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김성태 골프장 체포사건’에 숨은 그림들

입력 2023.01.14 (08:00) 수정 2023.01.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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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잔밑이 어둡다고. 김성태 전 회장은 방콕의 한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미얀마 접경 매홍손이나 치앙라이의 한 무반(태국식 단독주택)에 숨어 있을거라 생각했다. 김 전회장이 검거된 P골프장은 클럽하우스 메뉴에 설렁탕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은신처도 방콕 시내 한복판이였다. 태국 이민국 경찰은 "지난 12월 초 쌍방울 김 모 자금본부장(김 전 회장의 매제)을 파타야에서 체포했을 당시 김 전회장 일행은 방콕 에까마이에 있었는데, 체포 직후 거처를 수쿰윗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도심 한복판 아파트를 옮겨다니면서 한국 식당을 찾고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검찰도 등잔밑이 어두웠다. 지난해 5월, 이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수사관이 수사내용을 고스란히 쌍방울에 알려줬고, 그 직후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로 떠났다. 검사장과 차장급 검사 선배들은 10명 가까이 쌍방울에서 변호사나 사외이사로 일하고, 현직 수사관은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전해준다. 여기서부터 벌써 '무간도'다.

2.
검찰이 잡았을까? 사실은 경찰이 잡았다. 우리 경찰청에서 파견온 경찰주재관이 김 전회장이 자주 만난다는 몇몇 교민의 휴대폰 번호를 태국 경찰에 넘겨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의 GPS를 추적했고, 추적 7일만에 그 교민들 중 한 명이 태국 경찰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 P골프장이였다.

그런데 쏟아지는 관련 기사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검찰이 일부 출입기자들에게만 내용을 알려주면서 이 사건 어디에도 경찰은 없다.

 모 신문 독자라는 관광객이 김 전회장 일행이 체포된 직후 촬영해 제보한 사진. 골프장에 있던 관광객이 어떻게 10여 명의 태국 이민경찰 사이에서 해당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모 신문 독자라는 관광객이 김 전회장 일행이 체포된 직후 촬영해 제보한 사진. 골프장에 있던 관광객이 어떻게 10여 명의 태국 이민경찰 사이에서 해당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3.
체포과정 일련의 비밀스런 수사내용들은 온갖 기사에 다 노출된다. 김 전회장에게 공수됐다는 고등어에서 김 전 회장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머물게 되는 구치소까지 조목조목 내용을 다 안다 (사실 체포직후 김 전 회장은 방콕 돈무앙 공항 인근 방켄 불법체류자 구금시설에 있었다) 기자들은 어디서 이런 수사 내용을 들었을까?

이른바 법조출입기자단이다 (김만배도 이름난 법조기자였고 김만배와 억 대의 돈을 거래했다는 기자들도 다 과거 법조기자들이다). 법조출입기자들은 변협이나 법원보다 대부분 검찰(대검과 고검)에 몰려있다. 거기 상주한다. 정보가 없다보니 검찰이 조용히 불러준 내용을 줄줄이 정리해 낱낱이 보도한다. '우리 검찰이 잘 잡았어요!' 보도를 경쟁적으로 하다보니 심지어 '검찰총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이라는 보도까지 등장했다(서울신문).

소설같은 기사도 쏟아진다. 김 전 회장을 지키기위해 '기관총을 든 무장 경호원'이 있었다는 기사도 나왔다(기자들이 무간도 같은 영화를 너무 본다). 태국 경찰에 문의했더니 "무장경호원이 아니라 경호원도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체포 당시 수십억 규모의 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mbn 등). 태국 이민국 경찰과 한국대사관 경찰 주재관은 당시 거액의 현금은 없었다고 확인해줬다. 방켄 불법 체류자 임시구금소에 확인했더니 현재 압수된 현금은 1만 2천 달러(1천 5백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4.
이 수많은 법조기자들의 보도들이 네이버창에 중복돼 노출되면 혐의와 죄목과 진실의 간격이 좁아진다. 아직 기소도 안됐는데 이미 유무죄 윤곽이 나온다. 검찰이 체포하면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송치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기소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구형하면서 기사가 나간다. 법원의 선고보다 구형기사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법조기자들이 정보를 주로 검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죄형법정주의'를 한다면서 사실은 '죄형보도주의'를 한다. 범죄와 형벌이 법으로 정해진게 아니라, 수많은 보도가 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이미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범죄사실이 판결문처럼 자리를 잡는다.

5.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제 상수는 '전환사채'다. 나머지 수많은 혐의들은 허수다. 쌍방울은 한번 발행했다가 조기상환한 전환사채(CB)를 갑자기 제3자에게 되팔았다. 전환사채는 원하면 돈 대신 주식으로 받을 수 있다. 이무렵 쌍방울 주가는 급등해 있었다. 갑자기 이 전환사채를 사들인 제 3자는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다. 쉽게 말해 제 3자에게 그냥 돈을 준 셈이다. 그 돈이 당시 이재명지사를 변호한 변호사들의 변호사비로 전달됐는지가 관건이다.

김성태 전 회장은 다음주 화요일쯤 한국으로 들어간다. 우리 국적기에 타는 순간 체포영장이 발효된다. 그가 이 대표 관련 의혹을 즉시 인정할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아도 검찰이 밝힐 수도 있다. 검찰이 곧 김 전대표를 구속하고, 기소하고, 구형하고나면 그때마다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쪽에서 정교하게 정리된 주장을 주로 만나게된다.

