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그 이름 ‘사이버레커’, 혐오 이슈로 수익을 올리는 자

입력 2023.0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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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알고리즘 인류, 1부 - 현실을 삼키다’ 中에서〉

<사이버레커1/음성변조>
"최근 결혼상대 찾는 프로에 나오는 페미도 전혀 안그렇게 생긴 사람이 한남견에 제기에 별의 별 남혐단어 쓰고 있었단 걸 어떻게 아냐고."

<사이버레커2/음성변조>
“강아지와 달력으로 돈벌이를 하겠다. 얼마나 뻔뻔한 작자입니까. 유괴 살인마가 어린이와 함께 달력을 만듭니다. 달력 많이 사주세요. 이런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혐오라는 자동차에 이슈를 태워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들.

왜 이러는 걸까.

유명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다 최근 활동을 중단한 한 유튜버를 만났습니다.

<녹취>박민정(가명)(음성변조, 모자이크)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좀 조회수도 올려서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건을 보는 순간에 제가 굉장히 화도 났지만 내가 이런 저런 식으로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다 동조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이게 그냥 인류 역사와 함께 진행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흉보고 싶고 헐뜯고 싶고 그런 게 어느 정도 다 사람들 안에 내재돼 있는데, 굉장히 유명한 그 사람을 누군가가 씹어주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 그냥 사람들은 보는 거예요."

화나는 대상을 함께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뭘까.

<인터뷰>장동선/궁금한뇌연구소 소장,사회인지신경과학 박사
"칭찬을 받을 때, 누가 웃어줄 때, 누가 나를 좋아해줄 때 많이 도파민이 분비가 됩니다. 굳이 돈이나 성적인 것들이나 원초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보상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넘어서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다른 인간의 공감과 이해와 인정 자체가 도파민이 분비되는 데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나랑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이 분노할 때 우리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이 되면서 여기에서 분비되는 쾌락과 기쁨이, 집단 대 집단의 상황이 되거나 부족 대 부족, 또는 우리 집단의 규범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깨뜨리는 다른 집단의 누군가를 봤을 때 공격적이 되기도 하고, 분노해도 된다라는 정당성을 느끼기도 하고, 그리고 분노할 때 쾌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걸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분노와 비난도,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역사 속에서 같은 편에 공감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는 뜻입니다.

취재진은 조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12세기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도시로 번성해온 로텐부르크. ‘붉은 요새’라는 별칭을 뽐내며 700여 년 전 성곽과 건물이 고스란히 보존돼있습니다. 1년에 한 차례, 이 곳에선 중세 풍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중세 시대에서 이어져온 풍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들은 모두 로텐부르크의 실제 주민들.

흥겨운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가 하면 야만과 폭력의 흔적도 눈에 띕니다.

광장에 마련된 법정에서 공개 재판이 열렸습니다.

“로텐부르크의 시민들이여! 오늘 자유도시 로텐부르크의 신성한 법정에서 자유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판결이 있을 것이다.”

이 사내는 빵 무게를 속여 팔았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재판관>
"이 법정에서 당신은 유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형벌은 즉시 집행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인 2명의 말만 일치하면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피고를 구정물에 빠뜨리는 처벌.

<녹취>
“안돼!”
“안돼!”
“더 아래로! 제대로 빠뜨려야지!”
“안돼...”
“형벌이 집행되었다!”

당시 공개 처벌은 축제의 일부였고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당시에는 물이 귀해 오물 냄새를 씻어낼 수 없어 빵 장수는 다시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시 사용된 2만여 점의 고문 도구를 소장한 중세고문박물관.

<녹취>마르쿠스 히르테/로텐부르크 중세 고문박물관장, 역사법학 박사
"이것은 사람의 사지를 늘려 찢는 기구입니다. 심각한 사건의 경우 이렇게 손을 등 뒤로 묶은 다음 팔이 탈골될 때까지 계속 뼈를 꺾었습니다."

