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바꿔?!” 시장따라 바뀌는 도시 슬로건

입력 2023.01.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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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부산 등, 지자체장 변경되며 도시 슬로건 교체
"선택지에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없나" 불만도
'파워풀 대구'에 17년 된 '파워풀 포항' 변경 추진
전문가 "도시 슬로건은 시민의 것…변경 신중해야"


■ 13년, 8년 만에 또 바뀌는 서울시 슬로건

새해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 슬로건을 변경하고 있습니다. 제1 도시 서울부터 부산, 세종까지 광역지자체는 물론이고 기초지자체까지 들썩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의 여파입니다.

서울시는 8년 만에 새 슬로건을 만들기로 하고, 온라인 투표와 광화문 광장 등에서 시민 선호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미래와 전통이 공존하고,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의 비전"을 담았다는 새 슬로건 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SEOUL for you'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진 서울, 'amazing SEOUL'은 전통,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며 놀이공간으로 가득한 서울, 'SEOUL my soul'은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도시 서울, 'make it happen SEOUL'은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서울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 뉴욕의 'I❤NY'과 독일 베를린의 'Be Berlin'과 같은 도시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과 베를린의 도시 브랜드 캠페인은 각각 1977년과 2008년부터 전개된, 가장 성공한 도시 브랜드 슬로건으로 꼽힙니다.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없나?"…외면하는 시민들

그런데 시민 선호도 조사 인터넷 페이지(https://mvoting.seoul.go.kr/73843)의 댓글창에는 새 슬로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슬로건 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이 보입니다.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선택지에 없느냐고 반문하거나, 슬로건 교체에 따른 예산 낭비를 우려하고, 새 슬로건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투표하러 왔다가 그냥 간다는 의견 등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터넷 페이지를 방문한 조회 수에 비해, 시민 참여도 저조한 상황입니다. 11일 기준으로 이 페이지에는 18만 4천여 명이 접속했는데, 실제 투표한 사람은 1만 1천여 명에 그쳤습니다.

서울 브랜드 슬로건 시민 선호도 조사 인터넷 페이지 댓글에서 재구성서울 브랜드 슬로건 시민 선호도 조사 인터넷 페이지 댓글에서 재구성

서울의 도시 슬로건 선포는 21년 만에 세 번째입니다. 슬로건의 사용 기간은 13년, 8년으로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이명박 시장은 서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서울의 슬로건으로 'Hi Seoul'을 선포하며 도시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여기에 서울의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2006년 'Soul of Asia'를 서브 슬로건으로 추가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2015년 이를 'I.SEOUL.U'로 변경했습니다.

도시 슬로건을 바꿀 때마다 서울시는 기존 슬로건이 서울의 정체성과 비전을 담지 못했다, 이번엔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매번 논란이 일었습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의 영문인데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실제로 슬로건이 바뀌면 상징물 교체는 물론 해외 홍보를 위해 수백억 원의 예산이 새로 투입됩니다.

도시 슬로건이 자주 바뀌다 보니, 도시 브랜드를 활용한 지원사업과 엇박자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우수 중소기업의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는 '하이서울기업인증제'를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이서울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기업이 1천여 곳에 이르는데, 주요 인센티브 중 하나가 서울시의 '하이서울' 인증마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는 '하이서울'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아 기업들이 홍보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졌습니다.

■ 부산·충북·세종도 교체…'파워풀' 가져간 대구 vs '파워풀' 포기한 포항

도시 슬로건을 바꾸는 건 서울시뿐만이 아닙니다. 부산시는 20년간 사용한 'Dynamic Busan'을 바꾸기로 하고 3개 후보에 대해 10일까지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어 전문가로 구성된 도시브랜드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해 내일(13일)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충청북도는 12년간 사용해 온 슬로건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을 바꾸기로 하고, 3,161건의 응모작을 접수해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세종시는 새해부터 '세종이 미래다'를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는 출범 이후 10년간 '세상을 이롭게'를 사용해왔습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해 홍준표 시장이 취임하면서 브랜드 슬로건을 '파워풀 대구'로 바꿨습니다. 섬유도시의 상징성을 담아 2004년부터 사용해 온 'Colorful 대구'가 시의회의 조례 개정과 시민 의견 수렴에 앞서 사라지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2006년부터 '파워풀 포항'을 도시 브랜드로 사용해 온 포항시는 17년 만에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을 찾기로 했습니다.

