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보다 막강하다”…감사원 ‘포렌식’ 제한될까?

입력 2023.01.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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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박범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발의한 감사원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 169명이 서명했다. 당초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명한 견해 차이 때문에 법사위 상정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검사정원법'이 필요했던 여당과 '감사원법 개정안'이 필요했던 야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극적으로 법사위 상정에 성공했다.

법사위에 상정된 감사원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발의)의 큰 골격은 '감사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내부 감찰 강화', '디지털 포렌식 제한과 피감 대상 반론권 강화'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디지털 포렌식 등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 검찰보다 쉬운 감사원 포렌식…규정까지 개정

디지털 포렌식이 핵심 감사 수단으로 자리 잡은 건 최근 들어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검찰 수사에서는 일찌감치 디지털 자료 복구가 수사 성패의 관건이 됐지만, 공공기관 감찰 업무에서 삭제한 자료를 복구하고 스마트폰 자료를 확보하는 것까지는 절실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사'를 '수사'하듯 한다는 유병호 사무총장 체제에서 디지털 포렌식은 이제 필요불가결한 절차가 됐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2020년 월성 원전 감사 당시에도 '디지털 포렌식'을 동원했는데, 당시에는 이례적이어서 국회에서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방송통신위원회 감사 과정과 최근 진행 중인 '통계 감사' 과정 등에 디지털 포렌식을 했다.

법적 권한이 있고 규정 위반이 아니라면 감사원이 디지털 포렌식을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을 두고 우려가 나오는 건 검찰과 달리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감사원 감사를 받았던 한 공직자는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포렌식을 하겠다는 공문과 동의서를 동시에 보여주더라고요. '동의 여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냐'라고 얘기했더니 '동의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검찰에서 압수수색하는 것보다 더 쉽게 자료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거죠. 만약에 검찰이었으면 제 컴퓨터 포렌식을 못 했을 거예요. 포괄적으로 ○○○ 등이라고 돼 있으니까 다 뒤질 수 있다는 얘기죠."

디지털 포렌식 남용 우려는 지난해 7월 감사원이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을 개정하면서 더 커졌다. 개정 전 7페이지에 달했던 규정이 2페이지로 줄었다. 이 과정에 감사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해서 포렌식 한다는 규정과 제출 목록에 없는 자료를 추출했을 경우 폐기한다는 규정이 삭제됐다. 원본을 제출받았을 때 반환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 원본 훼손을 우려해 복제본을 사용한다는 규정, 감사가 끝났을 경우 자료를 폐기한다는 규정 등도 사라졌다.

형사소송법은 증거를 압수할 때 정보의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감사원은 이보다 훨씬 폭넓게 디지털 자료 수집을 허용하는 셈이다.

감사원은 2페이지로 줄어든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에서 일부 조항은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규정을 악용해 감사를 회피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비공개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감사원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감사원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

■ 감사원법 개정안 "포렌식 때 동의받고 참여권 고지해야"

감사원법 개정안은 디지털 포렌식의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고, 피감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 절차 간소화는 대법원 판례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정반대 방향"이라면서 "포렌식을 당하는 사람이 규정에 따라 진행되는지 알 수도 없고, 항의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포렌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대로면 감사원은 디지털 자료를 선별 추출할 경우 저장매체 등의 관리자로부터 포렌식에 대한 동의를 얻고 참여권을 고지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디지털 자료 추출 방법 및 절차 등을 법률에 규정할 경우 기술 발달에 따른 자료 은폐와 조작 등 감사 방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이 밖에도 감사 과정의 진술 사항에 대해 본인의 열람이나 복사권을 보장하고, 변호사의 참여권 및 당사자 등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서는 감사원과 유사한 조사 업무를 맡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도 변호사의 참여권과 이의제기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 법사위 상정은 했지만…통과는 "글쎄"

여야의 시각 차이가 큰 만큼 감사원법 개정안의 통과 전망은 높지 않다. 법사위 18명 가운데 민주당이 10명, 국민의힘이 7명으로 민주당이 더 많긴 하지만 법안 상정 권한을 가진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민주당이 중점 처리 법안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나설 경우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민감한 정치 현안과 쟁점 법안이 산재한 현재 정국에서 우선 순위에 올라갈 가능성은 역시 크지 않다.

KBS는 주요 야당 법사위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의견을 밝힌 민주당 의원 5명 가운데 2명은 "패스트트랙을 해서라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은 "무리할 필요 없다", "통과 가능성이 낮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법사위 패스트트랙의 '키맨'으로 통하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민주당의 감사원법 개정안 내용 가운데 '감사위원회 권한 강화'는 부작용이 클 수 있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 포렌식 절차 보강, 피감 대상의 방어권 보장은 찬성한다고 했다.

