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패망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편성했던 광복군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부산에서 해산되기는 했지만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삼기에 노력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보도에 신강문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한 이 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광복군부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3중대의 부대원 명부에는 병사 160여 명의 원적지와 일본군 복무 당시의 계급, 그리고 학력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대일지에는 김 구 주석이 부대행사에 참가하고 이청천 장군이 열병을 받았다는 등 광복군을 통솔했던 임시정부 인사들의 행적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같이 귀국을 해서 나라 세우는 일에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김 구 선생 등 요인들의 요망사항이었고 우리도 또 받들었죠.
⊙기자: 부대원들끼리 만든 문집에서는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광복군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당초 이들 광복군을 수만명 규모로 모아 정식 한국군으로 발족시키려 했으나 중국 국민당에게 무장해제돼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년 3월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귀국한 즉시 해산됐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와서 보니 반탁 운동이나 미소 공동위원회라 해서 일이 뜻대
로 되지 않았다고 봐야죠.
⊙기자: 이들 자료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0여 명의 명단도 포함돼 위안부 실태를 더 상세히 규명하게 됐습니다.
KBS뉴스 신강문입니다.
부산에서 해산되기는 했지만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삼기에 노력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보도에 신강문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한 이 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광복군부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3중대의 부대원 명부에는 병사 160여 명의 원적지와 일본군 복무 당시의 계급, 그리고 학력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대일지에는 김 구 주석이 부대행사에 참가하고 이청천 장군이 열병을 받았다는 등 광복군을 통솔했던 임시정부 인사들의 행적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같이 귀국을 해서 나라 세우는 일에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김 구 선생 등 요인들의 요망사항이었고 우리도 또 받들었죠.
⊙기자: 부대원들끼리 만든 문집에서는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광복군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당초 이들 광복군을 수만명 규모로 모아 정식 한국군으로 발족시키려 했으나 중국 국민당에게 무장해제돼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년 3월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귀국한 즉시 해산됐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와서 보니 반탁 운동이나 미소 공동위원회라 해서 일이 뜻대
로 되지 않았다고 봐야죠.
⊙기자: 이들 자료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0여 명의 명단도 포함돼 위안부 실태를 더 상세히 규명하게 됐습니다.
KBS뉴스 신강문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광복군 편성 자료 공개
-
- 입력 2005-06-07 21:34:39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일제 패망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편성했던 광복군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부산에서 해산되기는 했지만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삼기에 노력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보도에 신강문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한 이 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광복군부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3중대의 부대원 명부에는 병사 160여 명의 원적지와 일본군 복무 당시의 계급, 그리고 학력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대일지에는 김 구 주석이 부대행사에 참가하고 이청천 장군이 열병을 받았다는 등 광복군을 통솔했던 임시정부 인사들의 행적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같이 귀국을 해서 나라 세우는 일에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김 구 선생 등 요인들의 요망사항이었고 우리도 또 받들었죠.
⊙기자: 부대원들끼리 만든 문집에서는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광복군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당초 이들 광복군을 수만명 규모로 모아 정식 한국군으로 발족시키려 했으나 중국 국민당에게 무장해제돼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년 3월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귀국한 즉시 해산됐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와서 보니 반탁 운동이나 미소 공동위원회라 해서 일이 뜻대
로 되지 않았다고 봐야죠.
⊙기자: 이들 자료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0여 명의 명단도 포함돼 위안부 실태를 더 상세히 규명하게 됐습니다.
KBS뉴스 신강문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