이제 빚 갚는 게 '재테크'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갚아야 한다.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했더니 집사면서 대출을 가진 가구주의 DSR이 벌써 60.6%까지 높아졌다(2022년 3분기 기준). 월 100만원 벌어 60만 원을 원금과 이자갚는데 쓴다는 뜻이다. 정부는 DSR을 40% 선에서 규제했지만, 갑자기 이자율이 오르자 DSR도 따라 급등했다.

이들이 빚을 갚느라 지갑을 닫으면 빚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우리 모두 소득이 줄어든다. 경기침체는 그렇게 찾아온다. BIS(국제결제은행)는 1)주거용 주택 가격 2)외화 유입 3)총 민간부문 부채 4)가계 부채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을 금융위기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WEIs)로 분류하고 있다. 가계부채와 우리 집값은 그렇게 연동해 올해 우리 경제를 흔들 게 틀림없다.

이 자산 축소의 시기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자산 급등의 시기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디레버리징의 시간에도 그만큼 고통받을까? 늘 그렇지만 자산 시장의 겨울이 오면 고통의 대부분은 지갑이 얇은 사람들의 몫이 된다.

(빚이 많을수록 더 고통스럽다. 시장경제에서 빚이란 소비의 결과다. 아파트든 승용차든 소비를 했기 때문에 생긴 빚이다. 가계의 소비는 기업의 소득이고, 이렇게 번 돈을 기업이 소비하면 이를 '투자'라고 한다. 정부가 기업이나 가계에 쓰는 재정도 일종의 투자다. 한국 정부는 왜 가계나 기업보다 빚이 적은가? 한국 정부는 왜 가계나 기업만큼도 투자하지 않는가)

아주 부자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가난한지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는 알아차려야한다. 2023년 올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부 재정 지출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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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경기침체가 가져올 고통은 이제 누구 몫인가
    • 입력 2023-01-07 0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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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에서 진짜 세입은 줄고, 복지지출은 줄어들까. 올해 정부의 예산안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다 이유가 있다.
#정부 재정적자는 그만큼 또 커진다. 다들 걱정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2019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같은 기간 우리 가계빚은 얼마나 늘었을까? 그래서 지금 진짜 어려운 것은 우리 정부일까 우리 국민일까?
#금리가 급등하면서 빚을 진 가계의 고통이 커진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예금이 많을까 대출이 더 많을까? 리 국민은 생각보다 부자이며 생각보다 가난하다. 올해 우리를 기다리는 경제적 고통은 대부분 생각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보수정부도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있다.


1. 5.1%(우리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액/2023년 예산안)

올해 정부 살림이 지난해보다 또 5.1% 커졌다. 나라살림이 커지는 만큼 세금을 더 내야한다. 브레이크는 없다. 올해 정부 수입에서 정부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0.6%다. 정부 지출은 늘었는데 적자가 0.6%라는 말은 그만큼 세금을 더 걷는다는 뜻이다. 보수정부도 뚜렷한 수가 없다. 올해 우리국민과 기업의 국세만 지난해보다 16.6%를 더 내야한다(정부는 이를 '주요세목 세입기반 확충'이라고 표현한다. 세금 더 거둘 곳을 찾았단 뜻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출을 늘리고 줄였을까? 복지 재정이 4.1%나 늘어난다. 국방예산도 4.6% 증가하는데 상당부분 사병월급 인상분이니, 따지고 보면 복지예산이다. 반면 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예산 지출은 18.0% 줄어든다. 우리 정부는 이번 재정계획을 통해 '민간 주도의 역동적 경제를 뒷받침하겠다'고 했다.(자료 기획재정부 2023년 예산안 홍보자료). 하지만 현실은 복지 증액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 7.9%p(팬데믹 기간중 늘어난 한국의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

