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떡 사장님의 설맞이 준비

입력 2023.01.14 (08:27) 수정 2023.01.1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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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과 북으로 갈라서 있어도 한민족이기에, 남북은 음식도 그렇고 명절도 그렇고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게 많은데요.

마침 설도 다가오고 하니 오늘은 ‘떡’, 북한 떡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네, 북한에도 우리네 같은 송편이나 인절미도 있지만요.

우리가 쉽게 들어보지 못한, 이름조차 생소한 떡도 많다고 하는데요.

이하영 리포터가 이번에 북한 떡들 맛보고 오셨다고요?

[답변]

네,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떡과 인연이 깊었던 탈북민 이순실 씨가 만든 북한 떡을 맛보고 왔는데요.

기계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일일이 만들다보니 북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었고요.

또 이순실 씨의 삶도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이순실 씨가 여기에 와서 떡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답변]

네, 남쪽에 와서 다른 일들도 하셨지만, 지금은 떡 만드는 일만 하고 계신데요.

그런데 두 분은 북한 떡 드셔보신 적 있나요?

네, 저도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요.

이순실 씨는 두 분처럼, 북한 떡에 생소하신 분들게 북한식 떡 맛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반응도 좋고,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성공하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는데요.

떡과 함께 살아온 이순실 씨의 인생 이야기, 지금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이 ‘오화떡’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색깔이 들어가는 거예요. 치자가루, 쑥 가루, 호박가루. 다 우리가 자연에서 나오는 색이잖아요. 이걸 떡에다 색 다섯 개를 넣으면서 오복이라고 해요."]

["(‘오화떡’을) 완성했습니다!"]

오늘도 북녘 떡을 널리, 더 많이 맛보게 하고 싶다는 순실 씨.

코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을 맞아 솜씨를 발휘하며 직접 떡을 만듭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안녕하세요, 쌀가루 빻으러 왔습니다. 우리 명절 떡 해먹을라고."]

3년 전부터 떡 공장을 운영하면서 북한 떡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북에선 흔한 옥수수가루로 옥시말랑떡, 콩 쑥개떡 등 개성지역 떡을 만들었고, 억대의 월 매출을 기록하며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상인 : "와~ 순실 누나다! 반갑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안녕하세요."]

[상인 : "(이순실 씨 왜 좋아하세요?) 아유~ 좋죠. 예쁘잖아요."]

[이순실/탈북민/56세 : "나 이런 여자야!"]

특히 어르신들이 순실 씨의 개성식 떡을 많이들 찾으면서 60대 이상으로 이뤄진 팬클럽까지 생겼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장보기는 마쳤고, 다시 방앗간에 들러 쌀가루를 찾는 것으로 떡을 만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저희가 이렇게 재료를 다 구매했습니다.) 와~ 많이 많이 샀습니다! (뭘 위해서죠 선생님?) 북한에서는요, 명절 때 떡을 해 먹는데 오늘 북한에서 먹던 떡을 고대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선생님, 저도 떡 정말 좋아하는데 북한 떡 꼭 맛보고 싶거든요?) 그래요? 우리 집에 갈까요? 갑시다!"]

먼저, 밥을 절구에 넣고 찧어 반죽해 우둘투둘한 촉감이 그대로 남아있는 ‘밥알떡’을 만들기로 했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전깃불이 없으니까 다 손망(맷돌)에 절구에 먹고 살아요 다. 그러니까 집집마다 숟가락 젓가락이 있듯이 북한에도 절구가 다 있어. 손절구라 하거든 쇠절구."]

떡 반죽이 끝나면 삶은 콩과 소금, 설탕이 귀한 북한에서 대신 쓰는 사카린을 넣고 또 절구질을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이제 찧은 거 콩을 싹 올릴 거예요, 이렇게. 자, 가위로 이렇게 집어서 가위로 이렇게 뚝뚝 잘라요. 잘라서 이렇게 묻힐 거예요. 한 번 먹어 봐."]

부드러운 떡 반죽에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 같죠.

["그냥 이렇게 슥슥 해서 주셨는데 너무 맛있는데요."]

이번엔 끝부분이 꼬리처럼 삐져나온 ‘꼬리떡’인데요.

쑥 가루 하나로 맛을 낸다고 합니다.

손바닥으로 떡을 지그시 누른 뒤 젓가락으로 나뭇잎 모양을 내주면 끝!