■ "도시 슬로건은 시민의 것…시장 임기따라 바꿔선 안 돼"

이처럼 10년 넘게 사용해왔지만 교체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모두 전임 시장/도지사 때 선포한 슬로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시 브랜드 전문가는 "각 지자체가 도시 브랜드를 관리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선출된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브랜드 슬로건을 도시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확산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초기에는 시민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철거될 뻔했다가 익숙해지자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것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성공한 슬로건들은 30년 이상 사용한 것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시장이나 도지사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면서 "4년 임기의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 슬로건을 변경하는 것은 목불인견"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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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바꿔?!” 시장따라 바뀌는 도시 슬로건
    • 입력 2023-01-12 07:00:34
    취재K
서울·부산 등, 지자체장 변경되며 도시 슬로건 교체<br /> "선택지에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없나" 불만도<br /> '파워풀 대구'에 17년 된 '파워풀 포항' 변경 추진<br /> 전문가 "도시 슬로건은 시민의 것…변경 신중해야"

■ 13년, 8년 만에 또 바뀌는 서울시 슬로건

새해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 슬로건을 변경하고 있습니다. 제1 도시 서울부터 부산, 세종까지 광역지자체는 물론이고 기초지자체까지 들썩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의 여파입니다.

서울시는 8년 만에 새 슬로건을 만들기로 하고, 온라인 투표와 광화문 광장 등에서 시민 선호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미래와 전통이 공존하고,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의 비전"을 담았다는 새 슬로건 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SEOUL for you'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진 서울, 'amazing SEOUL'은 전통,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며 놀이공간으로 가득한 서울, 'SEOUL my soul'은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도시 서울, 'make it happen SEOUL'은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서울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 뉴욕의 'I❤NY'과 독일 베를린의 'Be Berlin'과 같은 도시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과 베를린의 도시 브랜드 캠페인은 각각 1977년과 2008년부터 전개된, 가장 성공한 도시 브랜드 슬로건으로 꼽힙니다.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없나?"…외면하는 시민들

그런데 시민 선호도 조사 인터넷 페이지(https://mvoting.seoul.go.kr/73843)의 댓글창에는 새 슬로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슬로건 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이 보입니다. '기존 슬로건 유지'는 왜 선택지에 없느냐고 반문하거나, 슬로건 교체에 따른 예산 낭비를 우려하고, 새 슬로건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투표하러 왔다가 그냥 간다는 의견 등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터넷 페이지를 방문한 조회 수에 비해, 시민 참여도 저조한 상황입니다. 11일 기준으로 이 페이지에는 18만 4천여 명이 접속했는데, 실제 투표한 사람은 1만 1천여 명에 그쳤습니다.

서울 브랜드 슬로건 시민 선호도 조사 인터넷 페이지 댓글에서 재구성
서울의 도시 슬로건 선포는 21년 만에 세 번째입니다. 슬로건의 사용 기간은 13년, 8년으로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이명박 시장은 서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서울의 슬로건으로 'Hi Seoul'을 선포하며 도시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여기에 서울의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2006년 'Soul of Asia'를 서브 슬로건으로 추가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2015년 이를 'I.SEOUL.U'로 변경했습니다.

도시 슬로건을 바꿀 때마다 서울시는 기존 슬로건이 서울의 정체성과 비전을 담지 못했다, 이번엔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매번 논란이 일었습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의 영문인데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실제로 슬로건이 바뀌면 상징물 교체는 물론 해외 홍보를 위해 수백억 원의 예산이 새로 투입됩니다.

도시 슬로건이 자주 바뀌다 보니, 도시 브랜드를 활용한 지원사업과 엇박자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우수 중소기업의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는 '하이서울기업인증제'를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이서울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기업이 1천여 곳에 이르는데, 주요 인센티브 중 하나가 서울시의 '하이서울' 인증마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는 '하이서울'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아 기업들이 홍보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졌습니다.

■ 부산·충북·세종도 교체…'파워풀' 가져간 대구 vs '파워풀' 포기한 포항

도시 슬로건을 바꾸는 건 서울시뿐만이 아닙니다. 부산시는 20년간 사용한 'Dynamic Busan'을 바꾸기로 하고 3개 후보에 대해 10일까지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어 전문가로 구성된 도시브랜드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해 내일(13일)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충청북도는 12년간 사용해 온 슬로건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을 바꾸기로 하고, 3,161건의 응모작을 접수해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세종시는 새해부터 '세종이 미래다'를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는 출범 이후 10년간 '세상을 이롭게'를 사용해왔습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해 홍준표 시장이 취임하면서 브랜드 슬로건을 '파워풀 대구'로 바꿨습니다. 섬유도시의 상징성을 담아 2004년부터 사용해 온 'Colorful 대구'가 시의회의 조례 개정과 시민 의견 수렴에 앞서 사라지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2006년부터 '파워풀 포항'을 도시 브랜드로 사용해 온 포항시는 17년 만에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을 찾기로 했습니다.

■ "도시 슬로건은 시민의 것…시장 임기따라 바꿔선 안 돼"

이처럼 10년 넘게 사용해왔지만 교체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모두 전임 시장/도지사 때 선포한 슬로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시 브랜드 전문가는 "각 지자체가 도시 브랜드를 관리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선출된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브랜드 슬로건을 도시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확산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초기에는 시민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철거될 뻔했다가 익숙해지자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것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성공한 슬로건들은 30년 이상 사용한 것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시장이나 도지사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면서 "4년 임기의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 슬로건을 변경하는 것은 목불인견"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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