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욕 성범죄 ‘5년째’ 재판…정부는 “노출 없어 삭제 불가”

입력 2023.01.10 (21:28) 수정 2023.01.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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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상정보를 퍼뜨리고 성폭력을 가하는 '능욕 성범죄' 보도 이어갑니다.

오늘(10일)은 처벌이 무디고, 더딘 문제 짚어봅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재판이 있는가 하면 결론이 나더라도 상당수는 온갖 사유로 감형을 받았습니다.

김혜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사람, 합성을 부탁드립니다".

2017년, 서울의 한 명문대생이 SNS를 통해 학교 친구 10여 명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주소까지 건네며 '음란물과 합성해달라'는 의뢰를 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한순간에 음란사진 주인공이 됐고, 모르는 이들, 심지어 성매매 업주들의 연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명예훼손'과 '음화제조 교사', 즉 음란물 합성을 의뢰했다는, 양형 기준조차 없는 낯선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후 1심은 가해자가 '입대 후 군생활을 성실히 한다', 2심은 '사회적 유대 관계가 분명하다'는 등의 참작 사유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대법원의 최종 결론은 아직도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능욕' 형태의 괴롭힘 범죄가 처음 공론화된 2016년 이후의 판결문 40여 건을 분석해 봤습니다.

'지인 능욕 사진 10장 합성에 5000원'.

초기 범행의 대부분은 사진을 합성해 사고 파는 식이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전 여친 제보, 반응 좋으면 집주소 공개', '초등학생, 길가다 보면 만지고 달아나도 됨'.

이런 식으로 더 많은 정보, 더 악랄한 소개 문구가 유포되고, 거기엔 반드시 성폭력 댓글이 뒤따릅니다.

피해자로선 평생 씻기 힘든 상처.

그런데도 실형 선고 비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감형 사유.

제일 많이 언급된 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그 다음으로는 "초범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등이었습니다.

능욕 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10대와 20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특성 상 나이가 어릴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점을 감형 사유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건은 자꾸만 늘어서 방송통신심의위에 접수된 '영상 삭제' 요청 건수만 해도 3년 동안 7배나 급증했습니다.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안민식/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채상우 서수민

[앵커]

가해자 처벌도 문제지만 유포된 피해자 사진과 개인정보 등이 더 퍼지지 않도록 막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정부와 공공기관 인터넷 플랫폼 모두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어서 황다예 기자입니다.

[리포트]

제자로부터 '능욕 성범죄'를 당한 이 교사는 경찰 신고와 함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찾았습니다.

유포된 게시물 삭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지울 수 있는 조건이 있대요. 조건이 얼마나 음란한지. 단순히 얼굴 사진 이런 거는 지울 수가 없고, 치마 속 사진이라 그러면은 지울 수 있는데 사진 원본을 달라고..."]

해당 기관에 확인해보니, '성적 노출'이 있는 사진에 대해서만 삭제를 지원한단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밖의 얼굴 사진, 신상정보, 성적 모욕글은 대상이 아니란 겁니다.

여성가족부도 '진흥원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결국 당사자들이 직접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교사의 경우에도 '트위터'에 요청해 얼굴 사진을 겨우 지웠습니다.

하지만 '구글' 검색 기록엔 썸네일과 신상정보가 남아 있어 두 번 더 삭제 요청을 해야 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트위터에서) 치마 속 도촬이라고 한 사진만 삭제가 됐고, 얼굴 나온 사진들은 사실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나중에서야 그거는 지워졌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취재진이 직접 신고 절차를 따라가봤습니다.

구글의 신고 페이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었고, 복잡한 신고 양식을 다 채워 제출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또다른 피해자 '현진'(활동명) 씨는 이 절차만 300번 넘게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불법촬영물과 신상정보가 아직까지 구글에 떠돌고 있습니다.

신고를 해도 원천 삭제가 아닌 '검색 차단' 조치만 내려집니다.

또다른 유포 글이 올라오면 다시 신고, 다시 차단시키는 일이 오롯이 피해자 몫으로 남습니다.

현진 씨는 "피해자 신고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구글도 결국은 방관자" 라고 말했습니다.

구글은 "당사자 동의 없는 성적 이미지를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는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황다옙니다.