[이순실/탈북민/56세 : "(선생님 어때요, 제가 만든 거?) 잘했어요. 내가 우리 엄마한테 떡을 배우면서 받은 칭찬 고대로 해줄게요. 잘했어~ 우리 딸 잘했어~ 이렇게!"]

순실 씨의 떡 인생은 외가에서 시작하는데요.

외할머니가 개성의 떡 명인이셨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할머니가 항상 요리사를 하면서 은퇴하시고도 나이가 돼서 은퇴하시고도 개성에서 진행되는 국가 행사에 떡을 다 할머니가 만들었어요."]

어머니도 외할머니처럼 음식 솜씨가 빼어나, 개성 지역 최전방 군부대의 요리사로 일하셨다고 합니다.

풍족한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1990년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려워진 살림에 부모님까지 사고로 잃고 20대 나이에 꽃제비가 된 순실 씨는 탈북을 결심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4일 굶은 건 아무것도 아냐.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점점 맥은 없고 축 늘어지고 잠만 자고 졸리기만 하고 아무 데나 앉으면 해 양지쪽에 앉으면 그냥 자고 있어. 그러다 고꾸라지면 그냥 죽는 거지."]

중국으로 도망쳤지만 여덟 번 북송됐고, 마지막 아홉 번째 탈북 땐 중국 인신매매단에게 세 살배기 딸을 빼앗기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혼자서 엉엉 울면서 어디 있니. 중국에 있으면 엄마 목소리 들으면 어딘가 튀어나올 거 같기도 해서 압록강에 서서 중국 쪽에다 대고 충단아, 충단아, 하고 불러도 보고."]

딸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이제는 평생의 한으로 남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그 애가 머리에 정수리에 머리가 빠져 있고 여기 (목 뒤에) 몽고점이 있었고 눈이 컸었고 머리가 갈색이었고 사람들한테 항상 이걸 얘기해주지. 찾고 싶어서."]

순실 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2007년, 정착 과정에서 알게 된 남편을 만나 함께 식당 등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2020년 떡 사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한국에 와서 젤 큰 선물이 우리 남편이야. 우리 남편 없으면 어떻게 살았나 싶어. 우리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 가면 나 어떻게 살까 하고 눈물이 줄줄 흘러."]

이렇게 북한의 명절 떡을 함께 만들어 봤는데요.

우리는 새해에 떡국을 먹지만 북한에선 만둣국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추억도 나누기 위해 특별한 손님이 순실 씨를 찾아 왔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오~ 누구 왔니? 진희 왔어? 어이구,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7년 전 모 방송에서 만나 나이를 뛰어넘어 여전히 언니동생 하는 양진희 씨에게 떡과 명절 음식을 주기 위해 초대한 겁니다.

설날에 북한에선 만둣국을 많이 찾는데요.

북한에선 먹을 게 부족해 양파로 맒은 국물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계란 풀어도 뽀얗지 않고 맑아요. (북한에선 이렇게 투명하게 해 먹어요?) 우리가 먹던 맛 그대로 했어요."]

명절날 이렇게 만둣국을 먹을 때면 절로 떠오르는 고향 생각.

[이순실/탈북민/56세 : "지금도 만둣국을 먹으면 엄마하고 고향에서 그냥 명절 전엔 만두 빚는 게 일이잖아 집집마다. 영실아 놀자 하고 찾아가면 만두 빚어 못 놀아."]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준비하며 동네가 떠들썩했다는데요.

한편으론, 여전히 배부르게 먹지 못할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북한에서는 지금 명절에도 다 어렵게 살거든. 고향 생각이 나고 항상 옆구리가 시려. 항상 한구석엔 고향이 있으니까."]

늘 고향을 생각하며 떡을 만든다는 순실 씨의 2023년 소망은 뭘까요?

[이순실/탈북민/56세 : "내가 한국에 온지 15년 됐어요. 15년 동안 기다린 게 뭐겠어요. 만남이에요. 통일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빨리 만났으면 좋겠고 빨리 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오면 북한에 떡 공장을 내고 한국에서 이런 떡을 만들어 먹었다며 북녘 주민들에게도 그 맛을 소개하는 것, 그래서 분단된 마음을 하나로 잇는 것, 새해마다 떠올리는 순실 씨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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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떡 사장님의 설맞이 준비
    • 입력 2023-01-14 08:27:49
    • 수정2023-01-14 09: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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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과 북으로 갈라서 있어도 한민족이기에, 남북은 음식도 그렇고 명절도 그렇고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게 많은데요.

