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속도전’…사회적 대화 ‘패싱’하나

입력 2023.01.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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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는 '주52시간제 개편안'의 타임라인이 공개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오늘(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업무보고를 진행하고 근로시간 개편안을 포함한 '노동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입법 예고를 하고 상반기 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인데요. 이번 업무보고에 담긴 쟁점들 살펴보겠습니다.

■ '속전속결' 업무시간 개편…사회적 합의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근로시간 개편입니다. '주52시간'을 유연화하는 내용이 골자인데요. 다섯 달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해 12월 최종 권고안을 낸 바 있습니다.


정부는 이 권고안에 담긴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해 이를 토대로 입법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먼저 현재 '1주'였던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일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연장근로를 한 달에 52시간으로 확대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특정한 주에 일을 몰아서 할 수 있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집니다.

노동계는 이런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주52시간이 정착되기 전 장시간 노동환경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며 줄곧 반발해왔습니다. 정부가 노동자의 휴식권을 위해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연장근로를 적립해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도 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영세한 사업장에선 무용지물이라는 게 노동계의 입장입니다.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정부는 그간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겠다고 말해왔습니다.

지난해 6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정이 함께 모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아 나가는 사회적 대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개혁 과제를 폭넓게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업무보고에 근로시간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어제(8일) 진행한 브리핑에서 "사회적 대화라든지 노사 의견수렴은 당연히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나 합의가 전제돼야 추진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회적 대화나 합의도 중요하겠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논의 시안을 한정해둠으로써 결론을 빨리 내고 가야한다"며 '속전속결'을 강조했습니다.

■ 파견제도·대체근로도 손본다

정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근로자 파견제도'도 손 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법제화하고, 파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파견법은 허용 업종을 32개로, 기간도 최장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적용 업종을 확대하고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급'은 특정 업무를 통째로 별도 업체에 따로 맡기는 방식으로 원청이 지휘·명령을 하지 않지만, '파견'의 경우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지휘·명령을 하고 파견법에 따라 2년 뒤 정규직 전환 의무가 생깁니다.

이에 따라 '도급 계약'으로 위장한 '파견', 즉 '불법 파견'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고,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지시를 받으며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 같은 관행에 대해서 최근에 법원이 '불법 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이 대해 경영계는 산업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면서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바 있습니다.

노동부는 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다른 근로자, 즉 대체 인력을 대신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도입하겠다고 오늘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 "경영계 숙원 민원 처리에 불과"…노동계 반발

업무보고 이후 노동계는 경영계의 요구사항만이 반영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계획에 대해 "연장 노동이 일상인 현실에서 장시간 노동-저임금 체계를 더욱 고착시킬 뿐"이라며 "사용자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노사 자율선택권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파견제도 확대에 대해서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져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라며 "불법파견의 합법화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민주노총 역시 성명을 내고 "정부가 앞장서서 경영계의 오랜 숙원을 민원처리하듯 앞장서고 있다"며 "오늘 발표된 업무계획은 이미 이전 정권부터 쏟아내던 정책의 '재탕'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하는시민연구소 김종진 소장은 "근로시간 연장과 같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과 직결된 의제들에는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더더욱 필요"하다며 "다양한 공청회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논의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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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시간 개편 ‘속도전’…사회적 대화 ‘패싱’하나
    • 입력 2023-01-09 19:43:12
    취재K

정부가 추진하는 '주52시간제 개편안'의 타임라인이 공개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오늘(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업무보고를 진행하고 근로시간 개편안을 포함한 '노동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입법 예고를 하고 상반기 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인데요. 이번 업무보고에 담긴 쟁점들 살펴보겠습니다.

■ '속전속결' 업무시간 개편…사회적 합의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근로시간 개편입니다. '주52시간'을 유연화하는 내용이 골자인데요. 다섯 달간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해 12월 최종 권고안을 낸 바 있습니다.


정부는 이 권고안에 담긴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해 이를 토대로 입법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먼저 현재 '1주'였던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일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연장근로를 한 달에 52시간으로 확대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특정한 주에 일을 몰아서 할 수 있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집니다.

노동계는 이런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주52시간이 정착되기 전 장시간 노동환경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며 줄곧 반발해왔습니다. 정부가 노동자의 휴식권을 위해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연장근로를 적립해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도 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영세한 사업장에선 무용지물이라는 게 노동계의 입장입니다.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정부는 그간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겠다고 말해왔습니다.

지난해 6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정이 함께 모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아 나가는 사회적 대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개혁 과제를 폭넓게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업무보고에 근로시간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어제(8일) 진행한 브리핑에서 "사회적 대화라든지 노사 의견수렴은 당연히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나 합의가 전제돼야 추진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회적 대화나 합의도 중요하겠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논의 시안을 한정해둠으로써 결론을 빨리 내고 가야한다"며 '속전속결'을 강조했습니다.

■ 파견제도·대체근로도 손본다

정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근로자 파견제도'도 손 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법제화하고, 파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파견법은 허용 업종을 32개로, 기간도 최장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적용 업종을 확대하고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급'은 특정 업무를 통째로 별도 업체에 따로 맡기는 방식으로 원청이 지휘·명령을 하지 않지만, '파견'의 경우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지휘·명령을 하고 파견법에 따라 2년 뒤 정규직 전환 의무가 생깁니다.

이에 따라 '도급 계약'으로 위장한 '파견', 즉 '불법 파견'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고,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지시를 받으며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 같은 관행에 대해서 최근에 법원이 '불법 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이 대해 경영계는 산업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면서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바 있습니다.

노동부는 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다른 근로자, 즉 대체 인력을 대신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도입하겠다고 오늘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 "경영계 숙원 민원 처리에 불과"…노동계 반발

업무보고 이후 노동계는 경영계의 요구사항만이 반영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계획에 대해 "연장 노동이 일상인 현실에서 장시간 노동-저임금 체계를 더욱 고착시킬 뿐"이라며 "사용자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노사 자율선택권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파견제도 확대에 대해서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져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라며 "불법파견의 합법화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민주노총 역시 성명을 내고 "정부가 앞장서서 경영계의 오랜 숙원을 민원처리하듯 앞장서고 있다"며 "오늘 발표된 업무계획은 이미 이전 정권부터 쏟아내던 정책의 '재탕'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하는시민연구소 김종진 소장은 "근로시간 연장과 같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과 직결된 의제들에는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더더욱 필요"하다며 "다양한 공청회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논의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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