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의 소설집…김연수 작가가 말하는 ‘단편소설 즐기는 법’

입력 2023.01.07 (09:00) 수정 2023.01.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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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 여섯 단어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긴장이 이어지고 갈등이 고조되다가 절정으로 치닫고, 마침내 결말까지, 이야기의 집합체인 만큼 소설은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보통 원고지 천 매 안팎에 이릅니다.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책 반 권이나 그 이하의 분량이면 중편소설로 불립니다. 더 짧아져 원고지 80매 정도에 이르면 단편소설이 됩니다. 그렇다면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더 짧은 소설, 예를 들어 몇 자 안 되는 단어만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긴장과 갈등, 절정을 몇 마디 말로 풀어낼 수 없기에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용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여섯 단어만으로 이뤄진 극히 짧은 문장이지만, 읽고 나면 '아!', 탄식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어 본 적 없는 아기 신발을 판다고 하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 사연은 몰라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위 문장은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비롯해 문학사를 빛낸 여러 소설을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정말로 헤밍웨이가 쓴 것인지 명확한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이 글을 누가 썼는지에 관한 사실과 별개로, '판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이 문장은 아주 짧은 글로도 사람들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례로 소개되고는 합니다.

헤밍웨이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여섯 단어 글짓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여섯 단어 글을 모아놓은 책도 출간되고 있습니다. '여섯 단어 회고록'(Not Quite What I Was Planning: Six-Word Memoirs by Writers Famous and Obscure)이란 책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보겠습니다.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국말 또한 여섯 단어로 옮겼습니다.)

I still make coffee for two.
- Zak Nelson
저는 여전히 커피를 두 잔 타요.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Never should have bought that
ring.
- Paul Bellows
사면 안 됐는데 말이야
그 반지.
(프러포즈할 때 나오는 반지가 떠오릅니다. 서양식 유머인 것 같습니다.)

It's pretty high. You go first.
- Alan Eagle
이거 참 꽤 높은데요. 먼저 가시죠.
(예의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Revenge is living well,
without you.
- Joyce Carol Oates
복수는 잘 사는 거지,
너 없이도.
(16부작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 같습니다.)

Not Quite What I Was Planning: Six-Word Memoirs by Writers Famous and Obscure (Edited by Rachel Fershleiser and Larry Smith)에서 인용

짧기에 역설적으로 여운은 더 길게 남을 수 있는 글, 짧은 글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짧다고 해서 빨리, 쉽게, 편히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소설 한 편마다 고유의 등장인물을 창작해야 하고, 특별한 사건을 전개해야 하고, 압축해서 서사를 보여줘야 합니다. 단편소설 여러 편을 쓰는 게 장편소설 한 편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설가가 하나의 단편소설집을 내려면 장편소설 한 권을 낼 때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 나와야 소설집 한 권을 낼 수 있으니까요.

■ 김연수 작가, 9년 만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여러 작품을 선보였던 김연수 작가도 새로 소설집을 내는 데 9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출간한 '이토록 평범한 미래'입니다. 이 소설집에는 책 제목이기도 한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난주의 바다 앞에서', '사랑의 단상 2014'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달 말 김연수 작가를 만나 오랜만에 나온 그의 소설집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작가는 한동안 무기력함을 느끼고는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단편소설을 잘 쓰지 않았어요. 삶이라는 것은 뭐랄까, 소설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힘들잖아요. 이처럼 가혹하고 힘든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글로 보여주는 게 소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리얼리즘 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리얼리즘에 기반을 둬서 이렇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보면 사람들이 아는 얘기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일일 뿐일 것 같은데, 삶이 가혹하고 힘들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해주는 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좀 들었어요."

김연수 작가는 그간 여러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제가 이제 40대를 지나가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든지, 아니면 주변 분들이 아프다든지, 혹은 사회적으로 참사가 벌어져서 가족을 잃는다든지, 이런 일들을 지켜봐야 했고요. 어떤 무기력함 같은 것들을 많이 느꼈던 상황이었죠. 그렇게 보내는 동안에 소설 쓰기가 멀어지더라고요."

2020년이 됐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었고, 팬데믹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제 휩쓸려 들어가게 됐는데, 그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생겼어요."