다들 우리 재정이 걱정이다. 경제신문들은 정부 부채비율이 50%를 넘는다고 연일 탄식한다.(기획재정부 추정치 /2022.12). 실제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자 그럼, 팬데믹 기간 우리 정부는 돈을 얼마나 펑펑 썼을까? 2019년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3년간 우리 정부의 부채비율은 7.9%p나 높아졌다. 이 기간 일본은 21.9%p, 미국은 13.4%p, 영국은 9.5%p가 높아졌다. 우리보다 부채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재정을 훨씬 더 쏟아부었다. 우리와 GDP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부채비율이 각각 13.5%P, 12.1%P높아졌다. (자료 BIS 국제결제은행)

한국 정부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분명하게 재정을 '덜' 썼다. 그럼 누가 돈을 더 썼을까? 우리 국민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가계부채는 1.9%p높아졌다. 일본은 6.2%p, 영국은 1.1%p가 높아졌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부채는 2%p, 스페인 국민들의 부채는 거의 늘지않았다. 반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이 기간 또 10.4%p나 급등했다. 정부가 팬데믹에도 지갑을 조이자 국민들은 대출을 더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좀 산다는 나라 중 유일하게 GDP대비 가계부채가 100%가 넘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3. 81.6%(한국의 중앙은행이나 금융권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채 잔고 비율)

우리 정부의 부채비율이 50%를 넘는 동안, 빚쟁이로 소문난 일본 정부의 부채비율은 곧 250%를 넘어간다. (JAPAN이라는 식당의 매출이 연간 1억 원이라면 빚이 2억 5천만 원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모두 재정을 확대하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1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섰다.

흔히들 일본은 부채비율이 높아도 그 채권을 일본 중앙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어 걱정이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 일본 정부에 돈을 빌려준 주체는 대부분 일본중앙은행(48%)이나 일본의 시중은행과 보험, 연기금(37%)이다. 그러니 정부 곳간이 비어도 굳이 서둘러 채권추심에 나서지 않을거라고 믿는다. (참고로 올해 일본 정부가 갚아야 할 국채 원리금은 24.3조엔이나 된다. 한 해 재정의 1/4 이상을 나라빚 갚는데 쓴다. 이 나라 진짜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럼 한국 정부는 주로 누구에게 돈을 빌릴까? 우리 국채 역시 외국인 비중은 18.4%(183조 원)밖에 안된다. (22년 6월 기준 /기획재정부 채권잔액현황). 다시말해 한국 정부도 역시 대부분 Korea에서 Korean에게 돈을 빌려 부족한 재정을 확충한다.
그만큼 우리 시장에 전주들이 넉넉해졌고, 우리 경제가 커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젠가 나라 곳간이 비면 일본인 채권자들은 모른척하고, 한국인 채권자들은 득달같이 달려들까?

우리는 우리 경제가 선진국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어색하고, 그래서 부채가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도 두렵다. 문제는 정부 지출의 균형점이 가계에서 정부로 옮겨갈수록 가계의 어느 한 켠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우리 채권이나 국채 보유 비중이 높은 게 절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를 믿고 돈을 빌려 줬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외국인의 국채 인수도 투자다). 이제 힘들다는 우리 국민들의 예금통장을 들여다보자.

4. 2.1배(우리 국민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

가계가 잔뜩 빚을 지고 있는데, 이자율이 올라간다. 큰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예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은 4,922조 원에 달한다. 반면 금융부채는 2,311조 원이다. 우리 국민은 부채보다 금융자산이 2배 넘게 많다(2022년 2분기 자금순환/한국은행).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어느 한쪽에만 몰려 있는거다.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 여유자금이 요즘 한달 40조 원 넘게 은행으로 밀려든다. 그러니 시중 금리가 급등해도 대출 이자 부담보다 예금 이자 수익이 훨씬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 물론 전자는 주로 서민들의 몫이고 후자는 넉넉한 계층의 것이다 (대략 이자율이 1%p오르면 14조 원 정도 이자를 더 내야한다). 전자가 내는 대출 이자는 잠깐 은행을 거쳐 후자의 예금 이자로 옮겨간다. 원래 가난에는 늘 이렇게 이자가 붙는다.