촬영기자:황종원 안민식/영상편집:안민식/그래픽: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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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욕 성범죄 ‘5년째’ 재판…정부는 “노출 없어 삭제 불가”
    • 입력 2023-01-10 21:28:41
    • 수정2023-01-10 2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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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상정보를 퍼뜨리고 성폭력을 가하는 '능욕 성범죄' 보도 이어갑니다.

오늘(10일)은 처벌이 무디고, 더딘 문제 짚어봅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재판이 있는가 하면 결론이 나더라도 상당수는 온갖 사유로 감형을 받았습니다.

김혜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사람, 합성을 부탁드립니다".

2017년, 서울의 한 명문대생이 SNS를 통해 학교 친구 10여 명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주소까지 건네며 '음란물과 합성해달라'는 의뢰를 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한순간에 음란사진 주인공이 됐고, 모르는 이들, 심지어 성매매 업주들의 연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명예훼손'과 '음화제조 교사', 즉 음란물 합성을 의뢰했다는, 양형 기준조차 없는 낯선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후 1심은 가해자가 '입대 후 군생활을 성실히 한다', 2심은 '사회적 유대 관계가 분명하다'는 등의 참작 사유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대법원의 최종 결론은 아직도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능욕' 형태의 괴롭힘 범죄가 처음 공론화된 2016년 이후의 판결문 40여 건을 분석해 봤습니다.

'지인 능욕 사진 10장 합성에 5000원'.

초기 범행의 대부분은 사진을 합성해 사고 파는 식이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전 여친 제보, 반응 좋으면 집주소 공개', '초등학생, 길가다 보면 만지고 달아나도 됨'.

이런 식으로 더 많은 정보, 더 악랄한 소개 문구가 유포되고, 거기엔 반드시 성폭력 댓글이 뒤따릅니다.

피해자로선 평생 씻기 힘든 상처.

그런데도 실형 선고 비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감형 사유.

제일 많이 언급된 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그 다음으로는 "초범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등이었습니다.

능욕 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10대와 20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특성 상 나이가 어릴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점을 감형 사유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건은 자꾸만 늘어서 방송통신심의위에 접수된 '영상 삭제' 요청 건수만 해도 3년 동안 7배나 급증했습니다.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안민식/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채상우 서수민

[앵커]

가해자 처벌도 문제지만 유포된 피해자 사진과 개인정보 등이 더 퍼지지 않도록 막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정부와 공공기관 인터넷 플랫폼 모두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어서 황다예 기자입니다.

[리포트]

제자로부터 '능욕 성범죄'를 당한 이 교사는 경찰 신고와 함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찾았습니다.

유포된 게시물 삭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지울 수 있는 조건이 있대요. 조건이 얼마나 음란한지. 단순히 얼굴 사진 이런 거는 지울 수가 없고, 치마 속 사진이라 그러면은 지울 수 있는데 사진 원본을 달라고..."]

해당 기관에 확인해보니, '성적 노출'이 있는 사진에 대해서만 삭제를 지원한단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밖의 얼굴 사진, 신상정보, 성적 모욕글은 대상이 아니란 겁니다.

여성가족부도 '진흥원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결국 당사자들이 직접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교사의 경우에도 '트위터'에 요청해 얼굴 사진을 겨우 지웠습니다.

하지만 '구글' 검색 기록엔 썸네일과 신상정보가 남아 있어 두 번 더 삭제 요청을 해야 했습니다.

[반디/교사 피해자/활동명/음성변조 : "(트위터에서) 치마 속 도촬이라고 한 사진만 삭제가 됐고, 얼굴 나온 사진들은 사실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나중에서야 그거는 지워졌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취재진이 직접 신고 절차를 따라가봤습니다.

구글의 신고 페이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었고, 복잡한 신고 양식을 다 채워 제출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또다른 피해자 '현진'(활동명) 씨는 이 절차만 300번 넘게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불법촬영물과 신상정보가 아직까지 구글에 떠돌고 있습니다.

신고를 해도 원천 삭제가 아닌 '검색 차단' 조치만 내려집니다.

또다른 유포 글이 올라오면 다시 신고, 다시 차단시키는 일이 오롯이 피해자 몫으로 남습니다.

현진 씨는 "피해자 신고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구글도 결국은 방관자" 라고 말했습니다.

구글은 "당사자 동의 없는 성적 이미지를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는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황다옙니다.

촬영기자:황종원 안민식/영상편집:안민식/그래픽: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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