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전화 ‘벨소리’도 무서운데…안 받으면 무죄?

입력 2023.01.17 (15:08) 수정 2023.01.1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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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출처/게티이미지뱅크

30대 남성 A씨는 2021년 10월부터 약 7개월 동안 여성 B씨를 스토킹해왔습니다.

300차례 넘게 전화하고, 20차례 넘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했습니다. 욕설과 함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 B씨를 책망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또 여성 B씨의 집이나 부모님 집 앞에 찾아가 기다리는가 하면, B씨의 차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성 A씨는 지난해 5월 법원으로부터 '스토킹 잠정조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여성 B씨에게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잠정조치 기간에도 17차례나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남성 A씨의 스토킹 행위는 계속됐습니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발신자 표시제한'이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남성 A씨를 스토킹과 잠정조치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A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여성 B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면서 스토킹 혐의 공소가 기각됐기 때문입니다.

창원지법은 또, 피해자의 처벌 불원과 무관한 '잠정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 "전화 건 행위, 잠정조치 위반 아냐" 왜?

잠정조치에서 금지하는 행위는 '휴대전화 또는 이메일 주소로,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 하는 행위입니다.

창원지법 재판부는 여성 B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음향'이 송신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B씨가 벨소리만으로도 공포스러웠겠지만,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5. 2. 25. 선고 2004도7615)를 근거로 '전화기 벨소리'는 '음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 B씨의 휴대전화에 찍힌 17건의 '부재 중 전화' 혹은 '차단된 전화'의 표시는 어떨까?

이 역시 재판부는, 휴대전화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일 뿐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나 문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여성단체 "피해자들의 공포 외면 말아야"

같은 취지의 판결,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인천지법과 지난해 6월 서울남부지법 등 같은 취지의 스토킹 혐의 무죄 판결이 잇따랐습니다. 전화를 걸었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음향을 송신한 게 아니며, '부재중 표시'는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나 문언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의전화 논평 “전화 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판사 교육 의무화하라!”지난해 11월 한국여성의전화 논평 “전화 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판사 교육 의무화하라!”

한국여성의 전화는 지난해 11월 해당 판결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습니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사법부가 17년 전 대법원 판례에만 매몰돼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여성의 전화는 사법기관에 "피해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외면하지 말고,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해달라"라고 말했습니다.

■ "송신 인지해도 도달한 것" 개정안 발의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의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전화나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반복해서 음향이나 글 등에 도달하게 하는 행위'인 기존 스토킹 행위 규정에 '송신을 상대방이 인지한 경우에도 도달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같은 당 이성만 의원도 반복해서 전화 통화를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스토킹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유사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두 개의 법안은 현재 소관위인 법제사법위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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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킹 전화 ‘벨소리’도 무서운데…안 받으면 무죄?
    • 입력 2023-01-17 15:08:08
    • 수정2023-01-17 19:07:45
    취재K
출처/게티이미지뱅크
30대 남성 A씨는 2021년 10월부터 약 7개월 동안 여성 B씨를 스토킹해왔습니다.

300차례 넘게 전화하고, 20차례 넘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했습니다. 욕설과 함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 B씨를 책망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또 여성 B씨의 집이나 부모님 집 앞에 찾아가 기다리는가 하면, B씨의 차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성 A씨는 지난해 5월 법원으로부터 '스토킹 잠정조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여성 B씨에게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잠정조치 기간에도 17차례나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등 남성 A씨의 스토킹 행위는 계속됐습니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발신자 표시제한'이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남성 A씨를 스토킹과 잠정조치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A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여성 B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면서 스토킹 혐의 공소가 기각됐기 때문입니다.

창원지법은 또, 피해자의 처벌 불원과 무관한 '잠정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 "전화 건 행위, 잠정조치 위반 아냐" 왜?

잠정조치에서 금지하는 행위는 '휴대전화 또는 이메일 주소로,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 하는 행위입니다.

창원지법 재판부는 여성 B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음향'이 송신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B씨가 벨소리만으로도 공포스러웠겠지만,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5. 2. 25. 선고 2004도7615)를 근거로 '전화기 벨소리'는 '음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 B씨의 휴대전화에 찍힌 17건의 '부재 중 전화' 혹은 '차단된 전화'의 표시는 어떨까?

이 역시 재판부는, 휴대전화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일 뿐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나 문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여성단체 "피해자들의 공포 외면 말아야"

같은 취지의 판결,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인천지법과 지난해 6월 서울남부지법 등 같은 취지의 스토킹 혐의 무죄 판결이 잇따랐습니다. 전화를 걸었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음향을 송신한 게 아니며, '부재중 표시'는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나 문언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의전화 논평 “전화 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판사 교육 의무화하라!”
한국여성의 전화는 지난해 11월 해당 판결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습니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사법부가 17년 전 대법원 판례에만 매몰돼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여성의 전화는 사법기관에 "피해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외면하지 말고,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해달라"라고 말했습니다.

■ "송신 인지해도 도달한 것" 개정안 발의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의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전화나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반복해서 음향이나 글 등에 도달하게 하는 행위'인 기존 스토킹 행위 규정에 '송신을 상대방이 인지한 경우에도 도달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같은 당 이성만 의원도 반복해서 전화 통화를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스토킹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유사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두 개의 법안은 현재 소관위인 법제사법위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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