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식품 영양정보, 믿고 먹어도 될까

입력 2023.01.11 (08:00) 수정 2023.01.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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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사이트에서 1천만 개 넘게 팔렸다고 홍보한 닭가슴살 소시지의 영양성분이 제품에 표기된 내용과 크게 달라 판매가 전면 금지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식품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유튜버가 해당 제품을 시험기관에 의뢰해 직접 영양성분을 분석해봤더니 탄수화물 함량이 표기된 수치의 8배, 당류와 지방·포화지방은 3~4배가량 많았고 단백질 함량은 오히려 더 적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유튜버의 의혹 제기는 다수의 언론 보도로 이어졌고 논란이 되자 판매 사이트 측은 공지글을 통해 "관리 감독이 부족했다"며 판매 중단을 알렸습니다. 식약처는 이후 해당 제품이 영양성분 표시 규정을 위반해 그에 따른 행정처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공식품 포장지에 표기된 영양성분은 일반 소비자는 물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나 당뇨·고지혈증 환자처럼 평소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는 소비자들에겐 꼭 필요한 구매정보입니다.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영양성분 표시 대상 제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시중에 유통 중인 가공식품의 영양정보 표시 (위 제품은 기사의 내용과 무관)시중에 유통 중인 가공식품의 영양정보 표시 (위 제품은 기사의 내용과 무관)

영양표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식약처가 2021년 시중에 판매 중인 879개 제품을 수거해 영양표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허용오차 범위를 벗어난 제품이 128건으로 전체의 15%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제품의 콜레스테롤 함량이 무려 170배 넘게 차이가 났고 수십 배 이상 차이 나는 제품도 다수였습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제품에는 유명 대기업 상품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온라인 일각에선 가공식품의 영양정보 표시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부적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가 즐겨 먹는 식품의 영양성분이 혹시라도 부풀려져 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가공식품의 영양성분 표시가 어떤 절차에 따라 이뤄지길래 이런 부적합 사례들이 나오는 걸까요?

■ 제조업체가 판매 전 영양성분 분석해 표기

가공식품에 대한 영양표시는 1996년 도입됐습니다. 의무적으로 꼭 표시해야 하는 영양성분은 열량, 탄수화물, 지방 등 9가지입니다. 비타민·무기질류는 업체가 임의로 추가 표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공식품이 해당되는 건 아니고 의무표시 대상 식품에 한해 적용됩니다. 즉석판매 식품이나 원료로 사용되는 식품 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가공식품 제조 및 수입업자는 판매하려는 제품이 영양성분 의무 표시대상이라면 자체 검사를 하거나 식약처가 인증한 검사기관에 의뢰해 분석합니다. 그러니까 행정기관이 나서서 분석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분석은 정부의 '식품공전'에 규정된 방식이나 각종 국제 공인 시험법을 따르는데, 분석 결과를 관련 규정에 따라 제품 포장에 잘 보이도록 표기해 판매하면 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정한 허용오차 범위를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제품에 표기된 값과 실제 측정값의 차이가 20%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권장 영양성분은 '하한선'을 넘겨야 하고, 유해할 수 있는 성분은 '상한선'을 넘지 않게 규정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허용오차 범위를 두는 이유는 식품 원료의 수급 상황이나 계절적 요인, 제품공정의 미세한 차이 등으로 인해 영양성분에 일정량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료: 식약처 ‘영양표시 가이드라인’자료: 식약처 ‘영양표시 가이드라인’

그 대신 정부와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 일부를 수거해 무작위로 검사합니다. 제품에 표기된 영양성분 함량이 정부·지자체가 확인한 것과 허용오차 범위 밖 차이를 보이면 표시기준 위반으로 20만 원에서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표시를 안 하면 최대 영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체에 따라 자체적으로 정기 검사를 실시해 제품의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검사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만큼 대개 영세한 업체보다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되는 업체들이 영양성분 표기 관리를 합니다. 업체에게 판매 중인 제품의 영양성분을 수시로 갱신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그 과정에서 제품에 영양정보 표기가 규정대로 잘 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 수치 검증은 없어, 업체가 제공하는 '시료'가 핵심

그런데 정부가 영양정보의 수치가 맞는지까지 검증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가공식품의 영양성분 표기는 업체의 양심에 맡기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업체의 자가품질조사 방식을 택한 이유는 시중에 판매되는 가공식품의 영양성분을 일일이 다 비교·분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질 겁니다.

