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불교계의 빈라덴 ‘위라투’, 국가훈장을 받다

입력 2023.01.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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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미얀마의 소식을 전하는 영자 온라인매체 이라와디(Irrawady)는 지난 2일, 승려 '유 위라투(U Wirathu)'가 쿠데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으로부터 국가명예훈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국가 명예훈장은 1948년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가장 명예로운 버마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승려 '유 위라투'는 급진적인 민족주의와 반 이슬람 정서를 대표하는 불교계의 '빈 라덴'이다(그는 스스로를 빈 라덴이라고 불렀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혐오와 증오, 폭력으로 대변해왔다.

2000년초 미얀마에는 이스람교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969운동'이 번졌다. 위라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미얀마에서 이슬람 교도 척결을 주장하며 이름을 날렸다. (969는 부처님과 불교의 수행, 불교 공동체를 의미한다. 반면 남아시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786'을 신이 내려준 자비로운 숫자로 여긴다. 이슬람교도가 소유한 기업들은 이 번호를 주로 이용한다. 당시 급진 불교도들은 이슬람교도의 7+8+6=21이라는 셈법으로 21세기 이슬람교도가 불교도를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위키 ).

하지만 '위라투'는 불교도인 버마인과 이슬람교인 로힝야족의 해묵은 갈등을 계속 부채질했다. 2003년 '위라투'는 만달레이 지역 캬우크세에서 반이슬람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얀마 불교계는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긴다"며 그를 배척했다.

2007년 미얀마에선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반군부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존경받는 승려들이 시위에 앞장섰다. 승려들이 입은 샤프란(붗꽃)색의 가사에서 유래해 '샤프란혁명'으로 불린 이 시위에서 승려 수백여 명이 군부의 총탄에 쓰러졌다. 시위는 2주만에 진압됐고 군부는 다시 집권했다. 2010년 군부의 지지를 받던 '위라투'는 석방됐다.

석방 이후에도 위라투는 반이슬람, 반소수민족 선동을 이어갔다. 그는 늘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혐오하며 미얀마의 분열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했다. 페이스북은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혐오의 표현을 이어가던 '위라투'의 계정을 중지시켰다. 2013년 7월 타임지는 표지모델로 그의 사진을 실은 '불교 테러리스트의 얼굴'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빈 라덴(Osama bin Laden)'이라고 불렀다.

‘유 위라투’의 분열과 혐오 정치를 다룬 타임지 기사. 타임지는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2013년 7월 1일.‘유 위라투’의 분열과 혐오 정치를 다룬 타임지 기사. 타임지는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2013년 7월 1일.

2012년, 군부가 미국 등 서방세계의 압력에 굴복해 '아웅 산 수치'를 석방하면서 미얀마에는 마침내 봄이 왔다. 위라투는 군부의 편에서 계속 선동과 혐오의 정치를 이어갔다. 이슬람 기업의 불매운동과 불교를 믿는 미얀마여성이 이슬람교도와 결혼하지 못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미얀마 여성은 스스로 종교와 결혼을 선택한다"는 여성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비로소 미얀마 민주세력은 크게 승리하면서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한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대 미얀마투자가 이어졌다(양곤에 신한은행이 들어서고, CGV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2017년 미얀마 군부는 끝내 라카인주에 사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8천여 명의 로힝야족이 이유도 모른채 몰살당했다. 무차별 폭행과 끔찍한 성폭행이 자행됐다. 70만여 명의 로힝야족은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숨어야했다. 승려 '위라투'의 주장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그는 '아웅산 수 치' 정부가 불교보다 인권을 중시한다고 비판했다. 2019년 위라투는 결국 '아웅산 수 치' 고문을 희롱하고 공격한 연설로 다시 기소됐다(그는 승려지만 그의 선동에는 외설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그의 표현을 차마 기사에 담지 못했다). 다음 총선에서 군부가 승리할 것으로 믿은 그는 2020년 11월 총선 직전 자수했다. 자수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적인 정부가 나에게 중형을 선고할 리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웅산 수 치'의 미얀마 민주진영은 또 83%의 지지를 받으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전체 664개 의석 중 헌법상 군부에 자동 배정되는 166개 의석(25%)을 제외한 선출의석 498석 가운데 396석을 얻었다.

하지만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총선 결과를 부인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위라투'는 지난해 9월 군부에 의해 사면 석방됐다. 군부는 그에게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 2일  급진 민족주의 불교주의자 승려 ‘유 위라투’에게 국가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사진 이라와디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 2일 급진 민족주의 불교주의자 승려 ‘유 위라투’에게 국가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사진 이라와디

2023년 1월 2일, 미얀마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승려 '유 위라투'에게 국가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쿠데타 이후에도 하원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쿤 묘'와 쿠데타로 축출된 그의 형을 대신해 카친주 장관에 임명된 '깻 테인 난'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미얀마 군정TV는 보도했다.