밀실 고문보다 흔했던 일은 광장에서 행해진 ‘사회적 처벌’이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에게 씌우는 ‘치욕의 가면’들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여성에게 낙인을 찍도록 하는 가면이죠."
"저 종이 크게 울렸나요?"
"머리 위의 방울이 로텐부르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 사람을 조롱하고 그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죠. 사람들이 몰려와서 처벌받는 사람을 놀리고 비웃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죠."

"이것은 ‘위치 캐쳐’라고 부르는 도구입니다. 마녀사냥에 사용됐죠. 기다란 금속 막대가 보이시죠? 재판장에서 집행장까지 마녀를 데려갈 때 사용한 것인데요. 이 ‘위치 캐쳐’를 ‘레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사탄이나 악마와 내통했다는 죄목이었는데, 있을 수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운 건 결국
대중의 불안과 공포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쁜 일이 발생하면 마녀와 관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쟁이나 전염병, 농사를 망치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마녀의 짓이라고 생각한 거죠. 소수의 사람들이 ‘이 여자가 사악한 주문을 외웠다’고 하면 농사를 망친 사람들이 쉽게 믿게 되는 겁니다."

당시 처형 집행은 마치 옥토버페스트처럼 축제와 다름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는 데 동참했을까요?

"현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녀사냥의 모든 과정과 양상이 21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공포심을 예로 들면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누군가 특정 인물을 향해 혐오표현을 하면 여기에 갑자기 수십 명이 동조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점점 몰아붙이죠."

연구자들은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른 시기가 15세기 이전까지의 암흑기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근대과학의 발견과 예술 각 분야에서 개혁적인 성취가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 당시로선 인류사의 혁신기였던 16세기 전후 200년간 유럽에서 5만 명의 남녀가 마녀사냥으로 희생됐습니다.

"16세기 유럽과 21세기를 비교했을 때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시기 모두 경제,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고 속도도 매우 빨랐죠."

#알고리즘 #중독 #중독경제 #본성 #인공지능 #디지털 #민주주의 #정치 #양극화 #시민 #인터넷 #유튜브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일론_머스크 #트럼프 #빅데이터 #면접조사 #마녀사냥 #실리콘밸리 #노스캐롤라이나 #로텐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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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 그 이름 ‘사이버레커’, 혐오 이슈로 수익을 올리는 자
    • 입력 2023-01-09 07:00:16
    취재K
▲〈시사기획 창 ‘알고리즘 인류, 1부 - 현실을 삼키다’ 中에서〉

<사이버레커1/음성변조>
"최근 결혼상대 찾는 프로에 나오는 페미도 전혀 안그렇게 생긴 사람이 한남견에 제기에 별의 별 남혐단어 쓰고 있었단 걸 어떻게 아냐고."

<사이버레커2/음성변조>
“강아지와 달력으로 돈벌이를 하겠다. 얼마나 뻔뻔한 작자입니까. 유괴 살인마가 어린이와 함께 달력을 만듭니다. 달력 많이 사주세요. 이런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혐오라는 자동차에 이슈를 태워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들.

왜 이러는 걸까.

유명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다 최근 활동을 중단한 한 유튜버를 만났습니다.

<녹취>박민정(가명)(음성변조, 모자이크)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좀 조회수도 올려서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건을 보는 순간에 제가 굉장히 화도 났지만 내가 이런 저런 식으로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다 동조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이게 그냥 인류 역사와 함께 진행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흉보고 싶고 헐뜯고 싶고 그런 게 어느 정도 다 사람들 안에 내재돼 있는데, 굉장히 유명한 그 사람을 누군가가 씹어주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 그냥 사람들은 보는 거예요."

화나는 대상을 함께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뭘까.