업체의 양심이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부분은 영양성분 검사에 사용되는 '시료' 전달에 있습니다. 검사기관은 업체가 보내온 시료를 분석할 뿐 시료의 적절성 여부까지 따져볼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업체는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 같은 완제품 형태의 시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양성분을 더 좋게 조작한 제품(시료)이 건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몇몇 식약처 인증 시험기관들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시료에 대한 별도의 검증 절차는 없었습니다.

"업체에서 분석기관에 어떤 시료를 주든 분석기관은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저희는 받는 시료에 한해서 분석을 해드리는 거니까요."
- A 시험기관 관계자

"솔직히 말해서 의뢰하는 쪽이 시료를 바꿔서 갖고 오면 저희 같은 검사기관은 알 방법이 없죠."
- B 시험기관 관계자

"영양성분 결과는 그래서 '의뢰된 검체에 한한다'라고 단서 조항이 붙어서 나가요. 식약처에서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속이려고 작정하면 속일 수 있어요"
- C 시험기관 관계자

C 시험기관 관계자 말대로 식약처는 영양표시 가이드라인에 '표시 값에 대한 신뢰성은 업체가 책임진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알아서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건데, 정부는 업체가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행정처분을 하는 방식으로 규제합니다.

"영업자 책임 하에 제대로 된 표기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희 규정은 영양 성분을 표시해야 된다, 그 영양성분은 허용오차 범위 이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 관계자

그렇다 보니 업계 일부에선 공공연하게 영양성분 분석 시료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일명 '이중 배합'이라고도 하는데요. 검사 의뢰 시 의도적으로 좋은 배합비로 시료를 만들어서 보내는 거죠. 그러면 영양성분이 좋게 나올 거고 그 내용을 표기한 뒤 실제 제품은 다른 배합비로 만들어서 파는 경우가 있어요. 적발된다고 해도 과태료 몇십만원만 내면 되니까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거죠."
- 전(前) 식품업계 종사자

■ 심증은 있지만 증거는 없어…"조작 사례 희박할 것"

전 식품업계 종사자의 주장대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시료 조작 여부를 밝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두에 언급한 닭가슴살 소시지 사례처럼 영양 표시치와 실제 검사치가 수십 배 이상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라고 해도 그게 '실수'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도적'으로 속인 것인지를 증명해내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료 조작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관련 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된 바도 없습니다. 식약처는 2016년부터 매년 영양표시 실태조사를 통해 허용오차 범위를 초과해 적발된 사례를 집계하는데 조작 여부까지 확인된 건 아닙니다. 영양성분 표시기준을 위반한 경우는 매년 10% 안팎입니다.


다만, 식약처는 물론 유관 기관들도 표시기준 위반 사례가 전체 대비해 많지 않고 이 중 시료를 조작하는 경우는 더 적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부와 지자체, 식품 관련 단체들이 정기·비정기적으로 식품의 영양표시 상태를 조사하는 상황에서 업체가 기업 이미지 악화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양성분을 조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공식품의 영양표시 과정을 들여다보면 일부 악용될 여지가 보이지만 명확히 조사된 바가 없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된 게 아니다 보니 제도 개선에 대한 공감대는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업체들이 정부 표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한번 나쁜 소문이 나면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현실적으로 조작이 쉽지 않다고 봅니다."
- 김원용 부장 / 식품안전정보원 법·규제연구부

"저희도 매년 일정 품목을 정해서 식품의 영양성분 함량을 조사해서 관계 기관에 알리는데요. 지금까지 영양성분 표시 관련해서 민원이 들어온 적은 거의 없어요. 일부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식품 관리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소비자원 관계자

■ 일부 "제도 개선" 목소리, 당장 소비자가 유의할 점은?

그럼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영양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식약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2013년 12월에 내놓은 <식품 영양성분 함량 표시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식품업자가 제공한 영양성분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국가 차원의 여러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식품안전연구원의 김지영 박사는 비슷한 시기에 열린 '가공식품 및 외식 영양성분 표시 개선방안 마련 포럼'에서 "생산업체가 영양성분 분석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고 올바른 영양표시 토착화에 힘써야 한다"면서 "정부는 소비자가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에는 검사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샘플링 검사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크게 주목받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잊을만하면 식품 영양성분의 신뢰성이 도마에 오르는 만큼 향후 제도 개선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장 식품 소비자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여전히 가공식품의 영양정보가 믿을만하기 때문에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제품 구매 시 해당 정보를 꼼꼼히 살피라고 조언합니다. 일부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영양 표시제 자체를 불신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의심스런 정황이 발견될 경우 부정·불량식품 신고 전화 1399(국번 없음, 무료)로 전화해 문의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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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체크K] 식품 영양정보, 믿고 먹어도 될까
    • 입력 2023-01-11 08:00:09
    • 수정2023-01-11 15:08:46
    팩트체크K