작가의 상상력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서 미래를 전망하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받게 된 거다, 마치 '죄와 벌'처럼요. 그렇지만 그와 같이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 말고 다른 식의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또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그렇다면 지금 모두가 다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 때 이 똑같은 세계를 놓고 다르게 상상할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2020년부터 오히려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됐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 대다수가 최근에 쓴 작품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네 작품은 지난해 발표됐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인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그의 이번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 등 시간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p29

과거가 지금의 내 모습을 결정지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역으로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의 내 모습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인터뷰에서 미래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은 정체성도 바뀐다는 것"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겁니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좋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까, 그게 어렵다면 미래도 만들어내서, 상상을 해서, 더 좋은 방식으로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설명을 하게 되면, 자기 정체성이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은) 정체성이 바뀌게 되는 거잖아요. 정체성이 바뀌면 뭔가를 하게 되고요."

우리가 미래는 멀리한 채 과거의 이야기에만 집착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게 사실은 편견이고 오해일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실패다'라고 규정을 내린 사람도 본인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실패가 아니고 내가 더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한 단계일 뿐이야', 이렇게 설명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 식의 이야기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자, 이게 제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 문장을 쓴 김연수 작가는 아래와 같은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건 지금 성공한 삶이냐, 저건 지금 실패한 삶이냐, 저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 팬데믹 시대…평범하지 않은 '평범'이라는 말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평범'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평범치 않음을 보여주려는 시대에 소설 제목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쓰고, 이를 책 제목으로 삼은 사연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전적으로 코로나 시대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평범한 삶이 더 좋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을 것 같아요. 코로나 시대가 되어서 못 하게 된 것들이 많았잖아요. 코로나19 초기에는 작가로서 독자 만나는 게 아주 힘들었고요. 저녁에 모임을 하는 것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평범하고 소소했던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소중한 일들이었구나, 생각이 들게 됐죠."

작가가 말을 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봤던 어른들의 삶,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하고, 잔칫상 차리고, 손뼉 치고, 생일 파티하고,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는 삶이 더 놀라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범한 것이 가장 놀라운 미래구나, 그걸 이제 깨달아서 제목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고는 했습니다만, 코로나 시대를 다들 거치셨으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얼마나 놀라운 미래인지 다들 아실 거라는 믿음에 의해서, 어떻게 생각하면 되게 평이한 제목인데 정했어요. 그런데 (독자들이) 제 의도대로 이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김연수 작가는 단편소설의 매력과 소설집을 음미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말했습니다.

"제가 한 스무 명 정도 사람들 앞에서 소설을 읽어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단편소설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편 같은 경우에는 제가 같은 시간에 읽을 수가 없는 거죠. 너무 길잖아요. 단편 같은 경우에는 지금 실려 있는 소설처럼 80매 정도 되는데, 1시간 정도 읽으면 되는 거고요. 더 짧은 소설들은 이십 분에서 사십 분 정도 읽으면 되고 완결이 되기 때문에, 어쨌든 다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는 거죠. 단편소설에는 우리가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기능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작가는 단편소설의 경우 낭독을 통해 좋은 지점은 살리고 안 좋은 지점은 빼면서 소설의 이야기를 고쳐나가고는 한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것도 단편소설의 매력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실린 단편은 모두 8편, 한 번에 다 읽을 수도 있고, 한 편, 한 편 나눠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에게 어떻게 읽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 "한 편 읽고... 한 편 읽고... 단편소설집의 숨은 매력"

"한 번에 다 안 읽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죠. 그래야 더 오래 읽고 제 책을 더 오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웃음) 그렇기도 하고요.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게 되면 뭔가 섞일 것도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단편소설은 한 편, 한 편씩 읽어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소설을 의무감 같은 기분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제 책을 사람들이 어떤 의무감으로 읽어주고 그런다면, 그건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요. 읽다가 그만 읽고 싶으면 그냥 놔뒀다가 다음에 또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소설의 '쓸모'는 시간이 지난 뒤에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도 밝혔습니다.

"정말 힘들 때가 있잖아요. '아, 끝장났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있잖아요. 그럴 때도 자기가 읽은 이야기 중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 주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요. '아, 옛날에 읽었던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소설이라는 게, 나중에 자기한테 '자기 인생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편하게, 지금 안 읽으면 나중에 읽으면 되니까, 편하게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소설가 50인이 뽑은 2022년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2022년)의 소설로 뽑혔습니다. 교보문고는 지난달 말, 소설가 90여 명에게 지난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1월 사이에 출간된 소설 가운데 다섯 권까지 추천을 의뢰해 그중에서 답변한 소설가 50명의 추천 도서를 정리한 결과,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가장 많은 10명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연수 작가는 동료 소설가들의 눈이 매서운데 그런 분들이 제 소설을 좋게 읽어주셨다고 하니 특별한 칭찬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그분들에게 제 소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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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 만의 소설집…김연수 작가가 말하는 ‘단편소설 즐기는 법’
    • 입력 2023-01-07 09:00:12
    • 수정2023-01-10 16:09:42
    취재K