정작 가장 중요한 법원의 '선고'는 한참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내년 4월 10일에는 총선이 열린다. 그 전에 대법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는 법조인은 한 명도 없다. 그때까지 그림은 검찰이 그린다. 그 결과를 기자들이 친절하게 전해줄 것이다. 그 사이 우리의 '죄형보도주의'는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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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김성태 골프장 체포사건’에 숨은 그림들
    • 입력 2023-01-14 08:00:45
    • 수정2023-01-14 17:36:42
    특파원 리포트

1.
등잔밑이 어둡다고. 김성태 전 회장은 방콕의 한 유명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미얀마 접경 매홍손이나 치앙라이의 한 무반(태국식 단독주택)에 숨어 있을거라 생각했다. 김 전회장이 검거된 P골프장은 클럽하우스 메뉴에 설렁탕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은신처도 방콕 시내 한복판이였다. 태국 이민국 경찰은 "지난 12월 초 쌍방울 김 모 자금본부장(김 전 회장의 매제)을 파타야에서 체포했을 당시 김 전회장 일행은 방콕 에까마이에 있었는데, 체포 직후 거처를 수쿰윗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도심 한복판 아파트를 옮겨다니면서 한국 식당을 찾고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검찰도 등잔밑이 어두웠다. 지난해 5월, 이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수사관이 수사내용을 고스란히 쌍방울에 알려줬고, 그 직후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로 떠났다. 검사장과 차장급 검사 선배들은 10명 가까이 쌍방울에서 변호사나 사외이사로 일하고, 현직 수사관은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전해준다. 여기서부터 벌써 '무간도'다.

2.
검찰이 잡았을까? 사실은 경찰이 잡았다. 우리 경찰청에서 파견온 경찰주재관이 김 전회장이 자주 만난다는 몇몇 교민의 휴대폰 번호를 태국 경찰에 넘겨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의 GPS를 추적했고, 추적 7일만에 그 교민들 중 한 명이 태국 경찰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 P골프장이였다.

그런데 쏟아지는 관련 기사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검찰이 일부 출입기자들에게만 내용을 알려주면서 이 사건 어디에도 경찰은 없다.

 모 신문 독자라는 관광객이 김 전회장 일행이 체포된 직후 촬영해 제보한 사진. 골프장에 있던 관광객이 어떻게 10여 명의 태국 이민경찰 사이에서 해당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3.
체포과정 일련의 비밀스런 수사내용들은 온갖 기사에 다 노출된다. 김 전회장에게 공수됐다는 고등어에서 김 전 회장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머물게 되는 구치소까지 조목조목 내용을 다 안다 (사실 체포직후 김 전 회장은 방콕 돈무앙 공항 인근 방켄 불법체류자 구금시설에 있었다) 기자들은 어디서 이런 수사 내용을 들었을까?

이른바 법조출입기자단이다 (김만배도 이름난 법조기자였고 김만배와 억 대의 돈을 거래했다는 기자들도 다 과거 법조기자들이다). 법조출입기자들은 변협이나 법원보다 대부분 검찰(대검과 고검)에 몰려있다. 거기 상주한다. 정보가 없다보니 검찰이 조용히 불러준 내용을 줄줄이 정리해 낱낱이 보도한다. '우리 검찰이 잘 잡았어요!' 보도를 경쟁적으로 하다보니 심지어 '검찰총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이라는 보도까지 등장했다(서울신문).

소설같은 기사도 쏟아진다. 김 전 회장을 지키기위해 '기관총을 든 무장 경호원'이 있었다는 기사도 나왔다(기자들이 무간도 같은 영화를 너무 본다). 태국 경찰에 문의했더니 "무장경호원이 아니라 경호원도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체포 당시 수십억 규모의 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mbn 등). 태국 이민국 경찰과 한국대사관 경찰 주재관은 당시 거액의 현금은 없었다고 확인해줬다. 방켄 불법 체류자 임시구금소에 확인했더니 현재 압수된 현금은 1만 2천 달러(1천 5백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4.
이 수많은 법조기자들의 보도들이 네이버창에 중복돼 노출되면 혐의와 죄목과 진실의 간격이 좁아진다. 아직 기소도 안됐는데 이미 유무죄 윤곽이 나온다. 검찰이 체포하면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송치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기소하면서 기사가 나가고, 검찰이 구형하면서 기사가 나간다. 법원의 선고보다 구형기사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법조기자들이 정보를 주로 검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죄형법정주의'를 한다면서 사실은 '죄형보도주의'를 한다. 범죄와 형벌이 법으로 정해진게 아니라, 수많은 보도가 한 방향으로 나가면서 이미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범죄사실이 판결문처럼 자리를 잡는다.

5.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제 상수는 '전환사채'다. 나머지 수많은 혐의들은 허수다. 쌍방울은 한번 발행했다가 조기상환한 전환사채(CB)를 갑자기 제3자에게 되팔았다. 전환사채는 원하면 돈 대신 주식으로 받을 수 있다. 이무렵 쌍방울 주가는 급등해 있었다. 갑자기 이 전환사채를 사들인 제 3자는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다. 쉽게 말해 제 3자에게 그냥 돈을 준 셈이다. 그 돈이 당시 이재명지사를 변호한 변호사들의 변호사비로 전달됐는지가 관건이다.

김성태 전 회장은 다음주 화요일쯤 한국으로 들어간다. 우리 국적기에 타는 순간 체포영장이 발효된다. 그가 이 대표 관련 의혹을 즉시 인정할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아도 검찰이 밝힐 수도 있다. 검찰이 곧 김 전대표를 구속하고, 기소하고, 구형하고나면 그때마다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쪽에서 정교하게 정리된 주장을 주로 만나게된다.

정작 가장 중요한 법원의 '선고'는 한참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내년 4월 10일에는 총선이 열린다. 그 전에 대법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는 법조인은 한 명도 없다. 그때까지 그림은 검찰이 그린다. 그 결과를 기자들이 친절하게 전해줄 것이다. 그 사이 우리의 '죄형보도주의'는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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