최근 유명 사이트에서 1천만 개 넘게 팔렸다고 홍보한 닭가슴살 소시지의 영양성분이 제품에 표기된 내용과 크게 달라 판매가 전면 금지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식품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유튜버가 해당 제품을 시험기관에 의뢰해 직접 영양성분을 분석해봤더니 탄수화물 함량이 표기된 수치의 8배, 당류와 지방·포화지방은 3~4배가량 많았고 단백질 함량은 오히려 더 적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유튜버의 의혹 제기는 다수의 언론 보도로 이어졌고 논란이 되자 판매 사이트 측은 공지글을 통해 "관리 감독이 부족했다"며 판매 중단을 알렸습니다. 식약처는 이후 해당 제품이 영양성분 표시 규정을 위반해 그에 따른 행정처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공식품 포장지에 표기된 영양성분은 일반 소비자는 물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나 당뇨·고지혈증 환자처럼 평소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는 소비자들에겐 꼭 필요한 구매정보입니다.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영양성분 표시 대상 제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시중에 유통 중인 가공식품의 영양정보 표시 (위 제품은 기사의 내용과 무관)
영양표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식약처가 2021년 시중에 판매 중인 879개 제품을 수거해 영양표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허용오차 범위를 벗어난 제품이 128건으로 전체의 15%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제품의 콜레스테롤 함량이 무려 170배 넘게 차이가 났고 수십 배 이상 차이 나는 제품도 다수였습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제품에는 유명 대기업 상품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온라인 일각에선 가공식품의 영양정보 표시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부적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가 즐겨 먹는 식품의 영양성분이 혹시라도 부풀려져 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가공식품의 영양성분 표시가 어떤 절차에 따라 이뤄지길래 이런 부적합 사례들이 나오는 걸까요?

■ 제조업체가 판매 전 영양성분 분석해 표기

가공식품에 대한 영양표시는 1996년 도입됐습니다. 의무적으로 꼭 표시해야 하는 영양성분은 열량, 탄수화물, 지방 등 9가지입니다. 비타민·무기질류는 업체가 임의로 추가 표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공식품이 해당되는 건 아니고 의무표시 대상 식품에 한해 적용됩니다. 즉석판매 식품이나 원료로 사용되는 식품 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가공식품 제조 및 수입업자는 판매하려는 제품이 영양성분 의무 표시대상이라면 자체 검사를 하거나 식약처가 인증한 검사기관에 의뢰해 분석합니다. 그러니까 행정기관이 나서서 분석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분석은 정부의 '식품공전'에 규정된 방식이나 각종 국제 공인 시험법을 따르는데, 분석 결과를 관련 규정에 따라 제품 포장에 잘 보이도록 표기해 판매하면 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정한 허용오차 범위를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제품에 표기된 값과 실제 측정값의 차이가 20%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권장 영양성분은 '하한선'을 넘겨야 하고, 유해할 수 있는 성분은 '상한선'을 넘지 않게 규정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허용오차 범위를 두는 이유는 식품 원료의 수급 상황이나 계절적 요인, 제품공정의 미세한 차이 등으로 인해 영양성분에 일정량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료: 식약처 ‘영양표시 가이드라인’
그 대신 정부와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 일부를 수거해 무작위로 검사합니다. 제품에 표기된 영양성분 함량이 정부·지자체가 확인한 것과 허용오차 범위 밖 차이를 보이면 표시기준 위반으로 20만 원에서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표시를 안 하면 최대 영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체에 따라 자체적으로 정기 검사를 실시해 제품의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검사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만큼 대개 영세한 업체보다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되는 업체들이 영양성분 표기 관리를 합니다. 업체에게 판매 중인 제품의 영양성분을 수시로 갱신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그 과정에서 제품에 영양정보 표기가 규정대로 잘 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 수치 검증은 없어, 업체가 제공하는 '시료'가 핵심

그런데 정부가 영양정보의 수치가 맞는지까지 검증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가공식품의 영양성분 표기는 업체의 양심에 맡기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업체의 자가품질조사 방식을 택한 이유는 시중에 판매되는 가공식품의 영양성분을 일일이 다 비교·분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질 겁니다.

