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미투’ 이후 5년…돌아온 그를 보며 떠올린 ‘그녀가 말했다’
입력 2023.01.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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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가 말했다’(2022)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도 비밀이었다. 오직 몇몇만 소리 낮춰 조언했다. 술자리를 피해. 옆자리에 앉지 마. 두꺼운 옷을 입어. 혹시 모르니까 스타킹도 겹쳐 신어. 공공연한 성범죄는 그렇게 수십 년간 은폐됐다. 도대체 왜? 그가 힘세고 유명한 거물이라서? 아니면 진보적 작품을 줄줄이 내놓고 민주당에 후원하는, 소위 '그럴 리 없는' 사람이라서? 숱한 인물들이 떠오르지만, 이 문단은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성 범죄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은.
벌써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한 이야기가 됐지만, 전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3,300단어짜리 기사에서 시작됐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 두 여기자의 취재로 30년에 걸친 와인스틴의 범죄 행각이 폭로됐고, 이에 분노한 이들이 '나도 고발한다'는 의미로 SNS 해시태그 운동에 나선 게 발단이다. 기자들은 당시의 취재기를 담아 2019년 책을 펴냈고, 이를 동명의 영화로 옮긴 작품이 지난해 개봉한 '그녀가 말했다'다. 그 자신도 '파니 핑크' 등의 주연 배우였던 마리아 슈라더가 메가폰을 잡았고, 실제 와인스틴의 피해자인 애슐리 쥬드와 귀네스 팰트로 등이 자기 자신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와인스틴의 행각이 지속된 이유로 앞서 열거한 이유 외에 또 하나를 지목한다. 성 범죄자를 비호하는 미국 사법 시스템이다. 목격자가 없을 때가 많은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은 신고해봤자 법원이 자신의 편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남은 건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가해자와 합의를 보는 것뿐인데, 변호사가 합의금의 최대 40%를 가져갈 수 있다 보니 피해자 변호사마저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일단 합의하면 영영 입을 다물어야 할 뿐 아니라 당시 쓴 일기장처럼 증거가 될 만한 물건까지 빼앗긴다. 결국,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유일한 여성만 용기를 내 실명 보도를 허락하고, "그녀가 된다고 했어(She said 'yes')"라며 눈물을 터트리는 기자들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자 타이틀이 됐다.
두 기자는 ‘기사에 내 이름을 써도 좋다’는 피해자의 허락을 기다린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그녀가 말했다'는 '미투'의 시초가 된 할리우드가 그 시기를 돌아보며 내놓은 모범 답안 같은 영화다. 자극적 요소를 덜어내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언론을 다룬 소위 뉴스룸 영화 중에서도 재미 자체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가해 장면을 한 번도 재현하지 않는 영화의 사려 깊은 태도는 가산점을 받을 만하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주연 배우 이름과 함께 검색하면 외려 성추행 장면만 오려낸 '플짤'(영상 파일)이 나오는 현실에서, 끔찍함을 전하려다 오히려 또 한 번 관음의 대상이 되고 마는 오류 없이도 훌륭한 고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극장에선 소리 없이 내려갔지만, 인터넷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에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또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 한 곳이 성실한 모범 답안을 내놓는 사이 다른 곳에선 사과 없는 복귀가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다. 최근 조용히 문단에 돌아온 고은 시인 이야기다. 5년여 전,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첫 문단과 비슷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식이었지만, 당사자는 꾸준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 역시 닮았다.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다. 와인스틴은 수감됐고, 고은은 돌아왔다. 깊이와 감수성을 찬탄하는 추천사와 함께. 쏟아지는 비판에도 출판사는 책을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자신은 고은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네트워크와 문단 피라미드 자체를 두고 싸웠다던, 가해자는 한 번도 문단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적 없었다던 최 시인과 여성민우회의 말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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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1-15 08:00:38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도 비밀이었다. 오직 몇몇만 소리 낮춰 조언했다. 술자리를 피해. 옆자리에 앉지 마. 두꺼운 옷을 입어. 혹시 모르니까 스타킹도 겹쳐 신어. 공공연한 성범죄는 그렇게 수십 년간 은폐됐다. 도대체 왜? 그가 힘세고 유명한 거물이라서? 아니면 진보적 작품을 줄줄이 내놓고 민주당에 후원하는, 소위 '그럴 리 없는' 사람이라서? 숱한 인물들이 떠오르지만, 이 문단은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성 범죄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은.
벌써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한 이야기가 됐지만, 전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3,300단어짜리 기사에서 시작됐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 두 여기자의 취재로 30년에 걸친 와인스틴의 범죄 행각이 폭로됐고, 이에 분노한 이들이 '나도 고발한다'는 의미로 SNS 해시태그 운동에 나선 게 발단이다. 기자들은 당시의 취재기를 담아 2019년 책을 펴냈고, 이를 동명의 영화로 옮긴 작품이 지난해 개봉한 '그녀가 말했다'다. 그 자신도 '파니 핑크' 등의 주연 배우였던 마리아 슈라더가 메가폰을 잡았고, 실제 와인스틴의 피해자인 애슐리 쥬드와 귀네스 팰트로 등이 자기 자신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와인스틴의 행각이 지속된 이유로 앞서 열거한 이유 외에 또 하나를 지목한다. 성 범죄자를 비호하는 미국 사법 시스템이다. 목격자가 없을 때가 많은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은 신고해봤자 법원이 자신의 편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남은 건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가해자와 합의를 보는 것뿐인데, 변호사가 합의금의 최대 40%를 가져갈 수 있다 보니 피해자 변호사마저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일단 합의하면 영영 입을 다물어야 할 뿐 아니라 당시 쓴 일기장처럼 증거가 될 만한 물건까지 빼앗긴다. 결국,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유일한 여성만 용기를 내 실명 보도를 허락하고, "그녀가 된다고 했어(She said 'yes')"라며 눈물을 터트리는 기자들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자 타이틀이 됐다.
'그녀가 말했다'는 '미투'의 시초가 된 할리우드가 그 시기를 돌아보며 내놓은 모범 답안 같은 영화다. 자극적 요소를 덜어내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언론을 다룬 소위 뉴스룸 영화 중에서도 재미 자체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가해 장면을 한 번도 재현하지 않는 영화의 사려 깊은 태도는 가산점을 받을 만하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주연 배우 이름과 함께 검색하면 외려 성추행 장면만 오려낸 '플짤'(영상 파일)이 나오는 현실에서, 끔찍함을 전하려다 오히려 또 한 번 관음의 대상이 되고 마는 오류 없이도 훌륭한 고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극장에선 소리 없이 내려갔지만, 인터넷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에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또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 한 곳이 성실한 모범 답안을 내놓는 사이 다른 곳에선 사과 없는 복귀가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다. 최근 조용히 문단에 돌아온 고은 시인 이야기다. 5년여 전,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첫 문단과 비슷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식이었지만, 당사자는 꾸준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 역시 닮았다.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다. 와인스틴은 수감됐고, 고은은 돌아왔다. 깊이와 감수성을 찬탄하는 추천사와 함께. 쏟아지는 비판에도 출판사는 책을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자신은 고은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네트워크와 문단 피라미드 자체를 두고 싸웠다던, 가해자는 한 번도 문단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적 없었다던 최 시인과 여성민우회의 말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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