야당 법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온도 차이가 감지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권익위, 방통위 감사 등 올해 상반기 중 발표되는 민감 사안에 대한 감사 결과가 감사원법 개정안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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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보다 막강하다”…감사원 ‘포렌식’ 제한될까?
    • 입력 2023-01-14 10:00:11
    취재K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박범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발의한 감사원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 169명이 서명했다. 당초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명한 견해 차이 때문에 법사위 상정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검사정원법'이 필요했던 여당과 '감사원법 개정안'이 필요했던 야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극적으로 법사위 상정에 성공했다.

법사위에 상정된 감사원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발의)의 큰 골격은 '감사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내부 감찰 강화', '디지털 포렌식 제한과 피감 대상 반론권 강화'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디지털 포렌식 등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 검찰보다 쉬운 감사원 포렌식…규정까지 개정

디지털 포렌식이 핵심 감사 수단으로 자리 잡은 건 최근 들어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검찰 수사에서는 일찌감치 디지털 자료 복구가 수사 성패의 관건이 됐지만, 공공기관 감찰 업무에서 삭제한 자료를 복구하고 스마트폰 자료를 확보하는 것까지는 절실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사'를 '수사'하듯 한다는 유병호 사무총장 체제에서 디지털 포렌식은 이제 필요불가결한 절차가 됐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2020년 월성 원전 감사 당시에도 '디지털 포렌식'을 동원했는데, 당시에는 이례적이어서 국회에서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방송통신위원회 감사 과정과 최근 진행 중인 '통계 감사' 과정 등에 디지털 포렌식을 했다.

법적 권한이 있고 규정 위반이 아니라면 감사원이 디지털 포렌식을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을 두고 우려가 나오는 건 검찰과 달리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감사원 감사를 받았던 한 공직자는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포렌식을 하겠다는 공문과 동의서를 동시에 보여주더라고요. '동의 여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냐'라고 얘기했더니 '동의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검찰에서 압수수색하는 것보다 더 쉽게 자료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거죠. 만약에 검찰이었으면 제 컴퓨터 포렌식을 못 했을 거예요. 포괄적으로 ○○○ 등이라고 돼 있으니까 다 뒤질 수 있다는 얘기죠."

디지털 포렌식 남용 우려는 지난해 7월 감사원이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을 개정하면서 더 커졌다. 개정 전 7페이지에 달했던 규정이 2페이지로 줄었다. 이 과정에 감사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해서 포렌식 한다는 규정과 제출 목록에 없는 자료를 추출했을 경우 폐기한다는 규정이 삭제됐다. 원본을 제출받았을 때 반환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 원본 훼손을 우려해 복제본을 사용한다는 규정, 감사가 끝났을 경우 자료를 폐기한다는 규정 등도 사라졌다.

형사소송법은 증거를 압수할 때 정보의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감사원은 이보다 훨씬 폭넓게 디지털 자료 수집을 허용하는 셈이다.

감사원은 2페이지로 줄어든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에서 일부 조항은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규정을 악용해 감사를 회피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비공개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감사원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
■ 감사원법 개정안 "포렌식 때 동의받고 참여권 고지해야"

감사원법 개정안은 디지털 포렌식의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고, 피감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 절차 간소화는 대법원 판례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정반대 방향"이라면서 "포렌식을 당하는 사람이 규정에 따라 진행되는지 알 수도 없고, 항의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포렌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대로면 감사원은 디지털 자료를 선별 추출할 경우 저장매체 등의 관리자로부터 포렌식에 대한 동의를 얻고 참여권을 고지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디지털 자료 추출 방법 및 절차 등을 법률에 규정할 경우 기술 발달에 따른 자료 은폐와 조작 등 감사 방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이 밖에도 감사 과정의 진술 사항에 대해 본인의 열람이나 복사권을 보장하고, 변호사의 참여권 및 당사자 등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서는 감사원과 유사한 조사 업무를 맡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도 변호사의 참여권과 이의제기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 법사위 상정은 했지만…통과는 "글쎄"

여야의 시각 차이가 큰 만큼 감사원법 개정안의 통과 전망은 높지 않다. 법사위 18명 가운데 민주당이 10명, 국민의힘이 7명으로 민주당이 더 많긴 하지만 법안 상정 권한을 가진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민주당이 중점 처리 법안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나설 경우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민감한 정치 현안과 쟁점 법안이 산재한 현재 정국에서 우선 순위에 올라갈 가능성은 역시 크지 않다.

KBS는 주요 야당 법사위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의견을 밝힌 민주당 의원 5명 가운데 2명은 "패스트트랙을 해서라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은 "무리할 필요 없다", "통과 가능성이 낮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법사위 패스트트랙의 '키맨'으로 통하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민주당의 감사원법 개정안 내용 가운데 '감사위원회 권한 강화'는 부작용이 클 수 있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 포렌식 절차 보강, 피감 대상의 방어권 보장은 찬성한다고 했다.

야당 법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온도 차이가 감지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권익위, 방통위 감사 등 올해 상반기 중 발표되는 민감 사안에 대한 감사 결과가 감사원법 개정안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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