업체의 양심이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부분은 영양성분 검사에 사용되는 '시료' 전달에 있습니다. 검사기관은 업체가 보내온 시료를 분석할 뿐 시료의 적절성 여부까지 따져볼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업체는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 같은 완제품 형태의 시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양성분을 더 좋게 조작한 제품(시료)이 건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몇몇 식약처 인증 시험기관들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시료에 대한 별도의 검증 절차는 없었습니다.

"업체에서 분석기관에 어떤 시료를 주든 분석기관은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저희는 받는 시료에 한해서 분석을 해드리는 거니까요."
- A 시험기관 관계자

"솔직히 말해서 의뢰하는 쪽이 시료를 바꿔서 갖고 오면 저희 같은 검사기관은 알 방법이 없죠."
- B 시험기관 관계자

"영양성분 결과는 그래서 '의뢰된 검체에 한한다'라고 단서 조항이 붙어서 나가요. 식약처에서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속이려고 작정하면 속일 수 있어요"
- C 시험기관 관계자

C 시험기관 관계자 말대로 식약처는 영양표시 가이드라인에 '표시 값에 대한 신뢰성은 업체가 책임진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알아서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건데, 정부는 업체가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행정처분을 하는 방식으로 규제합니다.

"영업자 책임 하에 제대로 된 표기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희 규정은 영양 성분을 표시해야 된다, 그 영양성분은 허용오차 범위 이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 관계자

그렇다 보니 업계 일부에선 공공연하게 영양성분 분석 시료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일명 '이중 배합'이라고도 하는데요. 검사 의뢰 시 의도적으로 좋은 배합비로 시료를 만들어서 보내는 거죠. 그러면 영양성분이 좋게 나올 거고 그 내용을 표기한 뒤 실제 제품은 다른 배합비로 만들어서 파는 경우가 있어요. 적발된다고 해도 과태료 몇십만원만 내면 되니까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거죠."
- 전(前) 식품업계 종사자

■ 심증은 있지만 증거는 없어…"조작 사례 희박할 것"

전 식품업계 종사자의 주장대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시료 조작 여부를 밝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두에 언급한 닭가슴살 소시지 사례처럼 영양 표시치와 실제 검사치가 수십 배 이상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라고 해도 그게 '실수'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도적'으로 속인 것인지를 증명해내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료 조작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관련 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된 바도 없습니다. 식약처는 2016년부터 매년 영양표시 실태조사를 통해 허용오차 범위를 초과해 적발된 사례를 집계하는데 조작 여부까지 확인된 건 아닙니다. 영양성분 표시기준을 위반한 경우는 매년 10% 안팎입니다.


다만, 식약처는 물론 유관 기관들도 표시기준 위반 사례가 전체 대비해 많지 않고 이 중 시료를 조작하는 경우는 더 적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부와 지자체, 식품 관련 단체들이 정기·비정기적으로 식품의 영양표시 상태를 조사하는 상황에서 업체가 기업 이미지 악화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양성분을 조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공식품의 영양표시 과정을 들여다보면 일부 악용될 여지가 보이지만 명확히 조사된 바가 없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된 게 아니다 보니 제도 개선에 대한 공감대는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업체들이 정부 표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한번 나쁜 소문이 나면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현실적으로 조작이 쉽지 않다고 봅니다."
- 김원용 부장 / 식품안전정보원 법·규제연구부

"저희도 매년 일정 품목을 정해서 식품의 영양성분 함량을 조사해서 관계 기관에 알리는데요. 지금까지 영양성분 표시 관련해서 민원이 들어온 적은 거의 없어요. 일부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식품 관리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소비자원 관계자

■ 일부 "제도 개선" 목소리, 당장 소비자가 유의할 점은?

그럼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영양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식약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2013년 12월에 내놓은 <식품 영양성분 함량 표시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식품업자가 제공한 영양성분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국가 차원의 여러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식품안전연구원의 김지영 박사는 비슷한 시기에 열린 '가공식품 및 외식 영양성분 표시 개선방안 마련 포럼'에서 "생산업체가 영양성분 분석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고 올바른 영양표시 토착화에 힘써야 한다"면서 "정부는 소비자가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에는 검사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샘플링 검사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크게 주목받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잊을만하면 식품 영양성분의 신뢰성이 도마에 오르는 만큼 향후 제도 개선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장 식품 소비자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여전히 가공식품의 영양정보가 믿을만하기 때문에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제품 구매 시 해당 정보를 꼼꼼히 살피라고 조언합니다. 일부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영양 표시제 자체를 불신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의심스런 정황이 발견될 경우 부정·불량식품 신고 전화 1399(국번 없음, 무료)로 전화해 문의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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