※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 여섯 단어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긴장이 이어지고 갈등이 고조되다가 절정으로 치닫고, 마침내 결말까지, 이야기의 집합체인 만큼 소설은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보통 원고지 천 매 안팎에 이릅니다.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책 반 권이나 그 이하의 분량이면 중편소설로 불립니다. 더 짧아져 원고지 80매 정도에 이르면 단편소설이 됩니다. 그렇다면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더 짧은 소설, 예를 들어 몇 자 안 되는 단어만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긴장과 갈등, 절정을 몇 마디 말로 풀어낼 수 없기에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용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여섯 단어만으로 이뤄진 극히 짧은 문장이지만, 읽고 나면 '아!', 탄식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어 본 적 없는 아기 신발을 판다고 하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 사연은 몰라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위 문장은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비롯해 문학사를 빛낸 여러 소설을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정말로 헤밍웨이가 쓴 것인지 명확한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이 글을 누가 썼는지에 관한 사실과 별개로, '판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이 문장은 아주 짧은 글로도 사람들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례로 소개되고는 합니다.

헤밍웨이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여섯 단어 글짓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여섯 단어 글을 모아놓은 책도 출간되고 있습니다. '여섯 단어 회고록'(Not Quite What I Was Planning: Six-Word Memoirs by Writers Famous and Obscure)이란 책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보겠습니다.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국말 또한 여섯 단어로 옮겼습니다.)

I still make coffee for two.
- Zak Nelson
저는 여전히 커피를 두 잔 타요.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Never should have bought that
ring.
- Paul Bellows
사면 안 됐는데 말이야
그 반지.
(프러포즈할 때 나오는 반지가 떠오릅니다. 서양식 유머인 것 같습니다.)

It's pretty high. You go first.
- Alan Eagle
이거 참 꽤 높은데요. 먼저 가시죠.
(예의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Revenge is living well,
without you.
- Joyce Carol Oates
복수는 잘 사는 거지,
너 없이도.
(16부작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 같습니다.)

Not Quite What I Was Planning: Six-Word Memoirs by Writers Famous and Obscure (Edited by Rachel Fershleiser and Larry Smith)에서 인용

짧기에 역설적으로 여운은 더 길게 남을 수 있는 글, 짧은 글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짧다고 해서 빨리, 쉽게, 편히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소설 한 편마다 고유의 등장인물을 창작해야 하고, 특별한 사건을 전개해야 하고, 압축해서 서사를 보여줘야 합니다. 단편소설 여러 편을 쓰는 게 장편소설 한 편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설가가 하나의 단편소설집을 내려면 장편소설 한 권을 낼 때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 나와야 소설집 한 권을 낼 수 있으니까요.

■ 김연수 작가, 9년 만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여러 작품을 선보였던 김연수 작가도 새로 소설집을 내는 데 9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출간한 '이토록 평범한 미래'입니다. 이 소설집에는 책 제목이기도 한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난주의 바다 앞에서', '사랑의 단상 2014'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달 말 김연수 작가를 만나 오랜만에 나온 그의 소설집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작가는 한동안 무기력함을 느끼고는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단편소설을 잘 쓰지 않았어요. 삶이라는 것은 뭐랄까, 소설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힘들잖아요. 이처럼 가혹하고 힘든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글로 보여주는 게 소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리얼리즘 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리얼리즘에 기반을 둬서 이렇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보면 사람들이 아는 얘기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일일 뿐일 것 같은데, 삶이 가혹하고 힘들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해주는 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좀 들었어요."

김연수 작가는 그간 여러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제가 이제 40대를 지나가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든지, 아니면 주변 분들이 아프다든지, 혹은 사회적으로 참사가 벌어져서 가족을 잃는다든지, 이런 일들을 지켜봐야 했고요. 어떤 무기력함 같은 것들을 많이 느꼈던 상황이었죠. 그렇게 보내는 동안에 소설 쓰기가 멀어지더라고요."

2020년이 됐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었고, 팬데믹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제 휩쓸려 들어가게 됐는데, 그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생겼어요."