<인터뷰>장동선/궁금한뇌연구소 소장,사회인지신경과학 박사
"칭찬을 받을 때, 누가 웃어줄 때, 누가 나를 좋아해줄 때 많이 도파민이 분비가 됩니다. 굳이 돈이나 성적인 것들이나 원초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보상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넘어서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다른 인간의 공감과 이해와 인정 자체가 도파민이 분비되는 데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나랑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이 분노할 때 우리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이 되면서 여기에서 분비되는 쾌락과 기쁨이, 집단 대 집단의 상황이 되거나 부족 대 부족, 또는 우리 집단의 규범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깨뜨리는 다른 집단의 누군가를 봤을 때 공격적이 되기도 하고, 분노해도 된다라는 정당성을 느끼기도 하고, 그리고 분노할 때 쾌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걸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분노와 비난도,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역사 속에서 같은 편에 공감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는 뜻입니다.

취재진은 조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12세기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도시로 번성해온 로텐부르크. ‘붉은 요새’라는 별칭을 뽐내며 700여 년 전 성곽과 건물이 고스란히 보존돼있습니다. 1년에 한 차례, 이 곳에선 중세 풍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중세 시대에서 이어져온 풍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들은 모두 로텐부르크의 실제 주민들.

흥겨운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가 하면 야만과 폭력의 흔적도 눈에 띕니다.

광장에 마련된 법정에서 공개 재판이 열렸습니다.

“로텐부르크의 시민들이여! 오늘 자유도시 로텐부르크의 신성한 법정에서 자유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판결이 있을 것이다.”

이 사내는 빵 무게를 속여 팔았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재판관>
"이 법정에서 당신은 유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형벌은 즉시 집행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인 2명의 말만 일치하면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피고를 구정물에 빠뜨리는 처벌.

<녹취>
“안돼!”
“안돼!”
“더 아래로! 제대로 빠뜨려야지!”
“안돼...”
“형벌이 집행되었다!”

당시 공개 처벌은 축제의 일부였고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당시에는 물이 귀해 오물 냄새를 씻어낼 수 없어 빵 장수는 다시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시 사용된 2만여 점의 고문 도구를 소장한 중세고문박물관.

<녹취>마르쿠스 히르테/로텐부르크 중세 고문박물관장, 역사법학 박사
"이것은 사람의 사지를 늘려 찢는 기구입니다. 심각한 사건의 경우 이렇게 손을 등 뒤로 묶은 다음 팔이 탈골될 때까지 계속 뼈를 꺾었습니다."

밀실 고문보다 흔했던 일은 광장에서 행해진 ‘사회적 처벌’이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에게 씌우는 ‘치욕의 가면’들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여성에게 낙인을 찍도록 하는 가면이죠."
"저 종이 크게 울렸나요?"
"머리 위의 방울이 로텐부르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 사람을 조롱하고 그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죠. 사람들이 몰려와서 처벌받는 사람을 놀리고 비웃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죠."

"이것은 ‘위치 캐쳐’라고 부르는 도구입니다. 마녀사냥에 사용됐죠. 기다란 금속 막대가 보이시죠? 재판장에서 집행장까지 마녀를 데려갈 때 사용한 것인데요. 이 ‘위치 캐쳐’를 ‘레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사탄이나 악마와 내통했다는 죄목이었는데, 있을 수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운 건 결국
대중의 불안과 공포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쁜 일이 발생하면 마녀와 관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쟁이나 전염병, 농사를 망치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마녀의 짓이라고 생각한 거죠. 소수의 사람들이 ‘이 여자가 사악한 주문을 외웠다’고 하면 농사를 망친 사람들이 쉽게 믿게 되는 겁니다."

당시 처형 집행은 마치 옥토버페스트처럼 축제와 다름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는 데 동참했을까요?

"현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녀사냥의 모든 과정과 양상이 21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공포심을 예로 들면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누군가 특정 인물을 향해 혐오표현을 하면 여기에 갑자기 수십 명이 동조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점점 몰아붙이죠."

연구자들은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른 시기가 15세기 이전까지의 암흑기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근대과학의 발견과 예술 각 분야에서 개혁적인 성취가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 당시로선 인류사의 혁신기였던 16세기 전후 200년간 유럽에서 5만 명의 남녀가 마녀사냥으로 희생됐습니다.

"16세기 유럽과 21세기를 비교했을 때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시기 모두 경제,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고 속도도 매우 빨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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