5. 2,361조 원(우리 국민 42만 명이 보유한 자산 가치)

격차가 벌어진다. '소득 5분위 배율' 이런 통계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연봉 1억원은 이제 명함도 못내민다. 이미 월급을 월 1억이상 버는 급여생활자가 3,738명이나 된다(자료 건강보험공단). 진짜 격차는 (피케티의 설명처럼) 소득보다 자산에서 훨씬 더 벌어진다.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개인은 42만여 명으로 1년새 또 8% 늘었다(전년은 10.9% 증가). 금융자산이 100억 ~300억 원 이상 개인도 3만 1천 명이나 된다. 역시 빠른 증가세다 (자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2022년 한국 부자보고서) .

이들 42만 명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은 모두 2,361조 원으로 조사됐다(2021년 말 기준). 전년 대비 또 14.7% 높아졌다. 수 천만 원씩 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나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같은 제품이 매장에 진열도 되기 전에 다 팔리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루이비통은 한해 1조 원, 메르세데스 벤츠는 연 5조 원 어치가 팔린다.

강남 신세계백화점의 연매출이 2조5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일본 도쿄의 ‘이세탄 신주쿠'를 뛰어넘었다. 반면 서울을 조금만 벗어난 수도권 동네 상권은 어떤가. 불편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경기가 안좋은 게 아니다. 격차가 벌어진다.

6. 60%(한국의 주택 대출 가구주들이 매월 소득에서 갚아야할 주택 대출 원리금의 비중)

툭하면 돈을 풀어 위기를 벗어나곤 했던 인류는 지난해 '인플레이션'이라는 매우 클래식한 부작용을 만났다. 적잖이 당황했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잇달아 금리 인상 단추를 눌렀고 글로벌 경기는 빠르게 가라앉는 중이다. 올해 경기하강이나 침체를 예상하지 않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어떤 가계가 여유자금을 계속 은행 예금통장에 넣는 동안, 이제 부채가 잔뜩있는 가계는 빚을 갚아야한다. 고통스런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시간이 왔다. 이제 빚 갚는 게 '재테크'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갚아야 한다.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했더니 집사면서 대출을 가진 가구주의 DSR이 벌써 60.6%까지 높아졌다(2022년 3분기 기준). 월 100만원 벌어 60만 원을 원금과 이자갚는데 쓴다는 뜻이다. 정부는 DSR을 40% 선에서 규제했지만, 갑자기 이자율이 오르자 DSR도 따라 급등했다.

이들이 빚을 갚느라 지갑을 닫으면 빚이 없는 사람을 포함해 우리 모두 소득이 줄어든다. 경기침체는 그렇게 찾아온다. BIS(국제결제은행)는 1)주거용 주택 가격 2)외화 유입 3)총 민간부문 부채 4)가계 부채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을 금융위기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WEIs)로 분류하고 있다. 가계부채와 우리 집값은 그렇게 연동해 올해 우리 경제를 흔들 게 틀림없다.

이 자산 축소의 시기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자산 급등의 시기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디레버리징의 시간에도 그만큼 고통받을까? 늘 그렇지만 자산 시장의 겨울이 오면 고통의 대부분은 지갑이 얇은 사람들의 몫이 된다.

(빚이 많을수록 더 고통스럽다. 시장경제에서 빚이란 소비의 결과다. 아파트든 승용차든 소비를 했기 때문에 생긴 빚이다. 가계의 소비는 기업의 소득이고, 이렇게 번 돈을 기업이 소비하면 이를 '투자'라고 한다. 정부가 기업이나 가계에 쓰는 재정도 일종의 투자다. 한국 정부는 왜 가계나 기업보다 빚이 적은가? 한국 정부는 왜 가계나 기업만큼도 투자하지 않는가)

아주 부자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가난한지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는 알아차려야한다. 2023년 올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부 재정 지출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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