작가의 상상력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서 미래를 전망하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받게 된 거다, 마치 '죄와 벌'처럼요. 그렇지만 그와 같이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 말고 다른 식의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또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그렇다면 지금 모두가 다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 때 이 똑같은 세계를 놓고 다르게 상상할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2020년부터 오히려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됐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 대다수가 최근에 쓴 작품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네 작품은 지난해 발표됐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인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해 그의 이번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 등 시간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p29

과거가 지금의 내 모습을 결정지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역으로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의 내 모습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인터뷰에서 미래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은 정체성도 바뀐다는 것"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겁니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좋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까, 그게 어렵다면 미래도 만들어내서, 상상을 해서, 더 좋은 방식으로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설명을 하게 되면, 자기 정체성이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은) 정체성이 바뀌게 되는 거잖아요. 정체성이 바뀌면 뭔가를 하게 되고요."

우리가 미래는 멀리한 채 과거의 이야기에만 집착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게 사실은 편견이고 오해일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실패다'라고 규정을 내린 사람도 본인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실패가 아니고 내가 더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한 단계일 뿐이야', 이렇게 설명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 식의 이야기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자, 이게 제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 문장을 쓴 김연수 작가는 아래와 같은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건 지금 성공한 삶이냐, 저건 지금 실패한 삶이냐, 저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 팬데믹 시대…평범하지 않은 '평범'이라는 말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평범'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평범치 않음을 보여주려는 시대에 소설 제목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쓰고, 이를 책 제목으로 삼은 사연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전적으로 코로나 시대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평범한 삶이 더 좋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을 것 같아요. 코로나 시대가 되어서 못 하게 된 것들이 많았잖아요. 코로나19 초기에는 작가로서 독자 만나는 게 아주 힘들었고요. 저녁에 모임을 하는 것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평범하고 소소했던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소중한 일들이었구나, 생각이 들게 됐죠."

작가가 말을 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봤던 어른들의 삶,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하고, 잔칫상 차리고, 손뼉 치고, 생일 파티하고,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는 삶이 더 놀라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평범한 것이 가장 놀라운 미래구나, 그걸 이제 깨달아서 제목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고는 했습니다만, 코로나 시대를 다들 거치셨으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얼마나 놀라운 미래인지 다들 아실 거라는 믿음에 의해서, 어떻게 생각하면 되게 평이한 제목인데 정했어요. 그런데 (독자들이) 제 의도대로 이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김연수 작가는 단편소설의 매력과 소설집을 음미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말했습니다.

"제가 한 스무 명 정도 사람들 앞에서 소설을 읽어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단편소설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편 같은 경우에는 제가 같은 시간에 읽을 수가 없는 거죠. 너무 길잖아요. 단편 같은 경우에는 지금 실려 있는 소설처럼 80매 정도 되는데, 1시간 정도 읽으면 되는 거고요. 더 짧은 소설들은 이십 분에서 사십 분 정도 읽으면 되고 완결이 되기 때문에, 어쨌든 다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는 거죠. 단편소설에는 우리가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기능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작가는 단편소설의 경우 낭독을 통해 좋은 지점은 살리고 안 좋은 지점은 빼면서 소설의 이야기를 고쳐나가고는 한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것도 단편소설의 매력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실린 단편은 모두 8편, 한 번에 다 읽을 수도 있고, 한 편, 한 편 나눠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에게 어떻게 읽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 "한 편 읽고... 한 편 읽고... 단편소설집의 숨은 매력"

"한 번에 다 안 읽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죠. 그래야 더 오래 읽고 제 책을 더 오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웃음) 그렇기도 하고요.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게 되면 뭔가 섞일 것도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단편소설은 한 편, 한 편씩 읽어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소설을 의무감 같은 기분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제 책을 사람들이 어떤 의무감으로 읽어주고 그런다면, 그건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요. 읽다가 그만 읽고 싶으면 그냥 놔뒀다가 다음에 또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소설의 '쓸모'는 시간이 지난 뒤에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도 밝혔습니다.

"정말 힘들 때가 있잖아요. '아, 끝장났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있잖아요. 그럴 때도 자기가 읽은 이야기 중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 주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요. '아, 옛날에 읽었던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소설이라는 게, 나중에 자기한테 '자기 인생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편하게, 지금 안 읽으면 나중에 읽으면 되니까, 편하게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소설가 50인이 뽑은 2022년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2022년)의 소설로 뽑혔습니다. 교보문고는 지난달 말, 소설가 90여 명에게 지난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1월 사이에 출간된 소설 가운데 다섯 권까지 추천을 의뢰해 그중에서 답변한 소설가 50명의 추천 도서를 정리한 결과,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가장 많은 10명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연수 작가는 동료 소설가들의 눈이 매서운데 그런 분들이 제 소설을 좋게 읽어주셨다고 하니 특별한 칭찬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그분들에게 제 소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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