마침 설도 다가오고 하니 오늘은 ‘떡’, 북한 떡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네, 북한에도 우리네 같은 송편이나 인절미도 있지만요.

우리가 쉽게 들어보지 못한, 이름조차 생소한 떡도 많다고 하는데요.

이하영 리포터가 이번에 북한 떡들 맛보고 오셨다고요?

[답변]

네,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떡과 인연이 깊었던 탈북민 이순실 씨가 만든 북한 떡을 맛보고 왔는데요.

기계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일일이 만들다보니 북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었고요.

또 이순실 씨의 삶도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이순실 씨가 여기에 와서 떡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답변]

네, 남쪽에 와서 다른 일들도 하셨지만, 지금은 떡 만드는 일만 하고 계신데요.

그런데 두 분은 북한 떡 드셔보신 적 있나요?

네, 저도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요.

이순실 씨는 두 분처럼, 북한 떡에 생소하신 분들게 북한식 떡 맛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반응도 좋고,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성공하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는데요.

떡과 함께 살아온 이순실 씨의 인생 이야기, 지금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이 ‘오화떡’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색깔이 들어가는 거예요. 치자가루, 쑥 가루, 호박가루. 다 우리가 자연에서 나오는 색이잖아요. 이걸 떡에다 색 다섯 개를 넣으면서 오복이라고 해요."]

["(‘오화떡’을) 완성했습니다!"]

오늘도 북녘 떡을 널리, 더 많이 맛보게 하고 싶다는 순실 씨.

코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을 맞아 솜씨를 발휘하며 직접 떡을 만듭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안녕하세요, 쌀가루 빻으러 왔습니다. 우리 명절 떡 해먹을라고."]

3년 전부터 떡 공장을 운영하면서 북한 떡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북에선 흔한 옥수수가루로 옥시말랑떡, 콩 쑥개떡 등 개성지역 떡을 만들었고, 억대의 월 매출을 기록하며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상인 : "와~ 순실 누나다! 반갑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안녕하세요."]

[상인 : "(이순실 씨 왜 좋아하세요?) 아유~ 좋죠. 예쁘잖아요."]

[이순실/탈북민/56세 : "나 이런 여자야!"]

특히 어르신들이 순실 씨의 개성식 떡을 많이들 찾으면서 60대 이상으로 이뤄진 팬클럽까지 생겼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장보기는 마쳤고, 다시 방앗간에 들러 쌀가루를 찾는 것으로 떡을 만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저희가 이렇게 재료를 다 구매했습니다.) 와~ 많이 많이 샀습니다! (뭘 위해서죠 선생님?) 북한에서는요, 명절 때 떡을 해 먹는데 오늘 북한에서 먹던 떡을 고대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선생님, 저도 떡 정말 좋아하는데 북한 떡 꼭 맛보고 싶거든요?) 그래요? 우리 집에 갈까요? 갑시다!"]

먼저, 밥을 절구에 넣고 찧어 반죽해 우둘투둘한 촉감이 그대로 남아있는 ‘밥알떡’을 만들기로 했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전깃불이 없으니까 다 손망(맷돌)에 절구에 먹고 살아요 다. 그러니까 집집마다 숟가락 젓가락이 있듯이 북한에도 절구가 다 있어. 손절구라 하거든 쇠절구."]

떡 반죽이 끝나면 삶은 콩과 소금, 설탕이 귀한 북한에서 대신 쓰는 사카린을 넣고 또 절구질을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이제 찧은 거 콩을 싹 올릴 거예요, 이렇게. 자, 가위로 이렇게 집어서 가위로 이렇게 뚝뚝 잘라요. 잘라서 이렇게 묻힐 거예요. 한 번 먹어 봐."]

부드러운 떡 반죽에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 같죠.

["그냥 이렇게 슥슥 해서 주셨는데 너무 맛있는데요."]

이번엔 끝부분이 꼬리처럼 삐져나온 ‘꼬리떡’인데요.

쑥 가루 하나로 맛을 낸다고 합니다.

손바닥으로 떡을 지그시 누른 뒤 젓가락으로 나뭇잎 모양을 내주면 끝!