‘국가명예훈장’을 수여받은 승려 ‘유 위라투’, 온라인 매체  ‘미얀마 나우’는 그를 ‘증오의 전도사’라고 표현했다. 사진 미얀마 나우 Myanmar NOW‘국가명예훈장’을 수여받은 승려 ‘유 위라투’, 온라인 매체 ‘미얀마 나우’는 그를 ‘증오의 전도사’라고 표현했다. 사진 미얀마 나우 Myanma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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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불교계의 빈라덴 ‘위라투’, 국가훈장을 받다
    • 입력 2023-01-08 15:04:07
    특파원 리포트


숨어서 미얀마의 소식을 전하는 영자 온라인매체 이라와디(Irrawady)는 지난 2일, 승려 '유 위라투(U Wirathu)'가 쿠데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으로부터 국가명예훈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국가 명예훈장은 1948년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가장 명예로운 버마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승려 '유 위라투'는 급진적인 민족주의와 반 이슬람 정서를 대표하는 불교계의 '빈 라덴'이다(그는 스스로를 빈 라덴이라고 불렀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혐오와 증오, 폭력으로 대변해왔다.

2000년초 미얀마에는 이스람교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969운동'이 번졌다. 위라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미얀마에서 이슬람 교도 척결을 주장하며 이름을 날렸다. (969는 부처님과 불교의 수행, 불교 공동체를 의미한다. 반면 남아시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786'을 신이 내려준 자비로운 숫자로 여긴다. 이슬람교도가 소유한 기업들은 이 번호를 주로 이용한다. 당시 급진 불교도들은 이슬람교도의 7+8+6=21이라는 셈법으로 21세기 이슬람교도가 불교도를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위키 ).

하지만 '위라투'는 불교도인 버마인과 이슬람교인 로힝야족의 해묵은 갈등을 계속 부채질했다. 2003년 '위라투'는 만달레이 지역 캬우크세에서 반이슬람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얀마 불교계는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긴다"며 그를 배척했다.

2007년 미얀마에선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반군부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존경받는 승려들이 시위에 앞장섰다. 승려들이 입은 샤프란(붗꽃)색의 가사에서 유래해 '샤프란혁명'으로 불린 이 시위에서 승려 수백여 명이 군부의 총탄에 쓰러졌다. 시위는 2주만에 진압됐고 군부는 다시 집권했다. 2010년 군부의 지지를 받던 '위라투'는 석방됐다.

석방 이후에도 위라투는 반이슬람, 반소수민족 선동을 이어갔다. 그는 늘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혐오하며 미얀마의 분열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했다. 페이스북은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혐오의 표현을 이어가던 '위라투'의 계정을 중지시켰다. 2013년 7월 타임지는 표지모델로 그의 사진을 실은 '불교 테러리스트의 얼굴'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빈 라덴(Osama bin Laden)'이라고 불렀다.

‘유 위라투’의 분열과 혐오 정치를 다룬 타임지 기사. 타임지는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2013년 7월 1일.
2012년, 군부가 미국 등 서방세계의 압력에 굴복해 '아웅 산 수치'를 석방하면서 미얀마에는 마침내 봄이 왔다. 위라투는 군부의 편에서 계속 선동과 혐오의 정치를 이어갔다. 이슬람 기업의 불매운동과 불교를 믿는 미얀마여성이 이슬람교도와 결혼하지 못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미얀마 여성은 스스로 종교와 결혼을 선택한다"는 여성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비로소 미얀마 민주세력은 크게 승리하면서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한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대 미얀마투자가 이어졌다(양곤에 신한은행이 들어서고, CGV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2017년 미얀마 군부는 끝내 라카인주에 사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8천여 명의 로힝야족이 이유도 모른채 몰살당했다. 무차별 폭행과 끔찍한 성폭행이 자행됐다. 70만여 명의 로힝야족은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숨어야했다. 승려 '위라투'의 주장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그는 '아웅산 수 치' 정부가 불교보다 인권을 중시한다고 비판했다. 2019년 위라투는 결국 '아웅산 수 치' 고문을 희롱하고 공격한 연설로 다시 기소됐다(그는 승려지만 그의 선동에는 외설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그의 표현을 차마 기사에 담지 못했다). 다음 총선에서 군부가 승리할 것으로 믿은 그는 2020년 11월 총선 직전 자수했다. 자수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적인 정부가 나에게 중형을 선고할 리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웅산 수 치'의 미얀마 민주진영은 또 83%의 지지를 받으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전체 664개 의석 중 헌법상 군부에 자동 배정되는 166개 의석(25%)을 제외한 선출의석 498석 가운데 396석을 얻었다.

하지만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총선 결과를 부인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위라투'는 지난해 9월 군부에 의해 사면 석방됐다. 군부는 그에게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 2일  급진 민족주의 불교주의자 승려 ‘유 위라투’에게 국가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사진 이라와디
2023년 1월 2일, 미얀마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승려 '유 위라투'에게 국가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쿠데타 이후에도 하원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쿤 묘'와 쿠데타로 축출된 그의 형을 대신해 카친주 장관에 임명된 '깻 테인 난'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미얀마 군정TV는 보도했다.

‘국가명예훈장’을 수여받은 승려 ‘유 위라투’, 온라인 매체  ‘미얀마 나우’는 그를 ‘증오의 전도사’라고 표현했다. 사진 미얀마 나우 Myanma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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