[이순실/탈북민/56세 : "(선생님 어때요, 제가 만든 거?) 잘했어요. 내가 우리 엄마한테 떡을 배우면서 받은 칭찬 고대로 해줄게요. 잘했어~ 우리 딸 잘했어~ 이렇게!"]

순실 씨의 떡 인생은 외가에서 시작하는데요.

외할머니가 개성의 떡 명인이셨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할머니가 항상 요리사를 하면서 은퇴하시고도 나이가 돼서 은퇴하시고도 개성에서 진행되는 국가 행사에 떡을 다 할머니가 만들었어요."]

어머니도 외할머니처럼 음식 솜씨가 빼어나, 개성 지역 최전방 군부대의 요리사로 일하셨다고 합니다.

풍족한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1990년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려워진 살림에 부모님까지 사고로 잃고 20대 나이에 꽃제비가 된 순실 씨는 탈북을 결심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4일 굶은 건 아무것도 아냐.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점점 맥은 없고 축 늘어지고 잠만 자고 졸리기만 하고 아무 데나 앉으면 해 양지쪽에 앉으면 그냥 자고 있어. 그러다 고꾸라지면 그냥 죽는 거지."]

중국으로 도망쳤지만 여덟 번 북송됐고, 마지막 아홉 번째 탈북 땐 중국 인신매매단에게 세 살배기 딸을 빼앗기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혼자서 엉엉 울면서 어디 있니. 중국에 있으면 엄마 목소리 들으면 어딘가 튀어나올 거 같기도 해서 압록강에 서서 중국 쪽에다 대고 충단아, 충단아, 하고 불러도 보고."]

딸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이제는 평생의 한으로 남았는데요.

[이순실/탈북민/56세 : "그 애가 머리에 정수리에 머리가 빠져 있고 여기 (목 뒤에) 몽고점이 있었고 눈이 컸었고 머리가 갈색이었고 사람들한테 항상 이걸 얘기해주지. 찾고 싶어서."]

순실 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2007년, 정착 과정에서 알게 된 남편을 만나 함께 식당 등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2020년 떡 사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한국에 와서 젤 큰 선물이 우리 남편이야. 우리 남편 없으면 어떻게 살았나 싶어. 우리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 가면 나 어떻게 살까 하고 눈물이 줄줄 흘러."]

이렇게 북한의 명절 떡을 함께 만들어 봤는데요.

우리는 새해에 떡국을 먹지만 북한에선 만둣국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추억도 나누기 위해 특별한 손님이 순실 씨를 찾아 왔습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오~ 누구 왔니? 진희 왔어? 어이구,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7년 전 모 방송에서 만나 나이를 뛰어넘어 여전히 언니동생 하는 양진희 씨에게 떡과 명절 음식을 주기 위해 초대한 겁니다.

설날에 북한에선 만둣국을 많이 찾는데요.

북한에선 먹을 게 부족해 양파로 맒은 국물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계란 풀어도 뽀얗지 않고 맑아요. (북한에선 이렇게 투명하게 해 먹어요?) 우리가 먹던 맛 그대로 했어요."]

명절날 이렇게 만둣국을 먹을 때면 절로 떠오르는 고향 생각.

[이순실/탈북민/56세 : "지금도 만둣국을 먹으면 엄마하고 고향에서 그냥 명절 전엔 만두 빚는 게 일이잖아 집집마다. 영실아 놀자 하고 찾아가면 만두 빚어 못 놀아."]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준비하며 동네가 떠들썩했다는데요.

한편으론, 여전히 배부르게 먹지 못할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순실/탈북민/56세 : "북한에서는 지금 명절에도 다 어렵게 살거든. 고향 생각이 나고 항상 옆구리가 시려. 항상 한구석엔 고향이 있으니까."]

늘 고향을 생각하며 떡을 만든다는 순실 씨의 2023년 소망은 뭘까요?

[이순실/탈북민/56세 : "내가 한국에 온지 15년 됐어요. 15년 동안 기다린 게 뭐겠어요. 만남이에요. 통일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빨리 만났으면 좋겠고 빨리 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오면 북한에 떡 공장을 내고 한국에서 이런 떡을 만들어 먹었다며 북녘 주민들에게도 그 맛을 소개하는 것, 그래서 분단된 마음을 하나로 잇는 것, 새해마다 떠올리는 순실 씨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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